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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5화 (5/303)

# 5

5화 - 차원의 틈새를 엿보다 (2)

“지금 내가 요깃거리의 뱃속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불쾌하다. 그리고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인간! 애초에 너 때문에 끌려온 곳이다. 그러니 네가 더 잘 알지 않겠는가, 인간?”

고개를 끄덕거리는 녀석의 모습에 거짓은 없어 보였다.

“진짜 쓸모없네.”

민성이 작게 중얼거리자 놈의 꼬리가 곧바로 왕의 차림을 한 민성을 건드렸다. 하지만 그것은 분신의 안면을 통과할 뿐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꼬리를 휘두르는 공룡을 본 민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망할 놈.’

놈의 얄미운 행동에 민성이 표정을 굳혔다. 녀석의 턱뼈를 후려치고 싶다는 욕구를 간신히 억누른 민성이 고개를 돌렸다. 이 이상 시간낭비를 하면 안 될 것 같다.

‘응? 디펜서?’

갑자기 민성의 머릿속에 위화감이 몰려왔다. 광활한 초원 위에 고독하게 서 있는 단 하나의 성. 그 성을 지키고 있는 또 다른 자신. 만약 생각했던 것이 들어맞는다면 이 게임은 아마도 성을 사수하는 게임일 것이다. 확신에 찬 표정을 한 민성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건 뭐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민성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의 머리 위로 작은 야구공이 떠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망치 모양의 그림이 그려진 버튼이다.

그것을 누르자 세 가지의 상자들이 그의 눈앞에 주르륵 진열된 채 둥실거렸다.

초급부터 고급까지 세 종류의 건물상자가 나열돼 있다. 상자를 보며 고민하던 민성이 어느덧 15분이 남았다는 음성에 머리를 바삐 굴렸다.

‘좋아. 구매……하자!’

힘겹게 결정을 내린 민성이 손가락을 부들거리며, 초급건물상자 밑에 위치한 구매버튼을 눌렀다. 30비트가 빠져나갔다는 소리와 함께 나무박스가 그의 앞에 떨어졌다.

‘저건 또 뭐지?’

주위를 눈여겨보던 민성이 우측 상단에 있는 동전 모양의 아이콘을 발견했다. 동전 옆에는 숫자로 40이 적혀 있다. 아마도 초급상자를 구입하고 남은 금액인 것 같다.

동전에서 관심을 돌린 민성이 박스를 들어올렸다. 일단 구입했으니 사용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박스를 들어올리자 안이 텅 빈 것 같은 가벼움이 전해졌다.

[정말 건설하시겠습니까?]

성의 안쪽 중앙에 나무박스를 내려놓자 확인문구가 떠올랐다. 수락을 누르자 박스가 급격하게 부풀었다.

펑-

팽창을 이기지 못한 박스가 터져나가고, 그의 앞에 작은 건물 하나가 세워졌다.

띠링-

[축하합니다. 초급궁수양성소를 제작하셨습니다.]

민성이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동네 상가 정도의 크기에 궁수를 대변하는 커다란 활이 간판마냥 걸려 있었다. 건물 우측에 위치한 작은 마당도 보였다. 군데군데 박혀 있는 둥그런 과녁들도 눈에 들어왔다. 목재로 만들어진 허름한 출입문에는 기다란 게이지 바와 함께 타이머가 있다.

‘대박!’

민성이 만족스럽게 건물 외벽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벌컥-

타이머의 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하자, 건물 뒤쪽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무 활을 쥔 건장한 사내 하나가 비어 있는 마당으로 들어왔다. 비어 있는 과녁들 중 한곳에 자리를 잡은 남자가 묵묵히 표적을 향해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시간이 줄어들수록 반대로 게이지 바가 차올랐다. 4분 30초에서 점점 시간이 줄어 게이지가 차자 이윽고 낡은 문이 열렸다. 가벼운 면 옷을 입고 나무로 만들어진 활을 쥔 남성이 그의 앞에 서 있었다. 마당에서 훈련하던 남자와 똑같은 생김새였다.

차림새는 약간 추레해보였지만, 늠름하게 서 있는 모습에 민성이 흐뭇한 미소를 흘렸다.

“오, 다 인간이 만들어낸 건가?”

