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일담 2
“오. 이게 누구야. 우리들의 구세주가 아니신가.”
프리첸은 유현을 곧바로 알아봤다.
아니. 애초에 그를 몰라볼 리가 없다.
죽음의 세계에서 그를 다시 현생으로 끌어 올려다 준 남자가 바로 그였으니까.
“진짜 몇 번을 봐도 놀랍단 말이지. 그때 그 아가씨의 안에 이런 모습이 있었을 줄이야.”
“그러는 프리첸씨는 죽었다 깨어나도 성격은 그대로군요.”
“뭐, 이런 게 천성이라는 거 아니겠어?”
말은 그렇게 해도 프리첸은 아직도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자신이 죽음을 택하고 사랑하던 그녀를 만나 저 너머의 땅으로 향하던 그 때.
일 년이었을까 십 년이었을까.
아니, 어쩌면 고작 몇 초밖에 지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타오르는 노을. 바람이 초원 위의 말처럼 내달리는 푸른 평원의 위에서 프리첸은 레이첼과 손을 잡고 그저 지는 해를 바라봤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 순간, 허공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나타났다.
검은 양복에 검은 머리를 지닌 남성. 프리첸은 그 모습을 처음 봤음에도, 그가 자신과 함께 가르디안의 봄을 되찾기 위해 싸운 동료라는 걸 깨달았다.
‘가시죠.’
그때의 유현은 그렇게 말하며 그와 레이첼을 이끌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그는 다시 부활했다. 그가 그토록 사랑하던 애인과 함께.
그 뿐만이 아니다. 그 외에도 세상의 풍파에 휩쓸려 죽었던 사람들이 돌아온 것이다.
“참 놀라운 일이지.”
이후, 자신의 복귀에 놀란 옛 부하들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이 죽고 난 뒤에 혼성계에 거대한 전쟁이 있었다고 한다.
세상을 지배하고 제멋대로 주무르던 우주의 창조자인 로고스. 그리고 그런 로고스의 폭정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반기를 든 온갖 존재들.
그들 사이에서 벌어진 우주의 결말을 결정지을 거대한 싸움까지.
“그러고 보니 프리첸 씨. 궁금한 게 있었는데 말이죠.”
뜬금없이 링우그가 그렇게 물었다.
“죽을 때 어떤 기분이었어요?”
“뭐냐. 비아냥거리는 거냐?”
“아, 아뇨!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요.”
“뭐, 사실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
프리첸은 자신의 죽는 그 순간을 잊지 못했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아무리 다시 살아났다고는 하지만, 죽는 그 순간의 기억처럼 강렬한 것은 없을 테니까.
심지어 그는 한쪽 팔이 잘려 나가고, 레이첼의 펜던트를 놓지 못해 얼음창에 고슴도치가 되지 않았던가.
“차갑고 무겁고. 그냥 더러운 기분이었어.”
육체에 아로새겨지는 싸늘하고 날카로운 감촉. 피륙을 파고드는 그 섬뜩함은 아마 몇 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 뒤는 나쁘지 않더군.”
죽은 뒤.
그의 순수한 의지였을까. 아니면, 육체의 탈을 벗어난 영혼이었을까.
그토록 기다리던 영광의 땅에 도달하여 사랑하는 그녀와 함께 길을 걷게 됐을 때.
그 감각은 죽음을 느꼈을 때보다도 훨씬 더 강렬한 것이었다.
완전한 자유.
그래. 굳이 말하자면 딱 그런 기분이었다.
“아, 그러면…….”
“그래도 살아 있는 게 훨씬 더 좋지.”
프리첸은 그렇게 말하며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
“이렇게 육체의 감각이 남아 있는 데 더 익숙하니까.”
그렇게 말하며 유현을 응시했다.
이제는 로고스 대신 이 세상의 조율자가 된 남자를.
솔직히 말해서 겉으로는 평소처럼 대하지만, 프리첸은 앞으로도 유현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좀 많이 헷갈리던 참이다.
그래도 이 세상의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됐는데, 이제 좀 정중하게 대해야 하나?
그런 프리첸의 속마음을 눈치챈 건지 유현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냥 평소처럼 하세요.”
“엉? 그래도 돼?”
“저도 그게 편하니까요.”
프리첸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편하게 웃었다.
유현은 그런 프리첸의 모습을 보며 조금 신기했다. 이전에 산발적으로 기른 턱수염을 모두 밀어서 그런가.
처음 봤을 때는 30대 후반으로 보였는데, 지금은 20대 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죽었다 부활했는데도 후유증이 거의 없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라니.
