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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화 〉설원 던전에 무슨 일이?! (93/100)



〈 93화 〉설원 던전에 무슨 일이?!

일라이 일행이 들어선 곳은 온통 눈밭이었다.
그나마 말을 타고 있긴 하지만, 눈밭을 말로 지나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척박한 지형에서 태어난 세지가 혀를 내둘렀다.

"눈이 제법 깊은데? 한 15cm 는 쌓여 있는 것 같아."
"그 정도야? 지금은 싸리눈만 내리는데……."

하늘을 올려다보며 일라이가 고개를 저었다.
흐릿한 하늘에서는 먹구름이 싸리눈을 내리고 있었다.
온통 눈밭만 보였으나, 잔뜩 얼어붙은 강 역시 보였다.
아무래도 던전 전체가 추운 기후인 것 같았다.


"눈이 커지기 전에 쉴 곳을 찾자."
"응."

여자들과 함께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일라이.
우선 얼어붙은 강 위에 있는 다리를 건너, 다시 눈밭을 지나, 또 얼어붙은 강을 만나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추훈 곳에 있는 강은 대부분 얼어 있다.
문제는 얼음의 두께가 어느 정도인지 몰라 자칫 지나가다가 물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에 젖은 몸은 대기에 방치한 것에비해 수십 배나 더 체온을 빼앗긴다.
그러므로 일라이 일행은 마법까지 동원하며 얼어붙은 강을 지났다.


"살 떨리네."

세지가 길게 한숨을 쉬며 주변을 둘러봤다.
지하도시에서는 이와 같이 추운 곳이 있기는 했다.
눈이 내리지는 않지만 어딘가에 있을 빙하와 맞닿은 곳이었다.
그래서 기후 따위는 세지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저기가 좋겠어."


위로 올라가는 언덕길이 보였다.
그 길의 끝에는 전망대로 보이는  탑이 있었다.
저택이나 성이 아닌 큰 탑 뿐이지만, 충분히 점령할가치는 있어 보였다.
일라이 일행은 목숨을  기세로 올라갔다.
미끄러워서 말들이 지체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결국 다 올라갈  있었다.


"빙판길이 되지 않은 게 다행인 걸."
"그러게……."
"유후, 역시 재미있어!"


오직 소르만 텐션이 오른 모습.
일라이는 탑 주변을 보다가 레스레모나에게 물었다.

"레스,  보여?"
"눈사람이 몇 개 보이는군."
"눈사람?"


이런 곳에 눈사람이라니?
함정과 몬스터들로들끓는 던전에서 눈사람?
의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턱을 쓸며 일라이가 의견을 냈다.

"원거리 공격을 해서 저 눈사람을 맞춰볼까?"
"내가 하지."

레스레모나가 잘 손질된 머스켓을 꺼내 조준했다.
그리고 숨을 번 내쉴 시간에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타아앙-!


정적을 깨는 발포 소리가 들렸다.
고요하게눈만 내리는 곳이  순간 떨리는  같았다.
눈 사람 하나의 머리 부분을 맞춘 레스레모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에는 몸부분을 조준해서 사격했다.

타앙-!


몸까지 뚫리자 눈사람 하나가 발라당 쓰러졌다.
그리고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함정은 없는 건가……."
"몬스터도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소르가 덧붙이듯 말했다.
일라이 일행이 바로 탑으로 다가가려 할 때였다.
쓰러져 있던 눈사람이 주홍빛으로물들더니 갑자기 폭발을 일으켰다.
시한 폭탄 같았다.

시히이잇- 꽈아앙- 팡팡팡-!

"윽!"
"제길, 역시!"

눈사람 하나가 터지자, 나머지 눈사람들도 함정이었는지 연쇄폭발을 일으켰다.
그 규모만 하더라도 탑을 제외한 그 일대를 깔끔하게 날려버릴 정도였다.
오죽하면 언덕 전체가 크게 울리고 있었다.
일라이는 세지를뒤에서 안으며 상체를 숙였다.
최대한 폭발의 피해를 방지하고 싶었다.


"끝…났나?"
"응."
"너무 화끈한데?"


