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7화 - 차원의 틈새를 엿보다 (4)
“샤악!”
하지만 그의 독려에도 개미들의 숫자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잘 버텨줄 수 있을까?’
민성이 불안에 찬 눈으로 창병들을 응시했다. 창을 든 병사들은 언제든지 전투에 임할 준비가 된 것 같았다. 그들은 목전까지 다가온 적을 향해 날카로운 창을 세워들었다. 놈들에게 쉽게 거리를 내주지 않으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비록 소수지만 거대한 적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모습은 위풍당당해 보이기까지 했다.
“샤악!”
마침내 놈들과 창병의 접전이 벌어졌다.
푹-
창날이 단단한 턱을 들이민 개미의 미간을 파고들었다. 벌어진 미간 틈에서 액체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머릿속이 헤집어진 개미가 요란하게 더듬이를 움찔거리며 쓰러졌다. 하지만 끝없는 행렬이 동료의 시체를 밟고 밀려왔다.
“그래, 잘 버티고 있어. 할 수 있다!”
민성이 적은 인원에도 불구하고 분투하는 창병들을 대견스럽게 바라봤다. 지속적으로 날아오는 화살도 그들을 지원했다. 하지만 개미들의 물량공세에 창병들의 체력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이대로라면 창병들의 전멸은 시간문제다.
‘안 되겠다.’
“공룡님! 이러다 창병들이 전멸하겠어요. 깃발을 빨리 성 안쪽에 꽂아요!”
“알았다!”
민성과 함께 전황을 지켜보던 공룡이 황급히 성문으로 날아갔다. 재빨리 깃발을 입에 문 공룡이 그것을 성 안에 세웠다. 그러자 창병들이 전투태세를 유지한 채 몸을 뺐다.
덜컹-
열린 성문으로 하나둘 복귀하는 창병들을 본 민성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키에엑!”
“컥…….”
하지만 선두에서 집중공격을 당했던 창병들은 개미들의 끈질긴 추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단단한 턱에 물린 창병의 머리에서 수박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터진 머리 사이로 뜨거운 선혈과 함께 뇌수가 흘러나왔다.
“우웨엑!”
그 광경을 지켜보던 민성이 헛구역질을 했다. 몬스터의 내장을 쳐다볼 때도 찝찝했을 뿐 크게 와 닿지 않았었다. 가축의 그것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창병의 죽음은, 이곳이 적나라한 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뭐야, 이거. 왜 이렇게 실감나게 죽어? 혹시 나도…….’
게임에서 질 경우, 좋지 않은 결과가 생기리라고는 예상했지만 목숨을 잃는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창병의 죽음은 민성의 안일했던 생각을 바꿨다.
“쏴! 한 발이라도 더 쏘라고!”
궁수들을 더 독려한 민성이 수리중인 성문을 바라봤다. 공병들의 망치질 소리가 안도감을 준다.
‘그래. 문을 수리하는 이상, 놈들은 절대로 들어올 수 없을 거야.’
“백날 공격해봐라, 뚫리나.”
민성이 문을 부수기 위해 달려드는 개미들을 보며 조소했다. 놈들의 공격에 흠집 난 문은 곧 원상태로 회복했다. 역으로 쏟아지는 화살에 죽어나가는 놈들이 늘었다. 성문을 공격해봐야 부질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놈들이 문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붉은 물결이 성벽을 기어오르자 민성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키에에엑!”
성벽을 타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들의 약점이 정면으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빗발치는 화살 속에서 무수한 다리들이 성벽을 올라탔다.
화살 한 대가 더듬이 사이를 스쳐지나갔다. 바로 뒤에서 쫓아오던 동료의 울부짖음이 들렸지만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점점 인간 놈들의 면상이 가까워진다. 목표까지 얼마 안 남았다.
창병의 피가 묻은 턱을 딱딱거린 개미가 속도를 높였다. 벽 위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머리통을 턱 사이에 밀어 넣을 것이다. 살짝만 힘을 줘도 연약한 적의 신체는 버티지 못하고 터져나간다. 그러면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달콤한 체액을 맛볼 수 있다. 이런 별식은 언제 또 맛볼 수 있을지 모른다.
