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10화 - 차원의 틈새를 엿보다 (7)
“어떻게 할 거냐, 인간?”
공룡의 질문에도 해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사태를 관망할 수 없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혹시 구름원숭이의 약점이라든가.”
“약점……. 약점이라…….”
공룡이 아지랑이 덮인 기억을 끄집어내는 데 집중했다. 분명 흐릿한 기억 속에는 놈들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
‘티노야. 나약한 존재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힘들단다. 하지만 그런 존재들도 충분히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단다. 오늘부터 너에게 내가 알고 있는 이 세계 주민들의 정보를 가르쳐주마. 그럼 구름원숭이부터 시작해볼까?’
그리운 목소리가 공룡을 불렀다. 반사적으로 꼬리를 바닥에 탁탁 내리쳤다. 하지만 반가운 얼굴과 전신에는 안개가 껴 있다.
‘구름원숭이는 하나하나가 강한 전사들이란다. 특히 구름을 이용했을 때 더 강해지는 특성이 있지.’
인자한 목소리가 티노의 몸을 감쌌다. 그 포근함에 금방이라도 잠에 빠져들 것 같았다.
‘근데, 선생! 구름이 뭔가?’
‘선생이 아니고 선생님! 음, 그래! 그럼 구름부터 설명해주마. 구름이란 말이지?…….’
흐릿한 몸이 궁금해 하는 공룡을 품에 안아들고 의자에 앉았다.
‘선생 말대로라면 구름원숭이는 약한 존재이다. 이 세상에는 구름이 없다. 그러니 그들이 강해질 수 있는 방법도 없다.’
공룡이 의문을 제기했다.
‘우리 티노 똑똑한데? 그 말이 맞아. 그저 몸 안에 비축해놓은 구름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지. 구름을 쓰지 않는다면, 아직은 충분히 버틸 만한 양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근데, 생각해 보렴, 티노야. 만약에 말이야, 그들이 갖고 있는 구름을 한 마리에게 몰아주면 어떻게 될 것 같니?’
따듯한 손이 우쭐거리는 공룡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당연히 그 원숭이가 엄청 세지는 것 아닌가?’
너무 뻔한 질문이었다. 배가 부르면 그만큼 강해지는 것 아닌가.
‘그치? 물론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 아닌 이상, 그들이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우리 티노에게 그런 상황이 닥칠 수도 있으니 그들의 약점을 알려줄게.’
티노가 잘 이해하자 신이 난 목소리가 설명을 이어갔다.
‘음……. 굳이 알아야 하나? 알았다……. 듣고 싶다.’
대답 대신 머리에 얹힌 손이 떨어지자 몸을 부비며 투정부렸다. 계속 온기 속에 잠겨 있고 싶었다.
‘진작 그랬어야지! 들어봐! 구름원숭이의 약점이 뭐냐면 말이지?…….’
***
“공룡님! 공룡님!”
민성이 답답한 듯 가슴을 두드렸다. 놈이 날뛰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자니 숨이 가빠지는 기분이다.
‘안 되겠어…….’
공룡을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깃발을 수거한 민성이 빠르게 성안으로 들어갔다. 깃발을 분신 앞에 꽂아놓은 뒤 남아 있는 병사들을 긁어모았다. 힘든 싸움이긴 했지만 분명히 승리할 줄 알았다.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강해진 원숭이를 보자 전의를 상실했다.
그나마 올라가던 성벽도 아까의 일격으로 무너져 내렸다. 전투에서 데리고 돌아온 병사들도 한 줌의 숫자에 불과했다. 아까만큼의 병사들을 소집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한다.
“인간! 놈의 약점을 알아냈다!”
“네? 정말요?”
“이 몸을 경배해라!”
“경배할 테니까! 빨리 놈의 약점을 알려주세요.”
원숭이가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에 급해진 민성이 공룡을 재촉했다.
“놈의 약점은! 바로 물이다! 왜냐하면…….”
“아, 됐고. 물이라고요? 그게 확실해요?”
흥분한 민성이 다시 한 번 공룡을 다그쳤다.
“마…… 맞다! 왜냐…….”
공룡의 설명을 들을 시간이 없었다. 시무룩해하는 녀석을 놔두고 민성이 빠르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가 찾는 것은 푸른 호수였다. 사실 뭐든 상관없었다. 바다도 좋고 호수도 좋았다. 그저 물이 있는 장소면 되었다. 성 우측 방면으로 작은 호수가 보였다.
민성이 빠르게 호숫가로 날아갔다.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이 보일정도로 깨끗한 호수였다.