저 사람도 참 어지간히도 강심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오늘 두 분 다 결혼이 코앞인데, 기분이 어떠십니까?”
누가 뭐래도 오늘 있을 성대한 결혼식의 주인공은 레안과 프리첸이었다.
물론, 두 사람이 한다는 것은 아니다.
신부들은 지금 다른 방에서 대기하는 중이었다.
“당연히 기쁘지!”
프리첸은 뭘 숨기랴 당연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였지만, 의외인 것은 레안의 반응이었다.
“저는, 좀 모르겠네요.”
“뭐가 말이죠?”
“뭔가, 제가 다시 그녀를 만나고…… 영원을 함께하게 된다는 이 현실이. 아직도 꿈 같이 느껴져서…….”
이제는 어엿한 가르디안의 성령이 된 레안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예전 후보자 시절 어리숙한 청년이 된 느낌이었다.
링우그와 프리첸, 유현은 서로의 시선을 교환하더니 동시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하하! 천하의 레안이 이런 사소한 일로 걱정을 하다니. 진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야.”
“그러게 말이에요. 저는 대장님이 제일 좋아할 줄 알았는데.”
유현도 두 사람의 말을 거들었다.
“뭐, 그래도 결혼은 인생에서 가장 축하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기쁘게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물론, 레안도 이 사실 자체가 기쁜 것은 매한가지였다.
다만, 너무 좋은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서 도리어 이것이 순간의 꿈이 아니면 어쩌지 하는 그런 불안감이 맴돌았을 뿐.
“바깥에는 이미 성대한 손님들이 가득 모여 있다고요.”
링우그도 맞장구를 치며 레안의 등을 떠밀었다.
이미 바깥의 식장은 하객들로 가득 붐볐다. 단순히 유명인이 아닌 무려 대전쟁 때 활약한 성령이 하는 결혼식이다.
이미 배후자가 있는 ‘역할’을 부여받은 다른 성령들과 다르게, 자신의 노력 끝에 성령이 된 존재가 이 길을 택한 것이다.
혼성계에서는 사실상 최초로 있는 사태에 가까웠으니 그만큼 관심이 뜨거울 수밖에.
“게다가 주례를 봐주시는 분도 어지간해서는 보기 힘든 분이기도 하고요.”
“그건, 그렇지.”
레안은 그래도 자기가 주인공인데, 너무 주눅 들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좋았어. 그러면 가 볼까.”
“용기를 내서 다행인 것 같네요. 그러면 저는 다른 하객들을 만나러 가 보겠습니다.”
“네. 이따 뵙죠.”
서로 가벼운 인사를 나눈 뒤 유현은 방을 나왔다.
바깥의 야외 예식장은 온갖 사람들로 붐볐다. 단순히 성령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닌 군주들도 더러 있었다.
혼성계에 전례가 없는 역사상 최고의 초호화 결혼식.
후세에서도 이때를 두고 세계의 첫 전환점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모두의 대통합인가.’
예식장의 외진 곳에서 나무의 그늘 아래에 선 유현은 모여 있는 존재들의 면면을 살피며 피식 웃었다.
따스한 빛이 내려오는 푸른 하늘 아래, 화려한 꽃이 가득 피어 있는 공간 위에 여러 존재가 모여 웃음을 피우고 있었다.
복장도 모습도 전부 제각각이지만.
그들은 이 순간을 축하한다는 하나 된 목표로 이곳에 모였다.
‘전부, 바뀌었구나.’
옛날이었다면 꿈에도 꾸지 못했을 일이다.
그 놀라운 변화를 자신이 이뤘다는 생각에, 유현은 문득 걸어온 길을 되새겼다.
많은 일이 있었다.
힘든 일도 있었고, 몇 번이고 주저앉고 싶기도 했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유현은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뭘 그렇게 혼자 궁상맞게 서 있는 거냐?”
난데없이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유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이쪽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응시하는 금발의 자그마한 소년이 있었다.
“아. 오엘로님.”
“님은 무슨. 이제 네가 이 세상 짱 먹었으니까 그냥 편하게 불러.”
“전 이게 편합니다.”
“에휴. 그러면 됐다.”
오엘로는 한숨을 내쉬며 유현의 곁에 서서 예식장을 훑어봤다.
“많이도 모였네, 많이도 모였어. 1세대 성령들도 그렇고, 예전 대성군 출신의 성령들까지. 이제 뭐 눈치 볼 것도 없겠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는구만.”
“자유란 좋은 거죠. 우리 모두가 그것을 위해서 싸웠으니까요.”
