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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445화 (445/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445화

칠마흑천신공은 서수민이 천마였던 시절에 만들어 낸 무공이다.

그때의 그녀는 천하제일을 넘어 고금제일의 무인이라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런 서수민이 만들었던 칠마흑천신공은 하늘과 땅을 울리기 충분한 것이었고, 이것만으로도 극락정토의 성령들은 그녀의 힘을 두려워 해 그녀가 탈마의 경지에 이르는 타이밍을 노려 다른 세계로 보내 버렸다.

전부 익히게 된다면 손으로 별을 거머쥘 수 있다는 신공절학.

서수민이 유현에게 한 말은 전혀 과장되지 않았다. 실제로 이 힘만으로 어지간한 성령들은 가볍게 쓰러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부족하다.

일반적인 성령들을 상대로 강한 힘을 선보이지만, 그보다 훨씬 더 대단한 천외천의 존재들에게 칠마흑천신공은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던 것이다.

“이봐! 움직임이 느려졌잖아!”

마라 파피야스가 양팔에 암흑기를 두르고 서수민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항마멸신혼천공(降魔滅神混天功).

흉사진군(凶蛇進軍).

뱀의 형태를 한 무수한 검은 그림자가 유성처럼 쏟아지며 서수민의 급소를 노렸다.

서수민은 양팔을 휘두르며 날아오는 검은 그림자들을 모조리 쳐 냈다. 있는 힘을 다해 쳐 냈음에도 힘의 차이가 나서 겨우 빗겨 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내공을 두른 그녀의 두 주먹이 욱신거렸다.

‘최대한 힘을 흘려내는 것이 이 정도인가.’

서수민은 숨을 헐떡이며 마라 파피야스를 노려봤다. 녀석은 이쪽이 지쳤는데도 공격을 이어 나가기는커녕 오히려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언제든지 쓰러뜨릴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이쪽을 어떻게든 고통스럽고 괴롭게 만들겠다는 집요함까지.

‘진짜, 엉망진창인 존재로군.’

자신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타락하면 저렇게 된다고?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신빙성이 없는 것도 아니라서 괜히 입맛이 썼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만약 자신이 유현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 상태로 어떻게 살아남게 됐다면…… 그 최후는 분명 지금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 괴물과 판박이였을 테니까.

‘그러지 않은 것에 감사라도 해야 하나.’

이런 상황에서도 그 남자의 얼굴이 떠오르다니. 나도 참 무를 대로 물러졌군.

서수민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요동치는 기운을 통제했다.

“뭐 해? 어서 안 덤벼?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써서라도 덤비란 말이야!”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

잡생각은 여기까지만 하자.

지금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눈앞의 마왕을 어떻게 쓰러뜨릴 지다.

마라 파피야스는 자신이 사용하는 칠마흑천신공에 대해서 훤히 꿰고 있었다. 아무렴, 같은 창시자인데 그걸 모르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니겠는가.

설상가상으로 무공의 발현원리를 꿰고 있는 것을 넘어서, 그것에 대해서 완벽한 파훼법까지 준비해 놓았다.

‘역시 나인가.’

서수민은 자신이 정말 대단한 재능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타고난 무의 자질. 그것을 넘어선 오성.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전수받지 못한 무공을, 새롭게 창조해내는 대종사를 뛰어넘는 압도적인 재능.

주관적인 것을 넘어, 객관적으로도 서수민은 세기의 천재라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녀 스스로가 자신만만하게 자신을 천재라 칭한다 해도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

천마였던 시절부터 지녀 온 강대한 자아가, 한 번의 위기를 넘어서서 그야말로 완성형까지 뻗어 나간 지금.

서수민은 언제 어느 순간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어쩌면 처음으로 질지 모르는 지금 순간에서도.

‘녀석은 이미 내가 사용하는 무공의 파훼법을 제대로 꿰차고 있어.’

그렇다면 이쪽이 해야 할 일은 그 반대다.

혼천공이 흑천신공의 상위호완이라면, 이쪽은 그 혼천공의 상위호완을 만들면 그만이다.

