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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441화 (441/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441화

하늘에서 떨어지는 죽음의 세례.

군주 위무혁은 대태도를 들어 올려 호신강기를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티티티팅.

엘로힘이 던진 무수한 창이 그의 호신강기를 때렸다. 위무혁은 이를 악물고 버텨 냈다. 호신강기로 다 흡수하지 못한 충격이 몸을 때렸고, 앙다문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위무혁 뿐만 아니라 조를 이루던 연합군은 서로 뭉쳐서 최대한 방어에 힘을 썼다.

그러나 제대로 뭉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고, 그들의 최후는 끔찍했다.

반투명한 호신강기의 바깥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위무혁의 망막에 그것들이 비췄다.

창에 찔리고 폭발에 휩쓸리며 전신이 찢겨 나가고, 그대로 텍스트의 조각이 되어 흩어진다.

위무혁은 죽어 가는 사람들을 보며 몸을 떨었다.

그가 저 사람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적어도 지금 지키고 있는 사람들만큼은.’

호신강기를 펼치는 위무혁의 뒤로 수십 명의 사람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다른 건 못해도 저들만큼은 지켜 내겠다고 다짐했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내게 더는 지킬 것은 남아 있지 않은데.

‘나는…….’

사랑하는 딸과 아내가 죽은 이후로, 그는 삶의 목적을 상실했다.

혼성계에서는 이야기만 있으면 죽은 사람도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 그것만 철썩같이 믿으며 사상세계를 이용해서 아내와 딸을 다시 만나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현실을 택했다.

이제 다시는 아내의 손을 잡을 수도 없고, 딸아이를 안아 줄 수도 없었다.

더는 지킬 것이 남아 있지 않았는데.

그래도 싸우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이 세상이 싸움을 강요한다. 누군가 싸우지 않으면 누군가가 죽는다고.

그래서 죽게 하지 않기 위해 그는 다시 무신으로서 검을 쥐었다.

‘나는 더 강해졌어.’

그때보다. 텍스트 슈뢰더를 터뜨려 힘을 대거 소실한 이후에 노력해서 더욱 강해졌다.

단지 지키기 위해서였다.

뒤를 돌아본다. 보이는 것은 자신의 등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그중에는 아직 어린아이들도 섞여 있었다. 힘이 있기에, 최소한의 전력이 되니까 전쟁터에 참가한 아이가.

그래.

지켜야 할 가족이 없음에도, 그에겐 여전히 지켜야 할 것들이 남아 있었던 거다.

‘이제 더는 잃지 않아.’

그러기 위해서 이 자리에 섰다.

하늘을 뒤덮은 것은 더욱 많아진 절망들. 그것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연합군의 전력으로도, 저만한 수의 적들은 이기기 힘든 것이니까.

그래도 싸워야겠지. 적어도 이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만 있다면.

포기하지 말고 나아가자.

그 남자라면 이 순간에 그렇게 했을 테니까.

* * *

[흠?]

전장을 내려다보던 로고스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저들에게 풍겨 오는 절망의 농도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옅다.

이 정도의 전력을 드러내며 한꺼번에 몰아세운다면 분명 지리멸렬하게 사분오열해서 무너질 거라는 것이 그의 계산이었는데.

분명 피해는 크지만, 이상할 정도로 포기하려는 녀석들의 숫자가 적다.

왜지?

설마 이것도 그 의외성 때문에 벌어진 일인가? 거기서부터 굴러온 눈덩이가 여기까지 불어난 거고?

[아니 됐다. 그게 뭐든 상관없는 일.]

세상에 의지만으로 되는 일 따위, 있을 리가 없다.

이 세상을 만든 것은 그다. 그는 자신이 만든 것 외에는 허락한 적이 없었다.

절망이 적은 것은 신기한 일이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죽는다는 미래는 변하지 않을 테니까.

[그보다…… 파편이 하나 부족하군.]

유현에게서 회수한 코덱스의 페이지.

그 끄트머리가 아주 작게나마 잘려 나가 있었다.

단 하나의 조각. 그것을 미처 회수하지 못한 거다.

