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캐쉬상점 쓴다-1화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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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 밤길이 위험한 이유 (1)

1. 밤길이 위험한 이유

삐- 삐-

기계에서 규칙적인 신호소리가 들린다. 흐릿한 눈동자 사이로 정체불명의 두 남자가 보인다.

‘누…… 누구?’

낯선 얼굴에 힘을 주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이 녀석 깬 것 같은데?”

“마취약이 부족했나? 뭐, 할 수 없지. 깨어 있을 때 빼내면 더 신선할지도 모르지?”

킬킬대는 사내들의 음성이 들려온다.

‘조금 전까지 밥을 먹고 있었는데? 산 채로 빼내? 무슨 소리야?’

“어……. 어……. 으……. 어…….”

내뱉으려는 말과 달리 어눌한 발음이 입에서 흘러나온다.

“진짜 마취가 덜 먹었나 보다. 할 수 없지, 뭐. 일단 안구부터 시작하자고. 의뢰주가 제일 급하게 요구한 부분이니까.”

“그래. 이게 별미라니. 돈 많은 새끼들의 취향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어. 하긴 우리야 돈만 벌면 되니까.”

그들의 대화가 끝나자 곧 왼쪽 눈에 이물감과 함께 강렬한 고통이 찾아온다.

“어……. 어……. 어…….”

“쯧,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 때문에 고통 없이 보내주려 했는데. 빨리 끝내주마.”

고통스러운 웅얼거림에 혀를 찬 남자가 손을 빠르게 놀리자 고통이 더 극명하게 다가온다.

“그나저나 이 새끼도 불쌍하지. 완전 뒤통수 맞은 거 아냐.”

“사연 있는 새끼가 한둘이냐? 닥치고 빨리 마무리 짓자.”

대화를 끝낸 남자들이 작업속도를 높인다.

“어…….”

“으아아아악!”

거친 비명을 내지른 남자가 식은땀으로 젖은 몸을 일으켰다. 분명 꿈이었지만 의안으로 대체한 왼쪽 눈이 욱신거렸다. 한참 동안 눈가를 부여잡고 숨을 몰아쉰 뒤에야 남자의 호흡이 점차 안정됐다.

“이제 좀 사라지나 했더니. 또 시작인가.”

악몽에 시달린 남자가 얼굴에 두 손을 포갰다. 잊었다고 생각한 과거의 기억이 이제는 꿈이 되어 그를 괴롭혔다.

“찾게 되면 반드시, 반드시 죽인다.”

무거운 한숨을 내쉰 남자가 방 한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바라봤다. 출근까지는 아직 3시간이나 남아 있다. 하지만 다시 잠을 청하긴 그른 상태였다. 뒷머리를 긁어내린 남자가 침대에서 내려와 화장실로 향했다.

*

“후…….”

매서운 겨울바람이 건물 사이를 파고든다. 두꺼운 파카를 걸친 남자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반복적으로 새어나왔다.

한파를 핑계로 팔짱 낀 커플이 그의 맞은편에서 걸어온다. 정장 위에 코트를 두른 직장인들도 바쁜 걸음으로 그의 곁을 스쳐지나간다. 인파로 북적거리는 거리를 걷던 남자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그의 시선이 도심 중앙의 빌딩 위쪽으로 쏠렸다. 누구나 한 번쯤 고개를 쳐들게 만드는 커다란 스크린에서는 다양한 소식들이 쏟아져 나왔다.

“항상 생생한 정보만을 시청자분들께 제공하는 생톡입니다. 네! 며칠 전, 전 세계인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던 전 세계적 지진 ‘네이처’에 대해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셨을 텐데요.

오늘은 ‘지진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보는 시간’에 맞춰 지질학 전문가이시자, 서울대학교의 지질학 교수를 맡고 계신 김민철 교수님을 모셨습니다. 반갑습니다! 교수님.”

소파에 앉아 있는 미모의 아나운서가 중년남성에게 미소 지었다.

“네, 김민철입니다. 반갑습니다.”

교수 역시 웃음 지으며 반갑게 화답했다.

“지구 전역을 떨리게 만든, 최초로 발생한 이 세계적인 규모의 지진으로 인해 많은 분들이 한동안 밤잠을 설치셨다는데요. 교수님께서는 이번 지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나운서는 궁금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교수에게 질문했다.

“이번에 발생한 대규모 지진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도 4.5에 불과했지만, 무려 전 세계에 걸친 지진이었던 만큼 많은 분들께서 흔들림을…….”

관심이 떨어졌는지 영상을 쳐다보던 남자가 걸음을 옮겼다.

*

Sea party(시 파티).

