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1화 〉재회, 탈출 (51/100)



〈 51화 〉재회, 탈출
무난히 던전에서 나온 일라이 일행.
그들을 반긴 건 허무한 표정으로 동료들과 함께 쓰러져 있는 말발굽녀였다.
일라이를 발견한 그녀는겨우 일어나더니 물었다.


"아, 아까 그 남자 뭐야?새로운 동료야?"
"아니, 세상에서 제일가는 씹새끼야."

평온한 어조로 대답하는 일라이.
말발굽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다시 만난 것이다.
그녀가 데려온 동료는 다 합해서 10명.
각자 맞추기라도 한 듯 붉은 옷에 원거리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아무튼 다시 만나서 반가워, 왕자님. 여긴 내가 데리고 온 동료들."
"믿을만한 거야?"
"물론. 그러니 아직까지 내가 살아 있지. 이들도 너희 여정에 함께하고 싶다는데?"
"호오……?"


제법 흥미로운 얘기였다.
지하도시에서만 살던 이들이 밖으로 나가겠다는 것이다.
일라이가 흥미롭게 바라봤다.
말발굽녀의 동료 중 한 명이 고글을 위로 올리며 말했다.


"그  그대로다. 우린 이제 이 좆같은 곳은 질렸어. 한탕 하려면 위가 낫지."
"하지만 위는 개판인데?"
"적어도 위는 친구를 사귀면 그대로 관계가 이어진다고 했다. 여기보단 나아."

신랄한 그의 말에 뒤에 있던 이들이 동의했다.

"맞아, 그게 낫지."
"우리가 어떻게 만난 건지 모르겠어."
"여기 오고 나서 6번이나 죽을 뻔했다고! 좆같은 가식쟁이들!"

각자 지하도시에 대한 불만이 상당한 것 같았다.
이 정도의 불만과 탈출의지라면 데려갈만 했다.
일라이가 팔짱을 낀 채로 고민하자 레피나가 다가왔다.

"설마 받아줄 건 아니지?"
"흠, 다들 모여 봐."

말발굽녀가 동료들과 얘기하게 내버려두고, 일라이는여자들을 모았다.
여자들이 모이자 일라이가 진지하게 말했다.

"다들 잘 들어. 사실 모험을 하면서 쓸 만한 패거리가 있으면 합류시키는 것도 어떨까 생각해봤어."
"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묻는 레피나.
그러나 레스레모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을 살피며 자하가 낮게 말했다.

"쪽수에서 밀리거나, 아까처럼 엄청난 놈을 잡으려면 수가 중요하지. 그 때문인 거야?"
"바로 그 말이야. 물론 조금 떨어져서 걷게 하거나 그럴 거야. 아무튼 우리에게 도움은 되는 녀석들이니까. 어때?"


이를 테면 조금 거리를 두되, 도움은 되는 이들이니 합류를 시키자는 것이었다.
사실  혼란기를 잠재우고, 국가를 세우려면 중요한 건 사람이다.
머릿수만 충당한다 해도 좋다.
일정한 숫자가 이뤄지면 사람은 강해지기 마련이다.
그걸 왕족인 일라이가 모를  없었다.

"하아, 마음은 알겠는데. 에휴, 됐다.  해 봐."

레피나 역시 이해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다.
무엇보다 저들은 지하도시 출신.
대부분이 범죄자들일 것이다.


"굽녀, 좋다고 해 줘. 사람이야 많으면 좋지."
"헤헷, 그렇구만!"
"그런데 너도 따라오는 거지?"
"음? 나는…그냥 여기 있고 싶은데."

부끄러운  얼굴을 붉히는 말발굽녀.
이참에 그녀를 데려가기 위해 일라이가 설득을 시작했다.

"이봐, 네 능력과 배려는 여기서 썩기에아까워. 지하도시의 안내인이 됐다면, 이제 지상의 안내인도 되어봐야지?"
"하지만 우리 종족에게 지상은 낯선 곳이 되었어."
"멈춰버린 과거 따위는 잊어. 앞으로가 중요한 거야. 비록 멸망해가는 세상이지만, 우리가 바로 잡을 있어."
"우리가?"
"나는 선택받은 용사거든. 그 누구라도  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지. 그리고 나를 따른다면, 위험천만한 여행을 하며 경험을 쌓고, 나라를 재건해서 중신이 될 기회도 있다고."


