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인간의 습격
지하도를 전부 돌아다니며 테아와의 얘기를 이어나가는 일라이 일행.
주로 자하나 리비카가 물어봤고, 유리엣과 레피나는 듣기만 하는 쪽이었다.
여관에 도착하자마자 일라이는 소환한 여자들을 카드로 돌려보냈다.
물어보는 건 뭐든 정성스레 대답하던 테아가 물었다.
"그런데 여기 세상은 왜 이래? 나야 운 나쁘게 시공의 틈에 빨려들었다지만, 여기는 너무 개판인데?"
"개판이지. 곧 종말에 삼켜질 거라서."
담담하게 대답하는 일리아.
스스로 이런말하는 것도 웃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 모르는 모양인지 테아가 놀랐다.
어디까지나 그녀는 이곳과 관계없던 외계인이니까.
"허헙, 신기해!"
"암흑의 존재를 만나도 과연 신기할까? 푸흐, 그럴지도 모르겠네."
가볍게 한숨을 쉬며 어깨를 으쓱이는 일라이.
지하도를 다 돌아본 결과 생존자는 없었다.
어지럽혀진 집들이 많은 걸 보면 도시에서 사람들이 전부 나간 것 같았다.
정말 기이한 경우였다.
가지런히 정돈된 집들이 있는 걸 보면, 사람들이 한 순간에 사라진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일이야 어찌 됐든 일라이는 안도했다.
'적어도 생존자는 없어. 이질 혼자니까 신경 쓸 건 없겠지.'
그렇게 안도할 때, 테아가 분위기를 깨며 말했다.
"그런데 시체가 하나 있더라? 그거 맛있었어."
"우윽……!"
레피나가 안색이 안 좋아졌다.
일라이 역시 표정을 찌푸리며 테아를 바라봤다.
설마 기사의 시체를 먹은 게 그녀였나?
"네가 먹었어?"
"응. 아무리 외계인이라도 배가 고프긴 해. 너희 인간처럼 상시발동형은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런 걸……."
"흐음, 먹을만 하던데? 나 입 커."
순간 일라이는 테아에 대해서 고민을 했다.
'입이 크다고? 지금 모습을 보면 위장도 안 커보일 것 같은데.'
'오호라, 지금 모습이 본체가 아니구나. 본래의 모습은 숨기고 있겠지. 좀 더 이 세상에 맞는 모습을 한 건가?'
'본래 모습은 흉측할지도 모르겠다. 대개 문헌에 나온 이질들은 무섭고 기묘한 모습이니까.'
고민을 마친 일라이가 고개를 돌렸다.
이것에 대해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같이 다닐 거라면 몇 가지는 일러둬야 했다.
그걸 레피나가 대신했다.
"어이, 앞으로 우리랑 같이 다닐 거면 사람처럼행동해."
"왜?"
"아니면 도태될 테니까. 잘난 이질님께서 뭐가 부족한가 싶지만, 엄연히 드래건이 날아다니는 시대거든."
"드래건? 이 행성에도그게 있구나! 그럼 조심해야겠네. 알았어!"
알아서 저절로 이해하는 테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녀를 보던 레피나는 혀를 찼다.
말할 건 말해뒀으니 앞으로 문제는 없을 것이다.
어쩌다 보니 이질을 동료로 둬버렸다.
이것에 일라이는 딱히 혼란을 느끼지는 않았다.
모험이란 건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여긴 우리가 쉬는 곳."
여관에 도착한 일라이는 테아에게 여자들을 소개시켰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서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때 리비카가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이상해."
"뭐가요?"
"사람들이 한 순간에 사라진 것 같아. 피난을 간 게 아니라."
"흠, 피난을 간 거라면 그런 흔적이 곳곳에 보여야 하는데…그렇지 않았죠."
"가장 이상한 건 지하도야. 성노예들은 그 수가 많아서 반드시 마차가 동반되어야 해. 단체로 채울 수 있는 족쇄나."
아무리 인지도 적은 매음굴이라도 성노예는 기본적으로 10명 이상을 둔다.
