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20화 - 현실에서도 (3)
‘혹시 알아. 정말 외계인 짓이라면 그놈들이 놓고 간 운석 파편이라도 있을지. 납치범들에다가 버섯도 있는데 뭔들 없겠어.’
의미 없는 생각을 거듭하던 민성이 담뱃불을 재떨이에 지지고 창문을 닫으려 했다.
‘응?’
민성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밖을 바라봤다. 무언가가 그가 있는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인간!!!”
익숙한 목소리가 민성의 귓가를 울렸다. 순간 그의 안색이 하얗게 바뀌었다.
쾅-
민성이 빠르게 창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걸었다.
‘아씨. 내가 있는 곳은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 거야. 아! 그 망할 뼛조각, 그것 때문이구나. 다른 데로 가라. 다른 데로 가라.’
민성이 벽에 몸을 기대고 눈을 꼭 감았다. 납치범들로도 골머리가 아픈데 공룡과 같이 있으면 또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몰라 두려웠다.
“여기 있었나. 인간! 내가 돌아왔다!”
민성의 기도에도 창문을 통과한 공룡의 대가리가 반갑다는 듯 그를 바라보며 입을 딱딱거리고 있었다.
‘오지 마! 안 와도 돼!’
민성이 세상 무너진 표정을 지었다.
“이 몸이 많이 그리웠나 보군. 그렇게 너무 반갑다는 표정 짓지 마라, 인간! 정든다!”
거침없는 공룡의 음성에 민성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정말 볼 때마다 주먹을 부르는 놈이었다.
“그래서, 왜 또 왔어요?”
민성에게는 관심 없다는 듯 공룡이 꼬리로 침대를 내리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침대에서 방방 뛰던 공룡이 이번에는 TV에 관심을 보였다.
“오! 이 안에도 사람들이 사는 모양이다! 역시 인간들은 신기하다.”
공룡이 TV에서 나오는 아이돌의 춤을 따라 추며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왜 왔냐고!”
민성이 공룡의 몸통을 발로 걷어찼다.
“이게 무슨 짓이냐, 인간! 너의 위치를 잊은 거냐!”
댄스시간을 방해당한 공룡이 화가 난 듯 민성을 쳐다봤다.
“공룡님! 다름이 아니고 그 행동을 계속 따라하시면 큰일이 나기에 제가 미리 막아선 것입니다. 계속 놈들의 몸짓을 따라하셨다면 몸이 그대로 돌이 되셨을 겁니다.”
민성의 간곡한 어조에 공룡이 머리를 끄덕였다.
“음. 역시 날 생각해주는 건 인간밖에 없군. 근데 인간은 왜 그런 위험한 놈들의 행동을 보고 있었던 거지?”
생각지도 못한 놈의 예리한 질문에 민성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저들을 따라하다 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이라도 피해자를 줄이기 위해 저들의 행동을 보고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민성이 고개를 내리깔고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인간 세상에도 우리 세계와 똑같은 능력을 가진 녀석들이 있었군. 역시 인간 세상도 만만치 않은 곳이다. 인간도 조심해야 한다!”
공룡이 꼬리로 그의 어깨를 툭툭 내리쳤다.
“근데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놈의 멍청함에 한숨을 내쉰 민성이 궁금함을 내비쳤다.
“나도 모른다. 오늘도 어김없이 버섯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몸이 번쩍거리더니 인간이 있는 근처로 이동됐다.”
공룡도 신기하다는 듯 계속 그의 방을 두리번거리며 말을 이었다.
“어찌 보면 더 잘된 일인 것 같다. 혼자 버섯을 찾는 것보다는 둘이서 찾는 게 더 빠르겠지. 같이 잘 찾아보자, 인간!”
생뚱맞은 소리에 민성이 어이없다는 듯 티노를 쳐다봤다.
“날 너무, 너무, 너무…….”
할 말 다한 공룡이 다시 아이돌을 따라 춤추고 있었다. 정말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놈이었다. 짧은 팔을 휘적거리고 박자에 맞춰 꼬리까지 내려치는 꼴이 참 가관이었다.
‘드디어 저놈이 미쳤나? 설마 내가 진짜로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나?’