이를 테면 종족 자체의 신분상승이었다.
켄타우르스 종족은 12년 전쟁 이후로 영원한 패배자가 되어 각지로 흩어졌다.
말발굽녀처럼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는 것에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판세 자체를 뒤집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말발굽녀는 일라이의 은인이지 않는가.


"하하, 아무리 그래도 나는……."
"너라면 도움이 돼. 우선 말이 부족했는데, 이참에 내가 너한테 타도 되고. 그리고  완력이라면 충분히  도움이  거야."
"이것  고민되네."
"굽녀,  쿨하잖아. 이런 사소한 고민에 시간을 허비할 여자아니잖아?"
"후우…하여간.  나를 여자로 봐주다니. 좋아, 좋아. 그럼 나도 따르겠어."

피식 웃으며 동의하는 말발굽녀.
일라이는 손뼉을 치며좋아했다.
지금 상황에서 말발굽녀처럼 침착하고 유능한 여자는  도움이 된다.
말발굽녀 앞으로 가서 흡사 춤 신청을 하듯 일라이가 말했다.

"그럼 당신에게 타도 되겠습니까? 굽녀."
"후후, 그러시지요, 왕자님."


단번에 몸을 날려 말발굽녀 위에 올라타는 일라이.
일반적인 말보다 몸을  잘 가꾼 탓에 불편함이 없었다.
물건을 달아놓고, 기본 물품인 안장만 대충 해놓으면 될 것 같았다.
결국 멤버 성립이 이뤄지자 계획은 일사천리였다.


"우선 여길 벗어나자고!"
"그런 거라면 나를 따를 자가 없지. 안내하겠어!"


말발굽녀가 먼저 앞서갔다.
본래 일라이가 타던 말은 자하가 단독으로 타게 되었다.
그녀는 동물과 친숙하므로 매우 능숙한 승마술을 보였다.
정신없이 달리고 있을 때 일라이가 말발굽녀에게 물었다.
가장 궁금한 것을 물으려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슬슬 이름을 가르쳐 줘."
"아하, 이제 동료이기도 하니까. 내 이름은 '세지'. 지하도시에서 가장  같은 여자라구!"
"하하핫, 좋아. 이제 달려보자고, 세지!"
"응, 일라이!"

세지가 동료들이 따라올 있게 적당히 달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지하도시를 벗어나 햇빛을 만끽하고 싶었다.
유리를 통해서 이곳에도 햇빛이 들지만, 인공적인 느낌일 뿐이었다.
진짜 햇빛이 아닌 인공적인 조명을 받는 느낌.
그것이사람을 더욱 미치게 하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이제 이 어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여겼다.

"세지,  지하도시에 너 같은 여자들 많아?"
"음? 아, 수인들 말하는 거지? 뭐 그럭저럭."
"그래? 아쉽군."

기본적으로 수인들은 섹스와는 무관하다.
섹스를 수는 있겠지만 그 자체로 도덕적 관념의 혼란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일라이는 이 수인들을 가급적이면 상호존중관계로만 두려고 했다.
쉬운 말로 사업상 파트너!
애초에 수인들은 지닌 능력 자체가 인간 이상이니, 동료로 받아들인다면 큰 힘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모두 멈춰! 앞에 갱단이 있어!"

그때 먼저 앞서 나가던 척후병들이 처절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일라이는 바로 그리메를 빼들며 외쳤다.


"어디? 정면이야?"


일라이의 질문에 척후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질문을 받은 자가 막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바로 저……."

휘이익- 푸욱-!


흡사 발리스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거대한 쇠뇌가 척후병의 몸을 꿰뚫었다.
아무래도 갱단이 나타난 건 사실인 것 같았다.
일라이는 급히 진행을 멈췄다.
이대로  나아가서는 곤란했다.


"모두 멈춰! 갱단이 나타났어!"

딥다크 갱단의 등장에 동료들이 전부 멈춰섰다.
세지가 데리고 온 이들은 전부 무장을 완료하며 천천히 나아갔다.
 와중에도 척후병들이 전부 죽어버리고 말았다.

"어떻게 하지?"

