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화 〉기막힌 타이밍 보소 (7/100)



〈 7화 〉기막힌 타이밍 보소
"나는 발렌이야. 그리고……."
"헹, 내 소개는 내가 한다고. 나는 자넷. 발렌 언니는 너무 오지랖이 넓어."
"네가 너무 튀는  아니고?"


발렌과 자넷은 각각 엘브루트 가문의 장녀와 삼녀였다.
긴 검은 머리칼에 반듯하게 자른 앞머리의 발렌, 자줏빛 단발을 세련되게 흩날리는 자넷.
자매치고 친하기로 유명하며, 엘브루트 영주에게 있어 보물들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어머니인 밀레라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외모도 아주 훌륭했다.
우선 알아볼 겸 일라이가 물었다.


"대충 인사만 나누다가 이렇게 보는  처음이네. 반가워. 때가 좀 그렇지만."
"네 모습만 봐도 알겠다. 지친 것 같은데…얼른 들어가서 쉬어."
"잠깐, 잠깐! 전직 왕자님, 모험 떠난다며?"


자넷이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단아하고 숙녀다운 발렌에 비해, 자넷은 언제라도 장난을   같은 개구쟁이 소녀 같았다.
일라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자넷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쉽다. 우리 둘째 언니가 있었다면 당장 합류하겠다며 성화였을 텐데."
"둘째? 네가 둘째 아니었어?"


엘브루트 가계도를  모르기에 일라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에 자넷은 배를 잡고 웃었다.
심지어 상체까지 숙이며 눈물을 뽑아내고 있었다.
그만큼 일라이가 자연스러운 멍청함을 드러낸 것이었다.
반면에 발렌은 자넷의 등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그렇게 대놓고 웃는 거 실례야. 에휴, 아무튼 자넷은 셋째야. 둘째는 사정이 있어서 몇년 전부터 영지를 나가 있어."
"흠, 우리 누나처럼 모험가라도 되겠다고 나간 거야?"
"그건 아니고, 사람을 죽였거든."
"헙……!"


상당히 의외의 얘기인지라 일라이는 놀라고 말았다.
귀족가의 여자가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을 죽이다니.
평범하게 일어날 일은 아니기에 일라이는 자기도 모르게 긴장했다.

"사람을 죽이다니? 누명?"
"아니, 확실하게 자기 손으로 죽였대. 다만 정신이 불안정한 지, 요양 겸 '야신'산에서 쉬고 있어."
"그, 그렇구나…정신이 헤까닥한 거야?"
"자세히는 모르겠어. 처음에는 악령이 들린 것처럼 자기 멋대로 날뛰더라고. 그거 진정시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발렌은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벽안을 우울하게 빛내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걔가 무사한지 걱정돼."
"걱정마, 언니. 둘째 언니가 그래도 어떤 무기든 잘 쓰잖아? 아마 신이라도 죽여 보일 걸?"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니?"

두 여자의 얘기를 들으며 일라이는 뺨을 긁었다.
평온해 보이던 엘브루트 가문에 이런 일이 있는지는 몰랐다.
무엇보다 버젓이 사람을 죽여놓고 잠적한 것 같아서 걱정이 되기도 했다.
물론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 했으니 요양치료라 해야겠지만, 내심 마음이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그럼 쉬어."
"이따 봐."
"응."


자매와 헤어지며 일라이는 방에 들어섰다.
단숨에 옷을 벗고 샤워기에 몸을 맡겼다.
세련된양식으로 만들어진 샤워기에서 따스한 물이 흘러내렸다.
고요하게 물줄기를 맞으며 일라이는 몸을 씻기 시작했다.


***





저녁 식사 시간.
귀족가에서 하는 식사치고 제법 단촐했다.
거대한 원탁에서 가까스로 10명 되는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라가 무너지고, 체계가 무너지다 보니, 이곳에서 일하는 하녀나 집사 역시  상에서 식사를 할  있었다.
이건 본래 밀레라가 이끄는 엘브루트 가문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하고 있어서이기도 했다.

"에헤이, 엄마도 둘째언니 걱정이야? 역시나!"
"걱정이  수밖에 없잖니. 하아, 하필 이럴 때 떨어져 있고."

근심어린 표정으로 나이프를 놓는 밀레라.
 모습에 자넷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있다가 마저 식사를 했다.
우선 일라이는 이곳에서 식사를 하며 밀레라와 딸들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고모는 원래부터 알고 있으니 더 알아볼 건 없다. 전형적인 천민들을 위하는 선한 귀족. 그리고 쭉빵누님이지!'
'장녀인 발렌은 제법 세심한 성격이다. 아마 평화로웠을 때는 거주민들의 지지를 받기도 했겠지. 소문에는 좋은 정책도 건의했다는데.'
'삼녀인 자넷은 의외로 공순이 기질이 있다. 기술 이해는 물론이고 손재주가 좋아. 다만 체력은 귀족아가씨 수준. 낙제로군.'


