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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439화 (439/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439화

“대체, 왜 이런 짓을 벌이는 거냐.”

유현은 로고스를 다시 만나게 되면 꼭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궁극의 이야기가 대체 뭐라고, 그것을 위해서 이런 끔찍한 일을 자행하고 있는 거냐고.

우주를 몇 번이고 다시 지우고 새로 시작하면서.

거기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를 없애가면서.

[그때 말하지 않았던가. 궁극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그게 그만한 의미가 있냐고 묻는 거다.”

[흠? 오히려 내가 이해를 못 하겠군. 소설 작가가 자신이 써 나가는 이야기를, 굳이 엑스트라 하나하나 따위를 신경 쓰면서 집필하나?]

“뭐?”

유현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지금, 그러니까, 너한테는 이 혼성계에 살아가는 모두가…….”

[그래. 나한테는 고작 엑스트라 따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다.]

엑스트라.

이제는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 말이 유현의 가슴을 강하게 때렸다.

“지금…… 장난쳐?”

[나는 처음 세계를 이렇게 만들었다. 선택받은 몇을 만들고, 그들이 이 넓은 세계를 자유롭게 뛰어 놀도록. 그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었다.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졌으니까. 다만 거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지.]

로고스는 모든 회차를 기억하지 않는다. 다만 그래도 코덱스라는 거대한 책의 초기 페이지에 어떤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지는, 그 일부는 생생히 떠올릴 수 있는 법이다.

[엄청난 속도로 성장한 녀석들이 이윽고 하늘 너머의 자리, 내가 있는 곳까지 넘보더군. 내가 조금만 대응하는 것이 늦었어도 녀석들에게 자리를 빼앗겼겠지. 자신이 만들어 낸 인물들에게 자리를 빼앗기는 소설가라니.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때의 경험은 로고스에게 큰 깨달음을 줬다.

로고스는 이후 선택받은 몇몇의 인물들을 만들기보다는, 조금 더 광범위하고 다양한 인물들에게 더 작은 권한을 넘겨주는 방법을 택했다.

입체적인 인물의 수준을 죽인 채, 그 숫자를 늘리는 것을 통해.

우주는 군상극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것은 올바른 선택이었지. 그전까지 급진적인 속도로 특이점에 도달했던 세계가, 이후에는 더욱 완만한 속도로 흘러가게 됐으니까. 나는 더욱 많은 이야기를 수집할 수 있었고, 이런 이야기는 코덱스의 페이지를 가장 많이 장식하게 됐지.]

유일한 단점이라고 한다면 커다란 사건의 흐름이 없이 자잘한 사건들만 가득한 이야기만 가득해져서, 로고스의 시선으로는 사소한 변화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페이지가 쌓일수록 모든 회차를 전부 기억하는 것이 불가능해졌기에 로고스는 새로운 것을 만들기로 했다.

책갈피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전 우주와 이후의 우주, 세계와 세계의 변화를 측정하기 위한 계량기.

일정 순간마다 책갈피를 회수해서 거기에 적힌 이야기를 통해 변화를 읽어 내려 한 것이다.

[뭐, 그것도 나중에는 귀찮아져서 거의 방치하다시피 한 거지만.]

책갈피는 만들어진 이후 얼마 가지 못해 그 용도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하지만 로고스의 무책임함 때문에, 책갈피는 여전히 우주에 남아 반복하는 세계에 계속 남게 됐다.

책갈피의 소유주는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세계의 특정 순간을 기점으로 매 순간을 반복하게 됐다.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었다. 로고스가 우주를 반복하는 것을 끝내지 않는 한은 말이다.

아니면, 다른 ‘적합자’에게 기존 책갈피의 소유자가 소유권을 강제로 떠넘기거나.

당대의 책갈피는 600번이 넘는 세계를 반복한 권지아였지만.

그녀의 전에도, 또 그전에도 책갈피의 소유주는 이 우주에 존재했다.

[그래도 문제는 여전히 있었단 말이지.]

군상극을 통해 하계의 존재들이 지닌 위험도를 낮췄지만, 그것은 자신에게 대적할 수준까지 도달하는 속도를 늦췄을 뿐 완전히 해결한 것이 아니었다.

결국, 하계의 존재들이 도달하는 최종 목적지는 이전 선택받은 소수가 있을 때와 달라지지 않았다.

