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447화
일단 기세 좋게 하겠다고는 했지만, 유영민은 아직도 자신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녀석을 권총으로 쏴 맞추라니.
그가 사용하는 권총이 일반적인 권총과 다르다고는 하지만,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녀석을 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약점이 없는 건 아니야.’
아후라 마즈다는 평상시와 빛의 형태로 변했을 때. 이렇게 2개로 나뉜다.
평상시에는 빛의 날개를 이용해 공격을 펼치는 것이 가능하다. 그야말로 무수한 빛의 벌을 내리는 폭격기다.
반대로 빛 상태일 때는 공격을 가하지 못하지만, 빛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
각기 공격과 이동의 형태인데, 빛의 상태일 때는 말 그대로 빛의 속도로 움직여서 무슨 공격을 해도 맞추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서도 약점이 존재했다.
‘녀석도 자신이 빛의 상태로 변해 움직일 때, 인지 능력이 상당히 저하돼.’
먼 곳까지 공간 이동을 한 자신과 메피스토를 찾아, 이쪽까지 날아오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에서 단서를 얻었다.
만약, 아후라 마즈다가 빛의 속도로 움직이면서도 인지 능력도 그대로라면 바로 이곳까지 쫓아와서 후속타를 날려야만 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그러지 못했다는 거야. 아후라 마즈다 본인도 너무 빠르게 움직이는 자신의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는 거야.’
무엇보다 속도란 결국 상대적이다. 자신의 오감은 한계가 있는데 몸은 빛의 속도로 움직이면, 아무리 1세대 성령이라 하더라도 그 속도감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기에 빛의 상태일 때의 아후라 마즈다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인지 능력을 저하시켰다.
‘그 상태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판단으로 내리는 거겠지. 기회를 노린다면 바로 그때.’
왜 메피스토가 빛을 맞추라고 한 건지 이해 갔다.
평상시 상태의 아후라 마즈다는 이쪽이 준비하고 있는 비장의 한 수를 경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총알이 몇 발이나 있어도 아후라 마즈다를 제대로 맞추지 못할 거다.
유일하게 아후라 마즈다를 쏠 수 있는 것은, 반격이나 회피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인지 능력이 떨어진 빛의 상태였을 때뿐.
과연, 어느 쪽이 난이도가 더 높고 낮은 건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둘 다 극악의 확률.
‘하지만, 어떻게 빛의 속도를 읽지.’
이미 인간을 초월한 인지 능력을 가진 유영민이라 하더라도 빛의 속도를 읽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번개조차 너무 빨라서 눈으로 보고 피할 수 없는데, 빛은 오죽할까.
“옵니다.”
빠르다.
메피스토의 경고와 동시에 공격 상태의 하우라 마즈다로부터 빛의 기둥이 우수수 떨어졌다.
이번에는 공간을 뛰어넘어 피하지 않았다. 메피스토는 정면에 무수한 공간의 역장을 만들어 방어에 들어갔다.
방어는 메피스토의 몫. 그리고 이쪽이 해야 할 일은 그 반대의 것.
유영민은 눈을 부릅뜨며 아후라 마즈다의 움직임을 읽고자 노력했다.
‘읽어. 상대가 어디로 갈지, 어디에 나타날지.’
머리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보는 거다.
생각을, 의심을, 걱정을 지운다.
오직 적의 움직임을 보기 위해 극한까지 집중을 하는 거다.
콰과과과광!
왜곡된 빛의 기둥들이 주위로 무수한 폭발을 일으킨다. 메피스토가 주위로 왜곡장을 펼치며 어떻게든 방어하고 있지만, 완벽하진 못했다.
지상에서 튀어 오른 파편이, 갈라진 빛의 조각이 하나둘 유영민의 몸에 잔상처를 남긴다.
뺨을 타고 피가 흐르는데도 유영민의 시선은 아후라 마즈다에게 떨어질 줄 몰랐다.
생명의 위기와 반드시 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불러일으킨 극한의 집중상태.
‘흠?’
공격을 날리던 아후라 마즈다도 유영민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폭격을 가하는 것을 멈췄다.
‘무언가 노리는 건가?’
저 상태. 아무리 봐도 평범해 보이진 않는다. 혹시라도 이쪽이 공격을 더 과하게 쏟아 내는 타이밍을 노려서 카운터를 날릴지도 모르는 일.
‘그렇다면 다시 시간을 끌면 된다.’
저런 집중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길어 봤자 1분도 걸리지 않겠지. 그동안 빛의 상태를 유지하며 놈들의 주위를 어수선하게 돌리면 그만이다.
아후라 마즈다는 빛의 날개를 회수해 자신의 몸에 둘렀다. 그의 몸이 어디론가 쭈욱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인지 능력은 일부러 저하시킨다. 자신도 감당하지 못하는 속도를 계속 인지하는 것은 상당한 힘을 소모하는 일이었으니까.
번쩍!
