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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화 〉운명을 바꾸는 카드「자기개변」 (29/100)



〈 29화 〉운명을 바꾸는 카드「자기개변」

순식간에 고블린들에게 포위당한 일라이 일행은 당황했다.
처음 눈에만 보이던 10마리의 고블린이 어느새 20마리, 30마리로 늘어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곳이 황폐화된 이후로 마음 먹고 옮겨온 처지 같았다.
고블린들은 서로 시끄럽게 대화를 나눴다.


"와하아! 우리만으로 잡을 수 있어!"
"키히이, 시끄러워! 당장 그를 부른다!"
"내가 가지, 내가 가장 빨라아!"


고블린 하나가 어딘가로 달리기 시작했다.
일라이는 혀를 차더니 지시했다.

"지난 번 대와이번 진형으로 싸운다. 유리엣?"
"응."
"중앙에서 중심을 잡아줘."
"어렵지 않지! 예전에 비해 어설픈 실력이지만 최대한 도움이 되려고 할게!"

힘차게대답하며 유리엣은 마나를 활성화시켰다.
그 틈에 고블린들이 밀려들어왔다.
정면에서 뿐만 아니라, 어느새 경계탑 위에까지 올라가서 역으로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때 우린이 한 바퀴 돌며 마법소녀로 변했다.

"흐랴앗! 사랑과 정열의 이름으로 용서치 않겠다! 마법소녀 변신!"

이제는 대놓고 닭살돋는 멘트를 내뿜는 우린.
그러거나 말거나 전투는 시작되었다.
일라이는 정면으로 달려가더니 그리메를 크게 휘둘렀다.

"인간 따위…크칵!"
"인간을 따위로 부르지 마라, 고블린 따위가……."


고블린 하나의 머리를 절반으로 베어버리며 일라이는 자세를 잡았다.
양쪽에서 고블린이 하나씩 나타나더니 무섭게 웃으며 쇄도하기 시작했다.
일라이는기술조차 쓸 필요가 없다 여기며 왼손을 등 뒤에 붙였다.
그리고 느긋하게 외쳤다.


"드루와, 드루와!"
"키이헥!"
"죽이쟈아!"


고블린 둘이서 날카롭게 벼린 단검을 든 채로 달려왔다.
대놓고 한숨을 쉬며 일라이가 웃었다.
이 정도는 연계공격이라 하기에도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타타탓- 화악-!


고블린들이 엇박자로 덤벼들었다.
이것이 의외로 일라이에게 있어 편하게 대처하게 해주었다.

탱- 카앙-!


단검을 힘껏 쳐내며 일라이가 옆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자 때맞춰 허공으로 떠오른 고블린이 돌려차기를 시도했다.
일라이는 단순하게 상체를 숙이는 것으로 피하더니 그리메를 들었다.
그리고 막 착지하려는 고블린의 목에 그리메를 박아넣었다.

쿠그극- 푸확-!

"께헥……!"
"먼저 하나."


함께 협공해오던 고블린이 이를 갈며 일라이에게 단검을 던졌다.
고블린의 목에 그리메를 박은 채로 손에서 놓은 일라이가 옆으로 굴러 피했다.
그러다가 달려오던 고블린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들어올렸다.
 다음 있는 힘껏 땅바닥에 메다 꽂았다.
온 힘을 다한 기술이라 고블린의 뒤통수가 단숨에 깨졌다.

파앙- 쩌적-!


손쉽게  고블린을 제압하며 일라이는 그리메를 빼들었다.
그때 마법소녀로 변신을 완료한 우린이 허공에 날아다니며 마법을 난사했다.


"하앗, 사랑의 러브러브 레이저! 그리고 슈퍼프라임 히프어택!"


갑자기 고블린들에게엉덩이를 들이밀며 그대로 몸을 내던지는 우린.
예상치 못한 공격, 그것도 광역기에 휘말리며 고블린들이 쓰러져 나가기 시작했다.
위에서 달려들던 고블린들은 자하가 어렵지 않게 제압하고 있었다.
포유족인 그녀는 무려 인간의 형태로 무난하게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덤벼,  화끈하게 덤비라고! 이 개새끼들아, 좆 달고 태어나서 겨우 이 정도야? 앙!"

흥분으로 인해 몸은 뜨겁고 숨소리는 거칠어져만 가는 자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하는 정신없이 고블린들을 두드려 패고 있었다.
공격자가 고블린이 아니라 자하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녀의 일방적인 학살에 고블린들은 허물어지며 오히려 다시 위로 올라가도망가려 했다.
그때 레스레모나가 총구를 겨누며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탕탕-!

도망가려는 고블린을 사격술과정령으로 제압하는 레스레모나.
그때 측면에서 고블린들이 덤벼들었다.

"기회다!"
"하하, 빈틈!"


일라이 혼자서 전방을 맡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빈틈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유리엣이 전체적인 조율을 행하고 있었다.
미리 알았다는 듯 그녀는 자기 일행의 주변을 얼음장벽을 치며 말했다.

