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개화하다
"크으……."
가슴을 쓸며 일어서는 일라이.
그나마 여자들 중에 멀쩡한 건 유리엣과 테아가 전부였다.
미스레아를 올려다보던 테아가 두 눈을 빛냈다.
"오호오옷, 신기한데? 피 능력은 저렇게생겼구나!"
"유리엣…마법지원 될까?"
터벅터벅 걸어오며 묻는 일라이.
하지만 유리엣 역시 여유가 있지는 않았다.
"지금 이 결계를 유지하는 것만 해도 버거워."
"하아, 드래건 숙녀분. 언제쯤 전성기로 돌아가실 건지?"
"노력해야지. 너도, 나도."
"쯧, 저년 떨어트려야 하는데."
허공에 부유한 채로 팔짱을 끼고 있는 미스레아.
그녀를 잡으려면 먼저 하늘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
하지만 그게 쉬울까?
위력적인 혈액 능력과 엄청난 응용도가 특징인 미스레아.
그런 그녀에게 다가설 수나 있을까?
"오옹, 그거 내가 할게!"
"테아, 네가?"
"맡겨만 달라구!"
흐뭇하게 웃으며 테아는 미스레아를 쳐다봤다.
갑자기 위기감을 느낀 미스레아가 테아를 향해 손짓했다.
"눈부터 찢어드리죠!"
[Bloodcircle - Scratch]
부욱- 화악-!
피로 이뤄진 궤도가 그려지더니 테아의 두 눈을 향해 쇄도하는 혈액.
그러나 테아는 느긋하게 뒤로 물러나며 미스레아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 순간, 허공에서 몸을 들썩이던 미스레아가 순식간에 추락했다.
[Gravity control - Under]
땅바닥에 처박힌 미스레아가 바로 일어났다.
그녀의 얼굴에 당황했다는 느낌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일라이는 바람처럼 쇄도하며 미스레아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조금의 틈을 줘서는 안 된다!
[브류스터드 파검류 - 송곳]
단시간에 달려오며 펼쳐지는 초속의 찌르기!
일라이가 순식간에 나타나며 검을 내지르자 미스레아는 몸을 틀어 피했다.
그녀의 측면으로 다가서며 일라이가 반원을 그리며 다시 검을 휘둘렀다.
미스레아는 손날로 일라이의 어깨와 팔을 동시에 밀어내며 공격을 무마시켰다.
동시에 뒤로 물러나며 검지를 들었다.
[Blood circle - Marble]
혈액이 조금씩 부풀어오르더니구슬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그 구슬들이 빠르게 일라이를 향해 날아갔다.
족히 10개는 되어보이는 구슬들.
일라이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피하다가 한계를 느끼고 그리메로 막으려 했다.
그때, 미스레아의 얼굴에싸늘한 미소가 찾아왔다.
부욱- 파아앙-!
피의 구슬이 그리메에 닿자마자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라이를 지나쳤던 구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폭죽에 가까운피해에 불과했지만, 일라이는 이를 악물며 자기 얼굴을 쓸었다.
"씨발, 별 지랄을 다……!"
"아직 멀었어요."
이번에는 자신의 두 손을 피로 감싸는 미스레아.
그녀는 다시 달려들려는 일라이를 보며 웃었다.
[Blood circle - Claw]
마치 손톱처럼 길게 돋아난 피의 가시를 장착한 미스레아.
일라이가 지그재그로 달려들며 엇박자로 검을 두 번 휘둘렀다.
첫 번째는 막고, 두 번째는 피하며 일라이의 빈틈으로 들어오는 미스레아.
그녀는 바로 두 손을 빠르게 휘둘렀다.
후웅- 파바바바박-!
"씨발!"
"후훗."
음흉하게 웃으며 다시 피의 능력을 개방했다.
[Blood circle - Chaos lance]
피로 이뤄진 거대한 투창이 형성되어 일라이를 향해 날아왔다.
"고작해야 피로 만들어진 거!"
그리메를 쥔 손에 힘을 주며 공격으로 상쇄하려는 일라이.
피하기만 해서는 선공을 빼앗길 수 있었다.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며 일라이는 그리메를 들었다.
[브류스터드 파검류 - 숨통 자르기]
푸확- 화아아악-!
보란 듯이 투창을 가르려던 일라이가 경악하고 말았다.
투창이 갈라지며 튀는 피가 일라이에게 닿자마자 녹아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말 그대로 부식기능이라도 있는 건지 일라이의 옷이나 피부를 녹이려 했다.
