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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8화 (8/303)

# 8

8화 - 차원의 틈새를 엿보다 (5)

“네가 상대했던, 그리고 상대하고 있는 자들이 전부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존재들이기 때문이지. 나도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 하지만 데드 앤트들을 보고 나서 확신이 섰다. 저들은 전부 우리 세계의 주민들이야.”

“그럼…… 아까 등장했던 토끼들이나 여우들도 마찬가지예요?”

공룡의 자신 있는 답변에 민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흔히 볼 법한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공룡 세계의 존재들이라니, 선뜻 납득이 가지 않았다.

“아마 처음 출현했던 토끼들은 틀림없이 무투레빗이었을 것이다. 평소에는 온순한 놈들이지만 적을 맞닥뜨리면 무시무시한 전사로 변한다. 들어 올린 앞발과 민첩함으로 순식간에 적을 제압하는 근접전의 달인들이지. 다만 상대방이 적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움직일 정도로 멍청한 놈들이기도 하다.”

“그럼 여우는요?”

토끼의 숨겨진 비밀을 듣자 여우의 정체도 궁금해졌다.

“여우 역시 컨트롤 스틸러가 분명하다. 녀석은 가까이에 있는 생명체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다. 보통 다가오는 생물을 멈추게 한 뒤 그대로 내장을 빼먹는다. 그렇기에 놈에게 접근하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다. 녀석들은 그 악랄함 때문에 공적으로까지 지정됐었다.”

공감하기 어려웠지만 끔찍하다는 듯 뼈를 부들거리는 녀석의 반응에 신뢰가 갔다.

“그럼 저희는 운이 좋았군요?”

“맞다. 높은 방어벽과 궁수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민성이 궁금했던 점을 물어봤다.

“근데 공룡님이 살고 계신다는 세계는 어떤 곳인가요? 거기에는 인간도 살고 있나요?”

공룡이 현세의 존재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거기에다 이적인 존재들의 등장은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고 확신을 심어주었다.

“우리 세계에는 인간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놈들이 움직인다!”

대화가 끊기자 민성이 정면을 응시했다. 어느새 원 모양으로 둥글게 자리 잡고 중심에다 토악질 해대는 원숭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 저놈들이 뭐 하는 건가요?”

민성이 걱정스러운 마음을 내비췄다. 놈들의 행동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여태 막아왔던 몬스터들이 보여 왔던 패턴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모른다. 나라고 모든 주민의 특성들을 다 파악하고 있는 게 아니다.”

부정적인 답변에 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납득이 가는 말이었다. 한국 사람이 미국사람의 특성을 전부 파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창병을 내보내볼까? 저렇게 아무것도 안 하는 놈들을 상대로 지겠어? 아니야, 나를 유도하는 걸 수도 있어. 조심, 또 조심하자.’

성벽을 타오르던 개미들을 떠올린 민성이 생각을 접었다. 화살의 사거리 밖으로 병사를 내보내는 건 매우 어리석은 선택이다. 구태여 단단한 보호막을 벗어날 필요가 없었다.

“아, 생각난 게 있다. 구름 원숭이는 구름을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다고 들은 것 같다.”

“네? 네…….”

민성이 어정쩡하게 녀석의 말에 동의했다. 애매한 정보가 전황에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생각을 되짚는 그 노력이 가상했다. 녀석 역시 나름대로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

공룡을 바라보는 민성의 눈빛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

“우끼! 웩!”

성벽의 적들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은 원숭이들이 구토에 열중했다.

“우끼이이이!!!”

털이 군데군데 빠진 원숭이가 괴성을 질렀다. 속도를 내라는 독촉의 표시인 것 같다. 원숭이들이 구름을 게워내는 속도가 빨라지자, 게워내던 그것의 몸집이 점차 커졌다. 원의 중심에는 하얀 구름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캑…….”