"본능대로 사는  몬스터의 숙명이지. 하지만 여기까지해."
"크으, 얼음의 벽? 그냥 뚫어!"


경고에도 불구하고 고블린들은 어떻게든 파상공세를 이어나가려 했다.
그때 고블린들이 건드리던 얼음장벽이 천천히 떨리더니 순식간에 성인 남성만한 가시가 여기저기 솟아나기 시작했다.
 가시에 관통당한 채로 고블린들이 죽어버렸다.
매우 허무한 최후였지만 유리엣의 마법 수준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마법사다, 마법사!"
"정령사도 있다! 망할 엘프!"
"이건 인간이 아니다! 검술이…끄아학!"


고블린 하나의 발을 걸어서 덜미를 잡는 일라이.
그는 그 상태로 고블린의 목을 그리메로 그어버렸다.
기분나쁜 소리와 함께 피가 바닥에 뿌려졌다.
허나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일라이는 빠르게 앞으로 달려나가며 고블린 한 마리를 붙잡았다.


"끄에악, 놔, 놔아!"
"닥쳐!"


쓰칵- 쩌럭-!

"케에헤에에엑!"

고블린의 다리 한쪽을 자르며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일라이.
그는 그리메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고블린의 다른 다리를 지그시 짓밟았다.

"이 다리까지 잃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있어."
"윽, 으에윽, 살려줘어……."
"내가 묻는 것에 대답만 해라. 그럼 살려주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에 고블린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많던 고블린들이경계탑 안과 근처에서 싸늘한 시체로 변해가는  무척 낯익어 보였다.
마른 입술을 적시며 일라이가 물었다.

"너흰 이게 전부냐?"
"으, 응!"
"거짓말 마. 아까 누구 데려온다고 하지 않았나?"
"그게…그건 바로……."


일부러 그러는 건지 뜸을 들이는 고블린.
일라이는 그리메를 들어 금방이라도 다리를 자를 시늉을 했다.
그러자 고블린이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제발! 안 된다, 우리는 그저 안내를 받았을뿐이야!"
"안내라니?"

몬스터들 사이에도 안내원이 있단 말인가?
그게 아니라면 이 얘기는 무척 우습게 들리고 있었다.
안내를 받아 여기까지 왔다니.
일라이의 질문에 고블린이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진짜다, 진짜! 우린 안내를 받아서 왔다. 그러니까 죄없어!"
"여기서 사람들을 죽였겠지."
"우리의 의지가 아니다! 살려면 그래야 한다고 했다."
"누가?"
"그가……."

대체 그라는 자는 누구일까?
일라이는 한숨을 쉬며 뒤를 돌아봤다.
대충 정리가 끝난 모습이었다.

"걔가 뭐래? 나도 고문 좀 해보자."


자하가 다가오며 히죽 웃었다.
고블린들의 피로 얼룩진 그녀의 모습은 뇌세적이면서도 살벌했다.

"지금 정보를 캐내고 있어."
"으흐흑, 그가 온다…그가 올 거야!"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발작을 해대는 고블린.
이걸 연기라 생각하며 일라이가 그리메를 들었다.
그리고 날카롭게 노려봤다.

"쇼하지 말고 말해. 그가 누구야?"
"어억, 왔다, 왔어! 그가 왔어…이제 우린 모두 다…꺼윽, 끅꺽……!"

숨이 넘어갈 것처럼 안색이 창백해진 고블린.
일라이는 그 고블린의 목에 칼을 박아버리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오기는 뭐가 온단 말인가?

"지랄."

결국 오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때 누군가를 부르러 갔던 고블린이 막 돌아온 모습이 보였다.
신기하게도 그 고블린은 두 눈을 하얗게 뒤집은 채로 느릿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음? 겁대가리가 없군. 누구 데려온다더니 혼자서 온 거냐?"


일라이가 차갑게 웃으며 마주 걸어왔다.
눈이 뒤집힌 고블린은 술에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다가 갑자기 일라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둘의 거리는 3m.
조금만 더 걷는다면 손이 닿을 찰나였다.


"일라이, 피해!"
"조심해, 무조건피해!"

그때 레스레모나와 유리엣의 경고가 동시에 들렸다.
일라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옆으로 몸을 날렸다.
소리를 듣기 보다 몸이 본능적으로 위기를 알아챈 셈이었다.


[릴리스의 심판]


고블린이 뻗은 손에서 검푸른 에너지가 방출되더니 사방으로 퍼졌다.
일라이의 옷깃을 살짝 스친 채로  에너지는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소멸시키고 사라졌다.
급히 일어나던 일라이가 자신이 있던 곳을 쳐다봤다.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곳이 무의 공간이 되고 말았다.
 세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새까만 영역이 자리잡고 있었다.


"미친…이게 뭐야?"
"우으흐흐흐, 운이 좋구나. 실패한 피조물 주제에……."