로고스는 그럴 때마다 몇 번이고 세상을 지우고 새롭게 시작했다. 하지만 반복하면서도 달라지는 건 별로 없었다.

웃기게도.

하계의 존재들. 특히 인간이라는 녀석들은 항상 그랬다. 놈들은 뒤에서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마냥 위를 향해 달렸다.

더 높은 자리를, 더 높은 경지를, 더 높은 수준을.

모든 인간이 그러지는 않았지만, 항상 높이 오르고자 노력하는 녀석들은 있었고, 그것은 십중팔구 인간이었다.

그들은 하늘의 너머, 로고스의 존재가 있는 걸 알면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일종의 본능이었다.

이 손으로 별을 거머쥐기 위해서 그저 오르는 것이라고.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로고스는 몇 번 변화를 주기도 했다. 자유 의지라는 것을 빼앗아 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로고스는 그것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자유 의지를 상실한 존재들은 그저 시키는 것만 이행하는 기계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의 일상에는 입체성이 없었다. 궁극의 이야기에 존재하는 인물들에게 평면성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유 의지를 분명 상실했어야 할 인간들의 사이에서, 드물게 자유 의지를 지닌 녀석들이 나타나고는 했다.

놈들은 마치 전염병처럼, 자신의 의지를 주위로 전파시켰다.

로고스는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처음으로 항거할 수 없는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이건 위험하다고, 그런 생각을 품으며 로고스는 다시 우주를 갈아엎었다. 자유 의지는 굳이 없애지 않고 놔두기로 했다.

대신, 로고스는 자유 의지를 상실했던 인간들을 모델로 해서 자신의 충족한 수하 엘로힘을 만들었다.

적어도 쓸모는 있을 테니까.

그다음으로 로고스가 고민 끝에 내려놓은 것은 새로운 답이었다.

[무슨 짓을 해도 더 높은 자리를 탐내려는 녀석들. 나는 그런 녀석들을 억압해서 막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바로 별의 자리라는 현혹의 좌를 말이지.]

성령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인간 중에서 특별한 힘을 지녀, 인간으로서의 종을 초월해서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한 자들을 위해 마련한 자리.

성령이라는 자리는 위대한 존재, 혹은 종을 초월한 별의 자리 같은 것이 아니었다.

발전의 가능성을 지닌 위험 분자를, 창조주인 로고스의 자리까지 넘보지 못하도록 적당한 수준에서 묶어 두기 위한 족쇄.

이것이 모두가 그토록 선망하는 성령의 진실이었다.

[그렇게 가장 적합한 구조가 완성됐지. 물론 성령 중에서도 일부 무지몽매한 녀석들은 자신의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반역을 꾀하거나 했지만, 이미 그 자리에 있는 시점에서 내게 대항할 수 없거든.]

성령들의 자리와 그것을 묶어 두기 위한 제네시스 시스템.

로고스는 그것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서 제네시스 네트워크와 재단 등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정돈된 환경에서 다음으로 떠올린 것은 우주에 퍼진 이야기를 효율적으로 모으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내 충실한 아이들을 만들었지.]

텔러들의 존재는 그렇게 해서 태어났다.

일부러 흩뿌린 코덱스의 파편을 제외하고도, 그 외 잡다한 이야기까지 모두 긁어모아서 괜찮은 것을 변별력 있게 선발하는 과정이 필요했으니까.

텔러들은 그런 잡다한 일을 도맡기에 최적의 존재들이었다.

그렇게 로고스는 태초의 텔러인 다섯 이야기의 왕을 만들었다.

그리고 우주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이 다섯 이야기의 왕을 분해해서, 다음 우주 이야기의 왕으로 만들었다.

그러는 와중에 지루함을 없애기 위한 변화를 주기로 했다.

로고스는 각 왕에게 속성을 부여했다.

이야기의 즐거움, 슬픔, 가치, 자유로움.

그리고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모아서 만들어 내 하나로 집필에 필요한 자율성까지.

[그것도 너무 많이 반복돼서 그런가, 결함품이 태어나 버렸지만.]

이번 대의 프라이티온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튀어나온 변종이었다.

자기 대신에 코덱스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하나로 모으는 일을 시키기 위해 권한을 너무 부여했던 탓일까.