가능한가? 목숨을 위협받는 이 치열한 상황 속에서,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상대방과 부딪치면서 무공을 창시한다는 것이?

‘가능하다.’

나는 가능하다.

다른 녀석들은 안 되겠지만, 나는 가능하다.

왜냐면 나는.

쿠구구궁───!!!

“호오.”

안정되어 가라앉았던 서수민의 내공이 다시 바깥으로 뿜어져 나온다. 그녀의 몸 위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나더니 하늘을 향해 불꽃처럼 솟구쳤다.

하늘이 떨리고 땅이 흔들렸다. 기운을 개방했을 뿐인데도 주변 세계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오직 마라 파피야스만이 팔짱을 낀 채로 흥미로운 시선을 보냈다.

“드디어 전력을 다할 생각이구나?”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던 검은 아지랑이가 이윽고 비처럼 쏟아졌다.

쏴아아아.

검은 비가 내렸다. 마라 파피야스는 혼천공의 기를 주위에 둘러 검은 비를 우산처럼 막았다.

이건 빗방울 하나가 고도로 압축된 강기와 모든 것을 파괴하는 의념이 모여서 만들어진 에너지의 집합체다.

그것을 증명하듯, 주위에 얼씬거리던 엘로힘이 하늘에 내리는 검은 비를 맞더니 0.1초도 버티지 못하고 구멍이 뻥뻥 뚫린 채 소멸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이것은 그저, 기술을 펼치기 위한 ‘준비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다.

“준비 단계라 쳐도 이 정도의 위력. 아무래도 지금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밑바닥까지 싹 다 긁어모은 것 같네~. 진심을 다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걸 겨우 깨달은 거야? 그래도 멍청하진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야.”

마라 파피야스는 서수민을 비웃었다.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죽는다지만, 그렇다고 전력을 다해 싸운다고 해서 살 수 있을 리가 없다.

이쪽이 사용하는 무공은 그런 것이다. 칠마흑천신공을 넘어서 개량에 개량을 거듭해 더욱 강해진 무공.

원초를 집어삼키고, 그것을 거름으로 삼아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한 모든 무의 집대성.

스멀스멀.

바닥에 내린 검은 비가 서수민을 향해 몰리듯 빨려 들어갔다.

발목부터 해서 무릎, 허리, 이윽고 머리까지 전부 검은 비를 뒤집어쓴 서수민의 모습은…… 마치 검은 장포를 입은 신처럼 보였다.

칠마흑천신공 제 칠마(七魔).

마신(魔神).

가면의 틈새로 새하얀 머리카락이 흘러내린다.

조금 전에 내리던 검은 비는 전부 서수민의 몸을 두른 옷이 됐다.

펄럭! 바람이 불지도 않았는데 그녀의 등 뒤로 검은 장포가 크게 나부꼈다. 서수민의 의지에 반응한 장포는 평범한 옷이 아니었다.

마라 파피야스는 그 광경을 보며 실실 웃다가, 곧바로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조금 전까지 마라 파피야스가 있던 자리를 거대한 검은 천들이 창처럼 꿰뚫었다.

“모든 힘을 끌어모아 사용하는 마신이라.”

가지고 있는 힘을 모두 사용하는 마신은 순간적으로 강력한 전력을 선사하지만, 그만큼 부담이 큰 기술이었다.

그래서 마신을 펼친다면 일부 여분의 힘을 남겨서 펼치는 것이 정석이었다.

있는 기력을 모두 쥐어 짜내면서 사용하면, 그 뒤에 다가올 후폭풍은 그 무엇보다도 거대할 테니까.

“그렇다면 이쪽도 똑같이 나서 줄게!”

항마멸신혼천공 오의.

혼세구현(混世具現) 멸신(滅神).

마라 파피야스의 몸이 검은 진흙으로 뒤덮인다. 서수민의 마신이 광오한 무인으로서의 면모를 선보였다면, 멸신은 인간이 아닌 괴물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갑옷을 입은 것처럼 덩치가 불어나고, 얼굴이 있어야 할 부분에 괴물의 주둥이가 대신했다.