코덱스의 주인인 내가 고작 파편 하나를 놓쳤다고? 아직 미처 회수하지 못한 하나가 있었다는 건가?

로고스는 자신의 책 안에 잠겨 버린 한 존재를 떠올렸다.

강유현.

녀석이 아직 하나의 파편을 지니고 있었다.

[……뭐, 상관없겠지. 어차피 심연으로 빨려 들어간 녀석은 나오지 못할 테니까.]

그 안에서 존재조차 소멸당해 양분이 되고, 그가 지니고 있는 마지막 파편 또한 다시 자신의 손으로 돌아올 것이다.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저 약속의 순간까지 걸리는 시간만이 약간 지체됐을 뿐.

그러니 그때까지 구경이나 하도록 하자.

유일하게 가능성을 지녔을지도 모를, 지금 우주의 끝을.

* * *

“크하하! 펜릴! 이 광경을 봐라!”

허공에서 슬레이프니르를 타고서 창을 내지르는 오딘.

그가 이를 드러내며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에 맞서는 권지아의 아래에 펼쳐지는 것은 붉은 지옥도였다.

“로고스에 대항하겠다는 너희들의 최후란 결국 이런 것이다!”

“닥쳐!”

보랏빛 늑대의 입이 오딘을 향해 들이닥친다. 모든 것을 물어뜯고 삼켜 버리며 종국에는 자신마저 파멸로 이끈다는 포식의 입.

오딘은 궁니르를 내질러 그것을 터뜨렸다.

투레질한 말이 허공을 내달리다가 잠시 자리에 멈춰 섰다.

“강유현이라고 했나? 녀석이 재단의 안쪽까지 들어간 것은 분명 나도, 제우스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하지만 그 이후의 꼴을 봐! 결국 녀석은 실패한 거다! 로고스에게 맞서겠다고? 이 세계의 창조주에게?”

그 결과가 대체 뭐란 말인가.

한 척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재단의 요새가 무려 다섯 개나 더 추가됐다.

거기서 쏟아져 나오는 엘로힘과 새롭게 추가된 집정관들까지.

연합군의 전력이 온전했어도 절대로 상대할 수 없는 강하고 거대한 물량의 세례는 이 세상을 지워 버리기 충분할 정도다.

“고작 인간 따위가 분수에도 맞지 않는 짓을 하니까 이런 거다!”

위대한 성령들. 그중에서도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1세대 성령들조차 로고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자존심이 상한다거나 그런 문제가 아니다. 이 세상에서는 그게 당연한 것이었다.

반고불변의 이치, 진리(眞理)를 상대로 토를 다는 것은 멍청이들이나 하는 짓이니까.

오딘은 그런 멍청이들이 싫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목소리만 큰 녀석들. 대의를 읽지 못하는 녀석들. 숙여야 할 때를 모르고 항상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녀석들.

하찮은 버러지 같은 인간들.

“버러지면 버러지답게 바닥을 기어 다니면 되는 거라고!”

오딘은 인간이 싫었다.

딱 봐도 불가능한 일에 거침없이 도전하는 그들의 행동은 그가 보기엔 너무나도 어리석었다.

어차피 해도 안 되는 거, 왜 그렇게들 필사적인 걸까.

그저 자기처럼, 주어진 자리에만 만족하면서 사는 것만으로 부족했던 걸까?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건방지다.

너무나도 건방져.

“그러니까 너희들은, 항상 실패만 반복하는 거다!”

콰앙!

권지아가 뽑아 든 검과 오딘의 창이 허공에서 수차례 충돌했다.

거대한 충격파가 퍼지며 가까이 있던 엘로힘들이 휩쓸려 분쇄됐다.

“펜릴! 아니, 책갈피의 소유자여! 결국 너의 그 발악도 무가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왜 모르는 건가! 어차피 실패할 일에 그렇게 기를 써 가며 목숨을 던져도 의미가 없다는 걸!”

“시끄러워! 그런 건 해 봐야 아는 거잖아!”

펜릴의 힘으로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으니 다른 걸 사용한다.

권지아의 몸에서부터 일어난 검은 그림자들이 이윽고 짐승의 형태로 변해 오딘에게 달려들었다.

