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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446화 (446/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446화

혼성계의 악몽이라 일컬어지던 마라 파피야스의 죽음.

그 위대한 업적을 이룬 서수민의 표정은 들뜬 기색이 하나도 없이 너무나도 평온했다.

마치 이게 당연하다는 듯.

서수민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녀와 마라 파피야스의 치열한 싸움에도 불구하고 전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새롭게 나타난 요새들과, 거기서 소나기처럼 쏟아 내는 엘로힘의 군세가 연합군을 시종일관 밀어붙이는 추세.

지금도 그녀를 노리는 엘로힘이 멀리서부터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털썩.

서수민은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움직여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것은 좋지만, 전신에 힘이 남아 있질 않았다.

일종의 리바운드 현상이었다.

너무 많은 힘을 소모하고 말았다. 새로운 기술을 익혔으면 그것을 오랫동안 가다듬고 발전시켜야 하는데, 그 과정을 없애고 바로 실전에서 써먹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애초에 극한의 순간에 백공권을 사용한 것마저도 기적에 가까웠던 일.

‘끝인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채 힘없이 고개만 들어 하늘을 본다.

이쪽을 향해 내려오는 무수한 살육의 천사들. 놈들은 그녀가 어떤 상태인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기계처럼 창을 내지를 것이다.

그것이 그려내는 미래는, 분명 참혹한 것이겠지.

‘그래도 마지막에는…… 보고 싶었는데.’

적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벽을 넘었다. 더 나아갈 수 없는 경지에 서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 모든 과정에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는 것보다도.

‘나도…….’

아쉬움이 컸다.

유현에게 칭찬받고 싶었다. 잘했다며, 열심히 했다며, 그런 말을 듣고 싶었다.

환생을 하고 난 이후의 삶까지 생각하면 가장 어른스러워야 할 그녀였지만…… 지금 순간만큼은 그저 이 서수민이라는 한 사람으로서 그를 애타게 갈구했다.

‘5년 동안, 나도 많이 기다렸단 말이야.’

강혜림이 흑뢰군주가 되었고, 권지아가 유현의 흔적을 찾아 혼성계를 누비고, 유영민이 파편을 찾아 모으기 위해 용병왕이 되었을 때.

서수민은 연합에 남아 계속 유현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저 기다렸던 것이다.

누군가는, 적어도 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바보 같은 남자.’

그는 분명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갔겠지.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런 부분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그 부분에 야속함을 느끼면서도, 그런 강유현이었기에 좋아했던 것이다.

누구보다도 용감하고 올곧고, 또 포기하지 않았던 그가 그녀의 세계에 빛을 가져다 줬으니까.

‘빛.’

죽기전 주마등이라도 보는 걸까?

서수민은 엘로힘의 사이로 유난히 강렬한 빛이 자신을 향해 내리쬐는 것을 봤다.

“어?”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빛을 등지고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것은 거대한 흰색 부엉이를 탄 낯익은 얼굴.

“강유현?”

아니. 아니다. 얼굴이 닮아서 착각했다. 백효를 타고 이쪽으로 날아오는 것은 강유현이 아니었다.

“수민아! 내 손 잡아!”

“유라야?”

강유라가 저공비행을 하며 서수민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 않겠다며, 엘로힘들이 일제히 창을 집어 던졌다.

하늘에서 붉은 창이 억수처럼 쏟아졌다. 백효는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곡예비행을 선보이며 서수민을 향해 빠르게 접근했다.

“수민아 어서!”

“아…….”

강유라의 다급한 외침에 서수민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몸에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죽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마지막 기적을 불러일으킨 것인지, 그녀는 겨우 손 하나 정도는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게 백효가 거리를 좁히고.

“잡았다!”

강유라가 서수민의 손을 잡아 그녀를 확 당겼다.

“유라 너…… 여긴 어떻게…….”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일단 벗어나는 게 우선이야!”