버섯이 매우 위협적인 식물이라는 걸 깨달은 뒤로 버섯은 입에도 안 대던 민성이었다. 그런데 그 위험한 것을 같이 찾자는 말에 기가 차다 못해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좋아하다니 내 마음이 다 흡족하군.”
공룡이 흐뭇하게 꼬리를 흔들었다.
“아니…….”
답답한 마음에 뒷목을 부여잡은 민성이 갑자기 눈을 번뜩였다.
‘아니야, 생각해보니 녀석의 능력을 잘 활용하면 충분히 도움이 될 것 같다.’
남들의 눈에 보이지 않고 건물을 통과할 수 있는 능력은, 정찰에 최적화된 능력이다. 놈들의 추격을 미리 예방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생각을 바꾼 민성이 상냥한 말투로 얘기했다.
“위대하신 공룡님, 저 역시 버섯을 찾기 위해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훌륭한 마음가짐이다. 역시 내가 인간을 잘 봤다.”
만족스럽게 꼬리를 흔드는 공룡을 본 민성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공룡님. 문제가 하나 발생했습니다.”
미소를 지운 민성이 정말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그게 뭐냐, 인간!”
“요 며칠간 공룡님을 위해 버섯을 찾아 온 도시를 헤맸습니다. 근데! 그 사실을 알게 된 어느 단체가 제 목숨을 노려 버섯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놈들은 지금도 저를 추격하고 있을 겁니다.”
“내 부하를 노리다니 괘씸한 인간들이다. 본때를 보여줘야겠다!”
공룡의 반응에 만족한 민성이 슬그머니 본론을 꺼냈다.
“공룡님이 몸소 나서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약간의 수고만 해주시면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게 뭐냐, 인간!”
“제 주위를 정찰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공룡님의 그 우월한 능력이라면 언제든지 놈들이 다가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혹여나 힘에 부치실 것 같으면 말씀해주십시오.”
민성이 공룡을 띄워줌과 동시에 자극했다.
“나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인간!”
“그럼 오늘부터 제가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이 근방을 정찰하시면서 수상한 인간이 보이거든 저를 깨워주시면 됩니다. 고생하실 공룡님을 위해 제가 TV를 틀어놓겠습니다.”
“알았다, 인간! 그럼 지금 다녀오겠다!”
“옙!”
녀석의 확답에 만족한 민성이 TV 채널을 맞춰준 뒤, 이불을 뒤집어썼다.
*
죽은 듯이 잠들어 있던 민성의 몸이 꿈틀거렸다. 한참 이불 속을 뒤척이던 민성이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 켰다.
‘와, 몇 시간을 잔 거야.’
민성이 손목시계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잠으로만 하루를 넘는 시간을 보내버렸다.
‘그래도 간만에 푹 잤다.’
놈들의 추격이 시작된 후로 맘 편히 자본 적이 없었다. 어디에 숨어 있든 놈들이 들이닥칠까 겁나 잠을 청하지 못했었다.
‘고마운 녀석.’
민성이 고개를 돌려 공룡을 찾았다. 하지만 녀석은 아직 정찰중인지 보이지 않았다. 괜스레 녀석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녀석이 오기 전까지 TV나 볼까.’
민성이 몸을 일으켜 리모컨을 건드렸다. 어느 채널에서나 국회의사당 붕괴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한참 리모컨을 만지던 민성이 한 채널에 고정했다.
“네, 저는 지금 의문의 습격으로 파괴된 국회의사당 인근에 와있습니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경이롭게도, 지금 그 위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건물이 지어져 있습니다.”
아나운서의 음성과 함께 TV 안의 시점이 바뀌었다.
‘우와……. 끝이 안 보이네. 저런 게 하룻밤 만에 생겨났다고?’
민성이 탑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몇 년은 건설해야 겨우 모습이나 갖출 법한 크기였다. 높다란 탑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위로 곧게 뻗은 바벨탑을 연상시켰다. 탑 주위로는 수많은 경찰들과 군인까지 동원되어 엄중한 경비를 서고 있었다.
콰르르르-
탑 주위로 육중한 장갑차가 들어왔다. 자동차 2대를 위로 붙여놓은 크기의 장갑차 위로는 군인들이 기관총을 잡고 언제든지 발포할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하차!”