맛있는 식사 생각에 턱 사이에서 군침이 새어나왔다.
“키아아아!”
마침내 인간들의 견고한 방어를 뚫고 성벽위로 오르는 데 성공했다. 이제 그들의 시간이다. 놈들의 신체를 갈기갈기 찢어 축제를 벌일 것이다. 개미가 눈앞에 서 있는 궁수를 향해 턱을 들이밀었다.
퍽-
“키엑?”
기대했던 야들한 느낌과 달리 뾰족한 무언가가 턱 안쪽의 입을 파고들었다. 따끔거리던 것이 고통으로 번졌다. 다리로 인간을 붙잡아보려 했지만 닿지 않았다. 턱으로 파고든 그것을 부숴보려고 했지만 힘이 점점 빠져나갔다.
“올라온 놈들부터 죽여!”
민성이 성벽을 넘어온 개미들을 노려보며 크게 고함쳤다. 개미들이 성벽을 기어오르려 하자, 바로 공룡에게 깃발을 가져올 것을 부탁했었다. 그의 명령에 응하듯 창병들이 올라온 개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챙-
“키에에엑.”
창날과 턱이 격돌하자 쇠붙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창병은, 쓰러진 상태에서도 몰아치는 공격을 옆으로 흘려내며 기회를 엿봤다. 놈이 큰 공격을 가하려는지 움직임이 커졌다. 그 빈틈을 이용한 창병이 다시 일어나 자세를 바로잡았다.
창의 장점은 그 길이에 있기에, 놈의 안면에 빠르게 창을 내리 찌르며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단단한 턱으로 창날을 막아낸 개미가 그대로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창을 쑤셔 넣고 싶었지만 놈의 공격을 막기 위해 창대를 가로세웠다.
숨 닿을 거리까지 접근한 턱이 딱딱거렸다. 턱 안쪽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새어나왔다. 녀석의 턱이 긴 나무자루를 짓눌러오자 놈의 무게에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우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창의 굵은 자루에 금이 갔다. 금방이라도 창대가 박살날 것 같았다. 그를 지원해줄 동료들은 이미 개미들과 난전을 벌이고 있었다. 곧 개미의 턱에 머리가 산산이 부서져 나갈 것 같다.
퍽-
긴박한 흐름을 뚫고 화살 한 대가 개미의 더듬이 사이로 박혀들었다. 일순간 개미의 몸이 뒤로 휘청거렸다. 기회를 놓치지 않은 창병이 창대에 힘을 주어 개미를 밀쳐내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그대로 녀석의 면상에 창을 쑤셔 박았다. 괴상한 신음과 함께 녀석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창병이 그를 도와준 궁수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리곤 다시 혈투가 벌어지는 전장 속으로 뛰어들었다.
쿵-
‘꼴좋다.’
민성이 창에 꿰뚫린 개미를 보며 비웃음 지었다. 허우적대는 다리들과 무의미한 턱짓. 최후의 발버둥에 약간의 쾌감마저 든다.
“제법이다, 인간.”
그의 판단을 칭찬하는 공룡의 음성에 민성이 조용히 웃었다. 창병들을 조금이라도 늦게 불렀다면 결과는 조금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빠른 판단과 대처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지상에는 죽은 개미들의 시체가 즐비하게 쌓여 있다. 화살세례를 받은 개미들도 잇따라 성벽에서 추락했다.
“키에에에.”
마지막 개미가 구슬픈 음성과 함께 성벽에서 떨어져나갔다.
[6라운드가 종료됩니다. 10분 뒤, 7라운드가 진행됩니다.]
[보상으로 20비트가 제공됩니다.]
‘지금 들어온 것까지 총 40비트. 초급건물을 하나 더 지을까? 아냐, 개미니까 성벽을 탈 수 있었던 거지. 지금의 병사들로도 어느 정도 버텨낼 수 있을 거야.’
생각을 끝낸 민성이 지금까지 그를 도왔던 병사들을 둘러봤다. 공병, 창병, 궁수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병력들이 없었다.