손님들의 취향은 다양하고, 존중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인원을 깔끔하게 데리고 피난을 갔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분명 앞뒤가 맞는 경우가 있을 텐데,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왕자님, 예전에 결재하다가 '단체 실종 현상'에 대해 본 적 있지 않으세요?"
"기억나. 배니싱 현상이었나? 하지만 그건 마법사들의 소행 아니었어?"
일라이가 묻자 리비카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랜턴을 살짝 가까이 두며 말했다.
"아뇨, 실제로 아무 이유없이 그런 경우가 벌어지기도 했대요. 두 달 전에 '블라터' 변경백의 사건도 그렇고요."
"아, 그것도 배니싱 현상이었지. 그럼 여기도?"
"말 그대로 생명체가 하나도 없잖아요?"
체플린에 와서 생명체를 본 적이 없다.
사람도, 그 흔한 애완동물도 없었다.
그러므로 일라이는 한 가지 결론을 세웠다.
여기서 배니싱 현상이 벌어졌다고.
다만 역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정말 재앙이 곳곳에서 벌어지는군."
"이런곳이 더 있을지 모르겠네요."
"보기가 싫은데. 시체와 피로 넘쳐나는 곳보다 낫지만, 이렇게 황량해서야 도시가 아닌 것 같잖아?"
이런 곳은 종말을 완벽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그렇기에 일라이는 싫은 기색을 보였다.
차라리 사람들도 번잡한 곳이 나았다.
그렇게 대화하고 있을 때 레피나가 귀를 움찔거렸다.
"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창가로 다가갔다.
얘기하고 있던 리비카가 눈으로 그녀를 좇았다.
그리고 물어보려 할 때, 바깥에서 소음이 들렸다.
철컥- 펑펑펑-!
갑자기 대포알이 날아오며 여관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가까이에 있던 레피나는 뒤로 날아가더니 고통을 삼켰다.
"어윽!"
"공주님!"
갑작스러운 습격.
일라이는 단숨에 세지를 불렀다.
그녀가 달려오자 일라이는 단숨에 타며 외쳤다.
"모두 말에 타! 그리고 방어 준비해!"
뭐가 공격해온 건지 모른다.
그렇기에 성급하게 공격하기 보다 방어를 해야 했다.
다만 상대방의 화력이 너무 우월했다.
끊임없이 포효하는 대포 소리에 여관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근처에 있던 세지의 동료들이 전부 죽어버리고 말았다.
"밖으로!"
유리엣이 급히 외치며 일라이와함께 여관을 나섰다.
바깥으로 나와보니 전혀 본 적 없는 자들이 대포와 머스켓으로 무장한 채로 사격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여관의 불빛을 보고 단숨에 습격을 가한 것 같았다.
"제길, 저것들 뭐야? 녹색 총사대?"
"아뇨, 그들과는 복색이 달라요!"
리비카의 대답에 일라이는무작정 도망가기 시작했다.
정체불명의 인간들이 이제 대놓고 머스켓으로 조준사격을 했기 때문이다.
탕탕- 처척- 탕탕탕- 파악-!
"모두 도망가! 기동력으로 빠져나가는 거야!"
목이 찢어져라 외치며 일라이는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편히 쉬나 했지만 그것도 여기까지인 것 같았다.
나라가 무너지고, 규율 역시 무너졌다.
사람들은 무정부 상태가 되고, 도덕이 비도덕에 먹히고 말았다.
그 대가는 바로 지금같은 일들이었다.
"어째서…인간은 서로를 미워하는 걸까. 왜 해하기만 할까?"
유리엣이 우울하게 말했다.
일라이가 돌아보자 테아가 유리엣의 허리를 안은 채로 웃었다.
"아하핫, 이 또한 인간다움일지니!"
"쳇, 인간에 대해 뭘 안다고."
"모르지. 하지만 알아가는 중이잖엉?"
"잘났다."
치부를 보인 것 같아서 일라이는 짜증이 났다.
그는 단숨에 도시를 나오며 대로를 달렸다.
그나마 잘 닦인 대로가 있는 게 다행이었다.