“하지만 과도한 자유는 어느 순간 분쟁을 낳을 거다.”
“물론, 약간의 조정은 할 겁니다. 자신의 욕심을 빌미로 자유를 들먹이는 놈들은, 저도 질색이니까요.”
“그래서 놈들은 다 잡았냐?”
놈들이 누구를 뜻하는 건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둘 다 제대로 끝냈습니다.”
“어떻게 갔지?”
“한쪽은 웃으면서, 한쪽은 추하게 발악하면서.”
“딱 놈들답게 가 버렸군.”
형제의 죽음에도 오엘로는 슬퍼하는 기색이 없었다.
애초에 그는 담천과 카타르시스를 형제라고 여겼던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
“그 둘만 언급한 걸 보면 롯피우트는 가만히 놔뒀나 보군.”
“뭐, 그런 셈이죠.”
“하긴. 그 녀석 성격은 교활해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으니까. 일도 깔끔하게 잘할 거고.”
“저도 이야기의 왕은 셋 정도는 남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오엘로는 문득 결혼식장을 보며 떠오르는 것이 있는지 유현에게 물었다.
“그래서 넌 이제 어쩔 거냐?”
“예? 뭘 말입니까.”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이냐?”
오엘로가 그렇게 물었지만, 유현은 정말 모른다는 눈치였다.
그 모습에 오엘로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쪽으로는 눈치가 빠른 녀석이 이런 부분에서는 둔감하다니.
“너 좋다고 따라다니는 아가씨들 말이다.”
“……아.”
유현은 오엘로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겨우 깨달았다.
평소에 여유가 넘치던 그의 말이 갑자기 빨라졌다.
“아, 아뇨. 저는 뭐, 아직 할 일도 많이 남았고. 그 뭐냐. 당장에는 뭘 해야 한다는 그런 건 좀 부담스럽다고 해야 하나. 제가자리가자리다보니까조심해서움직여야하는것도있고…….”
“이거 봐라? 아주 당황해서 말이 헛나오지?”
오엘로는 그 천하의 강유현이 이렇게 당황하는 것이 즐겁기만 한지 은근하게 놀리기까지 했다.
유현은 여기서 무슨 말을 해도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어어? 말 안 해? 말 안 할 거야?”
“……뭘 말입니까.”
“아가씨들 있잖아. 숫자만 넷이던가? 이거 아주 죄 많은 남자네.”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가 세상 오랫동안 떠돌아다녀서 아는데, 이런 쪽으로는 짬밥이 높아. 적중률 100%. 그런 내 감각이 말하고 있다고.”
“세상에 100%가 어디 있습니까? 틀릴 수도 있지.”
“그래. 그런데 지금은 아닌 거 같더라.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솔직히 직접 안 보기는 했는데, 그쪽도 너한테 은근하게 표현하고 있지 않았어?”
“…….”
유현은 대답 대신 눈알만 데구르르 굴렸다.
그러던 차에 식장의 한쪽에서 환성이 터져 나왔다.
“아! 결혼식이 시작하려나 보군요! 움직이죠!”
“말 돌리기는.”
오엘로는 투덜거리면서도 유현과 함께 식장의 안쪽으로 향했다.
때마침 신랑이 입장하고 있었다.
아직도 예식복이 어색한지 몸을 움찔거리는 레안.
그와 반대로 이 상황 자체를 즐기며 미소 짓고 있는 프리첸.
“곧 신부 입장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주례자를 본 유현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화과산 원숭이가 얼굴에 무테안경을 쓴 채로 몸에도 맞지 않은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으니까.
그 순간, 손오공과 유현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유현은 시선으로 물었다.
‘그 복장은 대체 뭡니까? 아니, 그보다 왜 거기 있습니까?’
‘시끄러워.’
손오공은 자신이 설마 결혼식의 주례를 서게 될 줄 몰랐는지 벌써부터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다만 그럼에도 짜증을 내거나 때려치우지 않은 것은, 스스로가 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리라.
대전쟁의 그날, 손오공과 레안은 서로 힘을 합쳐서 파괴의 신 시바를 쓰러뜨렸으니까.
‘제길. 어쩌다 내가 이렇게…….’
한때는 제천대성, 그 이후에는 투전승불.
혼성계에서도 일대일로는 상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그가 남들 앞에서 결혼 축하 주례를 서고 있다.
이 자리에 모인 존재 중 과반수는 그런 손오공의 모습을 신기하게 구경하는 중이었다.
‘후우. 그래. 그냥 딱 한 번 해 주는 것뿐이니까.’