서수민을 뒤에 제대로 앉힐 여유도 없었다. 강유라는 서수민을 품에 꼬옥 껴안은 채 백효를 더욱 닦달했다.

“백효야! 죽을힘을 다해 날아! 네가 안 하면 우리 둘 다 죽는 거야! 알지?”

부엉!

백효도 신수인지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자신이 날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비행을 이어 나갔다. 소리의 벽을 넘어서 새하얀 빛줄기가 된 백효는 빠른 속도로 엘로힘의 전열의 틈새를 돌파했다.

‘나…… 산 건가?’

거의 죽었다고 생각하고 포기하고 있던 서수민은, 자신이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저 너무 죽고 싶지 않아서, 죽기 직전 자신이 가장 바라는 환각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따뜻해.’

자신을 껴안고 있는 강유라의 온기가.

그리고 그녀에게서 풍기는 좋은 냄새가.

이것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고마워…….”

“고맙다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수민이 넌 내 소중한 친구인걸.”

“응. 그랬지…….”

“그러니까, 다 같이 살아남자. 이 전쟁에서 이기고, 모두 예전처럼 돌아가는 거야.”

예전처럼.

그 말이 잔잔하게 가슴을 울린다.

말을 꺼낸 강유라도, 그것을 듣고 있는 서수민도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을 원하기 때문이다.

인간이기에.

인간이니까.

“그리고, 저길 봐.”

강유라가 가리킨 방향을 보자 그곳에 적들과 죽을힘을 다해 맞서 싸우는 연합군의 모습이 보였다.

엘로힘의 등장에 절망에 빠질 법도 한데도, 연합군은 오히려 전선을 새롭게 구축하며 그들의 공격으로부터 최선을 다해 방어를 하고 있었다.

유현을 재단의 안쪽까지 보낸 시점에서 그들이 할 일은 이제 버티는 것.

그리고 지금 연합군은 그 이름에 걸맞게, 서로 힘을 합치고 연합해서 적들과 싸우는 중이었다.

“다들 싸우고 있어.”

멀지 않은 곳에서 거대한 검격이 하늘 높이 솟구친다.

X자를 그리며 교차하는 거대한 검기는 하늘까지 갈라 버리며 재단의 일부까지 닿았다.

“저건…….”

“도윤 오빠가 싸우고 있어.”

하지만 저 검격, 단순히 한 명이서 보인 것 치고는 숫자가 2개로 보였는데?

다른 조력자라도 있는 건가? 하지만 저렇게 깔끔한 검격은, 최도윤이 아니면 똑같이 선보일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뭐, 상관없나.’

저렇게 힘이 넘치는 걸 보면, 저쪽의 승부도 길게 이어지지 않을 거다.

다른 곳에서 느껴지던 강혜림과 권지아의 싸움도 끝난 것 같고, 정예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싸움도 이젠 거의 막바지였다.

‘영민이만 남은 건가…….’

서수민은 백화 매니지먼트의 미덥지 못한 막내를 떠올렸다. 지금이라도 그를 도와줘야 하나 고민했지만, 이런 상태로 가 봤자 오히려 그의 짐만 될 게 자명했다.

무엇보다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유영민과 함께 있는 성령의 존재 덕분이었다.

새하얀 세계 너머를 본 서수민은, 유영민의 싸움이 어떻게 될지 그 앞일을 본능적으로 읽어 냈다.

‘5분 내로 승부가 나겠어.’

승부의 결과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녀가 아는 유영민이라면 절대로 지는 싸움은 시작하지 않았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으리라.

* * *

“에휴. 죽겠네.”

아후라 마즈다가 쏘아 내는 빛의 화살을 가까스로 피해 내며 유영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왜 이런 싸움을 한다고 해 가지고.”

언제나 이기는 싸움만 하던 그였지만, 아후라 마즈다를 상대로 똑같이 적용되는 건 아니었다.