"제기랄!"
쉬하아악-!
급히 자리에서 벗어나니 자신이 있던 곳이 투창에 의해 깔끔하게 녹아버리고 말았다.
창을 던진 게 아니라, 그 창이 지닌 산성 능력을 믿고 날린 것이었다.
지면을 박차며 일라이는 미스레아에게 접근했다.
이미 허공에 중력장이 펼쳐져서 날지 못하는 미스레아.
그녀는 다가오던 그리메를핏빛 손톱으로 막아내다가 뒤로 날아갔다.
"흣!"
"능력이나 계속 쓰셔, 약골 혈족 씨!"
미스레아를 도발하며 다시 달려가는 일라이.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다.
그럼 남은 건 능력이었다.
"오만하시긴!"
입꼬리를 늘어트리며 피를 뿌리는 미스레아.
일라이가 상체를 숙이며 미끄러지듯 다가오자 미스레아가 휘파람을 불었다.
[Blood circle - Explosion]
허공에 흩날리던 혈액들이 전부 끓어오르며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 화력은 포병대 하나에 맞먹을 정도였다.
갑자기 주변이 시끄러워지자 유리엣과 테아는 귀를 막으며 몸을 숙였다.
고막이 떨어져 나갈 듯한공격이었다.
"잡았다!"
[브류스터드 파검류- 피바라기]
그리고 없던 빈틈을 만들어 비집고 들어온 일라이.
그는 일부러 미스레아의 정면에서 나타나다가 측면으로 구르며 일어섰다.
온 힘을 다해 그리메를 들고 연속 찌르기를 선보였다.
츄웃- 푸푸푸푹- 푸파파파파팟-!
실시간으로 벌집이 되는 미스레아.
그녀는 만신창이가 되면서도 입은 웃고 있었다.
불길한 기운이 주변으로 퍼질 때, 미스레아는 혈액에 감싸이며 순식간에폭발했다.
스흐윽- 파아아앙-!
"커억!"
뒤로 날아가는 일라이.
피를 흡수하며 폭발시킨 미스레아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상당한 양의 피를 써서 보일 수 있는 모습이었다.
혈색이 돌아온 그녀가 서슬퍼런 눈으로 일라이를 노려봤다.
"더는…봐주지 않아!"
말투가 거칠어진 미스레아.
그녀는 한 손을 들었다.
그 손에 죽었던 마을사람들의 주검이 하나로 뭉치더니 역십자가로형성되었다.
역십자가를 지면에 박으며 미스레아가 뒤로 물러났다.
"죽어라, 오만한 왕자!"
[Blood circle - Totem]
우우우우우웅-!
역십자가가불길한 소리를 내며 떨기 시작했다.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난 일라이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씨발, 그늘백작과 싸운 여파가 아직도 남아 있어.'
몸이 생각보다 빠르게 피로해지고 있었다.
그때 역십자가에서 피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마을사람들의 피와 살로 이뤄진 말뚝들이 만들어지며 허공에 떠올랐다.
떠오른 그대로, 말뚝들이 일라이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부웅- 부웅- 바우우웅- 파파파파팍-!
"제기랄!"
연속해서 땅에 처박히는 피의 말뚝들.
일라이는 이를 악물며 피하고는 미스레아에게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영리하게 역십자가를 끼고 거리를 뒀다.
접근하지 않고서는 이길 수가없다!
우우웅- 파파파파파파팍-!
순차적으로 말뚝들이 생성되고, 착실하게 일라이를 향해 날아갔다.
일라이는 미스레아를 노리려다가 급히 역십자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둔탁한 느낌과 함께 역십자가가 박살나고 말았다.
"처음부터 그걸……?"
미스레아가 눈썹을 찌푸렸다.
일라이는 교활하게 웃더니 거리를 좁혔다.
"말뚝 만드는 게 역십자가지, 너겠냐?"
"시답잖기는!"
표정을 구기며 미스레아가 다시 혈액을 조종했다.
이번에는 피로 이뤄진 막이 일라이 앞에 나타났다.
그가 급히 멈춰서자, 피의 막이 순식간에 분해되며 하늘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가느다란 빗줄기처럼 변하며 일라이에게 내려왔다.
[Blood circle - Raining blood]
하늘에서 수백, 수천 개의 피로 이뤄진 빗줄기가 날아들었다.
일라이는 그것들을 무시하고 미스레아에게 달려들려 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곧 막혔다.
쏴아아아아아-피피피피피피피픽-!