신기하게도 탑만 남기고  일대가 새까맣게 타버리고 말았다.
쌓여 있던 눈까지 전부 사라질 정도면 과연 엄청난 화력이었다.
일라이는 혹시 몰라 좀  기다리다가 앞으로 나아갔다.
아무 것도 모르고 눈사람에게 갔다면, 연쇄폭발에 휘말려 죽었을 것이다.

"진짜 사악하군."


누가 만든 함정인지 몰라도 징그러울 정도였다.
뒤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에스텔이 앞으로 나왔다.
그나마 형체가 남아 있는 부품 몇 가지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어떤구조로 만들었는지 몰라도, 익숙한 형태네요."
"그래?"

일라이가 관심을 보이자 에스텔은 나선형의 못을 꺼내 가리켰다.

"이렇게 정교한 나선 못은 우리 고블린들만 쓰는 물건이죠."
"홉고블린이라……."

고블린은 그나마 약삭빠르고 기술적인 종족이다.
그에 비해 강화형인 홉고블린은 육체적인 능력이 오크만큼은 아니라도 거의 근접한다.
이들은 기술력을 고블린들을 이용해 해결하며, 나머지는 몸을 굴려서라도 해결하려 한다.
아마 이 둘이 연합했다면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좋아, 에스텔. 혹시 이 근처에 놈들만 걸리는 함정을 만들 수 있어?"
"고블린 중에서 함정사가 있기는 한데, 제가 그들의 사고방식을 알고 있어요. 그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깜찍한 함정을 준비하도록 하죠!"


본인이  깜찍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일라이는 새삼 그녀가 귀엽게 보여서 웃다가고개를 끄덕였다.
에스텔이 함정을 만드는동안 일라이와 소르는 탑으로 들어갔다.
소르는 자신의 상징이라  수 있는 반쯤 부숴진 브레스트 플레이트를 입고 있었다.
연식이 있어 보이는 흉갑이지만 여전히 튼튼했다.


"어디 보자."


세르가 뒤따라오며 랜턴을  끝에 걸고 정면을 비췄다.
아마  탑에 누군가가 서식했는지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맥주와 곡물  포대, 그리고  구석에 뿌려진 정액까지.

"빌어먹을 놈들. 조만간 이곳에 오겠군."
"그때 다 날려버리면 되는 거잖아?"


일라이가 쓰게 웃으며 말하자 소르가 받았다.
그녀의 말이 맞기에 일라이는 고개만 끄덕였다.
감히 왕자인 자신이 오는데 함정을 설치하다니.
이 벌은 달게 받을 예정일 테니일라이는 미리 그들을 애도했다.
탑 전체를 둘러보며 이상 없음을 느낀 일라이는 다시 내려왔다.
함정 설치를 마친 에스텔이 칭찬받으려는 아이처럼 발랄하게 말했다.


"왕자님, 함정 설치 다 끝냈답니다!"
"잘 했어. 역시 너 같은 기술자가 필요하단 말이야."
"후후,그런가요? 그나저나 저 함정에 제 동족보다 홉고블린들이 많이 걸렸으면 해요."
"왜? 죄책감 들까 봐?"

일라이의 질문에 에스텔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비록 일라이의 밑에 있지만, 그녀는 본래 고블린이다.
같은 고블린을 자신이 손수 만든 함정으로 죽인다면 죄책감이 들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군을 우선시해야 했다.

"죄책감 같은 건 잊어. 아예   수는 없겠지. 하지만 너를 곤란하게  건 결국 네 동족이었어."
"그건 그래요……."
"힘내라고. 너는 충분히 유능한 인재니까."


부드럽게 머리를 쓸어주자 에스텔은 소심하게 웃었다.
좀 더 일라이의 손길을 느끼고 싶었다.
그때 바깥에 있던 여자들이 외쳤다.


"일라이, 고블린들이 온다!"
"저건 홉고블린인가……?"
"호오."


일라이가 얼른 나가보자 언덕길을 올라오는 50마리의 고블린과 홉고블린 연합이 보였다.
마법이나 함정의 지원없이 저들을 맞이해서 싸우는 건 한계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일라이 일행의 것이었다.
에스텔이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곧 제가 마련한 선에까지 들어옵니다!"

