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443화
“젠장. 미카엘 녀석. 겨우 좀 도와주나 했더니 날 내팽개치고 다른 데로 가 버리는 거냐?”
홀로 비슈누와 맞서게 된 마몬은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진 미카엘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고열 에너지 빔을, 거대한 동전을 집어 던져 방패 삼는 것으로 막는다.
“아이고 이게 얼마짜린데. 고맙다는 인사는 못 할망정 냅다 사라지다니. 이래서 천사 녀석들은…….”
마몬 또한 1세대 성령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부를 축적하는 데에 특화된 자신과 비슈누는 결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렇게 마주 보고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둘을 같은 1세대 성령이라는 카테고리에 넣을 수는 없었다.
“쯧. 사탄 녀석에게 진 빚을 갚으려고 이러고는 있다지만, 나도 참 머리가 어떻게 돼 버린 모양이야.”
마몬은 돈과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지 하는 독종이다. 혼성계 내에서도 마몬에 대한 소문은 파다하게 터졌을 정도로 돈에 대한 애착이 깊었다.
돈에 대한 관계 하나만큼은 상대가 누구라도 절대로 봐주지도, 타협하지도 않는 마몬은 어떻게 보면 만인에게 평등한 기이한 악마였다.
빌려준 돈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확실하게 돌려받지만, 반대로 빚을 지더라도 확실하게 되갚는 것이 그의 신조다.
먼 과거에 마몬은 사탄에게 빚을 진 적이 있었다.
지금 이렇게 싸우는 것은 결국 그때 진 빚을 갚는 것이었다.
“싸우는 데 상당히 말이 많구나 만마전의 군주여.”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빛의 기둥을 피하며 마몬은 입을 쉬지 않고 나불거렸다.
“너 같으면 안 그러냐? 젠장.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싸우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악! 빌어먹을 천사들! 천벌 받을 거다!”
“천벌이라니. 말씀이 좀 지나치시네요.”
등 뒤로 뜨거운 열기가 확 끼쳐 왔다. 마몬은 혹시 새로운 적의 출현인가 기겁해서 뒤를 돌봤다.
거기에 있는 것은 불타오르는 날개를 펼친 채 이쪽을 무심하게 노려보는 한 천사였다.
순간, 굳었던 마몬의 표정이 풀어졌다.
“하나님의 불꽃, 우리엘인가. 설마 방금 그 말 들었어? 내가 말이 좀 심했지?”
“애초에 악마인 당신에게 그런 걸 기대하지는 않았지만요.”
“도우러 와 준 거야? 이거 눈물 나게 고마운데.”
“하아. 저도 그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우리엘은 다른 곳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천사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상황에서 천사고 악마고, 에덴이고 판데모니엄이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세상을 위해 싸운다면 다 같은 전우인 셈이죠.”
“하하하. 탁월한 선택이야. 그러니 저 괴물 같은 녀석을 막아 주라고!”
비슈누는 우리엘의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대천사 우리엘인가.”
그녀에 대한 소문은 비슈누 또한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대성군 에덴의 천사 중에는 시바와 맞먹는, 엄청나게 강력한 천사가 있다고.
싸움의 천사.
대부분 거기서 미카엘을 떠올리겠지만, 실상은 달랐다.
오히려 진정으로 강력한 천사는 모든 것을 불사르고 파괴해 버리는 칼을 휘두르는 존재.
인도신화의 시바에 맞먹는 우리엘이었다.
단순히 적을 압도적인 화력으로 없애 버린다는 부분에서 거울을 보는 것처럼 일맥상통했으니까.
“쯧. 이럴 땐 시바의 도움이 필요했을 것을.”
우리엘이 그녀의 깃털로 소돔과 고모라를 지웠듯이.
시바는 트리슈라로 철, 은, 금의 도시를 지웠다.