눈 한 번 깜빡하는 사이에 유영민과 메피스토의 주위로 거대한 빛의 감옥이 생겼다. 전부 아후라 마즈다가 움직이며 생기는 빛의 궤적이었다.
그 광경을 본 메피스토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지만, 집중 상태인 유영민에게 신호를 준다 하더라도 그가 듣고 반응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방아쇠를 당길 거라고 믿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타앙!
격발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주위에 가득하던 빛의 궤적이 사라졌다.
“무……슨.”
아후라 마즈다가 지면에 쓰러진 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다봤다.
그의 가슴 중앙에, 검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메피스토는 눈을 크게 뜨며 유영민을 돌아봤다.
‘진짜로 맞췄어?’
설마 읽은 건가? 아후라 마즈다의 속도를?
해야 한다고 말은 했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성공할 줄이야.
“내가, 내가 고작 인간 따위에게……!”
아후라 마즈다가 입가에 신혈을 흘리며 분노를 터뜨리려는 순간, 그의 가슴에 박힌 총알이 작동했다.
메피스토가 유영민에게 준, 자신의 힘을 담은 총알.
그것이 목표의 몸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키이이잉!
검은 총알이 가루처럼 분쇄되더니 이윽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회전했다. 검은 총알은 어느덧 주위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자그마한 블랙홀이 됐다.
“이, 이럴 수는 없어!”
시간과 공간마저 휘어 버리는 블랙홀 속에서는 빛조차 벗어날 수 없다.
아후라 마즈다는 자신의 심장에서 생성된 블랙홀에 전신이 뒤틀리고 부서지며 블랙홀에 빨려 들어갔다.
이윽고 블랙홀이 힘이 다해 사라졌을 때, 그 자리에 남은 것은 깊게 파인 크레이터뿐이었다.
“엇?”
뒤늦게 집중 상태가 풀린 유영민이 정신을 되찾았다.
“어, 어떻게 된 거예요?”
분명 그는 무언가를 보았다.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아주 새하얀 공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아니게 된 것처럼,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해냈습니다.”
“네?”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아후라 마즈다를 맞췄다고요.”
“세상에.”
유영민은 자신이 한 결과가 믿기지 않는지 멍한 얼굴로 아후라 마즈다가 사라진 장소를 응시했다.
“정신 차리세요. 아직 싸움은 끝난 게 아니니까.”
“아, 네!”
이쪽은 겨우 1세대 성령 하나를 죽였을 뿐이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 * *
[생각했던 것보다 잘 버티는군.]
재단의 중심에서 바깥을 보던 로고스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분명 충분한 절망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재단의 요새가 무려 5개나 더 추가된 것이다. 지금도 재단에서 거대한 포격을 쏘아 내고, 엘로힘들이 창을 내던지고 있다.
찰나의 순간에 무수한 생명이 계속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도 저들은 포기하지 않고 싸움을 계속했다.
대체, 왜?
[설마 녀석을 믿는 건가?]
이제는 코덱스의 안쪽에 삼켜진 강유현을?
웃기는 이야기다. 저들은 강유현이 자신들을 구원할 거라고, 진정 세계를 지켜 줄 거라고 믿고 있는 건가?
[모르면 모르는 대로, 계속 기대만 한 채로 죽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모처럼 특색 있는 세계를 보게 됐으니, 마지막까지 저들의 발버둥을 지켜봐 주는 것이 창조주로서의 예의겠지.
결국, 이런 것도 궁극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반복적이고 지루한 작업 속에서 주어지는 자그마한 여흥.
나쁘지는 않은 기분이었다.
[책 속에 잠긴 너는 이 모습을 보지 못하겠구나. 아쉽게 됐군.]
하지만 상관없다.
그는 코덱스와 하나가 되어, 궁극의 이야기가 되기 위한 거름이 될 테니까.
그러니 좋은 꿈을 꾸거라.
* * *
몸이 무겁다.
손도 발도,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난 대체 어떻게 된 걸까.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나는…….
“여기는……?”
눈을 뜨니 보이는 것은 어둠만이 가득한 세상이었다.
심연의 깊은 곳까지 떨어지기라도 한 걸까. 고개를 들어 위를 봤지만.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이곳에 빛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빛이라고 하는 것도 내 주위에서 나는 것이 전부.
‘내가 지닌 이야기가 분해되면서, 빛을 내고 있어.’
촤악! 그 순간, 어둠에서 무언가 튀어나와 내 손을 붙들었다.
“……!”
황급히 손을 털어 내자 빛이 흘러나오며 어둠을 몰아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내 왼손을 바라봤다.
‘이야기가…… 먹히고 있어.’
아니.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이곳에 존재하는 어둠은 빛마저 삼키고 있었다.
등골을 타고 소름이 내달린다. 나는 곧바로 칠마흑천신공의 기운을 일으켜 주변 일대를 휩쓸었다.
거대한 격류가 그대로 이 공간 채로 부수길 바라며 펼친 기술이었지만.
