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11화 - 현실로 (1)
3. 현실로
빛에 휘감긴 민성들이 떨어진 곳은 그들이 원래 있었던 다리 부근이었다.
‘돌아왔어?’
어벙한 표정을 짓던 민성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진의 여파로 불안에 떠는 시민들의 모습도 보였다. 주위는 버섯에 빨려 들어가기 전과 다름이 없었다.
“어! 내 팔?”
잘려나갔던 그의 팔이 있어야 할 자리에 붙어 있었다. 어깻죽지에서 느껴졌던 고통들이 거짓처럼 느껴졌다. 믿기 어려웠던 민성이 몇 차례 팔을 휘둘러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잠시 기분 나쁜 악몽을 꾼 기분이다. 하지만 옆에 누워 있는 공룡을 보자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 그는 새로운 세상에 다녀온 것이었다.
“하……하하하하하.”
갑자기 민성이 크게 웃음 지었다. 알지도 못하는 세상에 끌려가 목숨까지 잃어버릴 뻔했다. 맘 편하게 누워 있는 공룡을 쳐다봤다. 녀석 덕분에 살아남긴 했지만 애초에 공룡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을 겪을 일도 없었다.
민성이 공룡을 두 손으로 핫팩을 흔들듯이 잡아 흔들었다.
“이……게…… 무슨……. 인……간!”
공룡이 흔들리는 반동에 말을 더듬거렸다.
‘후……. 시원하다.’
쌓인 감정이 꽤 풀린 민성이 공룡을 내려놨다. 공룡이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공룡님이 일어나지 않으셔서 너무 다급한 마음이 들어서요. 그래서 급하게 깨웠어요. 죄송합니다.”
민성이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음……. 그럴 수 있지. 역시 함께 전쟁을 치른 전우답군.”
공룡이 호탕하게 웃으며 꼬리를 흔들자 민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빠. 저 형이 또 허공에다 손짓하고 있어!”
“우리 착한 한수가 지진에 고통 받은 형의 마음이 치유되도록 기도해주렴.”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부자의 대화에 조용히 한숨을 내쉰 민성이 공룡을 바라봤다.
“이제 어떻게 하실 계획인가요?”
함께 사선을 넘긴 정이 있기에 앞으로의 일정을 물었다. 하지만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왔으니 이제 다시는 녀석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같이 있어봐야 험한 꼴만 볼 것이 분명했다. 애초에 둘은 어울리지 않는 존재였다.
“나는 잠시 볼 일이 있어서 한동안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 찾아봐야 할 것도 있고.”
헤어짐이 아쉬웠는지 공룡이 겸연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뇨. 이제 다시는 보지 맙시다!’
민성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공룡이 있으면 골치가 아프다. 언제 또 저런 괴생물체들과 대면할지 모른다. 더 이상 목숨에 위협을 받는 일 따위는 겪고 싶지 않다.
“그러게요. 그럼 아쉽지만 이제 못 보겠네요.”
속마음과는 다르게 섭섭하다는 티를 내줬다. 마지막인데 선의의 거짓말 정도는 얼마든지 베풀어줄 수 있었다.
“음……. 그래?”
민성의 생각과는 다르게 공룡은 그와의 이별이 너무 아쉬웠다. 인간 역시 섭섭해 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 마음이 더했다. 잠시 궁리에 빠져 있던 공룡이 무언가를 결심했는지 안광을 빛냈다.
기침을 몇 번 하더니, 입에서 알약 크기의 작은 뼛조각을 뱉어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흰 알약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삼켜라, 인간!”
뱉어낸 뼛조각을 짧은 팔로 낑낑거리며 주운 뒤 인간에게 들이밀었다.
“네? 제가 그걸 왜 삼켜야 하는데요?”
민성의 질문에도 공룡은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먹지 않으면 영원히 따라다니겠다.”
거절하면 진짜로 영원히 쫒아올 것 같은 느낌이다.
“……정말요?”