사실, 아후라 마즈다와 싸우는 것은 부하들의 죽음에 의해 분노한 감정적인 대응에 가까웠다.

다른 사람들도 다 열심히 싸우는데, 자기만 뒤로 물러날 수 없다는 자존심도 한몫했고.

“헛소리하지 말고 집중이나 하세요.”

메피스토가 유영민에게 가까이 붙으며 다른 의미로 한숨을 내쉬었다.

뭐라고 더 쏘아붙여 주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럴 여유도 없었다.

시야의 한쪽 끝부분에 강렬한 빛이 폭발한다. 그것이 곧 다가올 공격의 징조라는 것은 조금 전의 지속적인 공방으로 질리도록 깨달았다.

메피스토가 팔을 뻗자 그의 정면에 반투명한 5중첩 역장이 떠올랐다.

동시에 빛의 화살이 역장에 닿았고, 방향이 휘어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촤아아악!

빛들이 동시에 휘어지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광경은 일경 장관이었다.

공간의 왜곡. 빛으로 공격을 가하는 아후라 마즈다와 상성이 상당히 좋은 능력이었다.

“끈질기구나. 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그렇게 막을 수 있을까.”

아후라 마즈다는 자신의 공격이 막혔다는 것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상대가 그 메피스토펠레스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오히려 더 강한 공격을 쏟아부었다.

공간을 왜곡시켜서 빛의 화살을 틀어 버린다면, 방향을 틀어도 맞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공격을 가하면 되는 게 아니겠는가.

유영민과 메피스토도 이번에 상당히 큰 것이 온다는 걸 직감했다.

“메피스토님. 또 시간은 못 멈춥니까?”

“시간 멈추는 게 무슨 만능인 줄 아십니까? 이미 힘을 많이 소모해서 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메피스토가 사용하는 힘은 강력하지만, 그것에 걸맞게 연비가 좋지 않았다.

시간을 멈추는 것. 너무나도 강력한 힘이지만, 메피스토는 시간을 멈추는 것 이상을 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공격보다는 방어와 서포팅에 국한된 능력이다 보니 같은 1세대 성령들끼리 싸워도 무승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특히, 만전의 경우에 싸워도 상대가 아후라 마즈다면 겨우 승부를 끌고 나갈까 말까 하는데.

유현을 재단으로 보내기 위해 너무 많은 힘을 소모한 나머지, 지금의 메피스토는 시간이 아닌 공간을 왜곡시키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그 수준도 너무 미약해서, 엘로힘을 방해했던 초소형 블랙홀 같은 것도 더는 만들지 못한다.

기껏 할 수 있는 것은 아후라 마즈다가 날리는 빛을 왜곡시키는 정도.

“그러니까 좀 맞춰 보란 말입니다. 제가 준 총알 있잖습니까.”

“저도 그러고 싶은데 말이죠.”

유영민의 눈동자가 아후라 마즈다의 위치를 쫓았다. 저격수의 눈동자에 상대방을 확실하게 포착하는 온갖 스킬들까지 다 사용했는데도, 아후라 마즈다의 움직임을 쫓을 수 없었다.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녀석을 대체 어떻게 맞춰요?”

“저격수가 그것도 못 합니까?”

“빛을 맞추는 저격수가 세상에 어디 있어요?! 아니, 그러면 메피스토님이 쏘세요.”

“전 총 안 쏩니다. 시간 멈추면 되는데, 총을 왜 쏩니까? 바보같이.”

“지금은 못 멈추시면서!”

티격태격하는 둘을 보며 아후라 마즈다는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었다.

저렇게 바보 같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듣고 있어도 그는 방심하지 않았다. 메피스토가 시간을 끌고 유영민이 그 틈에 반드시 이쪽을 쓰러뜨릴 수단을 날릴 거라는 건 이미 눈치챘다.

‘어차피 시간은 이쪽의 편.’

시간을 천천히 끌면서 상대방의 결정타만 조심하면 그만이었다.

