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437화
모든 것에는 흐름이 있다.
이 자못 난잡해 보이기까지 한 전쟁의 속에서도, 일련의 흐름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강혜림이 제우스와, 권지아가 오딘과, 유영민이 아후라 마즈다와, 서수민이 마라 파피야스와 마주하는 것처럼.
마치, 운명의 농간이 작용하기라도 한 듯 싸움은 자신과 급이 맞는 존재들과의 대결로 이어졌다.
그런 흐름에서 유일하게 벗어난 존재가 바로 강유현이었다.
‘뚫고 나가야 해.’
적들의 전열은 그야말로 빽빽할 정도였지만, 뚫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다른 성령들에게 받은 온갖 이야기와 백련이 신대의 무구에서 흡수한 방대한 힘까지.
그것을 아주 일부만 개방했을 뿐인데도, 유현의 앞을 가로막는 적들이 펑펑 터져 나가며 활자로 변했다.
그 광경은 멀리서 보면 막힌 것을 뚫는 것처럼 시원하기까지 한 모습이었지만.
나아가는 유현은 막막한 느낌만 들었다.
‘끝이 없군.’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도 이쪽을 막아서는 적들은 끝이 없었다.
맨몸으로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에서 헤엄을 치는 기분이 이러할까.
바닥이 존재하지 않는 늪에 끝없이 잠기면서, 어떻게든 헤쳐 나가고자 손을 필사적으로 휘젓는 게 이런 기분일까.
지금까지 많은 시련을 겪었고, 큰 절망을 느꼈지만.
장담컨대 지금, 이 순간이 그가 겪어 온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큰 난관이었다.
‘아니. 그것도 당연한가.’
자기도 모르게 드는 나약한 생각을, 냉철한 이성으로 가볍게 비웃는다.
우주의 모든 존재가 자신의 명운을 걸고 벌이는 마지막 싸움이다.
이 싸움이, 과거의 시련보다 더 못했다면 오히려 유현은 실망했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게는 나를 도우려는 많은 존재가 있어.’
지금까지 맺어 왔던 인연들.
그리고 혼성계에 와서 새롭게 생긴 전우들까지.
그들이 모두 유현에게 앞으로 나아가라며 등을 밀어 주고 있었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멈출 수 없었다.
“저기 강유현이 있다!”
“녀석을 죽여!”
어느덧 상부에서 지휘 전달이 내려왔는지 유현을 알아보고 집중적으로 달려드는 성령들의 숫자가 늘었다.
처음에는 양 진영의 대규모 격돌로 이루어졌지만, 적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쪽이 확실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금방 눈치챘다.
유일하게 쐐기의 형태로 적진을 파죽지세로 뚫고 나아가는 무리.
유현을 선두로 해서, 어떻게든 재단까지 돌입하려는 결사대였다.
적들은 이제 유현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비켜.”
오른손으로 허공을 잡아, 그대로 손을 휘두르며 찢는다.
눈앞의 시야가 일순 일렁이더니 공간이 찢어지며 거대한 상흔이 그어졌다. 거기에 휩쓸린 성령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개중에는 대성군에 소속된 2세대 성령까지 있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적병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비켜라! 너희들로는 무리다!”
전의를 상실한 병사들을 뒤로 무르며, 본격적으로 정예라 부를 수 있는 존재들이 나섰다.
각 대성군에서 이름이 있는 전사, 영웅, 데미갓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아서 어지간하면 뭐든지 혼자서 처리하는 그들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서로의 연합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놈이 인간이라고 해서 방심하지 마라! 녀석은 벌써 100이 넘는 성령들의 목숨을 취했다!”
“우리조차 정면에서 대결하면 밀려! 최대한 둘러싸서 시간을 끌어야 한다!”
단지 허명으로 그 자리에 올라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그들은 유현의 강함이 얼마나 자신들에게 위험한지 단번에 인지했다.
조금 전 손짓 한 번으로 10명이 넘는 성령들이 찢겨 나갔다.
어찌 인간이 그런 힘을 지녔는지에 대한 의문은, 지금 순간만큼은 접어 둬야 한다.
인간 강유현은 강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어지간한 1세대 성령보다 훨씬 더 강했다. 그 사실을 확실하게 머리에 각인시킨다.
