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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21화 (2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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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 현실에서도 (4)

“네, 완전! 한입 드실래요?”

민성이 샌드위치를 하나 집어 공룡에게 들이밀었다.

“선생이 남의 것은 함부로 손대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래요? 그럼 제가 다 먹어야겠네요. 하긴 뼈밖에 없으신 분이 소화는 어떻게 시키시려고.”

민성이 웃으며 내민 팔을 거둬들였다.

“하지만 인간이 그렇게 권유하니! 어쩔 수 없이 맛보도록 하겠다.”

공룡이 입을 벌리고 샌드위치에 달려들었다. 하지만 샌드위치는 공룡의 입을 그대로 통과해버렸다.

“건물만 통과하는 줄 알았는데 샌드위치도 마찬가지네요? 그럼 이건 못 먹는 걸로?”

민성이 신기하다는 듯 공룡의 몸통을 바라봤다. 공룡이 몇 번이고 샌드위치에 입을 들이밀고 딱딱거렸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럼 내가 먹을 수 있는 걸로 가져와라, 인간!”

“예, 예.”

공룡의 말을 가볍게 흘린 민성이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해주고 싶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생활해야 할지 모르니.’

공룡 덕에 한숨 돌렸지만, 이 괴로운 도피생활의 끝을 예상하기 어려웠다.

‘기회가 있을 때 잠이나 더 자두자. 녀석이 언제 다시 떠날지도 모를 일이니.’

공룡을 위해 다시 TV를 틀어놓은 민성이 몸을 뉘었다.

‘으……. 추워. 이불이 어디 갔지.’

민성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눈을 꼭 감고 이불을 찾아 손을 여기저기 뻗어봤지만 어느 곳에서도 잡히지 않았다.

추위에 이어 이번에는 누군가가 그의 몸을 툭툭 건드린다. 몇 번 팔을 휘적거렸지만 귀찮게 하는 놀림이 끊이질 않았다.

‘녀석인가? 아냐, 녀석이었다면 꼬리로 때리면서 소리를 질렀겠지. 응?’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공룡이 아니라면 날 건드리는 놈은 누구지?’

이미 잠을 깼지만 잠든 척한 민성이 슬쩍 주먹을 움켜쥐었다.

“골렘의…….”

눈을 번쩍 뜬 민성이 손을 올리며 스킬을 외치려는 순간,

“학생! 괜찮아요?”

그의 몸을 흔들고 있는 건장한 흑인이 눈에 들어왔다.

“아……. 네……. 괜찬…….”

민성이 침을 꿀꺽 삼키며 흑인의 우람한 팔뚝을 힐끗거렸다. 그리곤 올라가던 손을 그대로 머리 위로 올렸다.

‘왜 흑인이 있는 거지? 심지어 한국어도 완전 잘해.’

자연스럽게 머리를 긁적이는 데 성공한 민성이 흑인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이네요. 그럼.”

유창한 한국어를 내뱉은 흑인이 민성의 어깨를 두드려주곤 그의 곁을 벗어났다. 위기를 벗어난 민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다. 근데 여긴 어디야? 분명 집에서 자고 있었는데?’

민성이 사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위는 온통 새하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도화지 속에 들어온 느낌마저 들었다.

각각 회색과 검은색으로 된 철문도 시야에 잡혔다. 정교한 문양이 조각되어 있는 걸로 봐서는 장인의 손길이 닿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전혀 갈피를 못 잡겠는데.’

시선을 돌려봐도 장소를 파악할 수 있는 단서 따윈 보이지 않았다. 유일한 위안거리라곤, 그 말고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새하얀 공간속에 모여 있는 것, 그리고 끌려오는 사람들의 숫자가 계속 늘고 있다는 점뿐이었다.

“여가 어디여?”

반쯤 깎인 사과와 과도를 들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할머니도 계셨다. 귀여운 수면잠옷세트를 입고 있는 학생도 보였다. 그 외에도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한 사람들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한쪽에선 누워 있는 사람들을 일으키고 있는 흑인도 눈에 들어왔다.

“이건 뭐야……?”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들도 눈에 띄었다. 그들 역시 갑작스러운 이변에 당황스러웠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욕을 내뱉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이 상황을 예측했다는 듯 아수라장이 된 공간에서도 의연하게 서 있었다.

‘와……. 준비성이 장난 없네.’