성경에서 나오는 짐승. 그것에서 비롯된 무수한 악의 군세.

666마리의 검은 짐승들.

퍼버버버벙!

오딘은 손에 쥔 궁니르를 현란하기 휘두르며 짐승들을 모조리 쳐 냈다.

붉은 섬광이 무수한 실선을 그리며 검은 진흙 같은 괴물들을 꿰뚫는다.

“펜릴에 이어 짐승의 힘마저 다루는가. 과연, 마그니가 왜 죽었는지 알겠군. 하지만 부족하다. 이것만으로도 부족해. 이 나조차도 뛰어넘지 못하는 주제에, 어찌 로고스에게 대항하려고 하는가.”

“그러니 지금 널 죽이고, 로고스도 죽이면 되겠지.”

권지아와 오딘.

둘의 신형이 가까워졌다 다시 멀어진다.

그사이에 오가는 것은 인지를 초월한 공격들. 공간이 뒤틀리고 허공에 무수한 폭음이 난무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남기는 상처를 뒤로하고 잠시간의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나를 죽이고 로고스도 죽인다? 하하. 책갈피의 소유자인 네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실패를 반복했는지 잊었나?”

“닥쳐. 이제는 달라.”

“함께 온 동료들을 믿는 건가? 웃기는구나. 그래. 너는 분명 다음 우주에서도 똑같이 기억을 유지한 채 살아가겠지. 이번에 벌어지는 일을 바탕으로, 더 나은, 더 확실한 선택을 내릴 수도 있고. 하지만 네 동료들이 그러할까?”

“…….”

회귀자라고 한다면 다들 부러워하는 특성이겠지만, 그것은 겪어 보지 못한 사람들의 푸념에 불과하다.

회귀자는, 특히 권지아의 경우에는 원하는 순간의 과거를 다시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반강제적으로 정해진 포인트를 반복하는 것이었으니까.

무엇보다 더 두려운 것은,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던 사람들이 회귀를 하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삶이라는 저주에 갇히고, 심지어 소중한 사람들은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 세계의 외톨이.

그게 바로 무한 회귀자였다.

권지아도 그 때문에 많은 상처를 입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도 깨달았다.

그러나 권지아는 오히려 웃었다.

“그러면 뭐 어때.”

그 남자를 만나면서.

그녀는 잊었던 과거의 자신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어. 지금의 일도, 이 세상에서 벌어질 일도.”

“하지만 다른 모두는 잊을 테지. 너와 함께했던 그 순간마저도.”

“그래도 상관없어.”

“뭐라?”

“그때는 다시 알려 주면 그만이야. 모르면 몰라도 돼. 하지만 나는 기억하고 있어.”

권지아는 왼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댔다.

심장의 고동 소리의 너머, 그녀가 지니고 있는 부서지지 않은 마음이 아직 남아 있었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강한 열기를 지닌 채로.

“내가 기억하고 있으니까,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다른 모두와 함께.”

“너…….”

“모른다고? 기억하지 못한다고? 그러면 때려 줘서라도 강제로 기억하게 만들 거야.”

“그 남자는 너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네가 어디 있는지 찾지도 못할 거다.”

“그러면 내가 찾아가면 돼.”

권지아는 털털하게 웃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나는 그를 찾아갈 거야. 그리고 말해 줄 거야. 내가 누구인지, 우리가 과거에 뭘 했는지.”

이 힘을 저주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분명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왜냐면 이미 수백 번이 넘도록 고통만 받아 왔으니까.

“하지만 이 능력 덕분에, 나는 다시 기회가 생긴 거니까.”

그러니 얼마든지 도전할 거다.

성공할 때까지.

분명 그 과정은 너무나도 험난하고, 또 언제 성공할지 모를 정도로 막막하겠지. 어쩌면 또 무수한 실패를 겪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그녀는 지금 와서 절실히 깨닫게 됐으니까.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야겠지. 지금까지 도달한 적 없는, 몇 없는 기회니까.”

권지아의 흔들림 없는 진심 어린 표정을 본 오딘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 갔다.

