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9화 〉각각의 사정 (39/100)



〈 39화 〉각각의 사정

동부전선이라 불리는 '비르가르트' 지방.
이곳은 아침에는 사막의 열사가, 저녁에는 설원의 혹한이 벌어지는 기이한 곳이었다.
기후만 해도 재앙인데, 출현하는 몬스터들은 그 격이 달랐다.
그나마 제국과 왕국에서 보낸 베테랑들에 의해 균형이 맞춰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세상에 멸망이 찾아오며 무너지고 말았다.

"헉헉, 아가씨, 더 빨리!"
"더  달…꺄악!"


야성적인 복장을  여자와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달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자기 발에 걸려 넘어졌다.
귀족가에서 하인들의 수발을 들며 생활하던 여자다.
이런 거친 곳에서 달리는 게 용이할없다.
더군다나 지금은 낮.
가만히 있기만 해도열사병에 걸릴 수준이었다.


"아가씨!"
"키히에에엑, 도망가지마라."

나무가 우거진 그늘 저편에서 불길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성적인 복장의 여자가 건틀릿을 끼고 급히 달려왔다.
그늘에서 나온 건 직립한 도마뱀을 닮은 이들이었다.
한때 유사인종이라 불렸고, 정식 명칭은 '리자드리스'라 불리는 인간형 몬스터였다.
그들은 수컷은 푸른빛의 비늘을, 암컷은 주황빛의 비늘을 타고나는 특이한 종족이었다.
현재 여자의 시야에 보이는 건 온통 수컷들이었다.

"키히, 운이 좋아."
"인간 암컷이다, 인간 암컷……!"
"엉덩이가 크군. 박음직하겠어."


 혀와 가랑이사이에 돋아난 포경되지 않은 육봉을 껄떡거리는 리자드리스들.
족히 30마리는  법한 이들을 보며 두 여자는 겁에 질렸다.
한 마리만 하더라도 민첩하며 인간이상의 완력을 지닌 종족이다.
그런 것들이 무려 30마리라니!

"아, 아가씨!"
"히익, '필리아'! 사, 살려줘, 제발 살려줘……!"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는 여자.
필리아라 불린 여자는 건틀릿을 낀 손에 힘을 주며 리자드리스들에게 달려들었다.
역부족이라는 걸 알면서 주인을 지키려는 충심이 빛났다.
그러나 충심이 빛난다고 살아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히헤하!"


특이한 기합과 함께 리자드리스들이 양옆으로 비켜섰다.
필리아가 허공을 주먹으로 가르며 멈춰설 때, 사방에서 작살들이 튀어나왔다.

치킹치킹- 스파파파파팟- 푸츅-!

"끄윽, 꺄하악!"

온몸이 벌집이 된 여자가 부들부들 떨다가 즉사했다.
흔히 어류를 잡는 데 쓰이는 작살을 좀 더 크게 개조한형식이었다.
리자드리스들의 주력 무기중 하나이기도 했다.
필리아가 죽자 혼자 남은 여자는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흘렸다.
이미 얼굴은 사색이 되고 있었다.


"아, 안 돼, 히익, 제발……."
"얘들아, 따먹고 죽여라!"
"키헤헤헤헤헤!"


리자드리스들이 혀를 낼름거리며 여자를 감쌌다.
그리고 옷을 찢어발기며 속옷까지 뜯어냈다.
발버둥치던 여자가 외쳤다.


"아아악, 안 돼, 싫어, 싫어어어어!"
"흐히헤헤헤, 닥쳐!"

여자의 턱을 가격하며 리자드리스가 혀를 내밀었다.
5마리의 리자드리스들이 여자의 전신을 핥으며 육봉을 발기시켰다.
10cm 남짓하던 육봉이 순식간에 40cm 까지 커졌다.
먼저 여자의가랑이를 벌리고 강제로 육봉을 쑤셔넣었다.
잘 들어가지 않았지만 억지로 구멍을 벌리니 못 들어갈 건 아니었다.

"흐힉, 아파, 흐까아아악, 아파아아아아!"


눈물을 흘리며 발버둥치는 여자.
리자드리스들은 신나게 여자를 능욕하며 몸에 상처를 입히기 시작했다.
C컵 가슴을 쥐어짜다가 손톱으로 찢어발기기도 했고, 입에 강제로 육봉을 넣기 위해 아래턱을 빼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죽음보다 더한 광경이 펼쳐질 때였다.


"전군 조준, 사격."

미성의 남자 목소리가 허공에 울렸다.
그와 동시에 하늘을 찢을 듯한 총성이 울려퍼졌다.


타타탕- 타탕- 타타타탕-퓨퓨퓨퓻-!

