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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화 〉본격적인 정복! (68/100)



〈 68화 〉본격적인 정복!

다음날 아침.
식량을 가지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줄이며 식사를 마친 일라이 일행.
하나 된 일라이 일행은 겉보기로도 강해 보였다.
그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일사불란하게 조를 짜며 움직였다.
어떤 조는 남쪽을, 어떤 조는 북쪽을, 필요하다면 질척한 강을 넘고, 함정투성이 험지조차 넘었다.
그리고 정오를 넘어서오후 3시에 접어들 무렵.
타는 듯한 햇살을 받으며 일라이 일행은 던전의 중앙에 모였다.


"보물 대박 많았다구!"


아넬이 애처럼 기뻐했다.
그러자 똑같은마음이었으나 기쁜 내색을 지운 레피나가 코웃음을 쳤다.

"흥, 애 같기는. 고통없이  얻을 수 있겠니?"
"역시 인간들은 재밌어……크큭."


턱을 괴며 의미심장한 말을 하는 테아.
우린은 레스레모나에게 자신의 활약상을 얘기하고 있었다.
주로 마법소녀로서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내가 광속으로 날아서 러블리 펀치를 날렸지!"
"그렇군."
"어떤 놈은 악어처럼 생겼거든? 그래서 아예 발레 킥으로 입을 찢어놨어!"
"대단하군."
"중간보스 같은 놈도 나왔지만, 러블리 스타 프리즘 어택으로 없앴어. 위험한 건 마법소녀가 해치웠으니 안심하라구!"
"고생했군."

무미건조한 대답을 일삼는 레스에 비해 우린은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여자들의 활약상을 들으며 일라이는 오늘 획득한 것들을 살펴봤다.
식량 약간에 금은보화가 엄청났으며,  중에는 무장으로  만한 도구들도 보였다.
가장 먼저 보인  '폴암'이었다.
이런 계열의 무기 역시 만져본  있는 일라이는 바로 알아보려 했다.

[통상 무구 '거대한 폴암'이 당신의 소유에 들어갑니다.]
[거대한 폴암은 소유자의 힘에 비례해서 위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일라이는 이걸 단숨에 세지에게 건넸다.
자신에게 나름 어울리는 근접 무기를 갖게 된 세지.
그녀가 놀라자 일라이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상하게 원거리 무기는 희귀하네. 우선 그걸로 만족해줘."
"적어도 너를 태운 채로 질 일은 없겠어. 고마워!"

흐뭇하게 웃는 세지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일라이는 다른 물품들도 살펴보기시작했다.
그리고 여자들에게 각자 어울릴 만한 것들을 하사했다.
마치 왕이 충신들에게 하사품을 내리듯.
문득 일라이는 웃었다.

'진짜 왕이라도 된  같네? 하긴, 이곳의 왕은 바로 나니까.'


잠시동안 훈훈한 기운이 감돌았다.
만약 나라를 재건하고, 정말 왕이 된다면?
그럼 이런 우월감을 자주 느낄  있을 것이다.
충신은 치하하고, 간신은 엄벌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 날이 올까?

"후후, 이 철장갑은 이상하게 마음에 드네?"

자하는 일라이에게 받은 건틀릿을 자랑하며 부딪치기 시작했다.
레스레모나가 받은 물품은 모자였다.
챙이 넓은 데님 소재의 모자였는데, 적들에게서 모습이 쉽게 보이지 않는 능력을 지닌 것이었다.
여자들이 한층 더 강해지는  같아 일라이는 흡족했다.


'그렇구만. 본래 능력도 출중한데, 거기에 아이템까지 따른다라…최고의기사단이 되겠어.'

그렇게 한참 웃고 있을 때였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유리엣이 물었다.

"일라이,  곳을 잊고 있었어."
"어디? 아, 유리엣. 너는 서쪽이었나?"
"정확히는 여기 어딘가야. 지나가면서 봤는데, 신기하게도 성 하나가 있더라고."
"성?"


 던전에서 성을 본 기억은 없다.
기껏해야 영주들이 쓸 법한 저택이 전부였다.
그런데 성이 있다면 정말 전초기지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같았다.
무엇보다  던전이 알고 보니 복층 던전이라면?


"얼른 가보자."


단숨에 세지에 올라탄 일라이가 말했다.
여자들도 전부 말에 오르거나, 도구나 마법의 도움을 받아 속도를 냈다.
지금까지처럼 압도적인 기세로 함락시키고 싶었다.
이곳은 더 이상 던전이 아니라, 일라이와 꽃벼림 기사단만의 전초기지였기 때문이다.
한참을 달리니 마침내 잿빛으로 물든 성에 도착했다.
덩굴이나 늪지대 특유의 이끼가 낀 것이 들어가기 꺼려질 정도였다.