조금은 맥빠지는 상황이었다.
자세한 건 섹스를 하며 스테이터스를 알아봐야 했지만, 사람 보는 눈이 좋다고 일컬어지는 일라이에겐 안 봐도 불장난이었다.
 둘은 각자가 지향하는 점이 확고하고, 분명 특기도 있지만, 모험에 적합한 이들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 둘에게 무(武)를 기대하는 것 역시 힘겨워 보였다.
귀족 아가씨에게 검  쥐어준다고 능숙하게 다루는 건 이야기책에서나 가능한 얘기니까.


"야, 표정 안 좋네. 왜 그래?"

한참 스파게티를 먹던 레피나가 인상을 쓰며 물었다.
혼자서 고민하다가 인상을 팍 쓰는 일라이가 이상해 보였던 것이다.

"아냐, 조금 아쉬워서."
"뭐가? 이거 또 여자 따먹을 생각하네."
"목소리 좀 죽엿! 그리고 그런  아니야."


일라이가 무섭게 노려보다가 한숨을 쉬며 식사를 재개했다.
나름대로 기대를 하고 와서 그럴까?
여기서 쓸만한 여자들을 찾진 못할 것 같았다.
사실 이게 귀족가문의 현실이기도 했다.
남자는 나이트가, 여자는 레이디가 되는 천편일률적인 현실.
그나마 지금 엘브루트 가문은 남자들이 대부분 죽고여자들이 남은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뭘 더 기대할 수 있을까?

'만약 지금 바로 나라를 재건하겠다면  둘은 쓸만해. 하지만 내 목적은 이번 사태에 대해 알아보고, 세력을 모아 해결하는 거야. 저 둘은 적합하지 않아.'


아쉬웠다.
마치 화살을 쐈는데 과녁이 10점이아니라 9점에 들어간 것만 같았다.
차라리 아예 빗나갔다면 아쉽지도 않았을 텐데.
거의 식사를 마칠 때, 밀레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집사, 오늘도 다친 사람들이 왔나요?"
"본래 영지 거주민들이었던 자들이 4명 왔습니다. 그 중에서 2명이 죽었습니다."
"……근처에 잘 묻어주세요."
"이미 그렇게 했습니다. 나머지 2명은 발렌아가씨께서 간병하셨습니다."
"내일도 얼마나오는지 지켜봐주세요. 발렌,  했다."

이게 일상인 것처럼 능숙하게 얘기를 이어나가는 밀레라.
그녀가 언제까지 불쌍한 이들을 도울지 알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타인을 도우려 하고 있다.
현실적인 일라이는 입을 열었다.


"고모, 저는 고모 성격 아니까 가만히 있었지만…그래도  마디는 하고 싶어요."
"뭔데 그러니?"

비록 자주 몸을 섞었던 사이라지만, 할 말은 하고 싶은 일라이.
그는 포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차라리 우리들끼리 최대한  지내는 게 낫지 않을까요? 갈수록 식량도, 물도 떨어지고 있어요. 그런데 고모는 다친 거주민들까지 챙겨주고 계시죠.
그래가지고는 한계가 있어요. 1년 먹을 게 6개월밖에 못 먹을  있다고요. 언제까지나 여기서 남아계실 거라면, 차라리 우리들부터 챙겨요. 저희가 나가고 나서도 계속 남아 계실 거잖아요?"

진심이 드러나는 일라이의 조언이었다.
조금 이기적이기는 해도 이게 정답이었다.
다들 살기 힘든 상황에서마저 누군가를 지키는 건 용사나 영웅이  일이다.
고작해야 언제 무너질지 모를 귀족이  일은 아니었다.
본래 왕족과 귀족이 백성을 지키는것이지만, 어디 그걸 제대로 해내는 귀족 가문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일라이는 밀레라가 냉정해지기를 바랐다.

"후후,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일라이. 내가 여기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이기에 이러는 거야."
"네?"


제대로 들으려는 듯 묻는 일라이.
밀레라는 다먹은 식기를 옆으로 치우며 대답했다.

"만약 우리가 여기를 떠난다면 더는 거주민들을 챙겨줄 수 없지. 미련조차 없을 거야. 하지만 아니잖니? 여기서 더 갈 곳도 없고, 어디라도 안전하다 확신할 수 없어. 그러므로 나는 여기 남을 거야. 우리 바보같은 딸들 역시 나 때문에 남는다고 하니까 씁쓸하기도 하더라.
아무튼 여기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이기에 1명이라도 더 보듬고 싶어. 설령 내일 바로 우리가 죽는다 하더라도."

