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일어나라, 기적의 왕자여!
세지와 베니타, 그리고 극소수가 간신히 살아 있는 상황.
천사는 느긋하게 죽어버린 모험가들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본래 인간이 아닌 그녀에게 있어 이건 상당한 포상이었다.
그야말로 인육 뷔페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었다.
"쩝쩝, 이건 좀 밍밍하네. 그래도 덕분에 제법 힘이 모였는 걸? 후후훗."
이제 천사는 20대 중반의 농염한 여인이 되고 말았다.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E컵 가슴, 부드러운 각선미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털조차 없는 보지 둔덕이 보인다.
연분홍빛 보지는 누구의 손에도 길들여지지 않은 빛을 띄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본질은 악신.
지금 이 상태라도 본래의 힘에는 미치지 못했다.
날개 하나의 길이가 1m 를 훌쩍 넘자, 천사는 서서히 살아남은 이들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럼 나머지도 먹어 볼까? 후후훗."
생기있는 미소와 함께 천천히 걸어오는 천사.
피투성이인 채로 걸어오는 그녀는 악귀나 다름없었다.
아까 사자후의 여파 때문에 일라이는 죽어버렸다.
세지는 일어서려다가 다리가 꺾여 일어나지 못했다.
베니타가 그나마 움직였지만 역시 성치 않았다.
"고작 한 번에 이렇게 당하다니."
굴욕감이 드는 얼굴.
그때 천사가 베니타의 공포를 음미하듯 다가왔다.
그녀의 목을 잡아 들어올렸다.
베니타가 더 거구임에도 쉽게 들렸다.
"약하다는 건 정말 슬픈 거야. 이렇게 애처롭거든."
"손 떼."
이를 악물며 손을 휘두르는 베니타.
그러자 그녀의 손톱이 천사의 뺨을 할퀴고 말았다.
뽀송뽀송한 천사의 뺨에 3개의 붉은 상흔이 생겼다.
멍한 얼굴로 자기 뺨을 만지작거리던 천사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살짝 놀라는 듯 하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러다 흉지면 책임질래?"
우득- 우드드득-!
"끄흑, 끄하아아아아아아악!"
베니타의 오른팔을 단숨에 분질러버리는 천사.
발악에 가까운 비명을 음미하며 천사가 히죽 웃었다
그녀에게 있어 누군가의 비탄은 찬가와도 같다.
공포 그 자체인 자신을 위해 내지르는 찬가!
"그렇게 울부짖으라고. 그래야 조금 만족할 수 있잖아?"
"끄허윽, 어윽."
"좋아, 이제 내장을 한 번 맛볼까?"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받은 소녀처럼 웃는 천사.
그녀는 단숨에 베니타의 복부를 절개했다.
푸욱- 푸화악-!
피가 사방으로 튀며 내장이 흘러나왔다.
천사는 신기한 표정으로 말했다.
"헤에, 늑대인간이라도 몸은 인간이랑 다를 바없구나?"
"어억, 꺼흑."
"너무 울지마. 깔끔하게 먹어줄게. 아, 먹기 전에 감사인사! 잘 먹겠습니다앙!"
머리를 긁적이던 손을 서서히 베니타의 내장으로 가져가는 천사.
이대로 그녀는 먹히는 것일까?
그때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철컥- 타아앙-!
정적을가르며 들리는 포화소리.
그리고 천사는 한 순간 고개를 홱 꺾으며 표정을 찌푸렸다.
어디에선가 총알이 날아와 머리를 치고 지나간 것이다.
본래 박혀야 맞는 말이지만, 지금 그녀는 상당히 강해져 있었다.
내장을 드러낸 베니타를 아무데나 내던지며 천사가 몸을 돌렸다.
"어떤 녀석이니? 얼굴이나 보자."
"손 떼라, 괴물."
바로 레스레모나였다.
그녀가 앞장 서서 걷자, 나머지 여자들이 따라서 오다가 주변을 보며 기겁하고 말았다.
"윽, 이게 뭐야!"
우린이 경악하며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말이 안 나온다는 듯 레피나의 얼굴은 좋지 못했다.
그나마 미스레아를 데려오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런 처참한 모습은 누구도 보기 싫을 것이다.
"레, 레피나. 치료를 한다면?"
"못해. 치료고 뭐고, 이건 부활을 해도 살아날까 말까한 수준이야."
자하의 말에 레피나가 우울하게 대답했다.
그만큼 천사가 훼손시킨 시체들은상태가 처참했다.
앞에서 레스레모나가 외쳤다.
"크읏, 모두 전투준비!"
"하아앗, 마법소녀 심우린 강림!"
제자리에서 두 바퀴를 돌며 마법소녀 모드로 돌아온 우린.
나머지 역시 무기를 꺼내거나 힘을 발휘하며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천천히 걸어오던 천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긋난 미소와 함께 천사가 물었다.