민성이 허리에 커다란 칼집을 달고 있는 사람을 보곤 혀를 내둘렀다. 좌선을 하고 명상하는 스님의 모습도 보였다. 조용히 손에 쥔 묵주를 만지작거리는 신부도 있었다.

“드르렁.”

‘응? 하…….’

갑자기 들려오는 코고는 소리에 민성이 옆을 내려다봤다. 팔자 좋게 잠들어 있는 공룡이 보였다.

‘정찰을 부탁했더니 꿈속으로 정찰을 가?’

“이게……. 무……슨…… 짓……! 인……간!”

민성이 공룡의 꼬리를 잡고 쥐불놀이하듯 돌려댔다.

‘이번에는 뭐라고 할까?’

변명거리를 생각하던 민성이 갑자기 공룡의 꼬리를 그대로 놔버렸다. 놈의 비명소리가 울렸지만 시선을 정면에 고정시켰다. 언제 나타났는지, 인터넷 기사에서만 보이던 금발의 미남자가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다 오신 것 같군요. 안녕하십니까! 관리인입니다!”

관리인이 웃으며 사람들을 둘러봤다. 아직 전쟁은 시작도 안 했건만 사람들은 이미 패잔병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전쟁을 위해 차출되신 전사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관리인이 양팔을 벌리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전사들을 위한 그만의 예의였다.

“여…… 여기가 어디예요? 집…… 집에 보내주세요!”

교복차림의 앳된 여학생 한 명이 울먹이며 그를 바라봤다. 침묵을 지키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소녀의 마음과 같았다.

“한 번 선정되신 분은 돌아가실 수 없습니다. 돌아가실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뿐이죠.”

관리인이 잠시 말을 끊자, 모든 이들이 긴장한 채 그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전쟁에서 승리해 다시 따듯한 여러분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 그리고 죽어서 차가운 시체가 되어 오열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

“음…….”

일방적인 선고에 사람들이 무거운 신음을 흘렸다.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내는 이도 있었다.

‘역시나.’

그들의 반응을 예상했던 미남자가 씁쓸하게 웃었다. 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볼 수 있는 익숙한 광경이었다.

“먼 과거부터 수많은 전쟁을 거쳐 온 인간들입니다. 이제 세대를 뛰어넘어 여러분의 차례가 돌아온 것뿐입니다.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제풀에 지쳐 소란이 잦아들자 관리인이 말을 이었다.

“자, 그럼 이제 전사들께서 모두 준비가 되신 것 같으니 움직여보죠!”

“잠시만요! 궁금한 게 있습니다. 혹시, 저기 저 철문들에 대해서 알려주실 수 있나요?”

군복을 입은 건장한 청년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철문을 가리켰다. 다른 이들과 달리 군대를 벗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의 표정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좋은 질문입니다. 다행히도 그 질문은 일정부분 설명해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흰색 철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전쟁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전쟁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것과는 많이 다를 것입니다.”

“그럼 검은 철문은요?”

호기심이 왕성한 청년은 언제나 기적을 일으킨다. 관리인의 웃음이 짙어졌다.

“검은 철문으로 들어가면 상점으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 획득한 주화를 이용해 다양한 무기나 잡화 따위를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이용해 전투를 더 원활하게 치르실 수 있을 겁니다.”

관리인의 말에 납득한 청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전쟁은 어떤 방식으로 벌어지나?”

질문자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건들거리는 백인이었다.

“음. 정말 죄송합니다. 항상 규칙이 바뀌다 보니 그 부분은 말씀드리기 어렵군요. 하지만 한 가지는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살아남은 영웅들에게는 커다란 부와 명예가 따를 것이라는 걸요.”

미남자가 죄송스럽다는 얼굴을 하자 백인이 작게 중얼거리며 몸을 돌렸다.

‘음.’

손목에 찬 시계를 흘낏거린 관리인이 박수를 치며 사람들을 다독였다.

“이제 시간이 됐군요. 그럼 정말로 움직여보죠. 전투에 임하다 보면 수많은 고통이 여러분을 찾아갈 겁니다. 고통과 절규 섞인 비명을 내지를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마다 절 원망하셔도 좋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수많은 목숨들을 아스러지게 만들어야 하니까요.”

잠시 말을 끊은 관리인이 크게 외쳤다.