‘먹혔다고?’
어둠은 내 공격마저 집어삼켰다. 오히려 그것을 먹고 더 강해진 것 같았다.
나는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이걸로 부족하면 더 강한 기술을 사용할까? 아니면 다른 걸?
‘아니야. 조금 차분하게.’
이럴 때일수록 차분해져야 한다. 저 어둠은 분명 위험한 게 맞다. 내가 사용하는 기술마저 삼키고 강해지는 걸 보면, 이야기를 주식으로 삼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 어둠이 내게 바로 달려들지 못하는 것은.
‘빛, 때문인가.’
나에게서 나오는 빛. 아니, 정확히는 이야기를 불태우면서 나오는 빛이었다. 어둠은 그것을 두려워하듯 선뜻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문제라면 나는 이 빛을 계속 유지하지 못한다는 거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부터 이야기의 소모가 엄청나게 빨라지고 있었다. 심지어 다른 성령들에게 전해 받은 이야기는, 대부분 로고스를 공격하느라 사용해 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남은 거지? 지금 바깥 상황은? 다들 무사한가?’
차분해지려고 해도 조바심이 절로 일었다. 로고스를 쓰러뜨리는 데 실패했다.
그러는 사이 밖에서 싸우는 사람들은 계속 죽어 가고 있을 거다. 어쩌면 내 소중한 사람들도 하나씩…….
안 돼.
다들 내가 로고스를 쓰러뜨려 주기만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나에게 모든 이야기를 넘겨주었고 이 전쟁에 임한 것이다. 모두의 염원을 등에 업고서, 반드시 해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기로 약속했는데.
“젠장!”
나는 실패한 건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와서, 실패했다고?
아니, 아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지금 살아 있으니 기회는 남아 있을 거다.
일단은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부터 집중하자.
‘분명, 여기 어딘가에 출구가 있을 거야.’
출구가 있을 것이다. 있어야만 한다. 약속했으니까. 다시 돌아가기로 약속했으니까.
나는…….
꾸물꾸물.
어둠이 몰려온다. 어둠은 빛을 먹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이야기를 태우며 불을, 불에서 빛을 만들었다.
“젠장. 방해하지 말고 저리 꺼져!”
불을 피워도 불길이 삼켜졌다. 빛을 비춰도 어둠은 순간 물러날지언정 빛을 삼켜 가며 다가온다. 어둠은 끝이 없었다.
빛을 만들고, 먼 곳으로 도망쳐도 어둠은 끝까지 쫓아왔다. 끈질기다는 수준이 아니다. 녀석들은 마치 내 그림자와 같았다. 나에게 달라붙어 절대 떨어질 줄 모르는.
이곳은 어둠의 위장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 떨어진 먹잇감이었고.
모든 것을 빼앗기고
빛조차 삼켜지며
의욕마저 잠식당한다.
“웃기지 마. 나는, 고작 이런 곳에서 죽겠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야.”
빛이 점점 약해졌다. 태울 이야기가 줄어든다.
공포가 밀려온다.
이 어둠은 내 감정마저 집어삼킨다. 그것을 애써 부정하며 이를 악물고 저항해 보지만, 어둠은 사라질 줄 몰랐다.
조급함을 억제하려 할수록 조급해지고.
희망을 품으려 할수록 희망마저 갉아먹힌다.
문득,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고작 인간밖에 되지 못한 내가, 이 거대함에 맞선다는 것 자체가 만용이 아니었을까?
그저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며 살고, 세상이 흐르는 대로 사는 것이 맞는 게 아니었을까.
“나는, 나는…….”
대체, 뭘 위해 여기까지 왔지?
쉬지 않고 놀리던 발을 멈춘다. 어둠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속 도망치던 것을 그만뒀다.
‘지쳤어.’
두려움이 밀려왔다. 어둠은 야속하게도 두려움은 먹지 않았다.
어느덧 빛이 사라졌다. 더 이상 빛을 만들어 낼 이야기도 없다. 내가 지닌 이야기가, 나의 역사가, 나의 존재가.
모두 사라진 것이다.
덜덜 떨리는 손끝조차 보이지 않았다.
몸이
육신이
어둠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
‘이젠 진짜로 끝이구나.’
어둠은 차가웠다. 빛도 온기도 없는 태초의 가혹함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공간이 잠식되며 시간 감각마저 사라졌다.
나는 이제 죽는 건가.
어쩌면 이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리에 쪼그리고 주저앉았다. 이제 일어설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다시 우뚝 설 몸이 있기는 한 걸까?
이 정도면 충분히 했잖아. 여기까지 왔으면 된 거잖아.
‘그러니까 이제 눈 감고 쉬어도 되겠지.’
사고가 거기까지 미치고, 어둠에 몸을 맡기려는 순간이었다.
“멍청한 놈. 뭘 벌써부터 포기하고 있는 거냐.”
고개를 숙인 내 앞에서 들려오는 통렬한 목소리.
누구?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