결국, 녀석은 자신의 뜻에 거부해서 반역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유를 상징하는 오엘로 또한 거기에 감화되어 자신에게 적의를 드러내고 있고.

[그렇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했다.]

“대체, 언제까지?”

[완벽한, 궁극의 이야기가 완성될 때까지.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의 목적은 단 하나. 누가 봐도 최고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궁극의 이야기를 탄생시키는 것. 그가 자행해 온 이 모든 행동은 오직 그 하나를 위한 것이었다.

“미친놈. 그게 가능할 거라고 보는 거냐?”

[그걸 이루게 만들려는 것이 지금의 과정이지. 너희 인간들에게도 비슷한 이론이 있을 텐데? 무한 원숭이 정리에 대해서는 아나?]

무한 원숭이 정리는 수학자 에밀 보렐에 의해서 나온 이론이다.

원숭이에게 타자기를 주어 임의의 문자를 계속 나열하게 한다. 그렇게 하면 분명 뜻도 의미도 없는 쓸모없는 글자만 주르륵 나열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원숭이의 숫자가 무한하다면?

그리고 타자를 치는 원숭이에게 주어진 시간이 무한하다면?

그럴 경우, 무한에 가까운 시행의 속에서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결과값이 나오게 된다.

이 우주의 시뮬레이션을 무한에 가깝게 시행한다면.

분명, 그 사이에서 궁극의 이야기가 나오게 될 거다.

[물론, 모든 경우의 수가 계속 다르게 나오지는 않더군. 몇 번이나 되는 우주를 반복해도 너희 인간들이 살아가는 지구는 존재했고, 몇 번이나 되는 우주를 반복해도 너희 인간들이 살아가는 인류의 역사는 비슷하게 흘러갔지. 거기서 나는 다른 방식으로 가능성을 찾기로 했다.]

바로, 영겁회귀(Ewige Wiederkunft)였다.

수레바퀴를 돌리는 것처럼 같은 과정이 무한하게 반복된다 하더라도, 그 과정의 사이와 사이에 존재하는 찰나의 틈새에서도 여러 가지 경우와 조합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하고, 결국에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순간이 생겨나지만.

그사이에는 분명 무수히 작은 조합과 흐름, 변화가 탄생하게 된다.

그 탄생하는 조합의 숫자는 또한 무궁무진하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의 이야기가, 단 하나의 유일한 가치를 위해 나아가게 된다.]

만약 세상에 천국이 존재한다면, 모든 인간은 천국을 가기 위한 과정을 답습할 것이다.

그와 동일하게.

세상에 궁극의 이야기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이 세상을 무한히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궁극의 이야기라는 절대적인 과정에 도달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은 오직 하나 된 결말을 맞이하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아직도 먼일이겠지. 지금까지 몇 번이고 이런 과정을 반복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우주에 살아가는 인간들의 무의미한 죽음 따위는 로고스에게 전혀 고려할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그래도 참 재미있는 일이 가득하단 말이지. 특히 이번 세계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의외성이 강해. 다섯째인 프라이티온의 배신과 거기에 감화되어 변질된 오엘로. 그리고 인간이면서 모든 존재를 뛰어넘어 내 앞에 서 있는 너까지.]

이런 결과를 맞이하지 않기 위해 성령의 자리를 마련했다.

거짓된 동경을 심어 주기 위해.

자신에게 맞서는 자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하지만 그런 눈속임조차도, 자유 의지에서 비롯된 향상심을 지닌 인간들의 본능을 막을 수는 없었던 걸까.

[너는 성령의 자리까지 거부해 가며, 텔러라는 과정을 넘어 스스로 인간의 자리로 내려왔지.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야. 이렇게 될 것을 알고서 하지 않았어. 그저 그 매 순간에 그런 선택을 내렸고, 그게 쌓이고 쌓여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지.]

유현이 여기까지 도달하기까지의 그 과정은, 아이러니하게도 로고스가 그토록 바라던 궁극의 이야기로 향할지도 모르는 과정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고작 인간 하나가 이룩한 수순이 자신이 바라는 궁극의 형태와 같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더 나아가 자신이 품은 신념에 대한 모욕이니까.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미생물에게서도 배울 점을 찾듯, 로고스는 스스로가 큰마음으로 유현을 인정해주기로 했다.

[그러니 너에게 기회를 주마.]