그때 고블린이 어설프긴 해도 인간언어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마치 고블린 본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대신해서 말하는 것 같았다.
일라이는 긴장하며 물었다.


"너 대체 뭐야? 연기하는 거냐?"
"설마 여기서 너 같은 희귀한 인간을 만날 줄이야. 고작 하수인을 부리는 거지만, 여기서 쓰러져줘야겠다. 내 여흥을…위해!"

이제 침까지 흘리는 고블린.
고블린은 기분 나쁠 정도로 웃고 있다가 일라이를 향해 무섭게 다가왔다.
 속도는 초음속에 가까웠다.


타타타탓- 쉬힉- 카카칵-!

"씨발……!"

본능적으로 그리메를 들어 막으려던 일라이.
그는 얼굴이 일그러지며 정면을 노려봤다.
고블린이 웃는 얼굴 그대로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흉측한 노란 상어이빨이 일라이를 향해 번뜩였다.
그리메를 씹어 없애려는 것처럼 거칠게 물고 놔주지를 않았다.

"꺼져!"


무릎을 들어 고블린을 가격하는 일라이.
잠시 들썩이며 고블린은 뒤로 물러나더니 쓰러졌다.
하지만 바로 벌떡 일어나며 혀를 길게 내밀었다.
그리고 입술은 물론이고 자기 코까지 핥으며 다시 기분나쁘게 웃었다.

"우읏히히히…감이 좋구나. 실패한 피조물 주제에, 정말 감이 좋아."
"너 뭐냐니까? 네가 고블린이 아니라는 건 알겠다. 뭐하는 새끼야?"
"말해도 모를 것이다, 실패한 피조물아. 너흰 전부 사라져야 했어. 그래, 예언대로……."
"지랄하고 있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우리가 사라져? 좆까지마!"

일라이가 반항하듯 외쳤다.
지켜보던 여자들은 진지하게 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일라이의 싸움에 함부로 끼어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흐흐흐, 후회할 것이다. 실패한 피조물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자살해라, 네가 아끼는 이들을 범하고 죽여라, 그리고 자살해라. 으히힛, 자살해라자살해라자살해라자살해라자살해라자살해라자살해라자살해라자살해라자살해라자살해라!"

머릿속이 고장난 것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는 고블린.
침착하려 애쓰던 일라이는 그리메를 굳게 쥐더니 그대로 돌격했다.
더 이상 지켜볼 수는 없었다.
상대가 뭐든 그게인간을 초월한 존재라는 느낌은 확연히 들었다.

"아가리 닥치고 뒈져!"

타앗- 바바바밧- 쉬힉-!


고블린을 향해 있는 힘껏 그리메를 휘두르는 일라이.
그리고 그리메는 언제나 그렇듯 실망시키지 않고 고블린의 목을 절단했다.
깔끔하게 고블린을 해치웠다고 느낄 무렵이었다.

"이, 일라이! 안 돼애!"

레피나의 처절한 비명.
일라이는 무언가 굵은 것이 자신의 가슴을 관통하는 것을 느꼈다.
뜨겁게 뛰고 있던 심장이 그 상태로 찢어발겨지는  같았다.
고블린의 잘린 목이 허공을 날아다닐 때, 일라이는 피를 한 웅큼 토해내며 한쪽 눈을 질끈 감았다.

"으윽, 어흐커헙, 크루윽……!"
"일라이, 일라이!"

고블린이 죽는 순간에 사악한 능력을 사용해서 일라이의 가슴을 뚫어버린 것이다.
죽음이 임박한다 여기며 일라이는 쓰게 웃었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도 못했으니 이제 죽는 건가?


'아, 죽기 싫은데. 마지막으로…리비카를 보고 싶어.'


순식간에 당한 셈이라 일라이는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레피나가 바로치유하려 했지만 유리엣이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말도 안 돼…죽었어."
"뭐? 헛소리 하지 마!"
"심장이 뛰지 않아."

급히 일라이의 가슴에 손을 얹은 레스레모나가 표정을 구겼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정체불명의 존재, 그 존재와 싸우던 일라이가 죽어버리고 말았다.
더는 느껴지지 않는 심장박동에 레피나는 절망하고 말았다.
자신들을 이끌던 일라이가 죽어버렸다.
리비카처럼 그렇게 가버리고  것이다.

"아흐윽, 그럴 리가, 그럴 리가아아아악!"


목이 찢어져라 절규하는 레피나.
다른 여자들이 절망하며 주저앉을  유리엣은 유심히 일라이를 내려다봤다.
그의 카드 목걸이가 서서히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숨이 다해버린 일라이의 심상세계에 어떤 문구가 떠올랐다.


[세이브 스킬을 가져옵니다.]
[세이브 스킬을 가져오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세이브 스킬은 이하 1개가 존재합니다.]
[사용자가 의식불명이므로 강제로 세이브 스킬을 발동합니다.]
[본래의 주인 셀레나의 히든능력 '자기개변'이 발동합니다.]
[사용자를 죽음에서 되돌립니다.]


그리고 일라이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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