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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16화 (16/303)

# 16

16화 - 현실로 (6)

[7라운드를 시작합니다.]

플레이어들의 숫자가 줄어든 만큼 걸릴 확률은 높아졌다. 민성이 삼키는 마른침의 횟수도 늘어났다. 불빛이 동작을 멈추었다.

‘…….’

민성이 그의 몸을 내려다봤다. 육신에서 붉은빛이 아른거렸다. 차분하고자 했던 마음에 당혹감이 스며들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크게 숨을 들이켰다. 언제든 이런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난…… 죽지 않는다.’

긴장감에 몸이 떨려왔지만 자신 있었다. 민성이 한결 여유로운 모습으로 경쟁자들을 노려봤다. 그의 몸에 예정된 죽음이 선고된 순간 다른 플레이어들은 이미 곁에서 멀어진 상황이다.

‘그래도 방법이 있지.’

다른 존재들에게 견줄 만한 능력도 신체적 우월함도 없다. 그래서 더 기를 쓰고 아이템을 끌어 모았다. 변수는 언제든 생기기 마련이다. 다만 그 변수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생사의 갈림길은 크게 뒤바뀐다.

일단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내야 한다. 늑대나 그 외의 존재들의 움직임을 보았을 때 육탄전은 무리였다. 지금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아이템뿐이다.

‘근데 가장 중요한 건 아이템 쓰는 방법을 모른다는 거지.’

골렘의 고함소리가 들려오기 전에 사용법을 알아내야 한다.

“아이템! 아이템 사용!”

틈틈이 생각해놨던 단어를 뱉어냈다. 하지만 전부 오답이었는지 어떠한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민성의 이마에 작은 핏줄이 부풀어 올랐다. 수많은 단어들 중 하나는 걸릴 줄 알았다.

‘설마 쪽팔리게 이름 그대로 ‘이거나 먹어라’는 아니겠지.’

민성이 찝찝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곧 자신의 현실을 직시했다. 당장의 체면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거나 먹어라!”

잠시 망설이던 민성이 작게 소리쳤다.

띠링!

[아이템이 발동됩니다. 타깃을 선정해주십시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민성의 시야에 표적을 노리는 조준점이 잡혔다. 눈길을 돌릴 때마다 조준점이 같이 이동했다. 아마 다른 아이템도 방식은 똑같을 것이다. 사용법을 터득한 민성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목표물은 어떻게 설정하는 거지?’

이리저리 눈알을 돌리던 민성이 어금니를 만지작거리는 늑대를 바라봤다. 그새 체력을 회복했는지 느긋하게 털을 할짝거리고 있었다. 놈을 목표물로 설정하고 싶었다. 놈의 위험성은 이미 몇 번의 전투를 통해 증명됐다.

띠링-

[타깃이 선정되었습니다. 정말 발사하시겠습니까?]

늑대를 계속 바라보자 발사여부를 확인하는 문구가 떠올랐다. 아마도 사용하고 싶은 대상을 계속 응시하면 발동하는 시스템인 모양이다.

“네!”

승인이 떨어지자 곧바로 아이템의 효과가 드러났다. 몸을 오르내리던 빛이 늑대에게 전이되었다.

“크르릉.”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기 몸을 바라보던 늑대가 민성을 잠시 노려봤다.

“휴…….”

민성이 안도의 미소를 흘렸다. 우려와는 달리 늑대의 보복행위는 돌아오지 않았다. 격한 반응을 보였던 곰과는 사뭇 다른 모습 이였다.

그를 대신한 희생양 하나가 목숨을 잃었을 뿐이었다. 빛을 넘겨받은 늑대가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근처에 있던 외눈박이 사슴 뒤로 다가가 목덜미에 어금니를 꽂아 넣었다. 늑대의 몸에 있던 붉은빛이 곧바로 사슴에게 이동했다. 시뻘건 피를 쏟아낸 사슴이 비명 한 번 남기지 못하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늑대가 이빨에 묻은 피를 할짝거리며 도발한 인간을 노려봤다.

[7라운드를 종료합니다. 1분 뒤 8라운드가 진행됩니다.]

[보상으로 20아르가 제공됩니다.]

‘아이템이 더 필요해.’

