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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22화 (22/303)

# 22

22화 - 현실에서도 (5)

[전투 시작까지 15분 전입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제한시간이 다 되는 순간 틀림없이 무언가 벌어질 것이 분명했다.

“이런, 젠장! 뭐 어쩌라는 거야!”

줄어드는 시간이 점점 목을 조여 오자 사내 하나가 커다랗게 소리 질렀다. 그것이 기폭제가 된 듯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커져갔다.

“집에 보내줘!”

“엄마…….”

사람들의 악다구니와 울부짖음이 동굴 안을 울렸다.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있던 사람들도 그 분위기에 같이 휩쓸려나갔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버섯 안에 들어갔을 때와 뭔가 비슷한 거 같지 않아요?”

혼잡한 광경을 지켜보던 민성이 고개를 돌려 공룡의 의사를 물었다. 많이 모자란 놈이지만 의견이 많아서 나쁠 것은 없었다.

“모른다!”

예상을 깨는 명쾌한 답변에 민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약간이라도 놈에게 기대한 그의 잘못이었다.

민성이 몸을 움직였다. 일단 게임이 시작되기 전까지 동굴을 수색할 필요가 있었다. 버섯 안에서 그가 배운 것은 두 가지였다.

“그럼 동굴 안을 탐색해보죠.”

철저한 탐색과 포기하지 않는 의지가 그것이었다.

“저는 저쪽으로 가볼 테니까 공룡님은 반대편으로 가주세요.”

오른편으로 발길을 돌린 민성이 공룡을 왼편으로 보냈다. 둥그런 동굴을 반 바퀴쯤 돌 때 민성의 시선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이건?’

기다란 나무박스들이 동굴 구석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무릎을 굽혀 박스를 열어젖힌 민성이 놀란 눈으로 내부를 훑어봤다. 안에는 조잡해 보이지만 살상력을 가진 무기들이 들어 있었다. 부실한 나무로 만든 것 같은 활과 녹이 살짝 슨 도검류 등이 가득했다.

민성이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슬쩍 살펴보곤 무기를 챙겨들었다. 먼저 챙기기도 전에 정보를 공유했다간 무엇 하나 건지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손에는 검과 나무방패를 들고 여벌의 검까지 허리춤에 달았다. 혹여나 필요할까 싶어 활과 화살 통까지 등에 이었다.

“여기 무기가 있어요!”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서야 민성이 사람들을 향해 크게 고함쳤다. 그리곤 그 자리를 빠르게 벗어났다.

“뭐? 무기? 무기가 있다고?”

“어디! 어디!”

절망에 빠져 있던 사람들의 눈이 본능적으로 번뜩였다. 그리곤 소리가 난 방향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상자 앞은 금세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 있는 건, 남의 도움이 아니라 날카로운 쇠붙이뿐이었다.

“호오.”

칼집을 반복적으로 건드리던 노인이 민성을 이채롭게 바라봤다. 집단의 힘은 꽤나 무서운 것이다. 아무리 단단한 심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집단의 분위기에 휩쓸리면 자신을 잃어버리는 건 한순간이다. 근데 저 청년은 그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집단을 누를 정도의 강한 의지를 갖고 있거나,

“아니면 숨겨둔 한 수가 있다거나…….”

피식거린 노인이 몸을 돌렸다. 아직은 이른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 같았다.

“좋아! 이제 안심이다!”

“이 방패는 꽤 튼튼한 것 같은데?”

사람들이 무기로 몸을 둘렀다. 그들의 표정에는 한결 여유가 묻어났다. 하지만 한쪽에선 그와 대비되게 울먹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도 하나만 주세요! 칼을 두 자루나 갖고 계시잖아요!”

“나보단 젊은 사람들이 챙기는 게 맞지, 늙은이가 무슨 도움이 된다고.”

무기 쟁탈전에서 밀려 아무것도 획득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사회적 약자인 어린아이들과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뭐…… 뭐야!”