성벽 위를 산책하던 공룡이 민성을 향해 날아왔다. 허공에서 건물을 창조하고 병력을 소환해내는 인간의 능력에 호기심이 동했다.

“네.”

민성의 자신감 넘치는 답변에 공룡이 머리를 굴렸다. 생각보다 한 가닥 하는 놈이라는 판단이 섰다. 녀석과 좀 더 친해져야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보기와는 다르게 꽤 재주 많은 인간이었군. 크흠, 혹시라도 내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얘기하라고!”

“네.”

공룡의 말을 한 귀로 흘린 민성이 곧 또 다른 의문에 빠져들었다.

‘병력을 소환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어떻게 움직이지?

민성이 답답한 마음에 왼눈을 긁적거렸다. 병력을 성벽 위로 올려야 밖으로 화살을 쏟아낼 것 아닌가.

“성벽으로 이동해.”

한 번쯤 호쾌하게 명령을 내려 보고 싶었던 민성이 큰소리로 명령했다. 하지만 병사는 그 자리에서 꿈적도 하지 않았다.

‘이게 아닌가?’

고개를 가로저은 민성이 병사들을 바라봤다.

‘설마…….’

매섭게 건물을 노려보던 민성의 시선이 덩그러니 구석에 꽂혀 있는 붉은 깃발에 쏠렸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깃발을 든 민성이 몸을 날려 그것을 성벽의 한 곳에 꽂았다.

척척-

갑자기 궁수들이 몸을 돌리고 민성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계단을 타고 성벽 끝 쪽에 궁수들이 배치되었다. 장엄한 성벽 위에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은 늠름해 보이기까지 했다.

[게임 시작 전까지 1분 전입니다.]

민성이 넓은 초원을 바라봤다. 앞으로의 상황을 알 수 없었지만 두려움이 많이 가셨다. 성벽에는 5명의 궁수가 배치되어 있다. 병영에서 지속적인 병력 보충도 이루어질 것이다. 이제 곧 시작될 게임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뭐지?’

민성이 황당한 표정으로 분신을 바라봤다. 10초가 남았다는 말이 들리자 가만히 앉아 있던 그의 분신이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기 때문이다. 초원을 바라보던 궁수들도 갑자기 몸을 돌려 그를 주시했다.

“나의 병사들이여. 오늘 그대들은 몬스터들과 맞서 싸우는 뜨거운 사명을 부여받았다. 몬스터들의 피로 성벽을 칠하고 그들의 흘러내린 뇌수로 하얀 강을 만들어내리라! 가라! 가서 성벽을 지켜내라!”

왕의 연설이 끝나자 병사들이 들고 있는 활을 위아래로 흔들며 거친 함성을 질렀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민성이 손발을 부여잡았다. 자신이 저렇게 오그라드는 말도 거침없이 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라운드를 시작합니다.]

마침내 게임이 시작되었다는 소리가 울렸다. 민성이 미지의 적을 조기에 포착하기 위해 몸을 하늘로 띄웠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무더기의 검은 점이 다가오는 것을 확인했다.

‘큭. 장난하나?’

눈을 가늘게 뜨고 그들을 주시하던 민성이 피식거렸다. 앙증맞은 토끼들이 커다란 눈망울을 빛내며 성벽으로 무모한 돌진을 하고 있었다. 첫 라운드라 해도 자신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 같았다.

휙-

공격 범위 안에 들어오자 궁수들이 폴짝이는 토끼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날아간 화살이 토끼의 배를 꿰뚫고 등 뒤를 통과했다.

관통당한 토끼가 몸을 바들바들 떨더니 곧 축 처졌다. 화살이 박힌 상처 부위에서는 이내 붉은 선혈이 새어나왔다. 동료의 죽음을 본 다른 토끼들도 화살을 피하려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차례차례 차가운 초원에 피를 흩뿌리며 몸을 뉘었다.

“한 마리도 통과시키지 마라!”

듣는 이 하나 없었지만, 전투에 몰두한 민성이 전장을 지배하는 지휘관처럼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학살이 자행되는 와중 마지막 토끼 한 마리가 사선을 뚫고 문 앞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토끼가 앞발을 들어 성문을 툭 쳤다.

최후의 토끼는 자신에게 내려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는 생각에 뭉툭한 코를 씰룩였다. 다시 토실한 앞발을 들어 성문을 치려는 토끼의 머리 위로 화살 한 대가 날아왔다.