녀석의 진지한 눈빛에 일단 뼛조각을 받아 들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께름칙한 것이 올라왔다. 재차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한결같았다. 하는 수 없이 입안에 넣자 뼛조각이 눈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후… 이제 됐죠?”
“이제 인간이 어디에 있든지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공룡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 마음 놓고 용건을 보러 갈 수 있다. 인간의 체내에 흡수된 뼛조각이 그의 위치를 자신에게 알려줄 것이었다.
“네……. 네? 뭐라구……. 네?”
당황한 민성이 잘못 들었다는 듯 말을 버벅거렸다.
“영광으로 생각해도 좋다, 인간! 무려 두 번째로 나에게서 뼛조각을 받은 존재가 되었다.”
민성의 턱이 조금씩 벌어졌다. 들을수록 기가 차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뼛조각 속에는 나의 영혼 일부가 들어가 있다. 이제 뱃속에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공룡의 얘기가 끝나자마자 민성이 입안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헛구역질을 유도했다. 애꿎은 타액만이 줄줄 새어나왔다.
‘무슨 놈의 뼛조각에 위치추적기능까지 탑재되어 있어!’
민성이 머리를 부여잡고 좌절했다. 뼛조각의 진실도 충격이었다. 하지만 멍청하다고만 생각했던 공룡에게 당한 것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신나서 주위를 폴짝이는 놈의 모습을 보자 감정이 다시 들끓었다.
“금방 찾아가겠다! 그럼, 잘 지내고 있어라, 인간!”
“오지 마!”
멀어지는 공룡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민성이 불현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점점 현실감각이 돌아오자 그가 처했던 상황들이 다시금 상기됐다. 다행히 그가 공룡과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에도 놈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한다. 상황을 보니 현실의 시간은 전혀 흐른 것 같지 않아. 그럼 그 납치범들도 아직 나를 쫓아오고 있을 거야. 살해당하고 어디 무너진 건물에라도 던져지면 지진으로 인한 피해자인 줄 알겠지.’
언제, 어디서 놈들이 들이닥칠지 모른다. 대피해 나온 사람들이 많았지만 오히려 놈들에게는 더 좋은 환경이었다.
‘빨리 몸을 숨겨야 돼.’
생각을 끝낸 민성이 어디론가 이동했다.
한참을 걸어 민성이 도착한 곳은 합정에 위치한 한 모텔이었다.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이용하고 싶었지만 지진으로 인해 그 일대의 교통은 완전히 마비되었다. 중간에 경찰서도 들러 그가 겪었던 사건을 털어놨다. 하지만 상당수의 경찰들이 재해현장에 투입된 탓인지 그의 일을 크게 신경 써주는 경찰이 없었다.
‘뭐, 애초에 기대도 안 했으니까.’
지진이라는 커다란 재해 앞에선 납치사건도 한낱 작은 일에 불과할 것이다.
‘내일부터는 어떻게 움직이지. 놈들이 집의 위치까지 알고 있었던 걸 봐서는, 놈들이 내 동선을 모두 파악했을 가능성이 높아. 애초에 날 노리는 이유가 뭘까. 단순히 납치를 위해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할 이유가 없어.’
조각상의 거취를 물어보던 남자가 떠올랐다.
‘설마 조각상 때문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조각상의 행방을 나한테 물어볼 이유가 없지. 내일 당장 매장에 들러야겠어.’
앞으로의 일정이 대충 정리되자, 민성이 침대에 몸을 던졌다.
‘아! 그러고 보니 무슨 보상이라는 게 있었는데?’
버섯을 빠져나올 때 분명 보상이 지급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정신이 없어서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2가지였던 걸로 기억한다.
침대에서 일어난 민성이 몸을 수색했다. 호주머니에서 무언가 묵직한 것이 손에 잡혔다.
‘설마…… 이건가?’
민성이 꺼내든 것은 작은 목각함이었다. 그것을 천천히 열자 새끼손톱 크기의 핏빛 보석 하나와 동그란 구슬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뭐야? 이딴 게 보상이라고?’
