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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2화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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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 밤길이 위험한 이유 (2)

“이번 정류장은 불광역 3호선입니다.”

버스 내부에서 하차를 알리는 안내음성이 흘러나왔다.

‘엇!’

고개를 꾸벅이던 민성이 눈을 번쩍 떴다. 잠시 두리번거리던 민성이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자칫 목적지를 놓칠 뻔했다.

‘피곤하다.’

민성이 쑤셔오는 어깨를 두드렸다. 직장부근에 자리 잡고 싶다고 잠시 상상했으나 곧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몸이 조금 편하자고 강남에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이런 생활도 꽤나 익숙해졌다.

치익-

조금 기다리자, 집 근처까지 운행하는 초록색 마을버스가 다가와 문을 열어주었다. 민성이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벌써 다 왔네.’

창밖으로 불광천이 보이자 민성이 하차 벨을 눌렀다. 도착지는 아니지만 집 인근에 위치한 불광천은 그가 꽤나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는 장소였다. 생각이 깊어질 때면 산책하며 쌓인 생각들을 냇가에 던져버리곤 했다.

불광천은 인적 없이 고요했다. 야심한 시각과 영하로 떨어진 날씨가 사람들의 귀가를 재촉한 모양이다.

‘좋다…….’

민성이 밤하늘을 쳐다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불광천과 아름다운 야경을 전세 낸 기분이다.

‘나이를 먹고 노쇠해져도 과연 그쪽 업계에서 일할 수 있을까? 그냥, 지금이라도 빠르게 기술을 배우는 것이 더 현명할 것 같기도 한데…….’

한껏 느낌을 만끽하던 민성이 점장과의 대화를 잠시 상기했다. 그를 좋게 봐주는 점장의 마음은 고마웠으나 역시 진로가 불확실했다. 모든 것이 애매하게 다가왔다.

‘모르겠다.’

민성이 머리를 거세게 흔들었다. 머리가 비워지기는커녕 여러 고민들이 겹겹이 포개어지는 것 같다. 그 와중에 손이 또 왼눈에 가 있는 걸 깨닫고 한숨을 내쉬며 팔을 내렸다. 그 사건 이후로 몸에 밴 습관은 쉽게 떨어질 줄을 몰랐다. 순간 담배 생각이 간절해졌지만 공공장소에서 흡연할 수 없는 노릇이다.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민성이 잘 닦인 산책로를 걸으며 공기를 한가득 들이켰다. 차가운 공기가 그의 폐부 가득이 들어찼다가 빠져나갔다.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생각의 짐을 어느 정도 냇가에 털어내고 집으로 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산책 때문인지 슬슬 허기도 져왔다. 중간에 편의점을 들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응?”

바삐 움직이던 민성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눈을 이채롭게 빛냈다.

멀리서 희미하게 일렁거리는 불빛이 보였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다리 밑에서 푸른빛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가로등에서 퍼져 나오는 조명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뭐지?’

빛의 발생지까지 도착한 민성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성인 손바닥 크기의 작은 버섯이 은은하게 빛을 내고 있다.

‘요즘은 야광효과가 첨부된 인형도 나오는구나…….’

신기하게 바라보던 민성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손이 버섯에 닿을 찰나, 갑자기 민성이 손을 거두었다. 그의 바지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핸드폰을 꺼내어 살피자 그의 절친한 친구가 발신자로 표시되어 있다.

“여보세요?”

“뭐 하고 있어?”

핸드폰에서 정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색한 표준어에 경상도 사투리가 입혀지자 민성이 웃음을 못 참고 피식거렸다.

“산책하고 있었다. 기말고사 때문에 한창 바쁠 놈이 어쩐 일로 전화를 다 줬냐?”

서울의 명문대에 합격해 부산에서 올라온 녀석이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사이지만 민성은 녀석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고 말할 수 있는 녀석이었기에 더 끌렸던 걸지도 모른다.

“내……. 아니지. 나 어제부로 시험 끝났다. 친구한테 관심이 없네. 다른 놈들은 죄다 군대 가버리고 너도 내일 쉰다고 했으니까, 내랑 내일 술이나 한잔하자.”

녀석과의 만남은 언제나 즐거웠기에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 근데 만약에 나도 약속 있었으면 어쩌려고 그랬냐?”