“여러분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끼이익-

닫혀 있던 하얀 철문이 괴음을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마른침을 삼키는 사람들의 목울대가 울렁거렸다. 이윽고 철문이 완전한 개방을 끝냈다.

“어……어?”

사람들의 몸이 밀리더니 철문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몸에 힘을 줘봤지만 무의미한 저항이었다. 공간을 가득 채우던 사람들의 모습이 이내 다 사라졌다.

“부디 기적 같은 일들만이 그들과 함께하기를.”

관리인이 닫히는 철문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

사람들이 도착한 곳은 커다란 동굴 같은 곳이었다. 음침한 분위기와 눅눅한 공기가 그들을 반겼다. 동굴 내부는 수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고도 남을 정도의 크기를 지니고 있었다.

[전장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선명한 여성의 음성이 동굴 안을 울렸다.

“여기가 전쟁터라고?”

두려움에 몸을 움츠리던 사람들이 이내 의문을 가지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피가 튀기고 살점이 흩날리는 전쟁터를 예상했다. 하지만 커다란 폭음은커녕 악에 받친 아우성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그 어떠한 전쟁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이거 순 구라 아니야?”

떨어지는 긴장감에 사람들이 어이없다는 듯 웃어재꼈다. 아직 꿈속이라거나 몰래카메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전투 시작까지 30분 전입니다.]

비웃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성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뭐…… 뭐야. 어디서 나는 소리야?”

불안과 동요. 사람들 사이를 맴도는 감정의 정체였다. 애써 웃음으로 감춰보려 했지만 공포심은 그들의 약점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쓸 만한 놈 하나 없어 보이는군.’

술렁거리는 사람들과 달리 허리에 커다란 칼집을 달고 있는 남자가 능숙하게 몸을 움직였다.

“이게 누구십니까? 흑혈검마 형제가 아니십니까? 교주님께서는 안녕하십니까?”

묵주를 굴리던 성직자가 다가오는 남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길게 땋은 흰머리에 검은 장포를 두른 노인이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에잉, 이래서 종교쟁이들은 안된다니까. 누가 네놈 형제냐!”

남자가 불만스럽게 칼집을 건드리며 사제를 노려봤다. 친근하게 그를 부르는 놈의 행태가 거슬렸다.

“어이쿠. 하느님의 사랑 아래에서는 모두가 형제이자 자매이지요.”

성직자가 자애로운 미소를 흘리며 동굴 안의 사람들을 돌아봤다. 가녀린 양들이 애처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흥. 내 눈에는 한 명이라도 더 포섭하려는 몸짓으로밖에 안 보인다. 네놈들이 그렇게 혐오하는 이교도들이랑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애로움을 깨달을 때까지 저희의 선교는 계속될 겁니다.”

남자의 이죽거림에도 성직자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인사는 이쯤하고. 어떻게 할 생각이냐?”

도발에도 쉽게 넘어오지 않는 성직자의 모습에 노인이 아쉽다는 듯 굳은 미소를 지었다.

“무엇을 말입니까?”

성직자가 해맑은 얼굴로 되물었다.

“순진한 척하는 것은 네놈들이나 땡중 놈들이나 어찌 다른 게 없느냐? 사람들을 포섭하는 것 말이다. 비숍까지 되는 놈이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전쟁이 벌어진 순간 네놈들도 분명 교황에게서 명령이 떨어졌을 텐데.”

노인이 답답했는지 먼저 그의 속내를 드러내 보였다.

“싹이 보인다면야 당연히 끌어들여야지요. 물론 하느님의 품으로 말이죠.”

성직자의 눈이 먹잇감을 노리는 매처럼 잽싸게 사람들을 스쳐갔다. 끝까지 가식적인 사제의 말투에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지. 예전처럼 다투지 말고 적당히 나누자는 것이 위대한 교주님의 뜻이다. 그런 놈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버린 이상 쓸데없이 전력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남자가 칼자루를 매만지며 슬며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역시 속이 깊으신 분들은 그 뜻이 통하는군요. 저희 교황님께서도 하느님께 받은 응답을 저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성직자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교황께서 내린 임무 중 하나를 충실히 수행했기에 그 만족감은 더했다.

“그럼 난 땡중과 코쟁이들에게도 가보도록 하겠다.”

“조심히 가시지요.”

서로의 의중을 확인한 이상 더 이상의 용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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