갑자기 천장에서 돌가루가 떨어지며 동굴이 크게 요동쳤다. 당황한 사람들이 몸을 움츠렸다.

[전투가 시작됩니다. 공격을 개시하십시오.]

동굴 정면의 일부가 반달 모양으로 무너지더니 커다란 입구가 생겨났다.

그 사이로 빛이 들어왔지만 누구 하나 섣불리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용기 있는, 혹은 무모한 누군가가 나서주길 바랄 뿐이었다. 마침내 몇몇이 밖을 힐끔거리며 입구로 다가갔다. 상상했던 외계의 전장과는 달리 빛 너머에는 의외로 낯익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도시다!”

정면의 사차선 도로, 옆으로는 우뚝 솟아오른 빌딩들. 주인 없는 차들이 도로에 듬성듬성 주차되어 있었다. 도시는 기분 나쁠 정도로 조용했다. 어떠한 소리도, 흔한 사람의 실루엣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도 없나요?”

용기 낸 한 남자가 고요한 도시를 깨우려 크게 외쳤다. 목소리는 도로를 타고 빠르게 사라져버렸다. 몇 번을 반복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정신 나간 새끼.’

칼자루를 만지작거리던 노인이 그의 어리석은 행동을 비웃었다. 분명 전쟁은 시작됐다. 조심에 조심을 더해도 모자랄 판에 적에게 위치를 알려주는 꼴이란. 그의 부하였다면 당장에 목을 내리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가치도 없다고 판단했다. 굳이 그의 검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저런 놈은 어디선가 시체가 되어 나뒹굴 것이 분명하다.

‘뭐……. 와서 죽어주면 나야 더 편하지.’

스산한 미소를 지어 보인 노인이 그의 칼집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일단 움직여보죠!”

한 남자가 칼을 흔들며 사람들을 선동했다. 바깥이 안전하다는 걸 확인한 사람들이 조금씩 몸을 밖으로 내밀었다.

‘칫.’

지도자라도 된 양 행동하는 남자에게 불만을 품은 자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조금 더 사태를 두고 본 뒤 행동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혹시 모를 사태에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따르자 남자가 더 열정적으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출발합시다!”

앞장선 인솔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다 천천히 그의 뒤를 따랐다.

‘응?’

군중을 따라 동굴을 나온 민성은 낯선 감각에 손목을 들어올렸다. 수상쩍은 물체가 매달려 덜렁거리고 있었다. 투명한 튜브 속엔 황금빛 모래로 가득했다. 모래의 끝부분은 희미하나마 하얗게 물들어갔다. 혹시나 싶어 다른 사람들의 손목을 힐끗거렸지만 마찬가지였다.

잠시간 고민을 했지만 그 용도를 파악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찜찜했지만 민성도 몸을 움직였다.

‘너무 조용한데?’

민성이 찝찝한 얼굴로 도시를 두리번거렸다.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차라리 얼굴에 적이라고 팻말을 붙인 놈이라도 튀어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작정 사람들의 뒤를 따라가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 같았다.

정보가 필요하다.

“티노 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민성이 그의 어깨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공룡을 흔들었다.

“으……응? 도움! 무슨 도움이 필요한가, 인간!”

도움이라는 말에 공룡이 우쭐대며 꼬리를 치켜세웠다.

“이번에도 공룡님의 그 우월한 신체를 이용해 전방을 정찰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인간! 나는 완벽한 존재다. 갔다 오겠다!”

민성이 슬며시 말꼬리를 흘리자 공룡이 분개한 듯 몸을 날아 올렸다.

‘그럼, 녀석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몸을 사려야겠군.’

민성이 날아가는 공룡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 짓곤 사람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명확한 정보를 얻기 전까지는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중간쯤 들어오자 그새 친해졌는지, 사내 둘이서 도란도란 얘기하는 소리가 민성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래도 전쟁이라는데, 사주경계라도 하면서 가야 되는 거 아니에요? 평생 사회에서 쓸 일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데서라도 써먹어 봐야죠.”