"너희도 나한테 대항하려고 온 거니?"
"네가 악신이군."
유리엣이 앞으로 나서며 말을 걸었다.
천사는 무표정하게 유리엣을 보다가, 한 순간 광기에 절은 표정을 지었다.
기다렸던 걸 찾은 사람처럼 광기에 차오른 화색이 돈 것이다.
"너, 너, 너, 드래건이지? 맞지!"
"그래."
"힘이 형편없어지긴 했지만 완벽한 드래건이야! 세상에, 드래건들이 아직도 존재했구나."
"여기서 나가면 다른 드래건들도 만날 수 있어. 물론 대화는 안 통하겠지만."
"우후하하하! 설마 드래건이 아직도 남았다니. 이햐하하하핫!"
미친 여자처럼 제자리에서 뱅뱅 돌며 웃는 천사.
그녀가 왜 웃는지 모르기에 테아가 귓속말을 했다.
"쟤 나보다 상태 안 좋은데?"
"우리 드래건들은 저 녀석의 피조물이야."
"으엑, 정말?"
"인간은 다른 신들이, 혼자 놀기 좋아하던 악신은 우리 드래건들을 만들었지. 어디에나 있는 흔한 얘기야."
참담한 얼굴로 대답하는 유리엣.
그녀의 대답에 여자들은 모두 경악하고 말았다.
설마 드래건을 저 눈앞에서 광기를 흩뿌리고 있는 악신이 만들었다니.
한참 돌던 천사가 우뚝 멈춰 섰다.
그녀는 꼭두각시라도 된 듯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다가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 나의 피조물아. 너까지 나한테 대항하려는 건아니지?"
"일라이는 어디에 있지?"
유리엣의 질문.
천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죽인 모험가들 중 하나일지도?"
"뭐라고?"
"나는 말이야, 그 녀석들과 싸우면서 생각을 읽을 수 있었어. 희미하지만! 아무튼 그 중 하나가 일라이일 거야. 내 사자후에 가장 먼저 맞은 놈이려나?"
검지로 입술을 쓸며 사악하게 웃는 천사.
어둠을 닮은 그녀의 긴 흑발이 나풀거리며 광기를 더했다.
우울하게 그녀를 보던 유리엣이 입을 열었다.
"그 남자는 내가 인정한 유일한 인간이다."
"후훗, 그래서?"
"내가 인정한 남자를 네 마음대로, 설령 네가 악신이라 해도 죽일 자격은……없어!"
"엥?"
평소라면 보이지 않을 유리엣의 분노한 표정.
그녀에게서 형용할 수 없는 살기와 마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과거에 비해 한없이 약해진 드래건.
그러나 힘이 약해졌다고 감정마저 약해진 것은 아니었다.
독기 오른 유리엣을 보며 천사는 혀를 찼다.
"그딴 싸구려 고깃덩이가 뭐 좋다고."
"오만한 네게 그렇게 보일지 모르겠군. 하지만 내겐 아니야. 내겐…언제라도 마음을 줄 수 있는 남자였다."
"그러든가 말든가. 어차피 반기를 들거라면 받아줄게. 여기서 너희 모두 죽이고, 이 세상을 나만의 법율만이 지배하는 곳으로 바꿀 거니까."
그 세상은 분명 파멸의 끝자락이라불릴 만큼 절망적일 것이다.
유리엣이 입을 다물며 주먹을 쥐자, 옆에서 테아가 나섰다.
그녀는 코 밑을 쓸더니 외쳤다.
"음, 안녕! 너 이 행성에서 태어난 거 맞지? 그럼 '행성신'이려나? 그런데 왜 너한테서 우주의 향기가 나는 걸까?"
"너는 오만한 '외계족'이로군. 인간들은 너를 '이질'이라 부를 테지."
천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에레스트를 창조하고 그곳을 고향으로 삼는 악신.
그런 그녀에게 외부에서 온 신과 같은 존재는 그다지 반길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테아가 싱긋 웃으며 서서히 힘을 방출시켰다.
"미안하지만 일라이는 나한테도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거든? 걔를 죽였으니 각오하라고!지금 내 전투력은……153만일 테니까!"
순식간에 표정을 굳히며 힘의 파장을 흩뿌리는 테아.
그녀의 행위 때문에주변에 있던 여자 몇몇이 더 버티지 못하고 날아가고 말았다.
귀를 파던 천사가 마나로자기 몸을 감싸더니 말했다.
"그래, 다 죽어."
귀찮다는 듯 말을 마치며 시야에서 사라지는 천사.
그리고 엄청난 규모의 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유리엣이 온 힘을 다해 마법을 다중으로 시전했다.
그에 따라 테아는 천사에게 덤벼들며 마구 주먹과 발을 휘둘렀다.
연이은 파공음과 함께 지하공동 전체가 떨리기 시작했다.
슈팍슈팍- 펑- 츠팡- 푸화악- 쩌어어엉-!