검은 진흙의 사이로 붉은 안광이 폭사했다.

쿠웅!

마라 파피야스가 지면을 구르자 그녀의 뒤로 수 킬로미터의 땅에 거미줄 같은 금이 갔다. 동시에 거대한 폭풍이 휘몰아쳤다.

마라 파피야스의 신형이 사라진다.

서수민은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마라 파피야스를 보며 자세를 잡았다.

대기가 떨린다. 공격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이쪽을 향해 접근하고 있을 뿐인데도 세계가 울부짖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피할 수 없었다.

서수민이 주먹을 내지르고, 마라 파피야스도 주먹을 내질렀다.

마신과 멸신. 두 기운이 충돌했다. 쿠웅! 맞닿은 주먹 사이의 공간이 뭉텅 휘어졌다. 그것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 둘 주위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거대한 힘의 충돌을 버티지 못한 풍경의 소멸. 그것은 마치 모든 이야기를 분쇄해 버리는 책벌레의 그것을 닮아 있었다.

“하하하! 약하다고!”

첫 격돌에서 밀려난 것은 서수민이었다. 조금 전 충격으로 오른팔이 부러졌다. 주먹의 뼈는 마디마디가 전부 나가 버렸고, 근육은 찢어졌다.

마신을 두르고 있는데도 이 정도다. 반면 마라 파피야스는 다친 곳이 없이 멀쩡했다.

힘의 차이, 힘의 밀도, 그리고 기술의 정확도까지. 차이는 명백했다.

완벽 너머의 완벽이라고 할 수 있는 마라 파피야스의 멸신은 서수민이 생각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무공 같았다.

‘아니.’

흔들리려는 마음을 다잡고 이를 악문다. 조금 전 충격으로 내장이 상했던 걸까. 입안에 비릿한 피 맛이 맴돈다.

오른팔은 이미 맛이 간 상태. 그래도 억지로 움직인다.

으득! 부러진 뼈와 찢어진 근육 때문에 고통이 내달리지만, 이를 악물고 무시했다.

두 손끝에서 튀어나온 마기의 검이 허공을 가득 수놓았다.

“그걸로 되겠어?”

마라 파피야스는 서수민의 발악을 비웃었다. 서수민이 날린 참격은 그 어떤 것도 멸신의 방어를 뚫지 못한다.

서수민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거리를 벌리며 무수한 강기의 탄환을 쏘아 냈다.

“안 먹힌다니까? 괜히 힘만 빼는 거야?”

설마 위기감 때문에 머리가 어떻게 되기라도 한 걸까.

마라 파피야스가 서수민의 행동에 의문을 품을 때, 서수민은 멈추지 않고 자신의 모든 힘을 소모했다.

문득, 예전 그녀가 유현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선, 모든 것을 비워라.

유현에게 처음으로 칠마흑천신공에 대해서 전수해 주려고 했을 때.

서수민은 유현에게 가장 먼저 모든 것을 비우는, 즉 공(空)의 상태를 만들라고 했다.

무언가를 새롭게 받아들이기 위해서 아무것도 없는 순수함은 필수였다.

어떤 것도 적혀 있지 않은 종이에 뭐든지 적어 넣을 수 있듯.

이 비운다는 것은 시작하는 것 보다 우선되는 일이었다.

‘지금, 모든 것을 비운다.’

마신의 힘이 빠르게 소모된다. 그럴 때마다 눈앞이 핑 돌고 온몸에 고통이 작열했다.

몸 안의 모든 이야기를 없애고, 영혼까지 쥐어 짜내서 계속 내뱉는 기분.

비워라.

가지고 있는 모든 이야기를 사용한다.

비워라.

움직이지 않은 몸을 억지로 움직인다.

비워라.

그 상태로 나아간다.

‘모든 것을 쏟아부어. 비우고 비우고 또 비워서.’

만들어라.

