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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화 〉괴물을 죽여라! (69/100)



〈 69화 〉괴물을 죽여라!

"음흐흐흐흐……."

음산하게 웃던 그늘백작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축지]


단숨에 거리를 좁힌 그늘백작이 떠보듯 탄식을 내질렀다.
검푸르게 빛나던 탄식이 일라이를 향해 다가왔다.
아까처럼 그리메를 들어 막으려는 일라이.


후욱- 태애앵- 지이잉-!


"윽!"

눈을 질끈 감다가 뜨는 일라이.
그렇게 강렬하게 내지른 것 같지도 않은데 파동형의 기운이 예고도 없이 다가온 것이다.
일라이가 뒤로 밀려나자 그늘백작이 비웃기 시작했다.
일부러 보라는  으스대면서.


"꼴값잖군. 고작 그런 수준으로 검술을 논하는가?"
"새끼…분위기 좀 바뀌었다고 지랄을 하네."


아직도 밖에서는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이 늦으면 늦을수록 여자들은  고생할 것이다.
그리메를 다잡으며 일라이가 앞으로 나아갔다.
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다가 빠르게!
일정거리까지 가자 호흡을 가다듬으며 검에 기를 실었다.

[브류스터드 파검류 - 송곳]

기를 담은 그대로 검을 내지르는 일라이.
그늘백작이 춤추듯 뒤로 피하자 검 끝에서 기운이 무색으로 퍼져나갔다.
그 힘에 닿으려는 순간, 그늘백작이 바퀴 돌며 간단하게 상쇄했다.
같은 공격도 아니고단순히 회전한 것으로 상쇄하다니?

"너…이 새끼."


그제야 일라이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건 몰라도 그늘백작의 몸에 무색의 기운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마치 그늘백작을 지켜주는 것처럼, 갑옷처럼 둘러진 모습이었다.

"놀랐나? 너는 지금 사람 하나를 상대하는 게 아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의지, 증오, 아집, 분노를 상대하는 것이다!"
"던전 그 자체를 상대하는 건가……하, 하하하."

왼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웃기 시작하는 일라이.
그늘백작은 고개를 까닥이며 물었다.


"죽음을 예감한 건가?"
"좆까지 말고, 크흐흐. 이거 정말로 재미있잖아? 좋아, 아주 좋아!"


호기로운 웃음과 함께 일라이가 눈을 번뜩였다.


"어디 한  해보자고. 진짜 좋은 기회잖아? 앞으로 나는 용가리도 잡아야 하고, 시커먼스도 상대해야 하고, 그놈의 딱까리들도 조져야 해. 그 뿐인가? 봉인당했던 왕놈도 조져야 하고, 파멸해가는 세상까지 구해야 해."
"그런데?"
"그거에 비하면 너는 아무 것도 아니야. 고작 던전 하나의 힘 좀 받았다고 으스대지 마라. 네  힘이 얼마나 허우대만 좋은 건지 보여줄 테니까!"
"그것 참 기대되는군."


피식 웃는 그늘백작.
일라이는 이를 악물며 달려들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전력차는 어마어마하다.
순수하게 힘의 출력만 놓고보면 그늘백작이 벨레르 이상이었다.
벨레르는 고작해야 한 명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늘백작은 유사세계이긴 해도 던전 하나의 힘을 받은 것이다.


'어려울지 몰라. 하지만 언제는  어려웠나? 직접 부딪쳐, 그리고 해답을 찾아!'

자신의 능력을 믿고 들이대는 일라이.
그는 그늘백작의 정면으로 달려들다가 순식간에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왼발을 살짝들며 그리메를 휘둘렀다.


[브류스터드 파검류 - 추수]


빠르게 검을 내지르는 일라이.
완벽한 타이밍이라 여겼으나 착각이었다.
그늘백작은 재빨리 뒤돌아서며 탄식으로 막았다.
동시에 일라이의 한쪽 발을 걷어차며 상체를 들이밀었다.

"읏!"
"네가 쓴 거, 이거였지?"

