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던전 입성!
말발굽녀의 안내를 받으며긴 시간동안 여정을 함께 한 일라이 일행.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려고 궁리했지만, 돌아온 건 의외의 것이었다.
"여기가 던전이라고?"
"이 앞부터는 그래. 확실할 거야."
던전에 대해서 알아본 게 많은 일라이.
그는 자기 앞에 있는소용돌이 치는 문을 노려봤다.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것처럼 생긴 의문의 문.
이것이 바로 던전으로 향하는 문이었다.
던전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은 여러 가지 모습이다.
그 중 하나를 실제로 목도하자 경이롭기 그지없었다.
"들어가서 봐야겠지만 위압감이 그리 크지 않군."
유리엣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말의 의미가 궁금하기에 모두가 그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설명이 필요하다고 느낀 유리엣이 부연설명을 했다.
"나는 드래건이라서 던전의 수준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어. 예전에 비해 약해졌어도 감이라는 게 있거든."
"그럼 이 던전은 어떤데?"
호기심어린 얼굴로 묻는 우린.
그녀의 해맑은 미소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유리엣은 친절히 대답했다.
"층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거야. 층이 하나밖에 없지만, 구조는 조금 복잡할지도."
"괜찮아. 얻어가는 것만 있으면 됐어."
일라이가 자신 있게 웃었다.
유리엣은 드래건.
설마 이런 능력까지 있을 줄은 예상밖이었다.
일라이가 막 던전으로 향하려할 때, 말발굽녀가 손을 들었다.
"너흰 들어가 봐. 던전을 정복한다 해도 다시 나올 거지? 그렇다면 그때 맞춰서 동료들 모아서 올게."
"음? 분명 여기서 친구나 그런 건 없다고 하지 않았나?"
레스레모나가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지하도시를 돌아다니며 그녀의 공이 컸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일라이는 살아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발굽녀는 쿨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마치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듯.
"하하하, 친구는 없지만 돈이나 이해관계로 길들인 동료들은 제법 있지. 이번에는 다를 거야. 딥다크 갱단이 여기까지 온다면 내 도움이 필요할 걸?"
"같이 못 가는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고생해 줘!"
자하가 말발굽녀의 복부를 쓸며 말했다.
정이든 건 말발굽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혹여 여기서 다시 만난다면 그때 또 놀자고."
"그래, 부디 갱단에 들키지 말고. 그리고 너는 내 거니까…아니, 내 친구니까 몸 상하지 말고 다시 만나자."
걱정하는 얼굴로 일라이가 물었다.
말발굽녀는 짧게 한숨을 쉬다가 대답했다.
"내가 아는 동네가 몇 군데 있지. 까짓 거 돌아다니면서 쉬다가 동료들 모으면 돼. 너무 걱정하지 마"
"……부디 아무 일 없기를 빈다."
"너희도!"
웃으며 천천히 물러나는 말발굽녀.
일라이 일행은 아쉬운 얼굴로 그녀를 떠나보냈다.
지하도시의 지리는 누구보다 그녀가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언제 어디서 딥다크 갱단이 출몰할 지 모르기에, 사실 혼자 보내는 건 위험했다.
지켜보던 레피나가 고개를 저었다.
"생각보다 몸의 재생이 빠르더라. 우린 우리 걱정이나 하자. 저 사람은 여기 지리는 귀신이지만, 우리는 여기도, 던전도 모르잖아."
"맞아, 맞아!"
아넬이 힘껏 외치며 맞장구를 쳤다.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리비카가 앞으로 나섰다.
"그럼 던전 탐색이니 만큼 모두가 총력을 기울여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공주님을 지키도록 하죠."
"이제 가보자고."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일라이가 먼저 던전에 들어갔다.
그 뒤를 이어 여자들이 차례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직 상태가 양호한 엘브루트 세 여자나 전투에 도움이 안 되는 조세핀은 제외한 구성이었다.
던전에 들어선 일라이는 코 앞으로 손바람을 날렸다.
"뭔 유황 냄새가 이래? 드래건이라도 있어?"
"던전은 대부분 이래. 이 유황 자체가 던전의 위험도를 유지시켜 주지."
