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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4화 (4/303)

# 4

4화 - 차원의 틈새를 엿보다 (1)

“읍읍!”

“야, 스턴건 줘봐. 기절시키고 작업하는 게 편할 것 같다.”

“빌어먹을, 빨리해! 천장 좀 봐. 이러다 다 뒤질 수도 있어!”

어느새 거북이 등껍질마냥 사방에 금이 간 천장을 본 복면인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알았어.”

스턴건을 넘겨받은 복면인이 그것을 민성의 목에 갖다 댔다.

“됐다. 이제 줄 풀어!”

민성의 몸이 축 처진 것을 확인한 남자들이 민성을 속박하던 줄을 풀었다.

‘병신들.’

혼절해 있던 민성이 슬며시 실눈을 떴다. 짜릿한 충격이 오긴 했지만 기절할 정도는 아니다. 강한 진동 때문에 제대로 조준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 새끼 들쳐 메. 서둘러! 나가!”

“무너진다!”

요란한 소음과 함께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도와줘, 준호가 깔렸어!”

“젠장, 버려! 구하다가 우리까지 깔리면 어쩌려고 그래.”

“뭐? 그게 지금 할 말이냐?”

복면인의 등에 업혀 놈들의 대화를 듣던 민성이 눈을 떴다. 복면인 중 한 명이 잔해에 깔려 있다. 놈들끼리 의견대립이 벌어진 모양이다.

‘기회다.’

“억.”

민성이 팔꿈치를 들어 업고 있던 복면인의 옆구리를 있는 힘껏 찍었다. 놈의 몸이 휘청거리는 것을 놓치지 않은 민성이 복면인의 등을 걷어차 앞으로 밀쳐냈다.

“저 새끼 기절한 거 아니었어? 놈이 도망간다! 잡아!”

“엿이나 먹어, 씹새끼들아!”

복면인들의 고함 소리가 들렸지만 민성은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건물에서 떨어져! 무너질 수도 있어!”

“어떻게 장만한 내 집인데.”

흔들리는 빌라를 빠져나오자 지진을 피해 밖으로 나온 시민들이 눈에 들어왔다. 불안함, 절망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어디로 도망가지. 놈들이 쫓아올 텐데. 일단 저 안으로 들어가면 찾기 힘들겠지.’

상황을 살핀 민성이 재빨리 인파 속에 끼어들었다.

인파를 따라 민성이 도착한 곳은 불광천이었다. 주위에 커다란 건물이 없어 여진에 대처하기도 용이한 곳이다.

“계속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으니까 앞으로 이동해주세요.”

사람들을 통제하는 경찰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일단 지진이 멈출 때까지만 있다가 다시 움직이자. 혹시나 놈들을 마주쳐도 사람들이 많으니까 함부로 행동하기 어렵겠지.’

인파 사이에 낀 민성이 온갖 대책을 떠올리며 그들을 따라 움직였다.

‘응?’

바닥을 보며 이동하던 민성이 발밑이 점점 환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고개를 치켜든 민성이 경악스럽다는 표정으로 전방을 바라봤다.

조그마했던 버섯이 어느새 자신의 키를 넘어, 다리 밑면에 닿을 정도까지 커져 있었기 때문이다.

“다리 밑으로 가시면 안 됩니다.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다리 밑으로 가시면 안 됩니다.”

다행히도 경찰이 통제하러 나오자 시민들이 다리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다른 사람들은 저게 안 보이는 건가?’

분명 이 광경을 보고 있는 사람이 더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버섯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가족을 부둥켜안고 다독이는 사람, 허망한 눈빛을 띤 사람 등 누구 하나 버섯에 관심 가지지 않았다.

‘젠장.’

아직 낙담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한 민성이 상황을 지켜봤지만 마찬가지였다. 꿈적하지 않는 버섯에 슬슬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이 동했다.

민성이 버섯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내딛기 시작했다.

‘가까이서 보니 더 끔찍하네.’

마침내 앞까지 도달한 민성이 침을 꿀꺽 삼켰다. 푸르스름한 광채 속에는 얼룩덜룩한 무늬가 박혀 있는 버섯이 웅크리고 있다. 민성이 그것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 보이나 보군. 손대지 마라, 인간.’