“기회, 라고?”

[너는 나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이는 분명,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것이겠지. 그러니 훗날 완성될 궁극의 이야기에 공동저자로서 너의 이름을 새겨 주마.]

“뭐?”

[그러니 나와 함께해라. 너의 그 의외성을, 궁극의 이야기에 가미하는 데 보태라.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로고스는 그렇게 말하며 유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창조주인 절대자가, 피조물 중에서도 가장 급이 낮다고 평가되는 인간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이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 비교군을 찾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었다.

[나와 손을 잡으면, 네가 아끼는 소중한 인간들도 사라지지 않고 남을 수 있게 해 주마.]

로고스는 그렇게 말하며 허공아 여러 개의 풍경을 띄웠다.

전부 재단의 바깥, 하르마게돈에서 싸우고 있는 동료들의 모습이었다.

치열한 싸움 속에서 누군가는 상처를 입고, 또 누군가는 죽어 간다.

화면 속에서, 아후라 마즈다가 쏘아 내는 빛의 화살에 유영민이 다치는 모습이 보인다.

오딘이 내지르는 창이 권지아의 한쪽 팔을 꿰뚫고, 제우스가 내뿜는 뇌전이 강혜림의 팔뚝을 태웠다. 마라 파피야스가 부리는 타락한 악마의 군세가 서수민의 몸에 자상을 그었다.

모두가 자신에게 뒤를 맡기라고 말했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그러지 않으면 전부 죽을지도 모를 터. 선택은 네 자유다.]

유현의 시선은 특히 자신과 계약을 했던 아이들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여기서 내가 손 하나만 까딱해도 엘로힘과 집정관의 공격을 멈추게 할 수 있다. 더는 누구도 죽지 않게 할 수 있다. 네 대답의 여하에 따라, 저들의 운명이 걸린 거다.]

그 속삭임은 너무나도 감미로운 향기처럼.

유현의 마음을 크게 뒤흔들었다.

[오직 너만이, 저들을 살릴 수 있다.]

“내가…… 살린다고?”

[그래. 너라면 가능하다. 너는 이 로고스와 함께하는, 공동 저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니까.]

“내가…….”

멍하니 홀로 중얼거리는 유현의 말에, 로고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그래. 네가. 저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그 말에 유현은 입꼬리를 비틀었다.

“……고작 이딴 걸 보기 위해 여기로 온 줄 알아?”

순식간에 바뀌는 분위기.

유현에게서 터져 나온 적의가 더욱 확실한 목적성을 가지고 로고스를 향했다.

[흠?]

이상한 일이다. 분명 자신의 설득은 제대로 먹혔을 텐데?

“역시 너는 기억하지 못하는군. 이전에도 너는, 비슷한 결단을 강요했었잖아.”

그때의 이야기는 두고두고 한 존재의 후회 거리로 자리 잡았다.

그때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싸웠다면.

그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텐데.

“잊었나 본데. 네 간사한 수작에 놀아나 자신의 후회를 몇 번이고 곱씹은 사람이 있었어.”

그는 이제라도 올바른 선택을 내리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그 모든 후회와 절망, 그리고 기회까지.

한 사람에게 계승하면서.

-너는, 나와 같은 실패를 답습하지 마라.

“나는 다짐했어. 더는 그따위 수작에 놀아나지 않겠다고.”

[허. 그거참, 신기하군. 역시 의외성이라 이건가.]

“그리고 또 하나. 저 사람들의 운명은 결국 저들의 것이야. 저 선택을 내린 것도, 저런 결말을 각오한 것도, 결국 저 사람들의 선택이야.”

그런 그들을 살리겠다고 모든 것을 버리고 투항하라고?

오직 자신만이, 저들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고?

유현은 입가를 비틀며 강하게 쏘아붙였다.

“역겹다고.”

[…….]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 같은 그 태도가. 자기가 뭐든지 알고 있고, 뭐든지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그 당연한 자신감이.”

모든 사람이 지닌 삶은 오로지 저마다의 것이다.

그 누구도 다른 이의 인생을 왈가왈부할 수 없었다.

“그러니 더 이상의 잡소리 집어치우고.”

미련과 아집, 그리고 번뇌를 벗어던진 유현의 검 끝이 번뜩였다.

“싸우자.”

그러기 위해 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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