그가 일하고 있는 패밀리레스토랑이다.

가게 문 옆에는 대기용 의자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앉아 있는 사람들은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리며 차례가 적힌 번호표를 가끔씩 쳐다봤다.

문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선 남자가 가게 내부를 흘낏거렸다.

“우리 지민이 많이 먹어야 해!”

“네, 삼촌!”

이미 안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수다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테이블이건 상황은 매한가지였다. 각자 음식이 쌓인 그릇을 앞에 두고 수다 떨기에 여념이 없었다.

“왔냐? 민성아, 지금 10분 일찍 왔다고 여유 부리는 거야?”

매장을 둘러보던 그의 어깨에 갑자기 강한 압력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자 빈 그릇이 쌓인 쟁반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을 한 손에 들고 있는 호리호리한 남자가 그의 어깨를 붙잡고 있음을 깨달았다.

민성을 붙잡은 남자의 가슴팍에는 ‘점장 윤민수’라고 적힌 금빛 명찰이 달려 있다. 이 매장에서만 7년을 넘게 일한 인물로, 매장의 전 직원을 총괄하는 사람이다. 평소에는 한없이 인자한 인물이지만, 그것은 뷔페의 유니폼으로 지정된 정장을 입기 전까지만 해당됐다.

“아닙니다, 점장님. 금방 갈아입고 오겠습니다.”

점장의 손을 벗어난 민성이 탈의실로 이동했다.

[야, 거기 빨리빨리 테이블 치워. 위에 그릇들 쌓인 거 안 보이냐?]

윤민수가 달고 있던 무전기에다가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수신자는 직원 전체였다. 몰려오는 손님 탓인지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날서 있었다. 낮은 언성에 바삐 움직이던 스태프들이 더욱 부산을 떨었다.

‘흠.’

가게에서 제공하는 정장으로 갈아입은 민성이 활기 넘치는 매장을 둘러봤다. 반년이라는 시간을 이곳에 몸담아왔던 만큼 그가 필요한 곳을 빠르게 체크했다.

[민성이 형, 왔어요? 오늘 완전 죽음이에요. 끝이 없어요.]

무전기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민성이 고개를 돌렸다. 매장 구석에서 접시를 치우는 앳된 소년이 그를 향해 작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래, 진우야. 오늘도 한번 힘내서 달려보자.”

그가 아끼는 동생 진우였다. 서글서글한 눈매와 귀여운 보조개, 그리고 붙임성까지 좋으니 그를 싫어할 사람이 없었다.

[여기 훈제연어 다 떨어졌다. 3접시 정도 더 만들어줘. 진우야, 한탄할 시간이 있나 보다? 저기 4번 테이블에 잔뜩 쌓여 있으니까 갔다 와라.]

[넵.]

점장의 날선 목소리에 진우가 시무룩하게 답변했다. 대화를 들을 수밖에 없는 직원들의 표정에서는 웃음을 참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홀에 리코타 치즈샐러드 다 떨어져갑니다. 추가 부탁드려요.]

[저쪽 8번 테이블에 아이 동반한 손님 계신데, 아이가 많이 활기찬 거 같아요. 마크 부탁드립니다.]

[키친 잡무 다 끝냈습니다. 다시 홀 쪽으로 갈게요.]

설거지 파트를 맡은 직원들을 도와주던 민성이 손에 묻은 물기를 털어냈다. 그는 특별히 맡은 파트가 없었기에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다. 반년 동안 성실하게 일하는 그의 모습에, 점장이 그에 한해서 자유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야, 내가 재밌는 얘기 해줄까?”

“응?”

그릇을 쟁반에 담던 민성이 슬쩍 눈을 돌려 옆 테이블을 바라봤다. 남자 둘이서 중대한 대화를 하듯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저런 손님들은 매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류였다. 민성이 다시 테이블 청소에 집중했다.

“우리 부장이 말했던 건데 이게 완전 웃겨.”

회색 스웨터를 입은 남자가 그의 동료를 보며 웃겨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뭔데?”

맞은편에 앉아 있는 동료가 궁금하다는 듯 남자를 바라봤다.

“자기도 우연히 들은 건데, 상위 0.01%에 위치한 사람들 중에는 인육을 먹는 사람들이 존재한대. 세상에 온갖 진귀한 음식들을 계속 먹고 사니 질린다 이거지. 그래서 그들이 눈을 돌린 게 바로!”

“인육이라고?”

그들의 대화에 이동하려던 민성의 몸이 멈칫했다.

“그렇지. 분명 사원들 겁주려고 지어낸 말이겠지. 아재개그가 아니라 아재공포물인가. 넌 안 웃기냐? 난 어이가 없어서 막 웃음이 나오던데. 역시 넌, 나랑 취향이 달라.”