‘됐어! 이제 이길 수 있어!’
물을 푸기 위해 민성이 땅으로 착지했다. 무릎을 꿇고 손을 호수에 담갔다가 퍼 올렸다. 하지만 민성의 손은 빈손이었다. 몇 번이고 계속해서 호수에 손을 넣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큭……. 호수 역시 마찬가지네.’
번개가 몸을 통과하고 지나갔듯이 호수 역시 그의 손을 통과했다. 민성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기껏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정보도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래도 아직 병사들이 남아 있다.’
주먹을 불끈 쥔 민성이 성으로 귀환했다.
“우끼이이이!”
원숭이의 고함소리가 성안을 휘몰아쳤다.
‘정신 차리자, 민성아.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빠르게 떠올려봐!’
고급건물상자에서 나왔던 타워가 민성의 눈에 들어왔다.
‘맞아! 내가 왜 저걸 깜박했을까?’
70비트나 주고 구입했지만 타워는 제 가치를 입증하지 못했다. 그래서 비트를 쓰레기통에 처박았다고 생각하고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하지만 아직 게이지에는 10분이라는 대기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래! 70비트나 주고 샀는데 써보지도 못하고 죽으면 억울하지. 10분…….’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이었다.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졌지만 어떻게든 버텨볼 것이다.
“공룡님! 빨리 이거 받아요!”
민성이 공룡에게 궁수깃발을 주었다.
“일단 이걸 가지고 제 분신 뒤에 대기하고 계셨다가 제 병력이 전멸하면 그때 돌진해주세요.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해요!”
녀석이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시간이 없었다.
“일단 제 말대로 해주세요. 꼭이에요!”
놈이 무너진 벽을 넘어와 분신을 응시했다. 놈이 쥐고 있는 번개를 보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저 말도 안 되는 무기에 얼마나 많은 병력들이 찢겨나갔는가.
‘해보자!’
깃발로 병사들을 세밀하게 제어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지금은 조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벌어야 한다.
분신을 중심으로 각각 좌측과 우측으로 창병과 성직자들의 거리를 벌려놓았다. 전방으로는 공병들을 배치했다. 이러면 원숭이가 번개를 던져도 일반적인 학살이 벌어지는 장면은 연출되지 않을 것이다.
“해보자, 이 원숭이새끼야!”
민성이 정면에 위치한 원숭이에게 버럭 소리 질렀다.
그 말이 들렸는지 원숭이가 병사들을 향해 달려왔다. 첫 번째 목표는 성직자들이었다. 그들이 병사들의 체력을 회복시켜준다는 사실을 파악한 모양이다.
민성이 공병들을 좌측으로 지원 보냈다. 공병들을 보내면서 창병을 중심으로 불러들였다. 지금 성직자들이 전부 죽으면 혹시나 발생하게 될 근접전에서 시간을 벌 수 없다. 공병을 내보내면서 성직자의 깃발을 뒤로 빼냈다.
공병들이 망치를 들고 원숭이에게 달려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잠깐 들었지만, 역시나 공병은 공병이었다. 우락부락한 모습과 달리 상당히 연약했다. 놈의 클럽이 스치기만 해도 체력 게이지가 뭉텅뭉텅 깎여나갔다. 저 정도면 성직자들로 지원해도 소용없다.
‘아직 괜찮아!’
공병들이 전멸하자 곧바로 창병을 내보냈다. 시간을 두고 성직자들도 움직였다. 그들의 형태가 대각선을 이루도록 배치했다.
어차피 성직자들은 부상자만 회복시킬 뿐 적을 공격하지 않는다. 그러니 굳이 같은 전열에 놔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원숭이가 번개를 던져도 피해가 상당부분 감소할 것이다.
창병들과 잠시 대치하던 원숭이가 몸을 날렸다. 클럽을 들고 내리찍었다. 하지만 체력이 빠졌는지 아까처럼 창병들을 손쉽게 제압하지 못했다. 창병들이 단숨에 죽지 않자 곧바로 그들의 체력이 회복되었다. 살아만 있다면 언제든지 성직자들이 치료해주기 때문이다.
긴박감 넘치는 싸움에 민성이 숨을 몰아쉬었다. 타워에는 아직 5분이라는 대기시간이 적혀 있었다. 생각보다 병사들이 잘 막아주고 있었지만 안심하지 않았다. 놈이 번개를 투척하는 순간, 상황은 또 달라질 것이 분명했다.
창병들과의 전투가 쉽사리 끝나지 않자 원숭이가 번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바로 창병들이 위치한 정면으로 집어던졌다.