파괴와 파괴. 화력과 화력. 진정 힘에 의한 싸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정작 지금 시바는 다른 성령과 싸우며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 상대는 무려 투전승불이 된 제천대성.
여의금고봉이 없어서 시바가 유리하다고는 하지만, 제천대성 말고도 다른 성령이 더 섞여 있었다.
칠대성을 비롯해 싸늘한 냉기를 뿜어내는 이름 모를 성령.
도움을 바라는 것은 힘들겠지.
“뭐, 좋다. 이 지루한 싸움에 조금은 즐거운 여흥이 되겠구나.”
“저는 여흥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요.”
즐겁다는 듯 웃는 비슈누의 말에 우리엘은 차갑고 싸늘하게 대꾸했다.
누구보다도 뜨거운 불꽃을 다루는 그녀이지만, 성격은 남극의 빙하보다도 차가웠다.
비슈누는 그 모습이 참으로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어디 한번 누가 훨씬 더 강한지 싸워 보자. 에덴 최강의 화력.”
“칭찬은 감사히 받죠. 리그베다의 주신.”
허공에서 뜨거운 불꽃과 새하얀 뇌전이 충돌했다.
마몬은 기겁해하며 뒤로 물러났다.
‘메피스토 이 자식은 어디로 간 거야!’
애꿎은 메피스토를 찾으면서.
* * *
“젠장! 여기서 벗어나!”
“저 둘의 싸움은 미쳤어!”
엘로힘이 무수한 폭격을 쏟아 내는 와중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싸움은 더러 존재했다.
오히려 이 둘의 싸움이 만들어 내는 여파가 워낙 강력해서 근처에 다가가던 엘로힘조차도 그 힘의 파동에 맞아 사라지고 말 정도였다.
연합군도 로고스의 하수인들도 모두 기겁해서 도망치듯 거리를 벌렸다.
“하나는 올림포스 최강의 전력이라 일컬어지는 헤라클레스라고는 하지만, 다른 하나는 군주 연합에 소속된 군주, 그것도 인간일 텐데.”
멀리서 벌어지는 폭풍에 지휘관 중 하나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렇게 대등하게 싸우다니.”
지금 헤라클레스와 싸우고 있는 것은 시화속의 괴물도, 그에 상응하는 1세대 성령도 아니었다.
인간.
고작 인간이 그 헤라클레스와 대등하게 맞서 싸우고 있었다.
“확실히, 지난번보다는 강해졌구나.”
몽둥이로 검을 튕겨 내면서, 헤라클레스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분명, 그때 싸웠던 최도윤은 이 정도까지 수준이 아니었다. 인간치고는 강했지만, 자신에게 대적하기에는 한 발짝이 부족했던 수준.
그런데, 못 보던 사이에 최도윤은 자신에게 맞설 수 있는 대등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아니, 정확히는 급화를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빠르게 터득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미숙해.”
헤라클레스는 몽둥이로 허공을 누비는 검을 모조리 부쉈다.
이 검이 자신의 몸에 큰 상처를 입힐 수 있는 힘을 지녔지만, 결국 그게 전부다.
모조리 다 쳐 내거나 박살을 내 버리면 그만인 것. 불사에 가까운 육체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다른 부분은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
“미숙?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최도윤은 다시 허공에서 무수한 검을 뽑아냈다. 종류도 모양도 제각각인 검들은 오직 최도윤의 의지에만 반응해, 적을 죽이기 위한 공격을 이어 나갔다.
헤라클레스는 코웃음 치며 최도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가 손을 휘저을 때마다 검들이 부서지며 허공에 파편을 뿌렸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건 오만이로군.”
헤라클레스의 거구가 최도윤의 코앞에 섰을 때, 그의 주위에 떠다니는 검은 한 자루도 남아 있지 않았다.
“고작 그런 장난감으로 나를 어찌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확실히 그렇군.”
최도윤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검의 감촉을 느끼며 헤라클레스를 향해 휘둘렀다.