상대방을 뛰어넘는, 최강의 힘을.

화악!

눈앞이 밝아진다. 서수민은 자신이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커다랗고 새하얀 도화지 위에 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의 앞으로, 그녀가 그토록 비우고자 한 마지막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건…….”

극락정토의 성령 출라판타카가, 마지막에 그에게 건네주었던 이야기.

제행무상(諸行無常).

우주 만물은 항상 유전(流轉)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바뀌기 마련이다.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악이라 하더라도, 결국엔 바뀌는 것이었다.

출라판타카는 그 깨달음을, 그리고 믿음을 얻었기에 죽기 전 서수민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줬다.

미안했다고. 그리고 너라면 바뀔 수 있다고.

“그렇구나.”

여긴, 내가 깨달음을 얻은 끝에 도달한 곳.

인지 너머의 세계.

서수민은 마지막까지 남겨진 제행무상 이야기마저도 전부 버렸다.

천마로서의 힘도, 칠마흑천신공도, 가지고 있는 이야기도 모두 다 버렸다.

그렇게.

비로소 서수민은 완전한 자유와 함께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다.

“무, 슨?”

이쪽을 향해 공격을 퍼붓다가 힘이 다해 멈춰 버린 서수민을 보며, 마라 파피야스는 이 싸움을 끝낼 생각으로 그녀에게 다가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마신이 해제된 그녀의 모습을 보고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 갑자기 그녀의 주위로 넘실거리는 새하얀 기운을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저게 대체 뭐지?

서수민이 지금까지 사용했던 검은 강기와는 방향을 달리하는 기묘한 힘이다.

그것이 위험이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그녀의 본능은 저 새하얀 힘으로부터 멀어지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내가? 겁을 먹었다고?’

그럴 리가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라 파피야스가 자신의 행동에 당혹감을 품는 사이, 완전히 새롭게 각성한 서수민이 눈을 떴다.

보석을 박아 넣은 것 같은 검은 눈동자가 총명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별거 아니다.”

서수민은 어느덧 재생된 오른손을 가볍게 쥐었다 피며, 가볍게 말했다.

“그저 너를 뛰어넘을 새로운 힘을, 방금 막 만들었을 뿐이니까.”

“뭐? 장난하는 거지?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아니. 가능하다. 왜냐면 나는 천재거든.”

살포시.

무엇보다 감미로운 미소를 지으며, 서수민은 마라 파피야스에게 한 떨기의 꽃처럼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지금이라면 널 확실히 쓰러뜨릴 수 있겠다고.”

“감히……!”

멸신을 두른 마라 파피야스가 서수민을 향해 달려들었다.

자신보다 한참을 덜 산 인간 주제에, 감히 완성형인 자신을 쓰러뜨릴 수 있다고 장담을 해?

“방금 그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 짓이었는지 깨닫게 해 주마!”

머리를 터뜨리기 위해 주먹을 뻗는다. 싣는 힘은 최대로. 단지 주먹을 내지르는 것만으로 모든 생물체를 텍스트 단위로 분해시켜 버리는 가공할 힘이다.

턱.

그런데 그것이, 서수민에게 막힌다. 너무나도 손쉽게.

자신이 두른 검은 진흙이, 서수민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새하얀 기운을 뚫지 못한 것이다.

“과연. 이게 혼천공의 진짜 위력인가.”

“너…….”

“지루할 정도로 별거 아니었구나.”

그것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버린 마라 파피야스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완전히 박살 내는 말이었다.

“닥쳐어어어어어!!!”

괴물의 얼굴로 울부짖는 마라 파피야스를 무심하게 바라보며, 서수민은 손으로 마라 파피야스의 복부를 가볍게 툭 쳤다.

그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롭게 깨우친 새하얀 힘.

백공권(白空拳).

파사삭!

서수민의 손이 닿은 부분을 기점으로, 마라 파피야스의 몸이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말도 안 돼…….”

“네 패배다.”

“나는…….”

천천히 뒤로 쓰러지는 마라 파피야스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손을 잡아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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