민성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라운드가 종료되자 놓쳤던 골렘의 파편이 떠올랐다. 아이템의 효과를 확인하자 그 안타까움은 더했다. 아이템을 획득하면 강해짐과 동시에 상대방이 강성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생존할 수 있는 확률도 올라간다. 이미 그 말고도 파편의 실체를 파악한 플레이어들이 눈을 빛내고 있었다.

짧은 휴식시간임에도 소리 없는 혈전이 예고되었다.

***

[12라운드를 종료합니다. 1분 뒤 13라운드가 진행됩니다.]

민성이 거칠게 숨을 들이켰다. 선혈이 낭자한 경기장 안은 비릿한 냄새가 물씬 풍겼다. 이제 남아 있는 놈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시발……. 시발…….’

고된 승부는 피로감을 동반했다. 끊임없이 자신을 타이르고 풀어지는 긴장감을 조여 맸다. 한계라는 놈을 몇 번이나 마주했는지 모르겠다. 쉼 없이 움직였던 두 다리가 후들거린다. 조금이라도 아이템을 아껴보기 위한 발버둥의 산물이었다.

잠시 동안 무적효과를 부여해주던 ‘때려봐’는 갑작스러운 물 인간의 돌격을 막는 데 써버렸다. 심지어 민성만을 노리는지 다른 이들의 집적거림은 피했다. 놈의 횡포에 화가 났지만 약자가 겪는 설움이기도 했다.

‘젠장. 그런 효과가 있는 줄 알았다면 어떻게든 아꼈어야 했는데.’

30아르로 개봉한, 작은 골렘의 파편에서 얻은 ‘빠르지?’를 사용한 것은 뼈아픈 실수였다. 민성이 가장 만만해 보였는지 거북이가 붉은빛을 달고 대가리를 들이밀었었다. 기린처럼 늘어난 목이 다가오자, 급한 마음에 ‘빠르지?’를 사용했었다.

사용과 동시에 몸에 부스터를 단 듯 움직일 수 있었다. 형체만이 간간히 보일 정도로 빨랐기에, 다른 플레이어들은 건드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었다. 민성이 잽싸게 도망가자 시무룩해진 거북이가 아이템을 사용해 붉은빛을 넘기고 다시 등딱지에 숨어들었었다.

‘양아치 같은 놈.’

거북이의 얍삽한 모습에 절로 욕이 나왔다. 분명 곰과 함께 부서진 줄로만 알았던 등딱지가 무사했을 땐 사기라고 생각했다. 물론 골렘의 팔이 거북이를 스쳐지나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그 생각을 접었다.

그의 기준에서 약자라고 생각했던 거북이의 생존 방법에 놀랐다. 등껍질이 제대로 효자노릇 하는 듯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사실 ‘이거나 먹어라’를 사용하고 싶었지만 근접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에 적합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아이템들을 아껴보려 했지만, 급박하게 진행되는 게임 속에서 절약은 사치가 되었다.

유일하게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것이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놈들도 파편을 습득하더니 예측하기 어려운 사태들이 벌어졌다. 방금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거북이는 그렇다 쳐도 늑대 놈이 투명화까지 쓰면 어쩌라는 거야!’

막강한 놈들에게는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몸을 감추고 어금니를 휘두르는 늑대의 손에 상당수의 플레이어들이 목숨을 잃었다. 상대를 가리지 않았기에 그 공포가 더했다. 민성도 살기 위해 쟁여놨던 마지막 ‘때려봐’를 소모했다.

‘이제 남아 있는 아이템도 하나뿐인데.’

살아남기 위해 모든 아이템을 소모했다. 남은 거라곤 ‘이거나 먹어라’뿐이다. 유용한 아이템인 것은 분명했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붉은빛을 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눈앞의 위협이 더 커다란 문제였다.

이제 경기장에 남아 있는 플레이어들은 단 넷. 민성과 늑대, 물 인간과 거북이가 전부였다. 위축된 민성이 저들을 바라봤다. 그들보다 무엇 하나 나은 것이 없었다.

‘제발 이번 파편만은…….’

민성이 고뇌하며 머리를 쥐어짰다. 만약 이번에도 파편을 획득하지 못하면 완전히 끝이다. 생존을 위한 마지막 가능성이 사라져버린다.