카앙! 몽둥이와 검이 충돌했다. 거대한 힘겨루기와 함께 둘이 서 있는 대지가 쩍쩍 갈라졌다.
그러나 힘은 헤라클레스가 훨씬 더 우세했다. 최도윤은 점점 몸이 뒤로 밀려 나갔다.
“급화를 터득했다는 것은 분명 칭찬받을 만한 일이지만, 겨우 그것으로 원점에 선 셈이다. 자유롭게 다루지도 못하는 급화에 나보다 훨씬 떨어지는 육체 능력까지. 과연 그걸로 얼마나 내게 견딜 수 있을까.”
헤라클레스의 팔 근육이 팽창하듯 부풀어 올랐다.
최도윤은 눈을 부릅뜨며 검을 옆으로 기울였다. 이건 정면에서 못 막는다. 한다면 힘으로 흘려 내는 수밖에.
콰앙!
헤라클레스의 몽둥이가 검면을 타고 내려가 지면을 때렸다.
수백 미터가 넘는 모래 먼지가 일어나며 반경 수 킬로미터 단위의 땅이 갈라졌다.
최도윤은 후속타를 넣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팔에 힘이…….’
대부분의 힘을 흘려 냈음에도 손목이 저릿했다. 근육이 찢어진 건가.
그의 육체 능력은 인간의 수준에서도 단연코 최강이라 할 만했지만, 상대는 신대의 거신들 조차도 몽둥이로 때려잡던 최강의 영웅.
육체 능력의 격차는 아이와 어른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는 것이었다.
“도망치는 거냐?”
작전상 뒤로 물러나는 최도윤을 보며 헤라클레스가 이죽거렸다.
거리를 벌린다면 그거대로 상관없는 일. 헤라클레스는 곧바로 활을 손에 쥐었다.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 과정조차 담겨 있지 않은 속사가 이어졌다.
허공을 누비는 것은 9갈래의 빛.
과거, 신대의 괴물인 히드라의 아홉 머리를 동시에 꿰뚫었다는 그의 활 솜씨가 한 명의 인간을 향해 펼쳐졌다.
최도윤은 이를 악물며 검을 소환했다.
단 하나의 검.
거대한 검면을 수직으로 세워, 그대로 방패처럼 몸을 보호한다. 그 위로 헤라클레스가 쏘아 낸 화살이 꽂혔다.
콰과과광!
화살은 단 하나의 검을 때리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하나 둘 셋 넷. 폭발이 하나씩 일어날 때마다 검에 금이 가며 칼날이 부서졌다.
다섯, 여섯, 일곱, 여덟.
8번째 화살이 정확히 단 하나의 검을 파괴했다. 그리고 그 틈새를 비집고 날아가는 것은 마지막 9번째 화살.
“끝이다.”
헤라클레스의 선고와 함께, 마지막 화살이 최도윤의 심장을 꿰뚫으려는 순간.
허공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뚝 떨어져 내렸다.
최도윤의 앞에 나타난 그는 손에 쥔 검을 휘둘러 마지막 화살을 베어 냈다.
반으로 잘린 화살이 허공에 팽그르르 돌다가 볼품없이 떨어졌다.
펄럭. 허공에 흩날리는 것은 검은 망토. 그리고 헤라클레스의 마지막 화살을 베어 낸 것은 얼굴에 검은 헬름 투구를 끼고 있는 기묘한 존재였다.
“너는…… 누구냐.”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비장의 일격을 막아 낸 상대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갑자기 싸움에 끼어든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조금 전에 보여 줬던 검술의 날카로움과 정확도는 그의 안목을 상당히 웃도는 것이었다.
“이거 참. 저도 원래 나설까 말까 참 많은 고민을 했었는데 말이죠.”
헤라클레스의 화살을 튕겨 낸 존재.
천체주식회사 전 시화실 소속 텔러 로믈락시스.