자의는 아니었지만 목숨을 걸고 게임을 클리어했다. 하지만 그 보상이 잡동사니라고 생각되자 실망감이 컸다. 목각함을 닫으려고 하는 민성의 머릿속에 생각 하나가 번뜩 스치고 지나갔다.
‘잠깐, 뼛조각에 그런 능력이 있다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그럼 혹시……?’
보석에도 그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민성이 붉은 보석을 집어 들었다.
띠링-
[200루비를 획득하셨습니다.]
그의 예상이 적중했다. 붉은 보석의 형체가 사라지면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비의 활용 여부는 몰랐지만 자신감을 얻은 민성이 구슬도 잇달아 집어 들었다.
띠링-
[랜덤 육체강화 환단을 획득하셨습니다. 복용하시겠습니까?]
민성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일반적인 노력을 거치지 않아도 육체가 강화된다는 소리인가?’
딱히 손해가 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짜로 육체를 강화해주겠다는데 그걸 마다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네!”
민성이 수락하자 손가락에 잡혀 있던 구슬이 녹아내리더니 액체가 되었다. 푸른 액체가 살아 움직이듯 꿈틀거리더니 민성의 입속으로 파고들었다.
[민첩이 2 상승하였습니다.]
액체가 기도를 통과했는지 공기가 다시 그의 폐부로 유입되었다.
“이제 육체가 강화된 건가?”
민성이 그의 전신을 훑어봤다. 겉으로 보기에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힘을 얻었으면 그것을 쓰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민성 역시 그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팔을 들어 힘차게 앞으로 내질렀다.
하지만 팔에서는 어떠한 느낌도 들지 않았다. 적어도 작은 파공음 소리라거나 바람을 가르는 느낌이라도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육체가 강화됐다는 건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아, 씨……. 이거 사기 아니야?’
허공에다 주먹질을 반복하던 민성이 이번에는 벽에 주먹을 갖다 댔다. 그대로 주먹을 휘두르려던 민성이 멈칫거렸다. 만약 그가 얻은 힘이 거짓이라면 손가락이 부러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침대에 누운 민성이 천장을 바라봤다.
‘이런 식으로 그만두게 될 줄은 몰랐는데.’
시간이 새벽 1시를 넘어 있었다. 눈꺼풀이 천천히 감겼다.
***
건물 주변을 맴돌며 주위를 두리번거린 민성이 조심스럽게 빌딩 출입문을 열었다.
‘수상한 놈은 안 보이는군. 그래도 최대한 빨리 들어갔다 나와야겠어.’
혹시라도 놈들의 미행이 붙었을까 봐 몇 번이고 확인을 했었다. 하지만 수상하다고 느낄 만한 사람은 발견할 수 없었다.
달칵-
민성이 조심스럽게 매장 문을 열었다. 월요일 아침임에도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형! 몸은 괜찮아요? 어제 뉴스 속보 보고 바로 연락드렸는데 받지도 않으시고. 혹시라도 큰일 생긴 건 아닐까 하고 걱정했잖아요.”
닦던 식기를 내팽개친 진우가 민성에게 달려왔다.
“미안, 어제는 너무 정신이 없었어. 걱정해준 덕분에 다친 데 없이 무사히 빠져나왔다, 고마워.”
걱정 가득한 진우의 모습에 민성이 작게 미소 지었다.
“아직 출근시간도 아닌데 왜 이렇게 빨리 오셨어요! 혹시, 집이 무너져서 지내실 곳이 없으시다면 제 자취방으로 오세요. 빈 방이 두 개라 적적했거든요.”
“고마워, 진우야. 하지만 마음만 받을게.”
진우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민성이 목적지인 점장실로 향했다. 점장실 문을 열자 담배를 물고 빠른 속도로 타자를 두드리는 윤민수가 보였다.
“어? 민성아, 어디 다친 곳은 없어? 괜찮아?”
민성을 본 점장의 반응 역시 직원들과 다르지 않았다.
“네, 덕분에 큰 사고 안 당하고 무사히 빠져나왔습니다.”
“다행이구나. TV에서 너희 동네가 나올 때는 어찌나 놀랐는지.”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머뭇거리던 민성이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