그녀의 반응은 그가 예상하던 것이 아니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짜증이 난다. 마음 깊은 곳에서, 인간을 향해 품었던 그 감정이 활화산처럼 요동친다.

오딘이 입술을 비틀며 이죽거렸다.

“누구도 너의 그런 행동을 이해하거나 받아 주지 못할 거다.”

“받아 주지 못해도 신경 쓰지 않아. 이건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오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불쾌하다.

불쾌하고 또 역겹다.

저 여인은 왜 포기하지 않는 건가. 어째서 제 분수를 인정하지 않는 건가.

‘어리석기 때문이다. 멍청하니까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는 거다.’

그게 정말일까? 정말 인간이 어리석어서 포기를 모르는 걸까?

진정 어리석은 것은, 그저 이 모든 것을 불가능이라고 치부하며 멋대로 포기해 버린, 자신들이 아닌가.

이번 시대에서 펜릴이라 불리던 녀석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지난 우주의 전대 오딘. 그는 자신보다 더 현명하고 진짜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지녔던 남자였다.

그는 자신과 다르게 인간을 높게 평가했다.

그들이 어쩌면 자신들도 이루지 못한 걸 달성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아니다!’

오딘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어두운 감정을 거세게 밀어냈다.

지금까지 잘 지내 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불안감이 드는 거란 말인가.

그래. 전부 저 여인 때문이다. 권지아가, 그녀의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자신에게 심마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으득.

“그래. 좋다. 그렇다면 어디 한번 해 봐라. 나, 찬탈자 오딘의 시체를 넘어서 로고스에게 도달해 보거라!”

이것은 시련이다. 과연, 이 하찮은 인간이 자신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시련.

그것이 역사고 그것이 신화가 아니겠는가.

신들은 언제나 인간에게 시련을 내리니까.

이것은 단지 그 연장선일 뿐이다.

* * *

꽈르르릉!

하늘에서 무수한 낙뢰가 떨어졌다.

눈으로 인지하는 순간, 곧바로 몸 위로 떨어져 내리는 엄청난 속도. 강혜림은 낙뢰의 전조를 느끼는 순간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허공에서 유려하게 몸을 뒤틀며 낙뢰의 틈새를 비집고 위험에서 벗어난다.

예술에 가까운 움직임에 고고한 아름다움까지.

낙뢰를 떨어뜨린 제우스가 그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오오. 아름답도다. 너무나도 아름다워. 이 어찌 멋진 자태란 말인가.”

“시……끄러워!”

강혜림은 제우스를 향해 달려들려다, 곧바로 움직임에 제동을 걸어 자리에 멈춰 섰다.

그런 강혜림의 정면, 그녀가 계속 달렸으면 지나갈 길목을 번개가 휩쓸고 지나갔다.

조금만 늦었다면 당하는 것은 이쪽이 됐을 터.

검이 닿지 않는 거리 너머, 제우스가 그녀를 보며 안타깝다는 시선을 보냈다.

“이제 그만 저항을 포기하는 것이 어떠느냐? 내 더 이상 아내 될 여인에게 손을 쓰는 것이 마음이 다 아프구나.”

“누구 맘대로!”

“아직도 모르겠느냐? 나는 진심을 다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공격은 그저 놀아 주는 것에 불과했던 거야. 왜냐고? 내가 진심을 내는 순간, 너는 그 자리에서 잿더미가 되어 사라질 테니까. 그러니 멈춰라.”

그러지 않으면 정말 죽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제우스는 진심이었다. 그는 그런 존재였다. 자신이 마음에 드는 여인에게 한없이 진심인, 그렇기에 더욱 악질일 수밖에 없는 성령.

강혜림은 숨을 헐떡이며 침을 퉤 하고 뱉었다.

“누구 맘대로.”

“떠나간 그 남자를 생각하는 건가? 그는 어차피 죽을 거다. 로고스에게 대항했으니 당연한 수순이지.”

“유현 씨는 돌아올 거야. 나랑 약속했으니까.”

“인간끼리 맺은 약속이라는 것은 그저 말뿐인 것에 지나지 않는가. 혼성계에서 그 언어의 힘이 강하다 하더라도, 결국 그뿐이다. 인간의 의지는 아무리 강해도 신에게 닿지 못해.”