킥킥거리는 음성에 고개를 살짝 돌린 민성이 스산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인……육?’

분명 우스갯소리로 던진 말이겠지만 민성에게는 남다른 단어로 다가왔다. 의안이 들어선 왼쪽 눈이 다시금 욱신거리는 것 같다.

[민성아, 피곤하냐?]

흠칫한 민성이 뒤로 돌자, 싱글거리는 점장의 얼굴이 보였다.

[아닙니다.]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 민성이 다시 그릇들을 치워나갔다. 하지만 그의 눈은 남자들이 앉은 자리를 연신 노려봤다.

마감 시간이 다가오자,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내가 너무 민감한 건가?’

머리를 긁적인 민성이 남자들이 있던 곳을 흘낏 바라봤다. 하지만 이미 계산을 하고 나갔는지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아싸, 조금 있으면 끝이에요, 형님, 누님들. 우리 모두 파이팅!]

숨통이 트였는지 진우의 목소리에는 생기가 가득했다.

[항상 내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했지. 넌 조금 있다 내 손에 끝날 줄 알아라.]

짓궂은 윤민수의 농담에 직원들이 크게 웃었다. 손님들이 거의 빠져나갔기에 굳이 웃음을 참을 필요가 없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모든 일정이 종료되자 직원들이 서로를 향해 인사했다.

“고생들 했다. 다들 조심히 들어가렴. 아, 그리고 민성아. 잠깐 좀 볼 수 있을까?”

그를 부르는 음성에, 퇴근하는 직원들 사이에 껴 있던 민성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윤민수의 뒤를 따라 매장 구석에 위치한 점장실로 이동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단조로운 내부의 모습이 들어왔다. 2평 남짓한 작은 방에는 책상과 컴퓨터만이 달랑 놓여 있을 뿐이었다.

“저번에 내가 말했던 건 생각해봤어? 솔직히 내가 이 업계에서 일하면서 너만큼 성실한 녀석은 못 봤거든. 나는 꼭 네가 매니저로 일해 줬으면 좋겠다. 조금만 구르면 너도 점장은 금방이야.”

작은 창문을 열어젖힌 윤민수가 그를 진지하게 바라봤다. 점장은 민성을 매니저로 키우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가 해야 할 일들도 일부러 민성을 시킨 경우가 다반사였다. 힘들 법도 하건만 민성은 언제나 그의 기대에 부응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아직은 생각할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잠시 뜸을 들이던 민성이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다.

“그래, 그래. 아직 너도 22살인 데다가, 군대도 면제라며? 그러니 조금 더 생각해봐. 나는 언제든지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죄송스러워하는 모습에 윤민수가 그의 어깨를 툭툭 치곤 작은 창문을 열었다. 그리곤 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어 불을 붙이곤 민성에게도 한 대를 건넸다. 민성이 잠시 머뭇거리자 피식거리며 개인 재떨이를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려놨다.

“요즘 명문대학을 졸업해도 취업하기 힘든 세상이야. 그래서 나는 친동생 같은 네가 이 길을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바닥에서 제일 중요한 건 성실성이거든. 너는 그 조건을 100% 충족하고 있고. 물론 결정은 네가 하는 거지만 말이야.”

경험에서 나오는 조언에 고개를 끄덕인 민성이 불을 붙이기 위해 라이터를 꺼내들었다.

찰칵-

작은 몸에서 토해져 나오는 그 뜨거움을 바라보고 있자면 마음이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서늘한 겨울바람에 작은 불꽃이 일렁거리자 민성이 담배를 그곳에 가져다대었다. 그리곤 말없이 하얀 연기만을 천장으로 뿜어내었다. 윤민수가 담배를 툭툭 털자, 민성 역시 꽁초를 재떨이에 대고 죽어가는 불씨를 짓눌렀다.

“오늘도 고생 많았다. 나는 잔업이 있어서 조금 더 있다가 가야 할 것 같다. 일요일 잘 쉬고, 다음 주에 보자.”

“예. 점장님도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그래, 고맙다.”

건물을 나오자 매서운 한기가 민성을 에워쌌다. 민성은 조금 전 나누었던 얘기를 되새기며 왼쪽 눈 주위를 긁적였다. 무언가를 진지하게 생각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눈을 만지작거리는 것은 그의 버릇이었다.

손은 눈 주위가 붉어질 무렵 내려왔다. 바람이 맹렬했지만 방금까지 손대던 눈가가 파르르 떨릴 뿐, 눈동자는 가만히 바람을 응시했다.

파카를 여민 민성이 버스 정류장으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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