유리엣이 고개를 살짝  채로 물었다.
이 어두운 곳에서도 그녀의 외모는 빛을 발하고 있었다.
주변 지형을 살피던 일라이가 숨을 골랐다.
지하도시의 어느 지점인지  수가 없다.
다만 주변 지형을 생각한다면 똑같이 원거리전으로 나가면 될 것 같았다.
일라이가 바로 말했다.

"지금 우리도 지형을 끼고응사한다. 우린이랑 유리엣은 마법으로, 레스는 사격대를 지휘해 줘!"
"그러지."


세지의 동료들이 레스의 지시를 받으며 각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때 정면으로 무언가가 스윽날아왔다.
바로 시한식 폭탄이었다.


"이런, 미친!"


일라이가 급히 달려가며 시한식 폭탄을 날아온 방향으로 던졌다.
그러자 전진하고 있던 갱단의 인원들이 폭발에 휘말리며 죽어버리고 말았다.
그것을 시작으로 치열한 시가전이 펼쳐졌다.
고요하던 곳이 어느새 목숨을 앗아가는 물건을 정신없이 날리는 싸움으로 변했다.

후투투투툭- 파파팟- 티틱- 콰앙-!


"응사해, 계속 응사해! 볼트나 총알을전부 소비해도 좋아!"

일라이가 지시를 내리며 세지와 함께 엄폐물에 숨었다.
그녀는 아쉬운 듯 말했다.

"하아, 활만 있었어도 나도 끼는 건데."
"너는  것이야! 무리하지 말아달라고."
"지금 그거 나 걱정하는 거지?"
"물론."


둘은 만담에 가까운 얘기를 나누며 다시 상황을 지켜봤다.
수는 확실히 갱단이 앞섰다.
그들은 부채꼴로 일라이 일행이 다가올 입구를 포위하고 계속해서 사격을 날리고 있었다.
그러나 원거리전을 지속하는 실력 면에서는 일라이 일행이 월등했다.
무려 드래건이나 되는유리엣이 이곳에 속했다는 게 갱단의 불행이었다.

"지하도시 전체가 무너지지 않게 조절하는 것도 힘들군."

유리엣은 태연하게 마법을 날리며 수십 명의 갱단 인원을 학살하고 있었다.
정확하면서도 결코 자기 위치를 발각되게 만들지 않는 마법.
그 세심한 실력이 뭇 마법사들의 귀감이 될 것 같았다.


"좋아, 슬슬 포위망이 약해진다!"
"마법소녀가 강림했다! 모두 심판을 받아라아아아아!"


우린이 분위기에 심취해서 미친 듯이 마법을 난사했다.
그녀는 유리엣처럼 드래건이 아니기에 무리하게 마법을 사용하면 지치기 마련이다.
일라이가 급히 그녀에게 다가가며 주의를 줬다.

"그만, 적당히 해. 그러다 쓰러져!"
"엑, 에으…미안. 헤헹."


우린의 머리를 쓸어주며 일라이는 다시 엄폐물에 숨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일라이 일행의 우세로 흘러갔다.
타이밍 잡고 찌르려면 딥다크 갱단은 그대로 허물어지고 말았다.
아무리 수가 많아도 기껏해야 지하도시 한 구석의 갱단일 뿐.
그들에겐 우월한 조직력도, 엄청난 기술도 없었다.

"모두 튀어! 씨발!"
"끄으하아아악!"

동료들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혼자서 도망가는 갱단의 리더가 보였다.
레스레모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머스켓을 장전했다.
그리고 절도있는 자세로 머스켓을 들며 그대로 갱단의 리더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사람 하나의 운명을 끝장내는 듯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도망가던 갱단의 리더가 허공에서 폴짝 뛰더니 쓰러지고 말았다.
머스켓에 제대로 관통당한 것이었다.
머리에 구멍이 난 채로 꿈틀거리는 갱단 리더의 시체가 보였다.
그때 세지의 동료들이 외쳤다.


"포위망이 더 약해졌어!"
"입구가 열렸다!"
"좋아, 전진할 수 있겠어."

일라이는 다시 세지에 올랐다.
그리고 능숙하게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외쳤다.


"모두 이대로 남아 있는 갱단놈들 다 족쳐! 그리고 탈출하는 거다!"
"좋았어!"


그렇게 일라이는무리를 이끌고 정면으로 돌격했다.
도망가느라 바쁜 갱단 인원들이 속절없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무난한 승리를 쟁취하며 일라이는 흐뭇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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