그래도 함께 목숨을 걸고 싸운 전우를 축하해 주는 일인데, 이런 부끄러움이 대수인가.
“크하하하! 저기 저 원숭이 놈 꼴 좀 봐라!”
“크흡! 제천대성이 결혼식 주례라니. 너무 웃기오, 큰형님!”
“삼장이 봐도 웃음을 터뜨리겠어!”
‘아오 저것들이!’
예식장의 한쪽 구석에서 마왕연합의 동료들이 그런 자신을 보며 폭소를 금치 못하고 있었다.
칠대성 중 6명이 자신을 보며 비웃는 그 모습에 손오공은 슬슬 머리에 열이 오르려 하고 있었다.
“아, 신부 입장 빨리 안 합니까!”
“크흡!”
“푸흐흡!”
손오공이 버럭 외치자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결혼식은 차분하게 수순대로 진행됐다.
신부 입장이요!
어디선가 들려오는 외침과 함께 사람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터줬다.
레안과 프리첸은 그곳을 돌아보다가 눈을 크게 떴다.
“케이라…….”
성령의 후계자였던 자신을 가르쳐 주고 전사로 만들어 준 스승.
그리고,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
그런 그녀가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천천히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놀란 건 프리첸도 마찬가지였다.
케이라의 곁에서 함께 걸어오는 건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자신을 유일하게 믿어 줬던 시녀인 레이첼이었으니까.
“멋지다!”
“어울린다!”
가르디안이 모인 테이블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게오른이 만들었던 위대한 다섯 자매. 부활한 그녀들도 모여서 장녀인 케이라의 모습을 축하해 줬다. 막내인 피올드는 눈물을 펑펑 흘리기까지 했다.
기쁜 얼굴로 손뼉을 치는 링우그와 그런 링우그에게 적당히 하라며 짜증을 부리는 헨더까지.
그렇게 혼성계에서 가장 유명한 결혼식이 그렇게 시작됐다.
* * *
벨라는 자신의 ‘봄의 한 조각’ 여관의 주방에서 열심히 스프를 끓였다.
이제는 완전히 따스한 봄이 찾아온 가르디안.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성대한 결혼식이 열리고 있지만, 벨라는 굳이 찾아가지 않았다.
그 대신 전쟁이 끝난 그 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요리를 만들고 여관에서 사람들을 반겼다.
딸랑.
그 순간, 문이 열리며 손님이 한 명 찾아왔다.
이미 모든 사람이 전부 레안의 결혼을 축하하러 간 지금 이런 곳에 찾아올 손님은 없을 터.
주방에서 나온 벨라는 문을 열고 찾아온 손님과 눈이 마주쳤다.
벨라의 눈이 크게 떠졌다.
“주인장. 여기 식사 가능한가요?”
“나 참.”
그녀는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에서 나온 그녀의 손에는 막 끓인 따스한 스프 한 접시가 쥐어져 있었다.
그녀는 손님의 앞에 접시와 스푼을 소리 나게 놓았다.
“어디서 대체 뭘 하면서 쏘다니다가 이제 돌아왔어?”
항상 어디론가 모험을 떠나길 좋아하는 남자였다.
가르디안치고는 심정도 여리고 감성적이며 몸도 약하기까지 하면서.
그러면서 누구보다도 다른 곳의 멋진 광경을 보고 싶다고 했던가.
그러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여행을 떠났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고 반쯤 체념하면서도, 벨라는 이 여관을 만들고 그를 기다렸다.
약속했었으니까.
함께 여관을 꾸려나가자고.
후릅.
남자는 스프를 한 모금 머금더니 이내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웠어. 이 맛이.”
“그립기는 무슨. 그래서 이제 또 어딜 쏘다니려고? 갈 곳이 있나?”
벨라의 짓궂은 물음에 눈앞의 남자는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이제 어디에도 가지 않아.”
“…….”
“이곳이 내 여행의 정착지인걸.”
“……말이나 못 하면.”
벨라는 그런 남편의 말에 피식 웃으며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천천히 먹어. 내 특제 스프는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까.”
“응.”
“끝나고 설거지는 당신이 하고.”
“물론이지.”
“앞으로 이 여관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을 거야. 모른다고 봐주는 거 없어. 알지?”
“얼마든지.”
남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불쑥 벨라를 불렀다.
“아 참. 벨라.”
“왜.”
“다녀왔어.”
그 한마디에 벨라는 순간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이 되었다가, 이내 파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하는 기쁨의 날.
얼어붙은 행성에 완전한 봄이 찾아온 그 날.
봄의 한 조각이라는 여관에 비어 있던 마지막 조각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