타탓- 후욱- 빠악-!


일라이의 다리를 걸고 바로 땅바닥에 메치는 그늘백작.
비록 그는 지금 인간이 아닐지라도, 상대가 했던 움직임을 카피하고, 그걸 응용하는 면에 있어서는 인간 다웠다.

"쿨럭, 크헉, 씨발!"

후우웅- 파악-!

내질러지는 검을 피하며 옆으로 구르는 일라이.
그는 급히 일어나며 지그재그로 나아갔다.
그늘백작이 춤을 추듯 스텝을 밟으며 마주 다가오며탄식을 내질렀다.


[공국령 파동술 - 실바람]


반바퀴 검을 휘두르며 기를 날려보내는그늘백작.
일라이가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옆으로 굴렀다.
바로 일어나며 다시 그리메를 휘둘렀다.
이번에는 그늘백작도 일부러 타이밍을 맞추며 거칠게 탄식을 휘둘렀다.

[브류스터드 파검류 - 송곳]
[공국령 파동술 - 산들바람]

아까보다 더욱 강한 힘이 방출되었다.
마주 무기를 댄 일라이가 놀란 얼굴로 뒤로 밀려났다.
그때 그늘백작이 우아한 몸놀림으로 거리를 좁히며 탄식을 들었다.


[공국령 파동술 - 흔들바람]

후우웅- 파아앙-!


"컥……!"

그늘백작의 공격을 막으려다가 그리메가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공중에 붕 뜬 일라이는 그대로 회랑의 천장에 처박혔다가 아래로 내려왔다.
그늘백작이 탄식을 세운 채로 기다리다가 빠르게 휘둘렀다.

[공국령 파동술 - 센바람]


마침내 탄식을 휘감고도는 잿빛의 바람이 보였다.
그야말로 태풍을 작게 변형시켜 놓은 것처럼 생겼다.
정면승부는 위험하다.
분명 일라이의 내면은 그렇게 경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허공에서 균형을 잡기는 어려웠다.

"할 거면 제대로 하겠어!"

일라이는 그리메에 기를 담은 채로 빠르게 휘저었다.


[브류스터드 파검류 - 피바라기]


후웅- 파파파파파팡- 콰쾅- 타앙-!


흡사 대포가 터지는 소리가 들리며 두 사람은 뒤로 밀려났다.
일라이는 히죽 웃더니 오른팔이떨어질 것처럼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간신히 상쇄했다. 피바라기에 기를 담아서  곳이 아닌 다면을 노렸어. 기초 부분을 노리지 않았으면 죽었다.'

새삼 던전 하나의 힘을 체감하게  일라이.
개인의 힘이 아닌 세상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알  있었다.
그늘백작은 망토를 펄럭이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가 쥐고 있는 검, 탄식은 이미 바람을 휘감은채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후웅후웅- 휘잉휘이이잉-!

거리를 두며 싸워야 했다.
일라이가 뒤로 물러나려 할 때 그늘백작이 이를 드러냈다.

"그럴 줄 알았지."
"뭐?"


[공국령 파동술 - 큰센바람]


아직 다가가지도 않았는데 일라이를 향해 기를흩뿌리는 그늘백작.
탄식을 감싸고 있던 기가 부채꼴로 방출되며 일라이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 힘과 속도는 단연 압도적인 것이었다.
대처를 하려던 일라이는 먼저 기술에 당하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기분이 들었다.


"어억, 커헉!"


후웅- 퍼억-!

그리고 힘에 밀려 벽에 날아가 처박혔다.
천천히 미끄러지는 일라이를 보며그늘백작이 느긋하게 다가왔다.
그는 끓어오르는 힘을 느끼며 말했다.


"인간이란 참 한심한 존재야. 자신이 뭐라도 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대자연 앞에 무릎을 꿇지."
"쿨럭쿨럭, 크흑."
"고통스럽나? 슬슬 현실 자각이 되나? 포기하고 싶지?"
"거 참, 씨발 말을 더럽게 많이 하네."