“이거 참.”
유현은 이쪽을 노골적으로 경계하는 영웅들의 무리를 보며 혀를 찼다.
계속 인간이라고 무시를 해 주면서 깔봐 주면 고마웠을 텐데, 이제 그것도 안 되니까.
올림포스의 아르고노트 영웅들.
아스가르드의 아인헤르야르와 발키리들.
리그베다의 간다르바와 바라타족 전사들까지.
그들이 힘을 모아 합공을 펼치려 하고 있었다.
‘이제야 겨우 적들의 전열 중 첫 번째 장벽을 넘었을 뿐인데, 벌써 이걸 써야 하는 건가.’
유현은 지금까지 적진을 돌파하면서 의도적으로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백련을 써야 하는 것은,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순간이어야 했다.
‘고작’ 저런 녀석들에게 사용할 정도로 백련이 지닌 무게는 가볍지 않았던 것이다.
‘오산이었군. 저쪽도 저렇게 진심으로 나오면, 이쪽도 힘을 숨기면서 나아갈 수 없어.’
정했다.
기왕 패를 드러내는 거라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확실하게 드러내기로.
영웅들과 데미갓이 동시에 펼친 합공이 해일처럼 밀려와 유현을 집어삼키기 직전.
유현의 허리춤에 매달린 백련이 빛을 뿜었다.
손잡이를 손에 쥐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대로 발검.
그 뒤를 잇는 것은 새하얗고 아름다운 검의 궤적이었다.
“뭣?!”
누군가가 그런 멍청한 소리를 내뱉었다.
유현이 내지른 일격이, 거의 300에 가까운 영웅들과 데미갓이 펼친 합공을 그대로 정확히 반으로 갈랐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누군가가 외쳤지만, 그 목소리는 주위에 퍼지지 않았다.
“멍청하긴.”
유현은 영웅들과 데미갓을 비웃었다.
자존심을 꾹꾹 눌러 담으며 고작 인간 하나에게 합공을 펼친다고 해서, 그것이 확실한 대처법이 됐다고 생각하는 저 안일함.
힘의 크기만 컸을 뿐이지, 제대로 섞이지 못한 기운들이 이리저리 충돌하고 또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에 밀집도가 낮다.
그러니 극한까지 압축된 이야기의 칼날에 손쉽게 잘려 나가는 것이다.
연합군이 급조한 전력으로 싸우듯, 결국 로고스의 편에 붙어먹은 이들 또한 제대로 싸움의 합을 맞추지 못하고 전쟁에 임한 것이다.
“차라리 하나씩 덤볐으면 더 나았을 텐데.”
말은 그렇게 해도, 유현은 저들의 멍청함에 감사했다.
본의는 아니겠지만, 그들의 합공은 이쪽이 훨씬 더 편하게 그들을 공략할 기회를 준 셈이니까.
조금 전에는 세로로 휘둘렀던 검을, 이번에는 가로로 휘두른다.
뿜어내는 백련의 이야기를 최대한 끌어낸다.
“다들 피해라!”
“저건 못 막……!”
하얗게 명멸하던 백련이 재차 빛을 뿜었다. 부채꼴로 넓게 퍼지는 새하얀 이야기의 길.
그것은 성령들의 인지를 초월한 속도로 적들의 전열 한 귀퉁이를 바람처럼 휩쓸었다.
순간이지만, 세상이 정지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유현이 검을 휘두른 자세에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
그의 앞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새하얀 활자가 되어 흩어졌다.
“여, 역시 우리의 구원자님이야!”
“일격에 적들을 전부 휩쓸다니!”
유현의 뒤에서 따라오던 결사대원들이 전의를 불태우며 유현을 칭송했다.
유현은 그런 반응을 무시하며 다시 앞으로 내달렸다.
‘조금 전의 공격으로, 백련이 지닌 이야기의 3할을 소모했어.’
두 번의 참격은 순수하게 백련에 내장된 이야기로만 펼친 공격이었다.
대성군들이 넘겨준 신화급 무구를 갈아서 그 이야기를 모두 백련에 욱여넣었다.
엑스칼리버, 여의금고봉, 게볼그, 4대비보, 간장막야, 아스칼론 등등.