순식간에 총알들이 날아와 리자드리스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무방비하게 여자를 능욕하던 리자드리스들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픽픽 쓰러졌다.
무엇보다 능욕당하고 있던 여자까지 말려들어 죽어버리고 만 것이다.
압도적인 화력이 펼쳐졌고, 리자드리스 중 생존자는 아무도 없었다.
사태가 진압되자 마침내 총성의 주인공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녹색 가죽 재킷에 어깨 한쪽으로 머플러를 늘어트리고, 딱 붙는 승마바지를 입은 남자들이었다.
리더로 보이는 푸른머리칼의 남자가 차갑게 웃었다.

"아직도 도망가지 않은 자들이 있었나? 멍청하군."
"너무욕하지 말라고! 그들 역시 약하다는 죄밖에 없어."

그때 건너편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고개를 들자, 새하얀 복면을 쓰고 역시 새하얀 수의를 입은 이들이 등장했다.
가슴에는 주홍색 십자가를 새기고, 저마다 십자창이나 휴대용 대포를 소지한 이들이었다.
푸른머리칼의 남자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가리는 자……."
"우리를 알아주니 기쁘군."
"헛소리하지 마십쇼. 동부전선의 전우들을 몰라볼 리 없잖습니까?"
"뭐, 이제는 아무래도 좋은 얘기지만 말이지!"

가리는 자들의 리더인 삭발을 한 흑인 남성이 싱긋 웃었다.
음산한 종교집단과는 어울리지 않는 인간 같았다.
그러나 그의 진가를 아는 남자는 쉽사리 흑인 남성을 건드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둘은 전선에서 전우일지라도, 애초에 뿌리부터가 달랐다.
가리는 자는 왕국 소속, 녹색 총사대는 제국 소속이었다.
물론 어디서 왔든 동부전선에서 조금 굴렀다 치면 결국  식구나 다름없었다.
자신들이 어디서 왔고, 어디에 충성을 해야 하는지 모두 잊게 되는 곳이 동부전선이었다.

"'브리슬', 아직  가신 겁니까?"

브리슬이라 불린 흑인 남성이 새하얀 이를 빛내며 대답했다.


"이제 슬슬 가려고. 그나저나 '루민'. 너는 어때? 총사대들을 이끌고 뭘 하는 거지?"
"뒷정리인 셈이죠. 세상이 멸망하고, 동부전선은 무너졌습니다. 이곳에 남아서 개죽음당하고 싶지는 않군요."
"호오, 현명해. 마침 우리도 같은 생각을 했지. 그럼 앞으로 뭘할 건데?"

동부전선에 살아남은 이들은 흔히전쟁의 대가들이라 불린다.
어떻게 살아남을지, 어떻게 상대방의 약점을 찌를지, 어떤 자를 죽여야 할지 전부 아는 자들이다.
이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마경이라 불리던 동부전선이 균형이 맞춰질 수 있었던 것이다.

"글쎄요, 먼저 떠나버린 전우들과 다를 것 없습니다. 용병이 되거나, 떠돌며 목숨이라도 연명하겠죠."
"흐하하하, 이참에 우리랑 함께 하는 게 어때? 광신도라고 욕먹지만 나름 복지는 빵빵하다고?"


브리슬의 제안에 루민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미 생각해둔 게 있기 때문이다.


"정중히 사양하죠.전우라고는 하나 이념이 다르면 섞일 수 없는 법입니다."
"하, 군인이 너무 정치적이어도 좋지 않아. 좋아, 그럼 여기서 이별이군."


아쉬운 듯 브리슬이 말했다.
루민은 특제 머스켓을 거두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으로 만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동감이다!"


동부전선의 한 축을 담당하던 이들이 그렇게 헤어졌다.
앞으로 사태가 어찌 될 지 알 수 없는 상황.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살아남는다!
오직 이것만이 멸망이 도래한 세계에서 가지고 있어야 할 마음가짐이었다.





***



"하여간 재주도 좋아. 뭐만 하면 여자들이 줄줄이……."
"루밀다는 숲에있을  알게 된 거거든?"
"어머나, 그럼 그때부터 숨겨왔던 거야? 역겨워!"
"시끄럿!"

레피나가 빈정거리자 일라이는 짧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가 한숨을 쉬며 주변을 둘러봤다.
저택에서 지낸 지 하루가 넘어 간다.
그나마 정신을 차린 루밀다는 자신이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곳은 일라이말고는 전부 여자였기 때문이다.


'남자로 득시글거리는 곳에만 있다가 이런 곳에 있으니…적응이 안 돼.'

한숨을 쉬며 루밀다는 의자에 앉았다.
그때 레스레모나가 다가왔다.
촛불을 등진 그녀의 모습은 어딘가 무서워 보였다.
자기도 모르게 흠칫 놀라는 루밀다.
그때 레스레모나가 무언가를 건넸다.


"휴대용 속옷이다."
"아……."
"속옷을  입고 있더군."
"그, 원래 그렇게 살아서."
"그래도 입도록. 건강을 위해서."

