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7화 〉딥다크한 절망 (97/100)



〈 97화 〉딥다크한 절망

전황은 난전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미 협곡 자체를 안방으로 만든 르갈론이 이곳 저곳을 넘나들며 용병들을 유린하고 있었다.
간신히 떨어트린다 싶어도  포위망은 매우 헐거웠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끄으아아악!"

일라이가 뒤를 돌아보자, 레스레모나가 이끌던 원거리 공격대가 브레스에 휩쓸렸다.
허공으로 날아오르던 레스레모나가 바로 착지하더니 르갈론에게 사격을 했다.
가볍게 비행을 하며 르갈론이 다시 브레스를 내뿜었다.
도시 하나는 우습게 파괴할 만한 위력의 브레스가 협곡을 뒤흔들었다.


후우웅- 바아아아앗-!

근처에 있던 바위며 나무들이 송두리채 들리며 날아다녔다.
재앙이 임했다면 바로 이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일라이는 근처에 떨어져 있던 석궁을 쥐더니 르갈론에게 발사했다.
바람을 두르고 있는 르갈론인지라 공격이 쉽지 않았다.

'놈은 바람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다. 어쩌면 좋지?'
'압도적인 마법으로 뚫는다. 그렇다면 남은 건 유리엣과 테아……!'


급히 고개를 돌리는 일라이.
유리엣과 테아는 엇박자로 힘을 발휘하며 르갈론의 움직임을 제한하려 했다.
어쩌면 틀린 생각일지 모른다.
마른 침을 삼키며 일라이가 외쳤다.

"유리엣, 테아!"

두 여자가 돌아봤다.
그때 르갈론을 향해 거대한 그물이 발사되었다.
드래건베인이 마침내 확실한 각도를 잡은 것이다.


푸챠학- 촤르르륵-!


강화 와이어로 만들어진 그물이 르갈론을 뒤덮기 위해 기류를 탔다.
그 순간 르갈론이 바람으로 그물을 날려버렸다.
범위만큼이나 무게도 무거운 그물이다.
이런 그물을 바람으로 날린다는 건 사실상 일류 마법사나  법한 일이었다.
그때 일라이가 르갈론을 가리켰다.


"유리엣, 테아! 동시에 힘을 모아서 저 새끼 떨궈!"
"알았어."
"맡겨 달라구!"


유리엣과 테아가 손까지 잡으며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일라이는 정면으로 달려나갔다.
르갈론은 한껏 몸을 뒤틀더니 홰를 쳤다.
그러자  여파로 근처에 있던 바위 하나가 갈라지며 파편이 튀기 시작했다.

"하앗!"


일라이에게 날아오는 파편을 양옆에서 분쇄하는 세지와 자하.
둘에게 고맙다는 시선을 보내며 일라이는 그리메를 다잡았다.
이 기회 한 번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지금 르갈론은 어떻게든 그물 사정권에서 벗어나려고 발악 중이다.
이것 하나에 신경 쓸 때, 재앙이 내려올 것이다.

지직- 지지직- 쿠릉- 콰지지직-!


하늘에서 몰려들던 먹구름이 엄청난 양의 전류를 방출했다.
드래건베인의 인원들을 날려보내던 르갈론은 급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자기 꼬리만한 굵은 낙뢰 하나가 떨어지고 있었다.

쩌적- 콰앙-!

낙뢰에 직격한 르갈론이 아래로 떨어졌다.
땅바닥에 처박히며 아까보다 더한 난장판이 벌어졌다.
그 난장판에 휘말린 용병들이 비명도 못 지르고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래먼지를 뒤집어 쓰며 일라이가 외쳤다.

"르갈론, 씨발새끼야!"

타타탓- 파악-!


모래먼지를 걷어내며 일라이가 그리메를 들었다.
순간 인간으로 변한 르갈론이 차갑게 웃는 게 보였다.

"몸이 커서 좋은 건 아니로군. 이 모습으로 싸워주지."
"뒈져."