"별 이상한 사실이로군. 어디 보자……."
일라이 일행이 들어선 던전은 마치 협곡처럼 생겼다.
출입구가 가장 위에 있는지라 위에서 아래를내려다볼 수 있었다.
중앙으로 갈수록 벌어진 협곡과 원시적인 형태의 건물들이 망가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바깥으로 갈수록 밀림과 깊은 강물이 있어서 위험해 보였다.
말에서 내린 일라이 일행은 유심히 주변을 살폈다.
"뭔가 얻어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초조하게 말하는 일라이.
유리엣이 그의 팔을 살짝 안으며 말했다.
"걱정마, 초급 수준의 던전이니 잘 해낼 거야."
"크읍, 그, 그래……."
갑자기 유리엣이 팔을 안으며 가슴을 들이밀자 일라이는 당황했다.
생각해 보면 드래건과 섹스를 하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허나 지금 중요한 건 던전이었다.
이곳을 탐험하며 최대한의 수확을 얻어야 했다.
그만큼 여러 몬스터들이 있어 위험하지만, 그건 각오하고 온 처지였다.
"흠, 인원을 나눌 필요가 있겠는 걸."
턱을 괴던 일라이가 말했다.
비록 1층 뿐이었지만, 이 던전은 제법 광활했다.
지리도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았다.
멍청하게 밀림 깊숙히 들어가지만 않는다면.
"인원을 나누면 위험하지 않겠엉?"
우린이 불안한 듯 물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해볼만한 전략이었다.
"아니, 어차피 지금 우리는 인원이 좀 많은 셈이야. 이렇게 넓은 곳을 하나로 돌아다니는 것보다, 둘로 나눠 돌아다니는 게 더 빨라. 무엇보다 전초기지로 삼을 만한 곳을 얼른 찾고 싶지 않아?"
"그렇긴 하지만……."
일라이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라서 우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일라이는 여자들을 둘러봤다.
딱히 밸런스를 생각할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아예 배제하는 것도 무모하다.
침음하던 일라이가 말했다.
"나랑 레스, 아넬, 우린이 한 조가 될 거다. 남은 사람은 나머지 조에 편성!"
일라이와 레스레모나, 아넬, 우린이 한 조.
그리고 레피나와 리비카, 자하, 유리엣이 한 조가 되었다.
마법이나 원거리, 근거리 능력의 밸런스를 맞춘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일라이 조에서는 우린이, 레피나 조에서는 유리엣이 올라운드에 가까운 활약을 할 수 있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칫, 꼭 이렇게 나눠야 해?"
레피나가 까다로운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일라이가 고개를저었다.
"마음에 안 들어?"
"됐어, 단세포 시키."
"뭣……?"
레피나는 일라이를 가볍게 놀리며 조원들과 함께 떠났다.
던전의 중앙 부근에 있는 협곡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나눠 탐색을 진행하는 것이다.
머리를 긁적이며 일라이가 말했다.
"우리도 가자. 명심해야 할 건 최대한 다치지 않게 싸울 것, 보물이나 예언 같은 얻을 것이 있다면 집중할 것, 우리가 쉴 수 있는 곳이 있는 것 같으면 바로 말할 것."
"알겠다."
"알았어!"
"당연하징!"
일라이 일행은 그대로 던전의서쪽으로 향했다.
가는 길은 삼림이 우거진 곳처럼 완만했다.
오히려 화산 지대나 황무지가 없는 것에감사했다.
위에서 내려다 보던 것과는 다르게 이곳은 주변에 위협이 될 만한 게 없었다.
한참 가고 있을 때 우린이 짓궂게 웃으며 팔꿈치로 일라이의 옆구리를 찔렀다.
"히힝, 그나저나 왜 용녀랑 같이하지 않았어? 흐흐흐."
"음? 그야 밸런스를 두고 보면 그쪽에 가는 게 맞으니까."
"그래?"
"레피나는 힐러지만 보호마법 같은 게 없지. 그 빈틈까지 보완하려고 유리엣을 붙인 거야."
"후후, 우리 왕자님은 아무 것도 몰라."