민성이 그를 제지하는 목소리에 몸을 움찔거리곤 고개를 돌렸다.

“우왓!”

뼈다귀가 딱딱거리며 그를 노려보고 있다. 성인 신발만 한 크기의 그것은 책에서 보던 공룡, 티라노사우루스의 모형을 닮아 있었다. 똑같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갑작스러운 비명에 사람들이 잠시 민성을 바라봤지만 곧 관심을 거뒀다. 그들에게는 타인에게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

“어떻게 차원의 틈을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내 식량이다.”

텅 빈 동공에서 나오는 섬뜩한 안광이 명백한 적의를 뿜어냈다.

‘꿈인가?’

민성이 슬며시 그의 볼을 두드렸다. 버섯에 이어 새로운 놈의 등장은 그를 혼란에 빠뜨렸다.

“음. 훌륭하게 자랐군.”

공룡이 버섯 앞으로 다가왔다. 뼈만 남은 꼬리로 버섯을 쓰다듬으며 만족스럽게 입을 딱딱거렸다.

“뭐라는 거야?”

멍청한 표정으로 공룡을 쳐다보던 민성이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발바닥만 한 크기의 공룡에게 겁을 집어먹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먼저 발견했으니 내 거다! 어차피 인간은 건드리지도 못한다. 그러니까 무조건 내 거다!”

공룡이 그의 발 주변을 뛰어다니며 꼬리로 땅을 쳐댔다.

‘이 새끼가…….’

조롱하는 듯한 놈의 행동에 민성의 이마에 혈관이 잡혔다. 민성이 깐죽거리는 공룡을 발로 걷어찼다.

“캑.”

공룡이 비명을 지르며 허공을 날았다.

“아빠, 저 형 좀 봐. 혼잣말하면서 막 허공에다 발차기까지 하고 있어.”

“지금 저 형은 마음이 아파서 그러는 거야. 지진이 저 형을 아프게 해서…… 그런 거야.”

‘아닙니다. 그런 거 아닙니다!’

부자의 대화를 엿들은 민성이 작게 한숨 쉬었다. 해명하고 싶었지만 미친놈 취급받을 것이 분명하다.

“어…… 어떻게 인간이 이곳에 간섭할 수 있는 거지?”

바닥에 처박힌 몸을 겨우 일으킨 공룡이 민성을 수상쩍게 쳐다봤다. 그리곤 떨어져나간 뼈들을 빠르게 입으로 주워 삼켰다.

콰득-

공룡의 몸속으로 들어간 뼈들이 원래 있어야 할 위치에 다시 자리 잡았다.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감히 나를 건드려!”

공룡이 괴성을 지르며 그대로 민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어!”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 놈이 달려오자 당황한 민성이 자신도 모르게 몸을 뒤로 뺐다.

‘응?’

무언가 물컹거리는 것이 그의 손에 잡혔다. 수상한 감촉에 민성이 고개를 돌렸다. 커다란 버섯이 그의 손에 닿아 있다. 뒤로 물러나는 사이 실수로 건드린 모양이다.

민성이 푸른 버섯을 만지자 청아한 여성의 음성이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띠링-

[T%@O : 24583에 입장$^@^시@$니까?]

게임 종류 : ?

난이도 : D

클리어 보상 : ?

클리어 실패 시: ?

[T%@O : 24583을 클리어하^@^시@$니까?]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민성의 몸을 엄습했다.

“아니!”

사태 파악은 안 됐지만 본능적으로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그의 의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듯 버섯이 몸을 꿈틀거렸다.

“……시발.”

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진행되는 상황에 민성이 낮게 욕을 내뱉었다.

움찔-

버섯의 꿈틀거림이 점점 커졌다. 요동치던 버섯의 머리 부분이 두 쪽으로 갈라지더니 민성을 집어삼켰다. 민성을 먹어치운 버섯이 몸을 잠시 꿀렁이더니 이내 공기처럼 산화되어 사라져버렸다.

***

‘주…… 죽은 건가?’

두 눈을 꽉 감은 민성이 다가올 불행을 기다렸다. 버섯의 뱃속으로 빨려 들어온 이상 녹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신체에는 어떠한 변화도 오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친 민성이 슬며시 눈을 치켜떴다.

