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13화 - 현실로 (3)
택시라도 잡고 싶었지만 항상 차들로 붐비는 강남에선 어리석은 선택이다. 금방 따라잡힐 게 분명하다.
‘일단 수도권으로 빠지는 택시를 타자. 횡단보도를 건너서 바로 택시를 잡는 거야!’
서울 밖으로 빠지는 차선은 반대차선과 다르게 한산했다. 때마침 그를 돕듯 횡단보도도 초록불로 바뀌었다.
횡단보도와는 약간 거리가 있었지만 때마침 신호등도 초록불로 바뀌었다. 정류장을 지나쳐 횡단보도를 건너면 택시를 탈 수 있다. 민성은 미친 듯이 질주하여 순식간에 횡단보도 중심까지 도착했다. 순간 문득 그의 앞에 눈에 익은 버섯이 보였다. 불광천에서 그를 집어삼켰던 바로 그 버섯이었다. 무척 가까이에 있지만 몸에 닿지 않게 피해 간다면 문제없을 것 같았다. 뒤를 살피며 빠르게 달리던 민성이 정류장에 도달해 반대편으로 넘어가려는 그때,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그를 밀쳤다.
‘뭐, 뭐야!’
“하오! 하오!”
중국인 무리가 그를 밀쳐내며 한자가 적힌 버스로 다가가고 있었다.
“아! 밀지 마! 밀지 말라고! 이 짱깨 새끼들아!”
중국인 행렬에 낀 민성이 비명 서린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안타까운 외침에도 중국인들은 그를 밀쳐내며 바쁘게 버스에 탑승했다. 민성의 어깨가 버섯에 툭하고 닿았다. 순간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띠링-
[T%@O : 22123에 입장$^@^시@$니까?]
게임 종류 : ?
난이도 : D
클리어 보상 : ?
클리어 실패 시: ?
[T%@O : 22123을 클리어하^@^시@$니까?]
“아니! 아니! 아니!”
민성이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전과 마찬가지로 그의 의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버섯이 몸을 꿈틀거렸다.
“으아!!!!”
쪼개진 버섯의 머리가 민성의 비명과 함께 그를 집어삼켰다.
4. 버섯 네 이놈!
‘젠장,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는데.’
답답한 마음에 민성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까지 벌였던 추격전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현실로 돌아가면 곧바로 놈들이 추격해올 것이다. 그나마 버섯에 있는 동안 현실시간이 멈춰 있다는 사실이 그를 위로했다.
‘일단 이곳에 집중하자.’
마음을 다잡은 민성이 주변을 살폈다. 무지개 색의 회오리 안개가 그를 뒤덮고 있었다. 안개 저 너머에서는 작은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작은 구멍을 통과하자 곧 강렬한 빛이 민성의 눈가를 덮쳤다.
피부에 뜨거운 열풍이 몰아닥치자 민성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여긴…… 저번 것과는 많이 다른데. 버섯마다 지형이 바뀌는 건가?’
하늘에서 커다란 불덩이가 간간이 떨어져 내렸다. 꺼지지 않는 불꽃이 붉은 땅 여기저기서 피어올랐다. 높이 솟아 있는 언덕들도 군데군데 보였다. 정면에는 거대한 크기의 붉은 돌덩이가 놓여 있었다.
‘덥다.’
후끈한 바람 때문인지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후……. 이번에는 뭐가 있으려나?’
저번 버섯에서 느낀 것이 많았다. 나름 눈치가 빠르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버섯에서 그 자신감은 완전히 박살났었다. 그는 이곳에서 완전한 약자였다. 약자가 살아남는 데 필요한 건 빠른 정보수집과 그에 따른 대처능력이다.
‘일단 몸 상태부터 확인해보자.’
혹시나 해서 몸을 띄워봤지만 저번처럼 날 수 있는 능력은 없는 것 같았다. 그의 상단에는 동전 모양의 아이콘이 떠올라 있었다. 적혀 있는 숫자는 10이었다.
순간, 캐슬 디펜스를 떠올린 민성이 고개를 저었다. 설마하니 똑같은 방식의 게임일 것 같지는 않았다. 몸수색을 끝냈지만 건진 정보라고는 동전 모양의 아이콘이 있다는 것뿐이다.
‘저건 뭐지?’