“약속? 니가 약속? 평소에는 일 때문에 바빠서 얼굴 한 번 보기 어려운 녀석이 약속?”

말꼬리를 올리며 낄낄대는 친구의 음성이 요란하게 들려왔다. 민성이 통화종료 버튼을 지그시 눌렀다.

곧 핸드폰이 울리며 녀석이 보낸 문자가 핸드폰에 표시됐다. 미안하다며 내일 7시에 홍대에서 보자는 내용이었다. 승낙의 메시지를 보낸 민성이 집으로 가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춥다……. 빨리 들어가야지.’

다리 건너에는 불광천을 나가는 출구가 있다. 민성이 자리를 벗어나자 버섯 근처로 다가온 그림자 하나가 그의 등을 매섭게 노려봤다.

벌컥-

대문을 열어젖힌 민성이 신발을 현관에 벗어던졌다. 단출한 그의 작은 방이 한눈에 들어왔다.

방구석에 박혀 있는 1인용 침대와 그 옆에 놓인 책상이 보인다. 방 맞은편에는 작은 부엌도 딸려 있다. 하지만 주로 편의점에서 식사를 해결했기에 잘 이용하지 않았다. 삼각김밥을 데우는 시간을 이용해 원룸 옵션으로 딸려온 TV를 틀었다.

“친구를 만나느라 샤샤샤!”

TV에서는 예쁘장한 여자 아이돌이 춤을 추고 있었다. 가벼운 식사 후 세안까지 끝낸 민성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침대에 몸을 던지고 리모컨을 건드리며 채널을 바꾸었다. 딱히 맘에 드는 프로그램이 없어 불을 끄고 이불을 덮었다.

***

챙-

“위하여!”

“위하여!”

주말의 번잡한 연신내의 한 술집. 민성이 그의 친우와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얼굴 뵙기 힘든 우리 민성님의 존엄한 옥체를 뵈어 영광이옵니다.”

얼룩덜룩한 무늬가 입혀진 잿빛 코트를 두른 태성이 우스갯소리를 던지며 안주를 집었다.

“태성아, 개소리 하지 말고 빨리 잔이나 채워 보거라.”

“예, 폐하.”

쿵쾅거리는 음악소리와 젊은 청춘들로 북적거리는 술집 안은 난잡했다. 하지만 둘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화를 나누었다. 서로 소주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간만의 여유네.’

민성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가끔은 이런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취기가 조금씩 그의 몸을 올라탔다.

“이제 내 방학하면 다시 부산 내려가야 되니까, 그 전에 얼굴 한번 보고 싶어서 불렀다. 내년에는 나도 군대 가야 하니까…….”

대한민국 남아라면 피할 수 없다는 국방의 의무. 남자의 지옥을 언급한 태성이 숨이 턱턱 막혔는지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잔 들어라.”

잔 부딪치는 소리가 거듭될수록 두 사람의 얼굴에 떠오른 홍조도 짙어졌다.

“마! 부럽다 아이가. 내도 군 면제받고 싶다.”

태성이 부럽다는 눈빛으로 민성을 바라봤다.

“그럼 내가 한쪽 눈깔 병신으로 만들어줄까?”

민성이 젓가락을 들어 장난스럽게 태성의 눈 쪽으로 들이밀었다.

“미안.”

팔을 들어 힘없이 다가오는 젓가락을 막아낸 태성이 민성의 왼쪽 눈을 쳐다봤다. 그와 친밀한 관계가 되고 나서야 들을 수 있었던 그의 비밀. 하지만 그 연유까지는 듣지 못했다.

‘전혀 몰랐었는데…….’

민성의 왼쪽 눈은 의안이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티가 나지 않았기에 태성도 직접 듣기 전까지는 전혀 의문을 갖지 못했다.

“농담이야, 인마. 술이나 더 먹자. 다음에 볼 땐 빡빡이 모습으로 나타나는 거냐?”

실없는 웃음을 흘린 민성이 잔을 들어올렸다.

“크흑.”

서로 못다 한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비워낸 술잔을 채워주었다. 그들의 밤은 깊어져갔다.

“4차 가야지! 4차!”

“적당히 마셔라.”