비록 피부색은 달라도 같은 엘프나 마찬가지인  여자.
레피나까지 포함하면 일라이 일행에는 무려 3명의 엘프 여성이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레스레모나는 알게 모르게 레피나나 루밀다를 챙기려 했다.
그때 리비카가 홍차를 달여오며 일라이 잔에 따랐다.


"홍차입니다."
"아, 고마워."
"그나저나…저희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요?"

루밀다가 잡힌 노예상을 따라왔다.
그 때문에 예정 루트에서 조금 어긋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일라이는 신경 쓰지 않는지 홍차의 향을 맡더니 한 모금 음미했다.


"흠…원래의 계획과 다르지 않아. 던전을 찾는다. 필요하면 전초기지로 삼고, 그게 아니라도 보물이나 금품을 얻어서 생계에 보탬이 되게 할 거야."
"기사단 인원은 어떠신가요?"

리비카의 질문에 일라이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는 카드를 통해서 여자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계약하거나 카드에 잠들어 있는 여자들의 상태는 양호했다.
게다가 의외로 오래 버티는 건지 엘브루트 영지의  여자도 무사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일라이가 다시 홍차를 들이켰다.

"전투인원들을 속속들이 충원하고 있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비전투원이라 하더라도 기술이 좋거나, 사람을 다루는 것에 능숙하지. 그거면 됐어."
"음, 앞으로 얼마나  자하 님 같은 사람을 만날지……."

리비카가 염려하는 건 따로 있었다.
세상은 멸망하고,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런 와중에 우린이나 자하 같은도움되는 이들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잘 봐줘도 희박한 가능성이었다.


"걱정마, 우리가 모르는 은둔고수들도 많다고 하잖아? 거기에 걸어봐야지."
"확정된 것이 아닌 불확정성의 운을 믿어야 한다니. 불안하군요."
"그런 세상이니까. 거기서 최대한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변수를 바로잡자고."
"네, 왕자님."


리비카의 대답을 들으며 일라이는 레피나의 스테이터스를 확인하려 했다.


[레피나의 스테이터스를 확인합니다.]
[이름 - 레피나 브류스터드]
[근력: C 체력: A- 반사신경: D+ 지능: A 정신력: A 욕정: B]
[왕족의 프라이드(A), 어설픈 마음(A+), 시련의 성녀(A), 현모양처(C)]


이어서 아넬의 스테이터스까지 확인했다.


[아넬의 스테이터스를 확인합니다.]
[이름 - 아넬 프시케]
[근력: B- 체력: B 반사신경: C 지능: A+ 정신력: A+ 욕정: S-]
[몽마력(A), 과거의 흑마술(B), 침대위 지배자(D), 미식가(A-)]


몽마다운 능력치를 가지고 있는 아넬.
특히 미식가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정액이나 같은꺼려지는 것들까지 먹으며 감별할  있는 능력이었다.
그에 반해 레피나는 의외의 것들을 지니고 있었다.
시련의 성녀는 어려운 상황일수록 배려심과 헌신이 깊어지는 능력이었다.
주로 역사에 성녀나 성모로 이름을 남겼던 이들이 지니는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 현모양처는 감정표현에 서툰 레피나에게는 의외의 능력이었다.


'그렇군, 역시 여자라는 건 재미있어…….'

결국 섹스를 하고 계약만 하게 되면 속내까지는 아니더라도 근처까지는 알아볼 수 있다.
저마다 가진 사정이나 특성을 알아내는 건 정말 재미있는 일이었다.
일라이의 취향 탓에 여자들 한정이지만, 그럼에도 유쾌한 능력이었다.
남은 홍차를 다 마시며 일라이는 창밖을 봤다.


"오늘 불침번은 내가 서지."
"아니, 이번엔 내가……."


평소보다 더 지쳐보이는 레스레모나가 다가왔다.
그녀는 알게 모르게 일행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었다.
일라이가 미처 하지 못하는 일이나, 주변을 탐색하고 정찰하는 것 역시 그녀의 몫이었다.
분명 피로가 많이 쌓였을 것이다.


"레스, 카드에 들어가서 좀 쉴래?"
"하지만……."
"항상 열심히 일만 한다 해서 좋은 건 아니야. 스스로에게 잠깐이라도 관대해져 봐."

일라이의 말에 레스레모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카드로 들여보내며 일라이는 턱을 괴었다.
그러다가 바로 자하를 불러들였다.

"읏챠하, 드디어 나왔다!"
"알겠지만 레스가 쉬고 있어. 빈자리를부탁해."
"히힛, 무론이지! 맡겨달라구!"

언제나 기운 넘치는 자하.
그녀는 루밀다에게 인사를 건네며 바로 친해지려는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일라이는 이어서 우린을 소환했다.
기지개를 켜던 우린에게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마법 준비는 항상 해놔."
"물론이지용, 우흐흐!"

수상한 웃음을 지으며 우린은 자하에게 걸어갔다.
여자들끼리 제법 친해지는 것 같아 다행이라 여겼다.
이제 이곳을 언제 벗어날지 고민하며 일라이는 잠시 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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