그것들을 갈아 넣은 이야기를 뭉치고 뒤섞어서, 백련이라는 하나의 무구가 내뿜는 출력 하나에만 집중했다.
‘나중을 생각하면 2번까지는 가능한 기술이지만.’
로고스와의 싸움을 생각하면, 이 이상으로 쓸 일이 없기를 바랐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조금 전의 공격으로 적들의 전열이 크게 무너졌고, 전의 또한 대거로 상실했다는 점.
이거라면 확실히 뚫고 나갈 수 있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경고가 터져 나온 것은.
“위, 위를 보십시오! 재단이 움직입니다!”
“뭐?”
누군가의 말마따나, 하늘을 뒤덮은 채 가만히 있던 재단에서 모종의 변화가 생겼다.
엘로힘을 무슨 새하얀 구름처럼 쏟아 내던 재단의 바깥 부분에 기이한 구동음이 울려 퍼졌다.
무언가 일어나려고 한다.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재단의 안쪽에서 거대한 돌출부가 튀어나오며 이쪽을 조준하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유현은 재단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재차 깨달았다.
‘재단의 본체는 차원을 누비는 요새.’
요새가 갖는 이점에 무엇이 있을까.
지금까지 모두가 재단을 두려워하는 것은 무기질적인 죽음의 천사 엘로힘이 무한하게 쏟아져 나오는 것과 그들이 보좌하는 열두 집정관의 힘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정 재단의 힘은 엘로힘도, 집정관도 아니었다.
바로, 재단이 지니고 있는 본연의 파괴력.
그것이 지금 이 순간 전장에 독니를 드러냈다.
번쩍──!!!
돌출부에 모인 에너지가 한계까지 응축되더니 이윽고 유현과 결사대가 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맥스웰!”
[주군! 힘의 크기가 너무 거대합니다!]
본능적으로 맥스웰을 불러, 확률 개입으로 재단의 포격을 빗겨 내려고 했지만, 재단의 힘은 맥스웰의 힘으로도 막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했다.
순식간에 시야가 붉은 광선으로 뒤덮였다. 유현은 백련에 내제된 이야기를 방어용으로 꺼내 쓰고자 했다.
“그만! 여기는 우리가 막는다!”
“너는 무기를 아껴!”
그때 유현의 양옆으로 오엘로와 프라이티온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자신이 지닌 모든 이야기의 격을 해방해 재단의 포격에 맞섰다.
순식간에 힘이 충돌하며, 재단이 쏘아 낸 포격이 사방팔방 흩어졌다.
거대한 흐름에서 튀어나온 자그마한 줄기조차도, 핵무기를 넘어서는 위력을 뿜어냈다.
곳곳에 거대한 폭발이 벌어지며 반구 형태로 공간을 집어삼켰다.
거기에 휩쓸린 병사들이 재가 되어 사라졌다.
“오엘로님! 프라이티온님! 두 분 다 괜찮으십니까?”
“호들갑 떨지 마라. 우린 괜찮으니까.”
“후우. 아무래도 로고스가 진심인 것 같군요. 설마하니 재단의 저런 기능까지 드러낼 줄이야.”
오엘로와 프라이티온은 살짝 타들어간 양손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재단이 아무리 비밀에 휩싸여 있다고는 하지만, 설마 이야기의 왕들인 자신들조차 모르는 기능이 있었을 줄이야.
그리고 조금 전에는 어떻게든 겨우 막았지만, 다음 공격은 막을 수 없다.
그전까지, 어떻게든 유현을 저 열려 있는 재단의 안쪽으로 보내야만 했다.
오엘로는 욱신거리는 손을 쥐었다 피며 눈살을 찌푸렸다.
“저런 걸 한 번 쐈으니, 그다음까지 충전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 그 사이에 어떻게든 밀고 들어가면 되겠지만, 다른 녀석들이 그걸 놔두지도 않고.”
어느덧 그들의 주위를 포위하듯, 엘로힘이 허공에 뜬 채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이 손에 쥔 것은 집정관으로부터 하사받은 붉은 창.
하나하나가 전부 전략 병기급 위력을 지닌 무시무시한 무기였다.
“지원을 바랄 수도 없겠고.”