원숭이들 중 일부가 고통 어린 표정으로 쓰러졌다. 쓰러진 녀석들은 몸이 바싹 여위어 가죽위로 뼈가 드러났다. 아직 서 있는 원숭이들도 점점 몸이 메말라갔다. 하지만 수척해진 몸뚱어리를 비틀거리면서도 그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우끼이이이!!!”

그들의 이해 못 할 행동은 늙은 원숭이가 제지의 괴성을 지를 때까지 계속되었다. 소리에 맞추어 원숭이들이 동작을 멈추었다. 원숭이들이 힘에 겨워 숨을 헉헉댔지만 눈에는 생기가 어려 있었다.

대견하다는 듯 소리 지른 늙은 원숭이가 토해낸 구름을 빠르게 주물럭거렸다. 구름 귀퉁이를 때어내 모양을 빚어내자 기다란 칼, 둥근 방패 따위가 만들어졌다. 완성된 구름병기들을 옆으로 던져놓자, 원숭이들이 쌓인 전쟁도구들을 챙겼다. 전신을 덮는 구름갑옷과 투구를 뒤집어쓰고 칼과 방패를 집어 들었다.

“우끼!”

전원 장비 착용을 끝내자 이번에는 구름을 크게 떼어내 널찍하게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늙은 원숭이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구름이 호떡처럼 펼쳐졌다. 이윽고 구름 묻은 손짓에, 펼쳐진 구름 위로 무장한 원숭이들이 올라탔다.

작업을 끝낸 원숭이도 구름을 털어내고 장비를 착용했다. 기다란 구름 봉에 머리에는 구름으로 만든 왕관을 쓰고 있었다.

“우끼끼!!”

원숭이가 근엄하게 봉을 들어 올려, 크게 외치자 쓰고 남은 구름이 두둥실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봉이 성벽을 가리키자 구름이 점이 되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치솟았다. 시종일 맑았던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만족스럽게 지켜보던 늙은 원숭이가 크게 고함쳤다.

“우끼이이이!!!!”

원숭이들이 탑승한 구름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

민성이 고개를 위로 쳐들었다. 하늘에는 비가 올 듯 먹구름이 잔뜩 껴 있다. 갑작스러운 기상변화에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설마 녀석들이 기후까지 다룰 수 있다곤 생각하지 못했다.

“조심해야 한다.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는 나도 모른다.”

공룡 역시 불안했는지, 꼬리를 연신 바닥에 두드리며 하늘을 주시했다.

작은 천둥소리가 불규칙하게 울렸다. 검은 구름 사이에선 빛이 번쩍거렸다. 검은 구름이 점점 성을 중심으로 모여든다.

‘구름……. 천둥……. 번개……. 그 다음은, 벼락?……!’

원숭이들은 성에다 벼락을 내리꽂을 계획이 분명하다.

“공룡님! 지금 당장 궁수들을 성벽 밑으로 내려요! 빨리요!”

얼굴이 시퍼레진 민성이 공룡을 재촉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병사들을 대피시켜야 한다.

“그게 무슨 소린가, 인간? 병사들을 내리면 성벽은 누가 지키나?”

“빨리요! 시간이 없다고요! 지금 바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음성에 민성이 언성을 높였다.

빠지직-

번개가 성을 향해 빗발처럼 몰아 내리쳤다.

성벽에 몰아치던 낙뢰가 점차 잠잠해졌다. 먹구름이 가시고 다시 맑은 하늘이 드러났다.

번개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성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성벽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박살이 나 제 구실 하기에는 글러 보였다. 여기저기서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났다.

무너져 내린 돌들에는 병사들의 피로 보이는 선혈이 군데군데 튀어 있었다. 성벽을 중심으로 내리꽂힌 번개 때문에 궁수들의 피해가 극심했다. 사망자보다 생존자의 숫자를 세는 것이 더 빠를 지경이었다.

돌무덤 사이로 삐죽이 튀어나온 궁수들의 팔이 보였다. 그 무게에 짓눌린 팔은 쥐포처럼 으깨져 있었다.