일라이가 천천히 일어났다.
그 모습에 그늘백작이 놀라며 물었다.

"또 싸우려고? 못 이길 텐데?"
"좆 까지 말고 덤벼.못 이겨? 내가? 죽는 한은 있어도 지진 않아. 그러니까 그 잘난 기술 다시 한 번 써봐."


대놓고 도발을 하는 일라이.
그늘백작은 놀란 얼굴로 바라보다가 피식 웃기 시작했다.
상대가 안 될 줄 알면서 덤비는 모습이라니.
압도적으로 짓밟으리라 다짐하며 거칠게 뛰었다.
 순간에 일라이에게 도약하는 그늘백작.

"고개를 숙여라."
"좆 까."

[공국령 파동술 - 큰센바람]
[브류스터드 파검류 멸검 - 개화]


그리메를 들고 있는 힘껏 내리치는 일라이.
엄청난 양의 기를 모아 단숨에 퍼부은 일격이었다.

후우우욱- 콰가가가가각-!

일라이와 그늘백작은 서로의 검격을 교환하며 몸의자세가 무너졌다.
엄청난 양의 기운이 서로 충돌하며아예 소멸하고  것이다.
그렇다면 자세를 먼저 잡은 사람이 유리했다.
그 주인공은 그늘백작이었다.


"흐흐흐……."
"쳐웃지마."

스슥- 퍼억-!

그러나 일라이는 오기로 몸을 움직이며 그늘백작에게 박치기를 했다.
그늘백작은 변하면서 온 몸이 덩굴과 수액으로 덮여 굳어 있었다.
박치기 한 쪽이 아플 것이다.
그럼에도 일라이는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그늘백작은 알 수가 없었다.

"왜 웃지?"
"던전의 힘이라며? 고작 이 정도야?"
"한심하군."

혀를 차며 일라이의 멱살을 잡고 벽에 내던지는 그늘백작.
그러는 중에 일라이가 그리메를 휘둘러 그늘백작의 목을 베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늘백작의 방심을 노려 한 순간에 저지른 것이다.


푸쉭- 부하아악- 쥬르륵-


그러나 그늘백작은 죽지 않았다.
벽에 처박히며 일라이는 보고야 말았다.
잘린 그늘백작의 목이 다시 붙는 것을.


"미친…재생능력?"
"이곳은 나의 세계. 나를 죽이는  불가능하지."

태연하게 목을 재생시키며 웃는 그늘백작.
하지만 본래 인간의 육체였기에 피가 배어나오고는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일라이는 일어서려다가 쓰러졌다.
슬슬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너무 허용했나? 하지만…이걸로 죽일 방법을 알아냈어. 이번만큼은 절대…죽을 수 없어.'


주먹을 쥐고 지면에 덧대며 일어나는 일라이.
그늘백작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일라이는 죽기 살기로 싸우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공격이 들어올것을 예감한 일라이가 앞으로 굴렀다.

후웅- 파아앙-!

탄식을 감싸고 있던 기류가 지면을 찢어발기며 사라졌다.
일라이는 바로 그늘백작의 측면으로 침투하며그리메를 휘둘렀다.

[브류스터드 파검류 - 숨통 자르기]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 그리메.
그늘백작은 상체를 뒤로 젖혀 피하고는 파리채 휘두르듯 탄식을 휘둘렀다.
탄식을 감고 있던 기류가 일라이의 전신을 때려댔다.


파파파파팡-!

"커억……!"

이번에는 회랑의 기둥으로 날아가 부딪치는 일라이.
그늘백작은 온 힘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일라이가 했던 도발이 통한 건지, 처음으로 온 힘을 보이려 하고 있었다.
 힘은 성은 물론이고 던전 전체가 엄청나게 떨리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세상을 아우를 힘과 함께 사라져라."


전력을 개방하며 모습이 갈수록 흉측하게 변하는 그늘백작.
그런 그를 보며 일라이는 힘없이 웃었다.
그야말로 자신을 좀먹는 괴물을 보는  같았다.