퍽-

머리를 관통당한 토끼가 비통한 표정으로 부들거렸다. 이내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차가운 시체가 되었다.

[경고! 성문이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지휘에 집중하고 있던 그의 앞에 성문이 공격받고 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민성이 견고한 방어선을 뚫은 위대한 토끼를 보기 위해 성문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민성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나 있었다. 성문 앞에 착지하자 문에 바짝 붙은 채로 죽어 있는 토끼를 발견했다. 아마도 저 녀석 때문에 공격받았다는 메시지가 뜬 것 같았다. 하지만 토끼 덕에 성문에도 게이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토끼가 때려놓은 성문은 일만의 체력을 갖고 있던 것 같다. 지금 성문의 체력은 3이 달아 있는 상태다.

[1라운드가 종료됩니다. 5분 뒤, 2라운드가 진행됩니다.]

상황종료를 알리는 안내음성과 함께 성 주위에 쓰러져 있던 토끼의 사체들이 사라져갔다. 무사히 첫 고비를 넘겨낸 민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5분의 여유가 주어지자 그의 상태에 변화가 없나 살펴봤다.

큰 변화는 없었지만, 동전 모양 아이콘의 숫자가 40에서 50으로 증가했다. 늘어난 자본금에 마음이 든든해진다. 건물을 추가로 지을지 고민하던 민성이 고개를 저었다. 일단 상황을 더 지켜보자는 쪽으로 생각이 굳었다.

***

3라운드까지 궁수들만으로 무사히 성을 사수하는 데 성공했다. 각각의 라운드에 등장했던 늑대와 호랑이들 역시 성문에 큰 타격을 입히지 못하고 주검이 되었다.

“케엑!”

4라운드가 되자 연한 녹색에 조잡한 무기로 무장한 고블린들이 나타났다. 궁수들이 열심히 활시위를 잡아당겼지만 역부족인 것 같다. 놈들은 몸에 화살이 박힌 채로 몽둥이를 휘둘러댔다. 둔탁한 타격 소리가 들릴 때마다 성문의 체력이 깎여나갔다.

‘안 되겠다. 이제 궁수들만으로는 역부족이야.’

놈들의 체력 게이지가 줄어들지 않자 민성이 조바심을 냈다.

띠링-

[전투 중에는 건물을 지으실 수 없습니다.]

초급건물상자 구매를 위해, 성의 내부로 들어왔지만 소용없었다. 민성이 머리를 부여잡고 그의 안일함을 탓했다. 전투가 수월했을 때 정보를 끌어 모아야 했다.

“꾸에에엑!”

긴 전투 끝에 마지막 고블린이 고슴도치 같은 모습으로 쓰러졌다. 성문의 체력 게이지는 7,000까지 떨어졌다.

[4라운드가 종료됩니다. 5분 뒤, 5라운드가 진행됩니다.]

[보상으로 10비트가 제공됩니다.]

휴식시간이 주어지자, 병력을 더 보강하기로 맘먹은 민성이 남은 비트를 확인했다. 그의 수중에는 80비트가 모여 있다.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다.’

마른침을 삼킨 민성이 중급건물상자를 눌렀다. 50비트 지불이 완료됨과 동시에 강철로 된 박스가 튀어나왔다. 그것을 비어 있는 장소에 내려놓자 부풀어 오른 박스가 터져나갔다.

[축하합니다. 중급공병양성소를 제작하셨습니다.]

‘건물상자에서는 궁수들만 나오는 게 아니구나. 그나저나 소집 시간은 왜 이렇게 길어!’

건물에 달린 망치를 바라본 민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박스에서 나오는 건물은 무작위로 선정되는 것 같다. 병력 소집 시간은 십 분에서 시작했다. 요긴하게 사용하던 궁수가 절반의 시간도 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긴 시간이다.

‘일단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자.’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5라운드를 시작합니다.]

진한 회색의 물체들이 꾸물거리며 성으로 다가왔다.

‘이번엔 쉽지 않을 것 같네.’

그들의 존재를 확인한 민성이 씁쓸하게 웃었다. 둥그런 나무방패와 조잡한 철검으로 무장한 오크들이 씩씩거리며 성으로 돌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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