“이게 어딜 봐서 전쟁이야. 단체로 물 먹이려고 몰래카메라라도 찍고 있는 거 아냐? 누가 보면 대기업 계열사 전체가 야유회라도 나온 줄 알겠네.”

비아냥대는 사내의 어조에 주위사람들이 숨죽여 웃었다.

도로를 따라 직진하던 남자가 움직임을 멈췄다. 뒤따르던 사람들도 그에 맞추어 동작을 멈추었다. 직선이 이어지던 도로가 왼쪽 대각선 방면으로 꺾였다. 도로의 끝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도로는 물체의 오른쪽 대각선을 따라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주변을 살핀 남자가 이상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지루하군. 들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은데.’

행렬에 끼어 움직임을 같이하던 노인이 크게 하품했다.

‘응?

길이 왼쪽으로 꺾이자 갑자기 노인이 눈을 작게 치켜떴다. 그의 감각에 수많은 기척들이 감지되었다. 그것은 인간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그 안에는 명백한 살의가 담겨있었다.

‘이제 좀 재밌어지겠구먼.’

그를 향해 이렇게 맹렬한 살의를 내뿜는 존재는 오랜만이었다.

‘쓸 만한 놈들을 솎아내기 전까지 최대한 자제하라고 하셨지만, 이렇게 목숨의 위협을 받으니 어쩔 수 없지.’

손맛 볼 생각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인간! 큰일 났다, 인간!”

행렬이 도로의 끝에 다 닿을 때쯤 공룡이 빠르게 민성에게 날아왔다.

“왜요! 왜요!”

민성이 작게 화답하자 공룡이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갑자기 왜 이렇게 목소리가 작아졌나, 인간?”

“튀고 싶지 않아서요.”

허공에다 대고 대화를 나누다간 정신병자로 취급받을 것 같아서였다.

“저 앞에 있는 커다란 건물 속에 이상한 놈들이 가득 들어앉아 있다! 너무 많아서 숫자는 못 셌다! 그리고 비슷하게 생긴 놈들이 건물 꼭대기에서 인간들을 주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예? 빌딩 전부 다요?”

경악한 민성의 반문에 공룡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을 느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미친.’

중요한 정보임은 틀림없지만 타이밍이 좋지 못했다. 민성이 코앞에 위치한 빌딩을 바라봤다. 커다란 물체를 둘러싸고 있는 빌딩만 해도 네 개나 되었다. 저기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놈들이 가득 튀어나온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어질했다.

‘큰일이다.’

이미 행렬은 긴장이 많이 흐트러진 분위기였다. 숙덕거리는 잡담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기습을 당하면 대책 없이 무너져 내릴 모래성이었다.

민성이 무언가를 시도해보기도 전에 행렬이 물체 앞까지 도착했다.

그것은 거대한 트럭이었다. 뒤에 붙어 있는 화물칸은 수백 명의 사람들을 태워도 될 정도로 넓었다.

[A지점에 도착하셨습니다. 점령을 시작합니다.]

트럭 앞까지 도착하자 커다란 타이머가 사람들의 눈앞에 떠올랐다.

“이게 뭐야!”

당황한 음성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민성의 시야에도 타이머가 나타났지만 그의 관심은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젠장. 저 빌딩들 안에 한 가득 있단 말이지? 지금이라도 소리를 질러서 알려줘야 하나? 아니야. 지금 외치면 오히려 역효과일 수도 있어.’

언제 놈들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긴박감을 핑계 삼아, 위험을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마음속에서 치워버린 민성이 침을 삼키며 검을 세게 부여잡았다.

“여러분! 긴장하지 마시고 저의 지시에 따라 천천히…….”

퍽-

앞장서던 남자가 말을 잊지 못했다.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그의 머리를 관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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