“그러면 닿을 때까지 할 뿐이야.”

강혜림은 검을 들어 올렸다. 제우스는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했다.

쯧.

삿된 것에 눈이 멀어 무엇이 진정 중요한지 모르고 있구나.

그렇다면 조금 아프게 해서라도 현실을 깨우쳐 주게 만들 수밖에.

“조금 고통스러워도 원망하지 말도록.”

“누가 할 소릴.”

강혜림이 다시 달려든다. 제우스는 손가락을 까닥이는 것으로 대응했다. 조금 전에도 그걸로 충분했으니까.

그는 하늘의 신 제우스. 손가락을 조금 움직이는 것으로 거대한 전류의 폭풍이 주변 일대를 휩쓸어 버린다.

하르마게돈의 모래가 번개에 녹아내려 사라지고 그 밑에 대지를 드러나게 만들었다.

이윽고 대지조차 번개에 부서졌다. 갈라진 땅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바스러지며 사방으로 흩어진다.

강혜림은 그 사이를 누볐다.

‘아직도 쓰러지지 않았다고?’

제우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정도의 공격은, 인간을 뛰어넘은 초월자들조차도 도저히 견디기 힘든 공격이었을 터.

그런데 강혜림은 쓰러지지 않고 계속 나아가며 자신과의 거리를 좁힌다.

‘놀라운 일이지만 단지 그뿐. 아직도 거리는 멀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잠시.

강혜림으로부터 한 줄기 빛이 이쪽을 향해 쏘아져 나왔다.

그게 무엇인지 반응하기도 전에, 제우스의 뺨을 타고 따끔한 고통이 내달렸다.

제우스는 오른손을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댔다.

‘피?’

자신의 신혈이 손끝에 묻어 나왔다. 피는 이윽고 활자로 변해 사라졌다.

내가, 다쳤다고?

제우스의 믿기지 않은 시선이 강혜림을 향했다.

“어때? 방금 건 목을 벨 수 있는데 봐준 거야.”

“…….”

이쪽을 비웃는 강혜림을 마주하는 순간, 제우스의 얼굴에 여유가 사라졌다.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우며, 주위로 강렬한 정전기가 일어났다.

파지직!

“감히.”

깔끔하게 올백으로 틀어 올린 백발이 주위로 일렁인다.

허공에서 나풀거리는 그의 백발과 수염은 마치 수사자의 갈기 같았다.

“인간 따위가, 이 나를 봐줬다고 말하는 건가? 내 분노를 자초하는구나.”

쿠르르릉!

번개와 함께 대기가 울리고 공간 자체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떨린다.

제우스는 하늘을 향해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좋다. 그렇다면 이쪽도 더는 봐주지 않고 진심으로 가 주마.

“오라. 아스트라페.”

제우스가 작게 중얼거리자 그의 오른손 위로 눈부신 뇌정이 깃들었다.

뇌정은 창의 형태로 바뀌었다.

제우스의 주 무기인 아스트라페가 등장만 했을 뿐인데도 제우스 주위의 땅이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눈을 아프게 만드는 휘광과 그 열기.

다가가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는 그것은 마치 신의 자리에 도전하는 인간에게 내리는 벌과 같았다.

‘할 수 있을까?’

강혜림은 이를 악물었다.

사실 도발을 위해 한 말이었지, 조금 전 일격은 목숨을 끊기 위해 진심으로 날린 것이었다. 그것이 순간 빗나가서 목이 아닌 뺨을 그었을 뿐.

그 공격이 실패하고 제우스가 진심을 드러낸 순간, 그녀에겐 승기가 없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그래도 싸워야 한다고.

검을 놓을 수는 없다고.

그런 각오를 다짐하는 순간, 그녀의 등 뒤로 따스한 빛이 내려왔다.

“당신은……?”

“도우러 왔습니다. 그러니 눈앞의 적에 집중하세요.”

새하얀 날개를 펼쳐 주위의 열기로부터 자신을 지켜 주는 에덴의 성령, 대천사 미카엘.

그녀가 강혜림의 곁에 서며 말했다.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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