인식조차 하기 힘들 만큼 정신없이 싸우는 테아와 천사.
그리고 테아를 보조하기 위해 도시라도 날려버릴 위력의 마법을 난사하는 유리엣.
이 세 여자만으로 이미 신화 시대라 착각할 만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하공동 곳곳이 처참하게 박살이 나며 기초가 되던 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공중에서 테아가 자신이 아는 모든 능력을 동원했다.
자신에게 있어 소중한 사람인 일라이.
그를 죽게 만든 악신이 미웠다.
펑펑펑- 콰앙- 지이잉- 슈화아아악-!
테아가 한 바퀴 돌며 거리를 벌렸다.
그때 천사가 쏜살같이 다가오더니 아까와는 스케일이 다른 전력을 다한 사자후를 날렸다.
[사자후]
"쓰흐으읍, 끼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후우우우웅- 퍼퍼퍼퍼퍼퍼퍼펑-!
일개 사단이 일제히 대포라도 쏜 것처럼 엄청난 규모의 폭발이 일어났다.
그러나 테아는 능숙하게 왼손을 내밀었다.
중력은물론이고 관성까지 중화하는 본연의 능력을 발휘한 것이다.
[만물 왜곡 - 반사]
상대방의 물리적인 힘은 물론, 개념적인 힘까지 되돌리는 테아.
사자후가 날아오다가 거짓말처럼 천사를 덮쳤다.
그 사자후에 휘말린 천사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틈을 찌르기 위해 테아가 순식간에 주먹을 내질렀다.
만물 왜곡의 힘을 담아서.
[만물 왜곡 - 척력]
[만물 왜곡 - 인력]
천사를 자신에게 끌어당기며, 동시에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내며 주먹을 내질렀다.
뻐허어억-!
타격음과 함께 천사가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가다가 벽에 박혔다.
벽에 박힌 천사를 향해 불로 이뤄진 동양의 용이 쇄도하며 그대로 몸통 박치기를 했다.
[Pray - Red dragon]
슈후우욱- 꽈아아앙-!
천사에게 처박히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엄청난 화염.
순수한 화력만 하더라도 이미 미티어를 아득하게 넘은 위력이었다.
두 여자의 훌륭한 합동공격에 지켜보던 다른 여자들은 안심했다.
적어도 이 두여자라면 안심할 수준이니까.
"정말 압도적이잖아……?"
"강하다, 강하다 생각만 했지. 이 정도라니."
"저게 정점급의 싸움인가?"
상황이 끝났다고 여겼다.
레피나가 급히 아픈 사람들을 치유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 직감에 의해 천사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모, 모두 조심해!"
레피나의 절규.
유리엣과 테아는 벽에 처박혀서 먼지에 가려진 천사를 보다가 레피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이변이.
[거짓된 심판]
슈우웃- 푸콰하아아아아앙-!
천사가 있던 곳에서 새까만 안개가 퍼져나가더니 순식간에 여자들을 덮쳤다.
다 이겼다고 생각한여자들은 무방비로 휩쓸리다가 피를토하거나, 벽에 처박히며 중상을 입고 말았다.
물리적인 힘 뿐만 아니라, 독과 같은 마나가 뒤섞인 마법이었다.
여자들을 한 순간에 쓰러트리며 천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입었던 상처를 전부 치유한 그녀는 더는 웃지 않았다.
"마, 말도 안 되잖아……."
"아파, 살려, 줘."
"꿈을 꾸는 걸까? 윽, 어윽."
여자들이 다시 일어나려다가 주저 앉았다.
레피나 역시 근처에 있던 조형물에 부딪쳐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치유하고 있던 이들을 둘러보려다가 발소리를 들었다.
어느새 천사가 레피나 코앞에 도착한 것이다.
"아, 아……!"
"맛있어 보이는 게 하나 더 있네?"
더는 웃지 않는 천사.
오히려 살육에 미친 악신.
그렇기에 천사는 레피나를 그저 식량으로만 봤다.
아니, 취급을 보면그 이하일 것이다.
얼굴이 창백하게 변한 레피나가 기도하듯 겨우 목소리를 냈다.
"이, 일라이…제발, 일라이……!"
눈물이 차올라 흐른다.
그녀의 눈에 천천히 손을 뻗는 천사가 보였다.
천사가 막 레피나의 얼굴을 찌그러트리려 할 때였다.
또 다른 이변이 막 벌어지고 있었다.
[세이브 스킬을 가져옵니다.]
[세이브 스킬을 가져오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세이브 스킬은 이하 1개가 존재합니다.]
[사용자가 의식불명이므로 강제로 세이브 스킬을 발동합니다.]
[본래의 주인 셀레나의 히든능력 '자기개변'이 발동합니다.]
[사용자를 죽음에서 되돌립니다.]
[자기개변에 의해 사용자의 스펙이 효율적으로 맞춰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