그 와중에도, 재해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몸을 바쁘게 움직였다.

공병들이 성벽에 달라붙어 망치를 놀렸다. 하지만 무너진 돌을 쌓아올리기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

성직자들은 참사 속에서 살아남은 궁수들을 찾아 기도했다. 창병들도 잔부상을 입었지만 언제든지 교전할 준비를 끝냈다.

“후…….”

난잡한 광경을 지켜보던 공룡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그만한 공격 속에서도 상당수의 전력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궁수들을 내려 보내기엔 너무 늦었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궁수를 제외한 병력들의 깃발을 빠르게 성안에 모은 것이 주효했다. 덕분에 벽에서 떨어져 있었던 병사들은 피해가 덜했다. 궁수 역시 반 이상이 죽어나갔지만 남은 인원으로도 충분히 활용가치가 있었다.

“인간! 어디에 있나? 빨리 전열을 갖춰야 한다! 놈들이 오고 있다!”

정비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원숭이들이 무너진 방어선을 향해 다가오자, 마음이 급해진 공룡이 민성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인간 놈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인간! 장난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빨리 나와라!”

주위를 두리번거린 공룡이 무너진 성벽 위에 엎어져 있는 민성을 찾아냈다. 위대한 자신이 이렇게 분발하고 있건만 여유 부리는 모습을 보자 화가 치솟았다.

“인간!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공룡이 씩씩거리며 꼬리를 들어 민성의 등을 내리쳤다.

“끄아아악!”

“그…… 그렇게 세게 때리진 않았는데…….”

예상과 다른 격렬한 반응에 공룡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무언가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끼곤 재빨리 민성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인간……. 너…… 팔이……?”

민성의 왼쪽 팔이 있어야 할 곳이 휑했다. 어깻죽지에는 간신히 붙어 있는 살점들이 덜렁거렸다. 다행히도 상처 부근에서 피가 흘러나오지는 않았다.

“쉬고 있어라, 인간! 일단 내가 막아보고 있겠다!”

지금 인간은 전력에 도움 될 것 같지 않았다. 쓰러져 있는 민성을 놔둔 공룡이 병사들을 움직이러 이동했다.

멀어지는 공룡을 잠시 바라본 민성이 몰려오는 고통에 몸을 떨었다.

‘너무 아파…….’

지금 당면한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궁수들 위로 벼락이 내리꽂힐 때에도 멀쩡했다. 벼락이 그의 몸을 스치듯 통과했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타격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안도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민성이 고통이 오기 전까지의 상황을 되짚어봤다.

공룡이 깃발을 들고 내부로 내려가는 것까지 확인했다. 벼락이 내리치고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궁수들이 죽어나가고 성벽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분명 그때까지는 팔이 붙어 있었다.

‘크윽, 아무리 떠올려 봐도 모르겠어. 갑자기 팔이 떨어질 이유가 없어. 도대체 뭐야……. 뭐냐고!!!!’

조금씩 고통에 익숙해지자, 민성이 오른팔로 겨우 몸을 일으키곤 주위를 둘러봤다. 흉물스러운 성벽과 병사들의 시체가 눈에 들어온다.

‘응?’

성 내부로 눈을 돌린 민성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의자에 앉아 있던 분신의 상태가 그와 똑같았다. 망가진 의자 위에 앉아 있던 분신의 왼팔이 보이지 않았다.

팔로 보이는 물체가 의자 뒤로 나뒹굴고 있었다. 옆에는 핏기 묻은 돌덩이가 보였다. 벼락이 내려칠 때 튀었던 성벽의 파편에 찢겨져 나간 모양이다.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야……. 설마 분신이 당한 부상을 내가 그대로 겪는다는 소리야? 그럼 만약 분신이 죽는다면……. 미친……. 말도 안 돼…….’

서늘한 감정이 전신을 맴돌았다. 상상이 지나치다고 여기기에는 왼팔이 계속 욱신거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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