에스텔의 외침에 일라이 일행은 최대한 말들을 보호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오직 일라이와 유리엣만이 에스텔의 곁을 지켰다.
뒤에서 문을 열어놓고 레스레모나가 앉아 쏴 자세로 있었다.
함정들이 전부 사라진 것을 보고 고블린들이 웃었다.


"어떤 멍청이들이 왔나 보군."
"후히힉, 근데 저건 누구지?"
"침입자다!"

고블린들이 거슬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홉고블린들이 선봉에 서며 곤봉을 들었다.
사람의 머리는 한 순간에 으깨버릴 만큼 거대한 곤봉이었다.
한  지시가 내려오자 고블린과 홉고블린 연합은 침착하게 포위망을 형성하며 탑을 감싸려 했다.
그때 에스텔이 일라이 뒤에 숨으며 스위치를 눌렀다.


틱- 쉬히이잇- 쾅쾅쾅쾅-!


아까  함정보다 더 어마무시한 연쇄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언덕의 도입부에서부터 언덕길 전부가 거대한 폭발에 휩싸였다.
투지서린 고함과 함께 돌진해오던 고블린과 홉고블린들이 영문을 모르고 죽어가고 있었다.
시체조차 제대로 남기지 않을 만큼 압도적인 화력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에스텔은 모두가 놀랄 함정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보고 있던 레스레모나가 머스켓을 내려놨다.


"말도 안 돼. 이게 고블린의 기술……?"
"저는 좀 특별하죠!"

콧대를 세우는 에스텔.
일라이는 에스텔을 안아들며 외쳤다.

"하하하하, 나는 역시 인재복이 있어! 와핫하하하하하!"
"어멋!"

에스텔이 얼굴을 붉혔지만 일라이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에스텔을 힘차게 안은 그대로 빙빙 돌았다.
고블린과 홉고블린 연합은 아무 것도 못해보고 함정에 갈려나갔다.
언덕길이 엉망이 되었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중요한 건 일라이 일행이 이번 던전에서 제대로 신고식을 치렀다는 것이다.

"시작이 좋군. 일라이, 이 기세를 몰아가자고!"

소르가 팔짱을 끼며 외쳤다.
모두가 동의하며 일라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언덕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며 던전의 지리를 대략적으로 파악했다.
주요 서식종족은 고블린과 홉고블린일 것이다.

"그래야지. 이제부터 여긴 우리가 접수한다!"


고블린과 홉고블린이라면 약탈품에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
그들이 손수 만든 물건들도 엄청날 테지만, 홉고블린은특히나 탐욕스러운 종족이다.
약탈품 중에 쓸만한 것들이 많을 수 있었다.
무엇이든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일라이 일행은 탑에서 바로 자리를 폈다.
이곳을 교두보로 해서 하루 안에 던전을 접수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던전 자체가 매우 좁아. 도시 하나의 규모로군."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예요. 저희 고블린은 함정을 자유자재로 설치하니까요."

세지의 말에 에스텔이 말을 받았다.
새삼 그녀의 충고가 큰 도움이 되었다.
같은 고블린이다 보니 그들의 심리를 꿰고 있었다.
닭다리 하나를 뜯으며 일라이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야 당연하지! 앞으로도 믿는다!"
"물론이죠, 후훗!"


동족에 의해 고생만 하던 공순이, 에스텔.
그녀가 드디어 일라이를 만나 빛을 보기 시작했다.
어쩌면 역사에 길이 남을 기술자가  지도 모른다.
그 떡잎을 말없이 바라보던 유리엣이 희미하게 웃었다.
이것 역시 일라이라는 인간이 지닌 힘일 것이다.
인간의 것이라 할 수 없는 그의 매력에 모두가 끌리는 것이다.

'일라이, 역시 내가 인정한 남자.'

속으로 흡족해하며 유리엣은 스프를  숟갈 떠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본격적인 정복전 시작이다.
과연 어떤 기쁨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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