민성이 눈을 작게 찌푸렸다. 저 멀리 검은 실루엣들이 여럿 보였다. 순간, 불길함이 몸을 엄습해왔다. 만약 디펜스에서 마주쳤던 그런 몬스터들과 조우하게 된다면 죽임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갑자기 검은 실루엣 중 하나가 그를 향해 접근해오자, 기겁한 민성이 몸을 돌려 빠르게 달렸다.
‘현실이나, 버섯이나 차이가 없냐!’
전방으로 질주하던 민성이 슬쩍 고개를 돌려 따라오는 놈의 정체를 확인했다.
“물…… 물사람?”
사람의 형체를 한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전신이 물로 구성돼 있는지 놈이 움직일 때마다 몸에서 공기방울이 올라왔다. 신체를 마음먹은 대로 바꿀 수 있는지 놈의 팔이 창의 형태로 변화했다. 그리곤 그의 등을 찌르려는 듯 창을 위아래로 흔들어댔다.
띠링-
[구역에서 이탈하셨습니다. 30초 내로 복귀하지 않을시 강제 패배 처리가 됩니다.]
일정 거리를 넘어가자 익숙한 음성이 복귀를 명령했다.
‘한쪽은 죽일 듯이 달려오고, 다른 쪽은 빨리 돌아오라 하고! 나보고 어쩌라고!’
되돌아가고 싶어도 놈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복귀하긴 어려웠다.
“헉, 헉.”
가쁜 숨을 내쉰 민성이 다시 뒤를 쳐다봤다.
꿀렁꿀렁-
“젠장!”
코앞까지 따라붙은 놈의 창이 등으로 쇄도해왔다.
탱-
쇠붙이끼리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창날을 막아냈다. 예상 밖의 결과에 달리기를 멈춘 민성이 거친 숨을 몰아셨다.
‘뭐야, 괜히 쫄았잖아! 이런 게 있었으면 진작 좀 알려달라고.’
피해 없이 끝난 것은 다행이었지만 괜스레 억울한 맘이 들었다.
민성이 몇 번의 공격을 시도한 뒤 포기한 듯 자리로 돌아가는 놈을 노려봤다. 그리곤 놈의 뒤로 달려가 주먹을 내질렀다.
“너도 한 대 맞아라!”
하지만 그의 주먹 역시 보이지 않는 방어막에 가로막혔다. 아마 서로에게 물리적인 간섭이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게임 시작 10분 전입니다. 플레이어 여러분들께서는 중앙에 위치한 바위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음성이 울리자 민성이 바위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바위 근처에 다가가자 검은 실루엣들이 여기저기서 모이고 있었다. 숫자는 얼추 그를 포함해 30명 정도인 것 같다.
‘…….’
실루엣들과 가까워지자 민성이 그들의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그의 기준에서 뭐 하나 정상적으로 생긴 놈들이 없었다.
‘저놈은 몸에 고드름이 달려 있네. 안 춥나? 아, 여긴 더우니까 시원하겠네, 좋겠다.’
민성이 등에 길쭉한 얼음을 달고 다니는 생물체를 보며 실없는 생각을 했다.
그 외에도 노란 점액을 질질 흘리며 몸을 움직이는 녀석, 숨을 몰아쉴 때마다 입에서 회오리바람을 뱉어내는 녀석도 보였다. 누구 하나 만만해 보이는 녀석이 없다.
[게임 시작 5분 전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자! 민성아, 넌 할 수 있…….’
갑자기 하늘에 구멍이 난 듯 커다란 돌덩이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민성이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머리를 부여잡고 쭈그려 앉았다. 다른 생물체들도 각자의 생존본능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끝났나?’
하늘이 잠잠해지자 민성이 무릎에 처박았던 고개를 슬며시 들어올렸다. 붉은 돌덩이를 중심으로 큰 원형 경기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마치 책에서 봤던 콜로세움과 매우 흡사한 형태였다.
“삐에에엑.”
플레이어 중 하나가 커다란 귀로 날갯짓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천장에도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는 모양이었다. 머리를 몇 차례 처박은 녀석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시 내려왔다.
‘이 안에서 게임이 시작되는 모양이구나. 그래서 모이라고 한 거였어.’
민성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만약 외관과 마찬가지로 본질이 대결에 있다면 큰 낭패였다. 경기장 안에 있는 존재들 중, 누가 봐도 그가 제일 허약해 보였다. 순수한 힘이 오고가는 격전 속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다.