"뭐가, 인마."
일라이가 노려보자 우린은 능글맞게 거리를 두며 피했다.
그나마 긴장이 조금 풀어질 즈음, 걸어가던 레스레모나가 무언가를 밟고 멈춰 섰다.
함정인가 싶어 아넬이 물었다.
"왜 그래? 함정이야?"
"아니. 누군가의…유골이군."
레스가 어두운 얼굴로 발을 치웠다.
땅바닥에는 굴러다닌지 오래 된 것 같은 유골이 박혀 있었다.
형태를 보아 하니 인간 같았다.
아마 운좋게 이곳을 찾아서 들어온 인간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말로가 어땠을지는 굳이 알고 싶지않았다.
"계속 걷자."
밀림 지대에 입성한 일라이 일행.
일라이는 짐에서 붕대를 꺼내며 각자에게 나눠줬다.
"모두 붕대를 목이나 팔에 감아."
"음? 왜?"
우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레스레모나가 대신 대답했다.
"독충 때문이다. 밀림에는 총 20가지의 독충들이 넘쳐나지. 하나만 쏘여도 좋을 게 없어."
레스레모나의 대답이 마음에 드는지 일라이가 흐뭇하게 웃었다.
마른 침을 삼키며 목과 팔에 붕대를 감는 우린.
다른 건 몰라도 고작 벌레에게 쏘여서 죽는 건 피하고 싶었다.
아넬은 몽마였기에 거부했다.
"나는 바로 아니까 걱정마셔."
"흠, 좋아. 다들 잘 감았지? 조심하자고."
그렇게 말하며 일라이가자신있게 앞으로 나섰다.
그러다가 땅바닥에 있는 나뭇가지를 밟았다.
틱-
"뭐야, 나뭇가지잖아?"
나뭇가지를 밟으며 느긋하게 웃을 때였다.
난데없이 양쪽에 있는 수풀에서 토템으로 보이는 것이 일어나더니 입을 크게 벌렸다.
눈, 코, 입이 전부 과장되게 큰 토템의 입에서 거대한 작살이 나왔다.
철컥- 츄츄츗-!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
일라이는 빠르게 상체를 숙이며 작살 하나를 피하려 했다.
하지만 나머지 하나는?
그런 의문과 함께 그림자 하나가 엄습했다.
[오블론 제식 - 나팔잎]
단검 하나를 쥔 채로 빠르게 허공에서 도는 레스레모나.
그렇게 돌면서 다가오는 작살 하나를 튕겨냈다.
위험했던 순간을 벗어나는 일라이.
"후우, 제기랄."
"일라이, 바보야? 조심하자고 하면서 먼저 당하면 어쩌자는 건데!"
아넬이 걱정과 분노로 외쳤다.
머리를 긁적이며 일라이는 어깨를 으쓱였다.
설마 전혀 의외의 곳에 함정이 설치될 줄이야.
레스레모나는 자신이 쳐낸 작살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리고 신음을 흘렸다.
"창 끝에 독이 발려 있군."
"독? 진짜 본격적이네!"
두 눈을 빛내는 우린.
일라이는 혀를 차며 주변을 둘러봤다.
한 시라도 방심하면 바로 목숨이 날아갈 수 있다.
큰 것을 얻으려면 그만한 대가는 반드시 동반된다.
그걸 모를 리 없으므로 일라이는 침착해지기로 했다.
심리적으로 무너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후우, 좋아. 집중하자, 집중. 우선 저 강물을 따라 가보자."
"좋다."
단검을 거둔 레스레모나가 머스켓을 꺼내며대답했다.
아넬 역시 일라이의 어깨에 제대로 자세를 잡고는 주변을 경계했다.
우린은 레스레모나의 뒤를 보호하듯 바짝 붙어 서서 변신할 준비를 했다.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건 거의 처음이지만, 다들 호흡이 잘 맞는 모습이었다.
"얼마나 대단한지 보자고, 던전!"
생애 첫 던전 탐험을 시작하는 일라이.
그는 흥분에 가슴이 터질듯 두근거렸다.
과연 이곳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일이 벌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