휙-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창병들의 육체가 증발했다. 예상은 했지만 병사들이 전멸하자 씁쓸한 기분이 맴돌았다.
‘뭐지?’
갑자기 뺨에서 고통이 몰려오자 손을 갖다 댔다. 번개가 분신을 스쳤는지 손가락에는 새빨간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그는 무사했지만 번개는 창병들과 같은 선에 위치했던 궁수들까지 전멸시켜버렸다.
‘진짜 미쳤다…….’
이제는 조금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번개의 위력은 그의 상상을 초월했다.
‘그래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이제 타워에 적혀 있는 대기시간은 불과 1분이었다. 하지만 남아 있는 병력은 이제 성직자들뿐이다. 원숭이가 이어서 성직자들을 죽여 나갔다. 서로의 부상을 치료하던 성직자들이 차례차례 쓰러졌다.
‘제발…… 빨리!’
1분이라는 시간이 1년처럼 느껴졌다. 어느덧 성직자마저 전멸시킨 원숭이가 분신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이제 몇 초 남지 않은 것 같았지만, 원숭이의 팔이 천천히 올라간다.
‘안 돼!’
민성이 두 팔로 얼굴을 가림과 동시에 번개가 던져졌다.
휙-
번개가 날아옴과 동시에 민성이 눈을 질끈 감았다. 분신이 찢겨나가면 그 역시 마찬가지의 신세가 될 것이다.
‘응?’
죽음을 기다리던 민성이 눈을 살며시 떴다. 기다려도 고통이 몰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
그와 분신의 주변에는 반투명한 막이 쳐져 있었다. 아마도 저것이 번개를 막아준 것 같았다. 민성은 곧 원인을 찾아냈다. 마침내 기다리던 타워에서 누군가가 나와 있었다.
초라한 차림의 할아버지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원숭이를 바라봤다. 어깨까지 늘어뜨린 백발머리와 이마에는 주름살이 자글거렸다. 위에는 물이 빠진 파란색 웃옷을 걸치고 있었다.
“우끼이이이!”
원숭이가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제일 먼저 제거해야 할 상대라고 느낀 모양이다. 곧 클럽이 그의 머리에 닿을 것 같았다.
쾅-
하지만 클럽은 노인의 투명한 막에 가로막혔다. 클럽이 통하지 않자 원숭이가 손에 번개를 만들어냈다. 아까와는 달리 번개가 생성되는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 번개를 손에 쥔 원숭이가 노인을 조준한 뒤 힘차게 던졌다.
방어막과 번개가 격돌하자 강렬한 폭음과 함께 연기가 자욱이 피어올랐다.
숨을 헉헉대던 원숭이가 만족스럽게 그 광경을 지켜봤다. 강한 힘에는 그에 따른 반작용이 따른다. 번개를 생성시키는 일은 그만큼 많은 체력을 소모시킨다. 하지만 이제 그를 막아서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늙은 인간은 번개에 주검이 됐으리라. 이제 남은 적은 저 의자에 앉아 있는 인간뿐이다. 저 인간을 죽이면 아마도 다 끝날 것이다.
‘이제 그리운 고향땅으로 돌아가자……. 내 동족, 나의 부하들아.’
이미 죽어 영혼이 됐을 동족들을 떠올리며 하늘을 쳐다봤다. 이젠 곁에 없지만 동족의 영혼들과 함께 돌아가고 싶었다.
‘응?’
그때 원숭이의 눈앞에 이글거리는 커다란 불덩이가 보였다. 불안감이 엄습하자 반사적으로 클럽을 들어올렸다. 죽은 줄만 알았던 늙은이가 자신을 버러지 보듯 쳐다보고 있었다. 뭔가가 잘못됐다.
노인이 허공에 손을 휘적거리자 커다란 불덩이가 그의 손에 생성되었다. 그리곤 파리를 쫓아내듯 불덩이를 휙 하고 던졌다.
“우끼이이이이이이이이이.”
원숭이와 불덩이가 맞닿자 맹렬한 폭발음과 함께 원숭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뭐가 그리 비통했는지 원숭이는 육신이 녹아내려가면서도 잡고 있는 클럽을 끝내 놓지 않았다.
불꽃이 원숭이의 몸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놈의 신체는 한 줌의 재가 되어 바람에 흩뿌려졌다.
띠링!
[축하드립니다! 캐슬 디펜스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으로 ???, ???가 지급됩니다.]
멍하니 그 광경을 구경하던 민성의 귓가에 알람소리가 들렸다. 그리곤 투명한 빛과 함께 민성과 공룡의 신체가 홀연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