"그다지 큰 성은 아니다만…지낼만한 수준이긴 하겠어."

세지에게서 내리며 일라이가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그때 성 주변땅바닥이 꿈틀거리더니 순식간에 균열이 일어났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일까?
실체는 바로 언데드 몬스터들이었다.


"흐우하아아악!"
"가하아……."

해골 병사와 좀비, 그리고 해골 병사의 강화판인 '해골 대장'들이 대검을 들고 일어난 것이다.
수만 하더라도 수백에 가까운 수준.
감이 좋은 유리엣이 성을 가리키며 외쳤다.

"여기서 이럴 시간 없어. 돌파해야 해, 저 성에 이들을조종하는 자가 있어!"
"하, 보나마나 그늘백작이겠지. 쥐새끼 같은 새끼, 이번에야말로 결판을 낸다!"


일라이가 그리메를 빼들며 호쾌하게 외쳤다.
유리엣이 마나를 활용하며 압도적인 마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우린까지 돕자 언데드 몬스터들이 낙엽처럼 쓸려나갔다.
언제나처럼 무난한 전개가 예상될 무렵.
거짓말 같이 언데드 몬스터들이 부활했다.


"뭐야?"
"그렇군…이미 사령의 땅이 된 건가?"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유리엣.
그때 레스레모나가  눈을 가늘게 뜨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사령의 땅? 장로님께 들은 적이 있다. 그 땅은 무언가 초월적인 힘에 침식된 땅이라는  아닌가?"
"맞아."
"큰일이로군."


유리엣과 레스레모나의 대화에 일라이가 표정을 찌푸렸다.
적어도 좋은 얘기는 아닌 것 같았다.
그리메를 꽉 쥐며 일라이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리비카가 급히 외쳤다.

"왕자님, 위험해요!"
"따라오지마. 여자들, 너희는 저 뼉다귀들 조지고 있어."
"뭐어?"

말도 안 된다는  레피나가 따지듯 물었다.
하지만 일라이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단신돌파할 테니 엄호해줘. 여길 모두가 뚫고 갈 수는 없다. 분명 저 뼉다구들이 발목을 잡으려 하겠지."
"일라이……!"


테아가 동공을 흔들며 첫 눈에 반해버린 시늉을 했다.
하지만 그것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살짝 그리메를 들며 일라이가 말했다.

"항상 주인공을 독차지해서 미안해. 하지만 저곳에 있는 놈이 그늘백작이면, 결판을 봐야만 해."
"……가라. 엄호해주겠다."


철컥- 틱-

머스켓을장전하며 레스레모나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곁눈질로 일라이를 보다가 스코프로 얼굴을 가져갔다.


"남자가 하려는 게 있다면 무엇이든 믿고 기다려주는 게 의리. 돌파해라."
"그, 그래! 일라이, 백작인가 백조인가 죽여버려!"
"우리한테 맡기라고!"
"흐응, 아무리 언데드라도 저주에는 답이 없지!"


여자들이 전부 일라이에게 동의하며 외쳤다.
수많은 격려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일라이는 소리없이 웃었다.
이렇게까지 믿어주는 여자들이 있는데 멈춰설 수는 없잖은가?

"그럼."

짧은손짓과 함께 일라이가 전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성까지의 거리는 500m.
 것 아닌 거리가 오늘따라 되게 길게 느껴졌다.
온갖 언데드 몬스터들이 시퍼런 안광을 뿌리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뒤에서 무수히 많은 마법과 총알들이 엄호를 했다.


탕탕- 쉬히이잇- 콰아아앙- 쩌저적-!

그리고 언데드 몬스터들의 벽을 단신돌파하는 일라이.
그는 자신을 막는 모든 것들을 베고 찌르며 전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성에 도착한 그는 도개교를 느긋하게 지나며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늦는다면 여자들이 고전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그녀들이 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지루한 싸움을 얼른 끝내고 싶을 뿐.

"그늘백작, 나와!"

넓은 회랑에 들어서자 순식간에 불이 켜졌다.
레드 카펫이 깔린 회랑에는 벽면마다 유명해 보이는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기사의 조각상과 몬스터의 박제된 머리들은 오묘한 조화를 보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그늘백작이 있었다.
그는 두 눈을 빛내며 히죽 웃었다.


"오래기다렸지, 왕자."
"폼 잡기는, 씹새끼가."