“으아악!”

낯선 광경에 절로 비명이 나왔다. 그의 발밑에는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다. 다만 초원은 그의 시야에서 아득히 낮은 곳에 위치했다. 떨어진다는 공포에 민성이 허공에서 손발을 연신 허우적대었다.

‘놀래라.’

민성이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한참 동안 허공에서 추태를 부린 뒤에야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구름처럼 떠다니는 몸을 보자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이곳이 현실이 아니란 건 알겠는데, 어떻게 돌아가지? 여기에 있는 동안 바깥은 막 100년이 흘러 있는 것 아냐? 모르겠다.’

잠시 걱정에 잠긴 민성이 곧 고민거리를 던져버렸다. 그리곤 사람이라면 한 번쯤 꿈꾸던 행위를 마음껏 만끽했다. 이곳에서 그는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다.

[구역에서 이탈하셨습니다. 삼십 초 내로 복귀하지 않을시 강제 패배 처리가 됩니다.]

하늘 끝까지 날아보고 싶었던 민성이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몸을 움찔거렸다. 주위를 돌아봤지만 보이는 것은 하얀 구름과 푸른 하늘뿐이다.

곰곰이 고민하던 민성이 무릎을 쳤다. 분명 버섯을 만지자 들려왔던 여성의 음성이다.

‘일단 움직이자.’

패배가 단 한 번도 긍정적인 경우를 뜻한 적이 없었기에, 하늘에서 눈여겨봤던 초원 중심에 오롯이 서 있던 물체의 근처로 이동하기로 했다. 민성의 몸이 지면과 가까워질수록 물체의 윤곽이 뚜렷해졌다.

초원 중심에 커다란 성이 지어져 있었다.

단단한 돌로 이루어진 성벽이 그 주변을 둥그렇게 감았다. 정면에는 튼튼한 나무에 쇠를 덧댄 굳건한 성문도 보인다. 성벽 사이사이마다 높은 감시탑이 지어져 있어 궁수들이 적들을 요격하기 좋을 것 같았다. 장인들의 정성이 건물 군데군데에서 느껴졌다.

‘이건 또 뭐야.’

민성이 이물감이 느껴지는 발을 들어올렸다. 신발을 꽉 깨문 채 기절한 공룡이 보였다. 모든 사건의 원흉이 맘 편하게 있는 모습을 보자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놈이 물고 있는 오른발을 앞뒤로 흔들었다.

“쿠에엑! 이게 무슨 짓이냐, 인간!”

흔들림을 이기지 못한 공룡이 신발에서 떨어져나갔다. 거친 지면을 잠시 굴러다닌 공룡이 민성을 매섭게 노려봤다.

“여기가 어딥니까?”

으르렁거리는 뼈다귀를 못 본 척한 민성이 넌지시 말을 걸었다.

“낸들 알겠냐. 망할 인간아!”

“잘 모르십니까? 그럼…….”

공룡이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는 판단이 서자, 미련 없이 등을 돌린 민성이 정면에 위치한 성문으로 이동했다.

“위기의 상황에선 서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법이지. 가…… 같이 가자, 인간!”

공룡이 빠른 속도로 멀어져가는 민성을 향해 외쳤다.

‘황량하네.’

내부에 도착한 민성이 당혹감에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화려한 외곽과는 달리 내부에는 그 흔한 건물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이건…….’

무언가를 본 민성이 굳은 듯 움직임을 멈췄다. 황량한 내부 가운데에 의외의 인물이 의자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금빛 왕관과 희귀한 동물의 털로 만들었을 법한 망토를 두르고 근엄하게 의자에 앉아 있는 왕. 그는 바로 민성 그 자신이었다. 신기한 마음이 든 민성이 그의 앞으로 다가가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왕의 옷을 입은 민성은 밀랍인형처럼 가만히 앉아 있을 뿐,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다.

[게임 시작 삼십 분 전입니다. 디펜서께서는 건물을 지어주시기 바랍니다.]

익숙한 목소리가 초원을 울렸다. 재촉하는 듯 주어진 제한시간에 민성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절대적인 정보부족에 무력함마저 느꼈다.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민성이 성안까지 따라 들어온 녀석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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