밀레라의 대답에 일라이는 감동을 받으면서도 표정을 찌푸렸다.
결국 마지막까지 타인을 돕다가 공멸하겠다는 뜻이었다.
물론 밀레라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귀족이나  자들이, 자신의 땅을 벗어나 다른 데로 이주한다는  상당히 힘든 결정이며,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대부분이 여성인 이런 인원으로는 밖으로 나가는 건 한계가 있다.
그러니 영지에 계속 남아서 언젠가 구원이 오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 역시 정답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식수도, 식량도 말라요."
"더 늦게까지 이어지기를 기도할 뿐이지."
"그렇다면 틀린 기도겠네요. 신은 없으니까."
"야, 야……!"


보다못해서 레피나가 일라이의 팔을 툭 건드렸다.
일라이 입장에서는 답답해서 그런 것이지만, 자칫 결례로 보일 수 있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밀레라도, 그녀의 딸들도 너그러웠다.
그 모습이 더욱 일라이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젠장, 차라리 전부 데려가버릴까? 한낱 카드에 봉인되어 내 명령이나 듣는 하수인이 되겠지만. 그래도 이들은 정령같은 존재가 되는거잖아?'


우선 일라이는 좀  생각하기로 했다.

"일라이, 네 생각은 알겠어. 물론 알고 말고. 네가 보기 보다 섬세하고 멋진 남자라는  아마 나만  걸?"

장난스러운 밀레라의 말.
일라이가 표정관리를 하자 밀레라가 웃었다.


"혹여 우리를 데려갈 방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안 들을 거야. 알겠지?"
"쯧, 알겠다고요."

일라이에게도 생각이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여유가 된다면 일라이가 여자들을 한 명씩 유혹해서 따먹으면 되는 거니까.
오히려 여자들을 상대함에있어 일라이는 몽마인 인큐버스나 다름없었다.
타고난 절륜한 정력으로 여자들 모두에게 축복을 내리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뭔가 이상하지 않아?"


아까부터 창밖으로 시선을 보내던 아넬이 입을 열었다.
막 식사를 마친 일라이가 물을 마시며 물었다.


"뭐가?"
"저기 봐. 창문 밖에서 뭔가 빛이 보이는데?"
"달빛이겠지."
"아니, 붉은색이라니까? 좀 봐봐."


긴가민가 하기에 일라이에게 보라고 하는 아넬.
귀찮았지만 그녀가 뭔가 발견한 거라 믿고 일라이는 뒤를 돌아봤다.
영주관의 창문 밖에는 붉은 빛이 수십 개나 어른거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반딧불이인가 싶었지만, 세상에 붉은빛을, 저 정도로 강렬한 붉은빛을 내는 반딧불이가 어디에 있을까?


"이런, 제길! 모두 안전한 곳에 가서 숨어 있어!"


단숨에 몬스터라 여긴 일라이가 방으로 달려갔다.
하필 이럴 때 검을 방에 두고 오다니!
그가 달려나가자 나머지인원들도 나름대로 준비를 했다.

"후후, 이 몸이 나설 시간이로군."


아넬이 모든 걸 해결해줄 것처럼 탁자 위에 섰다.
그러자 레피나가 비웃었다.


"나대지 말지? 솜털도 없는 년이."
"자꾸 기어오를래? 원한다면 너를……."

쾅쾅- 콰지직-!


그때 붉은빛의 주인공들이 격렬하게 영주관 벽이나 창문에 달려와 부딪쳤다.
자세히 보니 이들은 본래 영지의 거주민들이었다.
지금은 온 몸이 새까맣게 썩어들어가는 좀비의 형상이었다.
그 원초적인 죽음의 냄새 때문에 레피나나 리비카는 물론이고, 몽마인 아넬조차 두려움을 느꼈다.

"무, 무슨 사기(邪氣)가 저렇게 짙어? 평범한 언데드가 아닌데?"
"싸울 거 아니면 얼른 튀어!"


아넬을 향해 레피나가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그녀 앞에 리비카가 서며 밀대를 들었다.
싸울 줄은 모르지만 어떻게든 아넬을 지키고 싶은 심정이 묻어나 있었다.
그러다가 밀레라가 지시하는 소리가 들렸다.


"집사, 하인이랑 하녀들을 데리고 벽을 방비하세요!"
"알겠습니다."


반백발의 집사가 명령을 받들며 손뼉을 쳤다.
그러자 미리 대기하고 있었는지 하인들과 하녀들이 나타나 온갖 잡동사니로 벽과 창문을 막으려 했다.
그때 영주관으로 들어오는 정문까지 누군가가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양동인 것 같았다.
영주관 자체가 워낙 거대한 저택이니 가능한 일이었다.

"뒤까지……."

어느덧 없어진 자넷에게 신경 쓰지 않고 밀레라는 발렌부터 챙겼다.
그녀는 발렌에게 말했다.