반드시 파편을 습득해야 한다. 골렘이 몸을 꿈틀거리자 플레이어들이 자세를 취했다. 언제든 달려 나갈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툭-

파편이 튀어 오름과 동시에 전원 몸을 날렸다.

‘뭐야!’

민성이 당황스러움에 걸음을 멈추었다. 골렘의 몸에서 파편 네 개가 떨어져 나왔다. 그것도 플레이들이 위치한 방향으로 날아왔다. 누군가가 골렘을 조종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의도든 아니든 일단 파편을 확보해야 했다.

띠링!

[골렘의 파편을 개봉하시겠습니까? 파편을 개봉하는 데는 50아르가 소모됩니다.]

식탁만 한 크기의 돌덩이를 잡은 민성이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습득해왔던 파편들보다 널찍하더라니 이유가 있었다. 크기만큼이나 가격도 비싼 놈이다.

민성이 갖고 있는 아르를 확인했다. 아직 여유가 있다. 아르가 부족해 구매를 하지 못하는 일은 없다.

민성이 다른 플레이들을 넌지시 살펴봤다. 그가 습득한 파편과는 다른 파편들도 보였다. 떨어져 나온 파편들의 크기도 제각각인 듯했다. 그만이 유독 커다란 파편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 이건 꼭 사야 해.’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지만 비싼 만큼 그 값어치를 해줄 것이다. 설령 가격 대비 성능이 떨어지는 아이템이 나와도 어쩔 수 없다. 파편이 적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만은 무조건 방지해야 한다.

[축하드립니다. 골렘의 파편에서 ‘많이 힘들지?’를 획득하셨습니다.]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아.’

파편을 개봉한 민성이 입술을 찡그렸다. 이놈의 아이템들은 하나같이 알아먹기 힘든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저 아이콘으로 아이템의 능력을 추측해내야 한다.

아이콘에는 누워 있는 대상을 쓰다듬는 몸짓이 그려져 있었다. 머리를 굴려봤지만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을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플레이어의 숫자가 들어맞습니다. 이번 라운드부터 특수 룰이 적용됩니다.]

‘특수 룰?’

듣기만 해도 찝찝함이 몰려왔다. 특수 룰이든 나발이든 일단 눈앞의 일에 집중해야 한다.

[13라운드를 시작합니다!]

‘미친! 특수 룰이라는 게 이런 거였어?’

민성이 경악스럽다는 듯 근방을 쳐다봤다. 경기장 안,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의 몸에 죽음의 예고가 넘실거렸다.

룰이 바뀐 이상 소극적으로 움직이기 어려워졌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여기에서 승부를 봐야 하는 처지가 돼버렸다. 이상하게 파편을 많이 뿌리더라니 이런 속셈이 숨어 있을 줄이야.

예비 사망자들이 골렘을 중심으로 주변을 맴돌며 눈치를 살폈다.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구도였다. 한 놈을 죽일 수 있는 힘이 있어도 뒤에서 다른 플레이어가 공격해오면 양쪽을 상대해야 한다. 아무리 강자라 해도 다구리에는 장사 없는 법이었다.

‘먼저 움직이는 순간 지는 거다.’

모든 플레이어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젠장. 그럼 ’이거나 먹어라‘는 소용없는 거 아냐?’

민성이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보유한 아이템을 확인했다.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은 ‘많이 힘들지?’밖에 없다. ‘이거나 먹어라’는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모두의 몸에 붉은빛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쓸 일이 없다.

‘그럼에도 상대에게 내 빛을 넘길 수 있다면?’

뜻대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비장의 한 발이 돼줄 것이다. 민성이 더 좋은 대안을 생각하며 놈들을 노려봤다.

계속되는 대치상태는 플레이어들의 강인한 인내력을 요구했다. 타들어가는 초의 심지처럼 몸에 달라붙은 빛이 그들의 정신력을 갉아먹었다.

“움움!”

거북이가 빈대떡이 된 곰을 슬며시 쳐다봤다. 아까까지는 적이었어도 놈이 죽은 지금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안타까운 사연 하나씩은 가지고 산다. 당장 자신만 해도 기다리는 처자식들이 몇십이었다. 아직 부화하지 않은 알들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놈들이라고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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