[게임 시작 30초 전입니다.]
갑자기 중앙에 있던 붉은 바위가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진 난 듯이 떨리던 붉은 바위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바위에서 잔돌들이 떨어져 내렸다. 붉은 바위가 점점 형태를 갖추어 가자, 바위에서 하얀 불꽃이 피어올랐다. 하얀 불꽃을 두른 거대한 골렘이 그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
민성이 우울한 표정으로 골렘을 쳐다봤다. 저 자동차만 한 돌주먹에 맞는다고 생각하니 흘러나오던 땀도 다시 들어갔다. 골렘 앞에 있자니 한 마리의 개미가 된 것 같다.
[1라운드를 시작합니다.]
라운드가 시작됨과 동시에 플레이어들의 몸에서 붉은빛이 간헐적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붉은빛이 30명의 신체를 옮겨 다녔다. 빠르게 움직이던 빛의 속도가 점차 줄어들었다. 이내, 한 존재의 몸에서 완전히 움직임을 멈추었다.
“쉭?”
두꺼운 강철비늘로 전신을 덮은 커다란 뱀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자신의 몸에 붉은빛이 맴돌자 당황한 눈치였다.
‘뭐지? 분명 저 빛에 뭔가가 있을 텐데? 뭐지……?’
민성도 긴장한 상태로 뱀을 주시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필드 위의 존재들은 그저 침묵을 지키며 사태를 방관했다. 고요한 적막만이 그들 주위를 맴돌았다.
“그어어어어.”
시간이 제법 흐르자, 침묵하던 골렘이 거칠게 포효했다. 그리곤 커다란 팔을 하늘로 들어올렸다.
쾅-
거인의 팔이 그대로 뱀 위로 떨어져 내리자, 커다란 굉음과 함께 먼지가 피어올랐다. 필드의 모든 플레이어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분명히 죽었을 것이다. 저 팔에 맞고도 생존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임무를 다했는지 골렘이 그의 팔을 수거해갔다. 뱀이 있던 자리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납작한 쥐포가 존재했다.
[1라운드를 종료합니다. 1분 뒤 2라운드가 진행됩니다.]
[보상으로 10아르가 제공됩니다.]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어…….’
민성이 한탄하는 사이 팔을 회수한 골렘은 다시 침묵에 빠졌다. 하지만 어떤 플레이어들도 몸을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꼭 다물고.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눈치만 살폈다.
‘어떻게 하지. 붉은빛에 걸리면 무조건 죽는 건가? 피할 방도가 없을까?’
왼쪽 눈가를 매만지던 민성이 골렘을 바라봤다. 속히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언제까지고 행운이 계속 이어지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게임이 계속 진행되다 보면 한 번쯤은 걸릴 것이 분명했다.
‘이번 게임에서는 화폐 단위가 ’아르‘인 모양이다. 화폐가 있다는 건 분명 어딘가에 상점도 존재한다는 소리야. 어차피 게임이 시작되기 전까지 골렘은 움직이지 않을 거야. 빨리 상점을 찾아내야 해.’
조금이나마 쌓인 경험이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20아르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민성이 곧바로 상점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점은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았다.
[2라운드를 시작합니다.]
경쾌한 알림이 플레이어들의 귀를 울렸다. 붉은빛이 플레이어들의 몸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모든 이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부디 저 빛이 자신의 몸에서 멈추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빛이 천천히 그 속도를 늦춰갔다.
***
아이언 스네이크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줄은 몰랐다. 그 비늘의 강도는 어지간한 무기로도 뚫기 힘들다고 소문이 파다했었다.
‘그런데 죽었다. 그것도 단 한방에……. 이제 그 빛이…….’
늑대가 붉은빛이 피어오르는 그의 몸을 바라봤다. 몸에 덮인 시커먼 털을 사방으로 털어냈지만 빛은 진드기마냥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땅에 닿을 정도로 길게 튀어나온 양 어금니를 매만졌다. 번쩍이는 어금니들은 예리한 칼날을 연상시켰다.
늑대가 뱀이 있었던 자리를 슬쩍 바라봤다. 납작하게 뭉개진 시체 주위로 초록색 액이 새어나와 있었다. 이제 곧 그 역시 저것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이다.
마음이 끝을 모르는 심연의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그 와중에도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쿵쿵대는 고동소리가 들린다.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았다. 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