민성이 술에 취해 한껏 흥이 오른 친우를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사내가 이 정도로 취하면 쓰나! 아니면 우리 거기 갈래?”

“어디?”

“오피. 오피걸, 인마! 내가 또 미리 알아봤지. 홍대 구석에 좋은 곳이 있다더라.”

갑작스러운 제안에 민성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더럽잖아. 돈까지 쥐여 줘 가면서 해야 돼?”

“야! 요즘은 그런 년들이 더 관리를 잘한다! 돈이 부담되면 이 형이 쏜다! 가자!”

“…….”

몸을 비틀거리는 태성의 손에 붙들린 민성이 한숨을 내쉬곤 그를 따라갔다.

화려한 네온사인 거리를 벗어나 빌라들이 가득한 곳에 도착해서야 걸음을 멈췄다.

“이런 곳에 있다고? 여기는 그냥 주거지잖아.”

민성이 수상하다는 듯 태성을 바라봤다. 야시시하게 입은 여성들이 유혹하는 것을 생각했지만, 그것은 상상과는 조금 다른 형태인 모양이다.

“당연하지!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요즘은 오피걸이 대세지. 다 법을 피해 이런 곳에서 장사한다고. 잠깐만 기다려봐. 지금 연락해볼 테니까.”

한심하다는 듯 민성을 쳐다본 태성이 한쪽 골목으로 들어가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난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너만 하고 와라.”

민성이 멀어지는 태성의 등에 소리 질렀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친구의 가운뎃손가락이었다.

‘내년에 군대 간다니,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고개를 가로저은 민성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에구구.”

“죄송합니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민성이 불을 붙이려 라이터를 꺼낸 순간 멀리서 노파의 안타까운 음성이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노파의 것으로 짐작되는 짐 보따리가 길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연신 허리를 숙이는 태성의 모습을 봐서는 노파와 충돌이 있었던 모양이다.

잠시 대화를 나누더니 태성이 짐 보따리를 들어 매고 노파의 뒤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갔다.

‘마음은 따듯한 놈이라니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민성이 작게 웃음 지으며 돌아올 친구를 기다렸다.

한 개비.

두 개비.

세 개비…….

‘이 새끼는 무슨 집에서 식사대접까지 받고 있나.’

민성이 태운 담배가 세 대가 될 때까지 태성은 돌아오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골목에 들어갔지만 그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무슨 골목에 꼴랑 차 한 대만 주차돼 있냐.’

골목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그 흔한 방범카메라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곤 2.5톤 크기의 탑차뿐이었다. 안에는 사람이 있는지 헤드라이트가 밝게 켜져 있다.

화가 치솟은 민성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몇 번이고 통화를 걸었지만 태성은 끝내 전화를 받지 않는다.

빵빵-

고개를 저으며 고요한 거리를 빠져나가려는 민성의 뒤로 갑자기 경적 소리가 울렸다.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던 민성이 고개를 돌렸다. 아까 보았던 하얀 탑차가 그의 뒤편까지 접근해 있었다. 탑차의 창문에는 운전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선팅이 되어 있다.

태성과의 일로 이미 기분이 상해 있던 민성이 경적 소리를 무시한 채 계속 길을 걸었다. 잠시간 경적을 울리던 탑차의 보조석 문이 벌컥 열리더니 남자 하나가 내렸다. 험상궂은 얼굴에 다부진 체격을 가진 남자가 씩씩거리며 민성을 노려봤다.

“시발, 나오라고! 말귀를 못 알아먹어? 그렇게 길 한가운데서 알짱거리면 차가 어떻게 나가!”

“뭐? 시발? 지금 시발이라고 했냐?

태성과의 일로 이미 기분이 상해 있던 민성이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말로 해서는 안 될 새끼네.”

“뭐? 이 새끼가!”

‘어?’

눈을 부릅뜨고 남자를 마주 노려보던 민성의 시선이 문뜩 그가 걸친 코트에 쏠렸다. 얼룩덜룩한 무늬가 그려진 잿빛코트.

‘저건 태성이가 입고 있던 코튼데?’

순간 불길한 느낌이 머리를 스쳤다. 우연이라 하기엔 상황이 묘했다. 친구가 사라지고 친구와 똑같은 옷을 입고 나타난 남자. 어떻게 봐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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