다만 피난을 갔던 흔적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이봐, 일라이. 그 배니싱 어쩌구 말인데. 단체 실종이라도 된 거야?"
세지가 침착하게 물었다.
일라이는 고개를 저으며 마른 입술을 적셨다.
"무슨 이유로 일어나는 일인지 아직 알지 못해. 다만 그런 일이 지금까지 제법 있었어."
"햐아, 무섭네. 보고되지 않은 일까지 합한다면 장난 아니겠는데?"
"그렇겠지……."
"그래서 다음 행선지는?"
말은 행선지를 묻지 않는다.
그러나 켄타우르스인 세지는 행선지를 물었다.
그래야 곧게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리비카!"
"여기서 쭉 나아가면 '유계'라는 마을이 나와요."
"동방쪽인가…좋아.거기로 가자."
"곧게 달려주지!"
혹시 따라오는 이들이없나 돌아보던 세지가 속력을 올렸다.
그러자 나머지 말을 탄여자들이 훌륭한 승마술을 보이며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때 하늘에서부터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날개가 홰를 치는 듯한 소리였다.
"큭, 설마?"
경악한 얼굴로 고개를 드는 일라이.
하늘에는 르갈론이 질풍에 휩싸인 채로 체플린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방향이 완전히 반대인 것을 봐서는 다른 지방을 초토화시키며 다닌 것 같았다.
운좋게 발각이 되지 않은 건지 일라이 일행은 무시하고 그냥 지나가는 르갈론.
일라이는 이를 갈며 말했다.
"저 씹새끼…언젠가 조져주지."
"분명 저 드래건은……."
죽을 당시의 기억이 되살아나는지 리비카가 떨기 시작했다.
그녀를 레피나가 붙잡아주며 말했다.
"됐어, 이제 잊어. 옛날 일일 뿐이야."
"네, 공주님……."
"하여간 시녀가 칠칠치 못해."
그렇게 말하면서 고삐를 대신 잡는레피나.
일라이는 두 여자를 살펴보다가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늦은 밤 시간대다.
이런 시간에는 잠에 자야 하지만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세지, 동료들 일은 안 됐다."
"그걸 각오하고 나온 거니까. 정말 유능한 녀석들이었는데."
"후우, 그러게……."
훌륭한 척후병들을 잃은 셈이다.
자기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아 일라이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돌아보니 르갈론이 철저하게 체플린을 박살내는 게 보였다.
몸에 휘감고 있던 질풍까지 날리며 파괴행위를 벌이고 있었다.
필시 정체불명의 인간들이 저항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체 저들은 누구지?"
레피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일라이는 쓰게 웃었다.
이렇게 어지러운 상황인데 밤하늘의 별은 밝았다.
느긋하게 건물 옥상에 누워서 바라보기에좋은 별들이었다.
"글쎄, 갈 곳을 잃은 용병들 아닐까?"
"용병 주제에저런 장비를?"
"일하던 곳에서 털었거나, 주변 국가의 무기고를 털었겠지."
"제길, 우리도 그래야 할 텐데."
비록 대답은 하지 않았어도 일라이는 속으로 동의했다.
아무리 우월한 화력을 지녔어도, 통상 화력이나 기술력은 상대에 뒤질 수 있다.
무엇보다 갈 길을 잃은 용병단이 마음 먹고 무기고를 턴다면, 그건 그것대로 대형사건이다.
그들이 대놓고 총구를 들이밀면 도망이나 엄폐해서 싸우는 것 말고는 승산이 없었다.
"부지런히 달리자고. 우리 몸 하나 쉴 곳이 필요하니까."
"일라이, 그 근처에 던전 있어?"
유계 근처에 던전이 있냐고 물어보는 유리엣.
일라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넬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히히, 좋다, 좋아. 그럼 다시 던전이나 털어보자!"
"하여간 지랄은……."
질린다는 듯 한숨을 쉬며 일라이는 다시 세지의 어깨를 잡았다.
이런 속도로 달리는데도 세지의 자세는 흐트러짐 없었다.
그녀가 얼마나 훌륭한 켄타우르스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라도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일라이는 희미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