"커억, 끄하아아악!"
빗줄기에 연속해서 관통당하며 몸의 균형이 무너진 일라이.
그런 일라이를 향해 미스레아가 가학적인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그래, 그거야! 오만한 왕자, 그게 너한테 어울리는 자세라고!"
"미친년, 크윽."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겨우 일어나는 일라이.
그늘백작과 싸운 여파와 빗줄기에 당한 고통이 제법 크게 느껴졌다.
이대로 얼마나 더 싸울 수 있을까?
어깨가 무거웠다.
이대로 눈을 감는 게 더 편할 것 같았다.
'나약한 생각하지마, 일라이!'
스스로를 힐책하며 두 눈을 부릅뜨는 일라이.
그런 그를 향해 미스레아가 끝을 내려는 듯 두 손을 들었다.
이번에도 아까처럼 혈액이 모두 허공에 떠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면적이 달랐다.
"보여주지…도시를 없앨 파괴력을……! 너희 인간이 가지고 있던 모든 걸 파괴하고, 일족을 부활시키겠어!"
[Blood circle - Reign in Blood]
피가 주변으로 퍼지고 퍼져서 결계와 중력장에 닿았다.
그 상태로 더 넓게 퍼지며 하늘 자체가 빨갛게 보였다.
마치 세상이 피의 지배를 받는 것 같았다.
직감적으로 죽음의 공포가느껴졌다.
어쩌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죽을지도 몰랐다.
"죽는 일이 있다 해도…너만큼은 조지겠어!"
그리메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온 힘을 다해 돌격하는 일라이.
그런 일라이를 향해 미스레아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애초에 능력파와 육체파의 싸움이다.
그렇다면 능력파가 유리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아디오스!"
작별인사와 함께 하늘을 물들이고 있던 피를 순식간에 낙하시키는 미스레아.
그녀의 가슴이 크게 출렁일 만큼 엄청난 양의 진동이 더해졌다.
어쩌면 마지막 순간.
죽음의 아가리로 들어가는 것처럼, 일라이는 자신이 얼마나 무모한 짓을 벌이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걸 각오하고 검을 내지른다면, 그 검이 미스레아의 숨통을 끊기만 한다면 만족할 것이다.
또 죽어서 기분 더러운 잠자리를 보내야 한다 하더라도.
"일라이!"
그때 뒤에서 테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미숙한 제어력에도 불구하고 다시중력장을 펼쳤다.
[Gravity control - Over]
지속시간은 1분도 되지 않는다.
30초를 바라기에도 도둑놈 심보다.
그럼에도 무섭게 낙하하던 혈액들이 거짓말처럼 허공에멈춰 있었다.
본래 위로 떠올려야겠지만, 지금 테아에게 그것은 불가능했다.
그녀는 능력만 가지고 있는 것이지, 사용한 적은 별로 없는 것이었으니까.
"말도 안 돼……!"
미스레아가 당황했다.
낙하하던 혈액에 일라이가 감싸이며 죽는 게 계획하던것이었다.
그러나 일라이는태연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중력장이 주춤거렸으나, 그건 일라이에게 크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건 미스레아를 죽이는 것이니까.
[브류스터드 파검류 - 송곳]
푸욱-!
"끼야아아악!"
"아직 안 끝났어!"
후욱- 파즈즈즛-!
일라이가 내지른 그리메를 두 팔을 가로지르며 막은 미스레아.
그러나 그리메에 두 팔이 동시에 꿰뚫리자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피는 위에 있는 상황이다.
일라이는 그리메로 꿰뚫은 그대로 옆으로 휘저었다.
미스레아의 두 팔이 찢어발겨지며 허공에 흩날렸다.
"안 돼, 안 돼……!"
"그늘백작에게 했던 말을 너한테도 해주지. 체크메이트다, 미스레아!"
[브류스터드 파검류 멸검 - 개화]
검을 휘저은 그대로 위로 들어올리는 일라이.
그리고할 수 있는 모든 힘과 기를 검에 주입하며 그대로 아래로 내리그었다.
미처 피하지도 못한 미스레아는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공격당하고 말았다.
정확히 반으로 가른 것처럼 미스레아는 허무한 표정 그대로 갈라져버렸다.
둘로 나뉜 그녀의 주검이 양쪽으로 쓰러지는 것을 보며 일라이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중력장이 사라지며, 하늘에 떠올라 있던 피들이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비처럼우울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미스레아의 주검이 사르르 녹아 핏덩이가 되었다.
그 핏덩이가 기묘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