우렁찬 명령과 함께 개폐된 뒷문으로 군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장갑차에 바짝 밀착해 총구멍을 언제든 탑에서 나올 무언가를 향해 겨누었다. 공중에서는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수많은 헬기가 일정거리를 유지하며 탑을 배회하고 있었다.
‘누가 보면 전쟁난 줄 알겠네.’
저벅저벅-
민성이 채널을 돌리려는 그때, 거대한 탑 안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순간 탑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침묵했다. 기자들이 본능적으로 그들을 가로막는 통제선 너머의 그것을 향해 카메라를 고정시켰다.
“조정간 단발!”
발포준비 명령에 군인들이 가늠쇠에 눈을 박고 표적을 조준했다. 그들의 목울대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뾰족한 귀에 이국적으로 생긴 금발의 미남자가 상쾌한 웃음을 지으며 탑에서 나오고 있었다. 어느 정도 사람들과의 거리를 좁히고 나서야 남자가 걸음을 멈추었다.
“안녕하십니까. 지구입니다! 아차, 정확히는 지구를 관리하고 있는 관리인입니다! 이런, 제 품에서 살고 계신 분들이 이렇게 살벌하게 나와서야, 원.”
모든 사람들이 들을 정도의 커다란 목소리가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이국적으로 생긴 것과는 달리 유창한 한국어를 내뱉었다.
“원래 이렇게 표면 위로 나서는 일이 없었지만 사태가 급박해져 이렇게 모습을 보이게 됐습니다. 여기서 말하면 어차피 방송을 타고 모든 인간들이 다 볼 수 있을 테니까요.”
미남자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지금 저희 차원이 침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내일부터 전쟁이 시작됩니다.”
‘미친 외계인인가?’
‘추락할 때 머리라도 부딪힌 건가?’
어처구니없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늘어놓는 남자의 모습에 모두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고요한 정적 속에서도 카메라 플래시 터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침략에 대비해 전사들을 선정할 예정입니다. 선정방식은, 랜덤입니다! 전쟁인 만큼 남녀노소 상관없이 누구나 차출될 수 있습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선정시간은 금일 24: 00부터 시작됩니다. 그럼.”
말을 끝마친 남성이 다시 탑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발을 돌렸다.
“잠깐만요! 질문 있습니다!”
통제선을 뚫고 온 기자 한 명이 남자를 향해 용감하게 질문했다.
“네, 제가 다른 탑에도 방문을 해야 돼서, 빠르게 물어보시죠. 이미 탑에다 발포를 시작한 무식한 나라도 있어서요.
미남자가 웃으며 기자를 바라봤다.
“탑의 용도와…… 전사 선정방식이 무작위인 이유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기자가 긴장한 듯 말을 더듬거렸다.
“탑의 용도는 전쟁이 시작되면 아실 수 있습니다. 그 부분은 제가 직접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군요. 그리고 선정방식이 무작위인 이유는 절대신께서 그렇게 지정하셨으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미남자는 뒤 한 번 보지 않고 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흠...’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민성이 핸드폰을 들었다. 핸드폰에는 수많은 기사들이 앞 다투어 올라오고 있었다.
기괴한 탑의 정체는?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인가?
종말의 예고.
민성은 그 중에서 자극적인 기사 하나를 골라 들어갔다.
드롭일보
지구의 경고?
이우미 기자([email protected])
20일 오전 14시 23분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위치했던 장소에 세워진 기괴한 탑. 그 안에서 정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미상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을 지구라 칭한 미상의 존재는 믿기 힘든 말을 우리에게 전했다. 타차원의 침략을 받았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이 이야기를 둘러싸고 벌써부터 수많은 시민들이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신빙성이 있다는 의견부터 과학적 근거에 어긋나는 괴담이라는 주장까지, 다양한 발언이 나오고 있다. 누구의 말이 정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만약 이적인 존재의 말이 정말 현실로 다가온다면 인류는 또 다른 위협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맛있나, 인간?”
언제 돌아왔는지 공룡이 뉴스란을 살피며 샌드위치를 쑤셔 넣던 민성을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