그리메로 그늘백작을 가리키는 일라이.
무기를 바꾼 것인지 그늘백작은 신비해 보이는 무기를 꺼내들었다.
특이해보이는 칼집과 '레이테르팔라슈'였다.
주로 제국에서 베기용으로 사용하는 제식검 중 하나였다.

"이번에는 내 보검과 운명을 함께 하기로 했다."
"파멸을?"
"아니, 영원한 승리의 운명을!"


그늘백작이 자신 있게 웃으며 일라이를 레이테르팔라슈로 겨눴다.
특이하게도 레이테르팔라슈는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단숨에 보통무기가 아님을 깨달은 일라이가물었다.

"그거…그냥 레이테르팔라슈가 아니지?"
"물론. 나는 이것에 이름을 붙였다. 가문의 보검이니까. 바로……'탄식'이다."
"탄식?"
"이건 항상 탄식을 부르더군. 이것으로  사람들을 지켜도, 적을 해치워도. 딱 어울리는 이름 아닌가?"


어딘가 슬퍼보이는 그늘백작의 얼굴.
일라이는 멍하니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다가왔다.


"지휘자된 입장에서 감상에 젖는 건 좋지 않아. 그 정도는 알지 않나?"
"그렇군. 미안, 원래 여자였어서 말이지."
"뭐?"
"아, 너는 우리 세상이 어떤지 모르겠군. 가끔 이곳에 흘러 들어오는 모험가들을 죽이며 너희 세상이 어떤지 얘기를 들었지. 네가 사는 세상이 맞다면 말이야."
"흥, 남자랑 여자의 역할이 바뀐 곳에서 살아온 주제에.  안다고 지껄여?"
"미안하지만 내가 남자가 된 건 사정이 있어서 말이야. 원래 여자는 가문의 모든 걸 짊어져야 하지. 그건 곧 그걸 시기하는 무리에게 암살당할 수도 있음을 의미해. 자그마치 어렸을 때부터."

말을 마치며 별  아니라는  어깨를 으쓱이는 그늘백작.
일라이는 그를 노려보다가 입가에 미소를 걸쳤다.
무슨 사정인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정없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일라이는 그늘백작을 죽이려 했다.


"됐고,  들어."
"오늘을 너의 탄식으로 물들이겠다."
"그거 좋지. 결판 내보자고, 보추!"
"나를 그렇게 부르지마라!"


지면을 박차며 일라이에게 달려드는 그늘백작.
일라이는 그리메를 들어 막았다.
그때 탄식이 궤도를 바꾸더니 순식간에 측면에서다가왔다.
그늘백작의 특기인 유연한 검격이었다.
놀랄 상황이었지만 일라이는 오히려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브류스터드 파검류 - 추수]

쓰헉- 푸확-!

"어……?"


상체에 사선으로 큰 검흔이 생긴 그늘백작.
그는 당황한 얼굴로 뒤로 나가 떨어졌다.
그리메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일라이가 두 눈을 빛냈다.

"이미 다 파악했어, 네 패턴. 처음 봤을 때는 신기했는데, 이젠 좀 시시하네?"
"어느새  정도로 성장을……."
"성장이 아니야.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성장하는 동물이지만, 나는 죽으면서 성장하거든. 다만, 이건 수준의 차이일 뿐이지."


온갖 검과 검술을 보며 자라온 일라이.
그런 그에게 아무리 생소한 검술이라도  번 본 이상은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일라이는 검술 아카데미에서도 상당히 이름을 떨쳤던 것이다.
고작 왕족이라는 핏줄로 위에  것이 아닌, 누구도 지니지 못했던 실력과 재능으로 정점이  것이다.
가슴을 적시는 피를 털어내며 그늘백작이 일어났다.
순식간에 얼굴이 바뀐 그가 무섭게 웃기 시작했다.
마치 혼이 나간 인간 같았다.

"크흐흐흐, 그래? 그럼 오래 끌 필요도 없겠군!"
"뭐, 뭐야?"


갑자기 바뀐 분위기.
그리고 다른 사람이 된 듯한 그늘백작의 모습.
레드카펫이 서서히 새까맣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지면이 갈라지며 성벽에 걸려 있던 덩굴들이 그늘백작을 감쌌다.
그 상태에서 그늘백작은 속삭이듯 말했다.


"쥐를 잡으려면 고양이 수준으로, 인간을 잡으려면…괴물 수준으로!"


그늘백작의 모습은 완전하게 바뀌어버렸다.
마치 늪지에 침식된 던전처럼, 그 역시 짙은 녹색과 검은색이 혼합된 채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두 눈은 보랏빛으로 변했고 분위기는 한층더 음산해졌다.
던전의 주인이자 보스, 그늘백작.
그가 마침내 던전의 백업을 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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