[브류스터드 파검류 - 숨통 자르기]


번개처럼 내리꽂히는 그리메.
르갈론은 바람을 이용해서 그리메를 튕겨내며 웃었다.
튕겨나가던 일라이가 잔상을 남기며 바로 거리를 좁혔다.
그 모습에 르갈론이 놀랐다.

"벌써……?"
"뒈지라고."

[브류스터드 파검류 - 송곳]


후우욱-!

바람조차 가르는 어마어마한 기를 그리메에 두른 일라이.
이번에도 바람으로 막으려던 르갈론은 생각을 고치고 옆으로 몸을 틀었다.
순발력 좋은 일라이가 바로 변형공격을 가했다.

[브류스터드 파검류 - 변형 추수]


허공에서 난데없이 궤적이 꺾이는 그리메.
그렇게 궤적을 틀어버린 그리메는 르갈론의 옷깃을 자르고 지나갔다.


"칫……."
"호오, 제법인데?"

두 눈을 빛내며 웃는 르갈론.
인간 모습이라 해도 드래건은 드래건.
그는 여전히 강자 특유의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일라이는 최대한 르갈론에게 맹공을 펼치며 외쳤다.

"웃을  있을 때 웃으라고!"
"이러다간 영원히 웃겠는데?"
"하아!"


[브류스터드 파검류 - 피바라기]

그리메에 최대한의 기를 담아 그대로 내지르는 일라이.
초속으로 행해지는 연속 찌르기에 르갈론은 아예 뒤로 크게 뛰었다.
르갈론이 막 비웃으려할 때, 일라이가 그의 뒤에 시선을 주며 말했다.


"얼른 달려오라고."
"음?"

[해령검류 발도술 - 만월]


시히잉- 샤학- 부화악-!

블레스 모험단의 2인자이자 소르의 그림자를 자처하는 보디가드이며 동시에 '검성'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인물.
검의 길을 걷는 여성 중 가장 유명하며, 동시에 스스로의 자취를 감추려 드는 여검사, '올핀'.
그녀가 마침내 정점에 다다른 해령검류의 발도술을 보이고  것이다.
그녀의 검인 '귀마도'가 파랗게 빛을 품으며 그대로 르갈론의 왼팔을 갈라버렸다.

"훌륭한 검격이다, 인간 암컷. 자신감을 가지고 내게 달려들만 하군."

왼팔이 찢어지며 피를 뿌림에도 르갈론은 미소를 지었다.
올핀이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하자, 르갈론은 바로 올핀에게 힘을 발휘했다.


[사계]


지난 날 일라이에게 썼던 제압계 능력.
아무리 검성에 가까운 수준이라 한들, 올핀은 한낱 인간이었다.
온 몸이 굳어버리고 투지가 사그라들자 올핀은 경악했다.
그리고 르갈론은 바로 다음 공격을 연계하려 했다.


"찢겨 죽……."
"뒈지는 건 너라니까?"

일라이가 배후에서 그리메를 휘두르며 나타났다.
르갈론은 가볍게 옆으로 뛰며 피했다.
그러자 일라이가 기다렸다는 듯 그리메를비스듬히 들었다.

[브류스터드 파검류 - 달 아래에서 그대와]


후우웅- 파파파파파팟-!

인간을 초월한 수준으로 빠르게 돌며 그리메로 난격을 가하는 일라이.
르갈론은 바람으로 아슬아슬하게 막다가 결국 가슴이 베이고 말았다.
하지만 드래건인 그에게 있어 이런 상처는 사소할 뿐이었다.
올핀과 일라이에게 입은 상처를 바로 수복하며 르갈론은 위로 날아오르려 했다.
그때 다시  번 여자들과 드래건베인의 협공이 펼쳐졌다.

"어딜!"


후웅- 파팡-!

유리엣의 바람계열 마법.
테아가 중력을 조작해서 르갈론의 비행을 막기도 했으며.
드래건베인 인원들은 소형 그물을 던져서 어떻게든 그를 잡으려 했다.

"후후후, 인간들이여, 제법이구나!"

호기로운 표정과 함께 르갈론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일라이가 눈앞까지 다가오자 모든 걸 내버리듯 터트렸다.