‘그래. 이대로 가보자!’
[7라운드를 시작합니다.]
‘어라?’
힘겨운 전투를 생각했지만 상황은 민성의 예상과 조금 다르게 돌아갔다.
“켕.”
작고 귀여워 보이는 여우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성벽에서 한바탕 화살을 쏟아내자 금방 라운드가 종료됐다.
[7라운드가 종료됩니다. 10분 뒤, 8라운드가 진행됩니다.]
[보상으로 30비트가 제공됩니다.]
‘70비트면 고급건물상자를 살 수 있는데. 한번 질러볼까?’
잠시간 갈등하던 민성이 결심한 듯 고급건물상자를 구매했다. 초급과 중급 건물상자에서 나온 병력들도 매우 유용한 존재들이었다. 그래서인지 고급건물상자에서는 얼마나 대단한 병사가 나올지 기대되었다.
민성이 기대 가득한 얼굴로 황금박스를 지켜봤다.
펑-
박스가 터져나감과 동시에 원통 같은 모양의 높다란 타워가 등장했다. 외부의 모습은 꾸밈없이 단조로웠다.
“……2시간?”
소스라치게 놀란 민성이 두 눈을 치켜뜨고 타이머를 재확인했다. 하지만 대기시간은 변함없이 2시간이다. 도대체 얼마나 좋은 병사가 나오려는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하아. 그냥 초급이나 중급 건물상자를 구입했어야 했는데……. 이래서 욕심을 부리면 안 되는 건가.’
아무리 출현하는 건물이 랜덤이라도 이건 너무하다 싶었다. 2시간이면 10명이 넘는 궁수가 나오는 시간이다. 초급건물상자 2개를 샀으면 대대적인 병력보충이 가능했을 것이다. 후회스러운 선택에 민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8라운드를 시작합니다.]
***
‘죽겠다.’
민성이 아찔했던 조금 전을 떠올렸다. 거대한 나무들이 다가올 때는 숲이 다가온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공룡의 설명에 따르면 고대의 엔트들이라고 했다.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커다란 나뭇가지를 휘둘러 건물을 두드릴 때는 정말이지 끝나는 줄 알았다.
쾅쾅-
민성이 소음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렸다. 흉물스럽게 부서진 문과 벽을 수리하는 공병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지속적인 수리 덕에 간신히 버텨낼 수 있었다. 만약 공병이 없었다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8라운드가 끝나자 민성은 곧바로 들어온 30비트를 소모해 초급건물상자를 구매했다. 초급건물상자에서 십자가 모양이 달린 건물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마치 교회를 연상하게 만들었다.
5분이 지나자 건물에서 십자가를 들고 검은 가운을 두른 남자가 걸어 나왔다. 그리곤 회복이 끝나지 않은 병사들에게 다가가 기도하자, 병사들의 체력이 빠르게 회복되었다.
‘힐러라. 이제 꽤나 구색이 갖춰졌군.’
민성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병사들이 싸움에서 큰 피해를 입어도 문제없다. 언제든 병사들의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힐러의 등장이 반가웠다.
‘근데 저건 밥값도 못하니.’
회복을 끝낸 창병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이던 민성이 갑자기 인상을 찡그렸다. 70비트를 잡아먹고도 그 값을 못하는 타워를 보자 속이 쓰려왔다. 타이머에는 아직도 1시간 15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게임이 끝나기 전까지 타워 병사의 얼굴을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9라운드를 시작합니다.]
성벽으로 몸을 날린 민성이 전방을 응시했다. 이번에는 원숭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몸뚱이가 보라색인 것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원숭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번에도 수월하겠는데요?”
엉덩이를 긁적이는 녀석들의 모습에 민성이 피식거렸다. 여우나 토끼 때와 마찬가지로 손쉬운 라운드가 될 것 같다.
“구름 원숭이들이다.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다.”
“네?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상대를 잘 알아요?”
녀석의 심각한 음성에 민성이 공룡에게 내내 품고 있던 의문을 비췄다. 내색은 하지 않았었지만 몬스터들의 정체를 파악해내는 녀석의 능력은 이해하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