"상대는 좀비니까 다친 사람이 있다면 바로 신체를 절개하거나,틀렸다 싶으면 냉정한 결정을 하렴."
"네, 어머니."

한참 혼란스러워질 무렵, 일라이가 급히 칼집을 들고 달려왔다.
그리고 곧장 정문으로 향하며 외쳤다.


"제가 가서  다 쓸어버리죠!"
"잠깐, 위험해!"

남자 일라이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검사 일라이에 대해서는 모르는 밀레라.
일라이는 히죽 웃더니 문의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그리고 철제 문을 힘껏 박차며 칼집에서 그리메를 뽑아들었다.

"파티의 주인공이 납셨다!"

[브류스터드 파검류 - 숨통 자르기]


뽑아든 그리메로 곧장 좀비의 목 하나를 절단하는 일라이.
갑자기 일라이가 뛰쳐나오며 동료까지 죽자, 좀비들은 어리둥절하게 서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발악을 하며 달려들었다.
전부  처참하게 썩어가는 몰골이었다.


"카하아악!"
"가아아아륵!"
"구아악!"

3마리의 좀비가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일라이는 히죽 웃으며 대각선으로 굴러서 거리를 조절했다.
허공을 향해 허우적대는 좀비들이 다시 몸을 틀 때, 일라이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좀비를 향해 그리메를 내질렀다.
군더더기 없는 쾌속의 찌르기였다.


[브류스터드 파검류 - 송곳]

브류스터드 파검류는 본래 모든 무기를 다루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술이 그 기원이다.
그래서 비단 검이 아니라도 그 어떤 무기에도 걸맞은 기술이 개발되기에 이르렀다.
 중 하나가 송곳이었다.
무기에 관계없이 상대방을 찌른다.
쾌속의 찌르기를 함으로 기선을 제압하고, 동시에 상대방의 허점을 공략하는 의미였다.

푸확- 구륵구륵-!

좀비 하나의 안면이 찢어지며 새까만 피를 쏟아냈다.
지난  대형견처럼 피가 끓지는 않았다.
양쪽에서 좀비들이 특유의 악취를뿜어내며 다가왔다.

"씨발, 좀비라면 아무리 여자라도 안 봐준다고!"

왼쪽에서 덤벼드는 좀비를 발로 차며 밀어내는 일라이.
그리고 오른쪽에서 달려들던 좀비가 두 팔을 펼치자 일라이가한층 더 빠르게 공격을 시도했다.
그리메를 양손으로쥐고 그대로 대각선으로 벤 것이다.

[브류스터드 파검류 - 추수]


이제 보이는 좀비는 하나.
막 몸을 추스리던 좀비가 뒤늦게 달려들었다.
그 좀비를 향해 일라이는 검을 내지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명백한 적의가 담긴 공격이었다.
기술도, 그 무엇도 아닌 담담한 지르기였다.

써걱- 푸콰학-!

"그아카학!"


처절한 비명과 함께 좀비가 쓰러지자 일라이는 급히 그리메를 털어대며 주변을 둘러봤다.
정문에는 좀비가 적게 온 것 같지만, 문제는 뒤편이었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창문들이 많이 있는 곳이니 그곳으로 좀비들이 몰려든 것이리라.
일라이는 급히 그곳으로 향했다.

"후우, 후욱!"


싸울 때도 그렇고, 달릴 때도 호흡을 조절하는 일라이.
혼자서 다수를 상대하는 건 미련한 짓이다.
여건만 된다면 상성을 이용해서 기술적으로 해결하거나, 무식하게 물량으로 승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일라이에게는 그 어떤 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단 하나, 바로 실력이었다.

"자신 있다고!"

누구에게도 질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는 오만한 왕자이며, 동시에 검술에관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존재였다.
그런 남자가 가진 자신감이라면 저 밤하늘보다 더욱 깊이가 있을 것이다.

"그와륵!"
"케헤!"

쾅쾅- 터엉- 파악-!


거칠게 창문을 두드리며 부수려드는좀비들이 보였다.
일라이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외쳤다.

"어이, 폭도들! 파티의 주인공이 왔는데 어딜 보는 거야?"
"그우우?"
"크헥!"


좀비들의 시선을 돌리는 데에 성공한 일라이.
그러나 그가 혼자서 맞서야 좀비만 해도 최소한 20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정문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많은 양이었다.
또 언제 좀비들이 더해질 지 알 수는 없지만, 일라이는 여기서 끝내기로 했다.


"그래, 어서 덤비라고."

자신 있게 도발적인 손짓을 하는 일라이.
일라이를 향해 수십의 좀비들이 서로 뒤엉켜서 무섭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죽음의 향기가 넘실대는 곳에서벌어지는 무모한 활극이 막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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