"괴물 새끼…하지만 이걸로……."
"끝이다. 재앙을 내리마."

지면으로부터 1m 정도 뜬 채로 탄식을 높이 드는 그늘백작.
 상태에서 힘을 집중하니 탄식은 물론이고,  위로 엄청난 규모의 기류가 모이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잉- 휘잉휘잉- 후우우웅- 파파팡-!

온갖 세기의 바람들이 전부 모인 것 같았다.
그것들을  하나로 축약하며 한 곳으로 모았다.
그토록 크기가크던 힘이 마침내 하나로 모여 더욱 강력해진 것이었다.
어쩌면 드래건이라도 쓰러트릴 수 있을 만한 위력.
그럼에도 일라이는 전력을 다해 달려왔다.

"겉모습은 괴물, 하지만 네 내면은 여전히……!"
"잘 가라."

[공국령 파동술 - 싹쓸바람]


공국령 파동술의 정점에 있는 기술이며, 인간의 육체로 도저히 재현할 수 없다고 알려진 흉기.
그것이 지금 여기서 펼쳐지고 있었다.
회랑에 있던 모든 것을 집어삼키던 기류가 하나로 모아졌다.
그 기류가 일라이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죽음을각오한 왕자는 전력을 다해 달렸다.
피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면 다음 공격에 무방비로 당하고 만다.

"안 두려워!"

일라이 역시 모든 힘을 집중했다.
설령 세계 하나에 비해 부족하다  지라도, 그에게는 그늘백작에겐 없는 것이 있었다.
살면서 갈고 닦아온 노력과 고뇌의 총체, 그리고 천부적인재능과 타고난 육체능력이었다.
이 모든 것들이 명검에 합쳐지며 기적에 가까운 힘이 발현되었다.

[브류스터드 파검류 멸검 - 종식]

지금까지 이 정도로 기를 다뤘을까 싶을 만큼 거대한 규모의 기류가 형성되었다.
 기운을 그리메에 담아 그대로 내지르는 일라이.
그리메를 쥔 오른손이 평소보다 더 차갑게 굳었다.
그럼에도 일라이는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의 전부를 쏟아부은것이었다.


쑤후우우욱- 쓰콰아아아아앙-!


재앙에 가까운  힘이 맞부딪치자마자 성 전체가 흔들리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주역인 일라이와 그늘백작은 무너지는 잔해에 감춰지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힘의 충돌로 성은 차근차근 밑바닥에서부터 쓰러졌다.
그때 살덩이를 찌르는 소리가 들었다.
너무나 흔하게 변해버린 소리였다.


푸욱- 찌극-!

"쿠헉!"


비명의 주인공은 그늘백작이었다.
그는 말도 안 된다는 듯 뒤로 눈을 돌리며 물었다.


"어떻게……?"
"병신, 내가 언제 정면승부한다 그랬냐? 씨발, 아무리 나라도 이 몸으로 그 기술을 집어 삼키긴 버거워. 하지만 상쇄는 가능하지……."
"오른팔이……걸레짝이 되었군."
"사람은 팔이 개야, 씹새야."

마지막 순간, 일라이는 간신히 그늘백작의 기술을 상쇄시켰다.
그 대가로 상체와 하체의 오른쪽이전부 찢어져버리고 말았다.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어깨와 너덜너덜해진 팔과 손, 그리고 피하지방층이 드러난 허벅지까지.
반시체나 마찬가지지만 일라이는 그리메를 왼손으로 잡아 그늘백작의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일격을 날린 것이다.

"그륵, 크흐윽……."
"체크메이트다, 그늘백작."


일라이의 말과 함께 결국 그늘백작은 숨을 거뒀다.
세상의 힘을 다루지만 본체는 인간.
그러므로 인간의 급소를 찔리기만 하면 치명적인 건 매한가지였다.
죽어버린 그늘백작을 걷어차며 일라이는 쓰러졌다.


"나…또죽나?"

피식웃으며 일라이는 눈을 감았다.
그때 자신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렸다.
자신에게 있어 너무나 사랑스러운 여자들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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