제우스나 오딘, 그 외 다른 녀석들은 싸움에 져서 죽어 버린 것 같지만, 그는 달랐다.

‘나는 방심 따윈 하지 않는다. 비장의 총알이 있다면, 그것을 피하면 그만이야.’

아후라 마즈다는 빛의 속도로 움직이며 계속 시간만 끌었다. 빛으로 변해 움직일 때는 공격을 할 수도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런 단점을 무색하게 만들면 그만이었다.

‘평생 방아쇠를 당겨도 이쪽을 맞추지 못할 거다.’

인간 주제에 신을 경계하게 만드는 것은 상당히 건방진 일이었지만, 아후라 마즈다는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다른 찬탈자 녀석들이 하나둘 죽어간 지금 그에겐, 살아남기만 하면 더 많은 권력을 쥘 수 있는 기회가 다가오는 거니까.

그때를 위해서라면 지금의 짜증은 그저 순간의 인내로 넘어가 줄 수 있다.

아후라 마즈다는 곧바로 거대한 빛의 기둥을 쏘았다.

메피스토는 유영민을 데리고 공간을 도약해서 먼 곳으로 이동했다.

멀리서, 자신들이 조금 전까지 있던 곳에 거대한 폭발과 함께 버섯구름이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이쪽을 업신여기는 것 같지는 않네요.”

“흠. 그렇군요. 블러핑도 먹히지 않다니.”

여전히 이쪽을 경계하며 적당한 공격만 날리고 치고 빠지는 아후라 마즈다를 보며 둘은 작전이 실패했음을 깨달았다.

일부러 못 미더운 모습을 보여서 방심을 유도하려고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아후라 마즈다가 이성적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제우스와 오딘 등등. 다른 성령들이 죽은 것에 나름 위기감을 느낀 거겠죠.”

“그러면 이제 어쩌죠?”

“뭘 어쩝니까. 방법은 하나뿐인데요.”

“그게 뭔데요.”

“총으로 빛을 쏴 맞추는 것.”

“……그거 진심으로 한 소리였어요?”

유영민은 제정신이냐고 물었지만, 메피스토는 진심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어떻게요?”

“보는 겁니다. 빛이 아닌, 그 빛이 도달하려는 공간 그 너머를.”

공간 너머를?

사실상 미래를 예지하고 쏘라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적어도 맥스웰의 악마가 있었다면 이런 상황을 길게 고민하지도 않았을 거다. 확률 조정, 0%에 가까운 그런 극악의 확률을 현실로 불러올 수만 있다면 해 볼 만했을 테니까.

하지만 맥스웰조차 없는 지금의 유영민에겐 그것은 불가능한…….

“가능합니다. 제가 보장하죠.”

“제가, 정말 가능하다고요?”

“네. 가능합니다. 계속 보라는 것도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찰나의 순간. 0.1초도 되지 않는, 아주 약간의 시간이죠. 그거면 충분합니다.”

“……알겠어요. 해 볼게요.”

“좋습니다.”

어느덧 이쪽의 위치를 파악하고 멀리서 빛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기회는 단 한 번. 심지어 그 기회로 만들 수 있는 타이밍은 아주 짧은 데다가, 가능성도 극히 희박하죠. 사실 말이 안 되는 작전이기는 합니다.”

“……지금 기운 내라고 하는 소리 맞죠?”

“그래도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런 걸 가능하게 했던 남자의 등을 봐 왔으니까요.”

“…….”

이쪽을 보며 미소 짓는 메피스토를 보며, 유영민은 할 말을 잃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어서, 오히려 실소마저 흘러나올 지경이다.

그래. 그랬지. 고작 이런 곳에서 무너지려고, 5년이라는 세월을 버텨 온 게 아니었다.

“합시다.”

“좋은 마음가짐입니다.”

동시에 하늘에서 빛이 떨어졌다.

악마와 인간에게 벌을 내리기 위한, 신의 심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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