“그래도 모처럼 여기까지 온 기회가 별로 없었던 걸 생각하면, 저라도 도와야겠다 싶더라고요.”
천체주식회사가 문을 닫는 것과 동시에 모습을 감췄던 그가, 대전쟁이 벌어지고 나서야 다시 세상에 등장했다.
“천체주식회사 소속이었던 텔러, 로믈락시스라고 합니다.”
“너…… 평범한 텔러가 아니군.”
헤라클레스는 곧바로 로믈락시스가 여타 텔러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급화를 펼치기 위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이야기를 보는 눈이, 로믈락시스의 존재를 가볍게 훑었다.
로믈락시스는 본인을 텔러라고 소개했지만, 그의 진짜 정체는 텔러 따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한…….
“성령? 아니, 하지만 저런 성령이 있다고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그야 당연하죠. 저는 우주가 시작한 이래로 제 정체를 필사적으로 감추고 있었으니까요. 저에 대해서 아는 것은 우리 회장님밖에 없다고요.”
성령이면서도 텔러로 활동했으며, 그런 자신의 진짜 정체는 상사인 셀레스티나에게도 밝히지 않았다.
로믈락시스는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자신의 정체를 숨겨 오며 다른 존재로 활동해 왔다.
하지만, 이제 그것을 끝낼 때가 왔다.
“너…….”
로믈락시스를 더 살펴본 헤라클레스는, 그가 지닌 이야기가 누군가와 흡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장 비교를 할 것도 없었다.
로믈락시스의 이야기는, 지금 그가 목숨을 구해 준 최도윤의 그것과 매우 흡사했으니까.
마치 최도윤이 저기서 더 발전하면, 혹은 성령이 된다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로믈락시스는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검지를 들어 올려 자신의 헬름 투구 앞에 가져다 댔다.
“쉿. 중요한 순간에 나타난 히어로의 정체를 눈치 없이 밝히는 짓은 미덕이 아니죠.”
“……그런가.”
헤라클레스는 로믈락시스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길 원치 않는다는 것은 알았다. 어차피 적. 굳이 그가 원하는 대로 해 주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밝혀도 의미가 없는 짓이라는 것도 마찬가지.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에게 상대해야 할 적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일어나세요.”
로믈락시스는 손을 뻗어 최도윤을 일으켰다.
“너는…….”
“지금은 겨우 급화를 막 터득한 단계라, 상대에게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없겠죠. 급화 하나만 제외하면 다른 부분은 전부 다 자격 미달. 그건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고 있을 테고요.”
“……그래서 뭘 어쩌려는 거지?”
“도와준다는 겁니다.”
“네가? 대체 왜?”
“뭐, 저도 이제 이렇게 반복되는 세상은 지긋지 하거든요. 물론 근본적인 원인인 로고스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겠지만,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게 전부인지라.”
무엇보다도 이 싸움에 끼어드는 데는 명백한 이유가 하나 있었다.
“그래도 꼴에 검의 군주인데, 고작 반신 하나에게 지면 그거대로 쪽팔리잖아요?”
“그걸 왜 네가 쪽팔려 하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군.”
“뭐, 모르면 모르는 대로 살면 되는 거고요.”
최도윤은 이 경박한 녀석이, 과연 자신을 제대로 도와줄 수 있을지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지어 보였다.
로믈락시스는 그런 최도윤에게 어깨를 으쓱이는 거로 대신했다.
어차피 능력은 조금 전 그의 목숨을 구해 주면서 충분히 보여 줬다.
“……어쩔 수 없군. 잠시 힘을 빌리겠다.”
“오. 다른 사람의 도움을 이제 아무렇지 않게 받으시는군요. 혹시 뭐 본능적인 발작이나, 피부가 가렵다는 그런 증상은 없습니까?”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필요하면 도움을 받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렇습니까? 그게 ‘지금’의 당신이라면, 뭐…….”
함께 싸우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