[풍류파]


휘이잉- 후콰하아아아아앙-!


르갈론을 중심으로 엄청난 기류가 형성되어 사방으로 퍼지기시작했다.
어떻게든 포위망을 형성하려던 이들이 전부 나가 떨어졌다.
심지어 거리가 좀 있던 유리엣과 테아까지 말려 들어 부상을 입고 말았다.
인간 형태임에도 드래건은 드래건.
그렇기에 최강의 자리에 걸맞은 힘이나오는 건 당연했다.
일라이는 전신에 깊게 베인 상처를 입은 채로 이를 악물었다.

"제길……."

올핀은 이미 피투성이가 된 채로 지면에 쓰러져 있었다.
그때 레스레모나가 옆으로 슬라이드를 하며르갈론을 저격하려 했다.

철컥- 타탕- 타앙-!


엇박자로 사격을 하는 레스레모나.
르갈론은 빠르게 피하더니  눈을 크게 떴다.


[사계]

이번에는 레스레모나가 사계에 걸렸다.
그때 소르가 중간에 끼어들며 랜스를 내질렀다.
검술과 창술에 통달한 일라이.
그런 일라이에게 창술을 알려준 게 바로 소르였기 때문이다.


[브류스터드 마창류 - 성벽 찌르기]

연한 금빛의 기운을 머금은 랜스가 르갈론에게 직격했다.
여유있게 피하려던 르갈론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랜스에 가슴이 관통당하자 영혼을 찢을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큭…이년이……!"


르갈론은 손바닥을 펼치더니 가볍게 휘둘렀다.

[아픈 귓속말]

작은 규모의 폭풍이 다가와 소르의 전신을 난자하고 지나갔다.


"끄흐아아아앙!"

랜스를 손에서 놓지 않고 뒤로 나가떨어지는 소르.
동시에 무타샤와 자하가 전력개방을 하며 르갈론에게 달려들었다.
두 여자 다 죽음을 각오한 모습이었다.


"연계 공격 시작!"
"좋았으!"

무타샤가 무기를 내지르며 동시에 새까만 번개를 불러냈다.
자하는 르갈론이 도망갈 루트를 상정해서 미리 공격을 내지르고 있었다.
웬만한 실력자가 아니면 피할 수 없는 연계공격.
그러나 르갈론은 달랐다.

"내가 어지간히도 우습게 보였구나!"

[사지를 찢는 열풍]

마나를 담은 열풍이 르갈론을 보호하듯 일어나더니 곧장 무타샤와 자하를 덮쳤다.
그냥 바람도 아닌 마나에 의한 이질적인 열을 담은 바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바람에 의한 자상 말고도 열상까지입었다.

푸파파파파파팍-!

"으아악!"
"꺼흑!"


처절하게 비명을 내지르는 두 여자.
일라이가 다시 공격하려 할 때 우린이 분홍빛 기운을 흩뿌리며 날아왔다.
마법봉을 들고 르갈론을 겨냥했다.
그녀의 표정은 매우 진지해 보였다.

"사랑과 욕정의 이름으로, 다이너마이트 러브러브 히트빔!"

지잉- 퓨후우우우웃-!


마법봉이 분홍빛으로 발열하더니 순식간에 빔을 내뿜었다.
르갈론은 피식 웃더니 검지를 들어 그대로 내질렀다.
인간이상상도 못할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를 담고서.

[투지를 짓누르는 돌풍]


한 점에 압축된돌풍이 그대로 빔을 상쇄하며 우린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맨몸으로 총에 맞는 것 같은 고통과 함께 우린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제기랄, 우린!"


일라이가 급히 그녀를 안았다.
입에서 피를 흘리며 우린은 뭐라 말하다가 고통스러워 했다.
레피나가 얼른 다가와 치료를 하고, 아넬이 급히 둘을 보호하려 했다.
절망적인 상황.
인간들의 포위망을 우습게 흐트러뜨리며 르갈론은 웃고 있었다.
정당한 오만함에 찌든 모습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