조금 전의 포격으로 결사대의 9할 이상이 죽었다.
각 대성군에서 차출한 정예병들이, 살아남지 못하고 거의 전멸을 한 것이다.
이야기의 왕 둘이서 펼쳐 낸 혼신의 방어조차, 고작 유현을 포함한 셋만 무사한 거로 끝난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어. 끝까지 가야지. 야. 강유현. 준비해라.”
“……정말로 하실 겁니까? 저는 그렇다 쳐도, 오엘로님은 분명 죽을 겁니다.”
“자식아. 내가 뭐 죽을 걸 모르고 하자고 하겠냐? 나도 다 안다. 이거, 상황이 완전 답이 없다는 거.”
“그런데 왜…….”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냐.”
오엘로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즐겁다는 듯 웃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어. 하기 싫은 것도, 죽을 걸 알면서도 목숨을 던져야 하는 것도, 결국에 필요하면 해야 한다는 거야. 그렇지 않나? 동생.”
“저야 뭐, 로고스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라면 목숨을 버릴 각오는 이미 했으니까요.”
“결국, 그런 거란다. 유현아. 어차피 여기서 못하면 다 죽어. 그러니, 적어도 우리 둘의 목숨값으로 기회를 얻는 거라면 해 볼 만한 거 아니겠냐?”
오엘로는 다른 이야기의 왕들과 다르게 왕으로서의 직위를 지니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혼성계를 떠돌았다. 명목상으로 배신자인 프라이티온을 찾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그 과정 자체를 즐긴 것은 절대로 부정하지 못했다.
즐거웠던 것이다.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하는 이 세상이.
그것을 즐기면서 구경할 수 있는 자유가.
롯피우트가 이야기의 ‘가치’를, 담천이 이야기의 ‘즐거움’을, 카타르시스가 이야기의 ‘슬픔’을 추구한다면.
오엘로는 이야기의 ‘자유로움’을 추구했다.
아니.
좋아했던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에는, 각자의 자유가 존재한다.”
“오엘로님.”
“그것을, 갑자기 나타난 초월적 존재가 멋대로 재단하고 휘둘러서는 안 돼.”
그가 내비치는 각오를.
그 결의를.
유현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그것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알겠습니다.”
“그래. 너라면 이해해 줄 줄 알았다.”
“그래도, 마지막에 멋진 말한 것치고는, 초창기에 하꼬 텔러들의 서재에 들어와서 악플만 남기던 분이 할 말은 아닌 거 알죠?”
“윽! 이 자식아, 그때는 그냥 어르신의 장난 같은 거였어. 스트레스 해소의 일환이었다고. 그리고 꼭 이 중요한 순간에서 그걸 짚고 넘어가야 하냐?”
오엘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유현도 마주 보며 웃었다.
“간다. 길을 열어 주는 것은 한 번뿐이다.”
“네.”
어느덧 엘로힘의 너머 집정관까지 나서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놈들의 홍색의 외눈이 당장이라도 빛을 내뿜을 것처럼 흉흉하게 발광했다.
다음 포격이 오기 전까지 저것을 뚫는다는 것은.
두 이야기의 왕이 자신의 목숨을 바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소리.
유현은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면 셋에 간다.”
오엘로가 신호를 주려는 그 순간이었다.
포격을 쏘아 냈던 재단의 돌출부가, 다시 에너지를 머금기 시작했다.
빠르다.
조금 전 포격을 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또 다음이 준비됐단 말인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힘을 축적하는 속도가 말이 안 됐다.
“미친. 설마 조금 전처럼 광역으로 휩쓰는 게 아니라, 이쪽에 화력을 집중하겠다는 건가.”
오엘로는 재단의 포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곧바로 눈치챘다.
에너지를 전부 충전한 것이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없애야 할 대상은 이제 단 셋으로 국한되어 있었으니까.
엘로힘이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열었다.
그 열린 하늘의 길 사이로, 파괴의 붉은 빛이 떨어졌다.
안 돼.
유현은 속으로 외쳤다. 이번엔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
‘차라리 여기서 백련의 나머지 힘을…….’
개방하려는 그 순간.
[휘어져라.]
영혼마저 울리는 웅혼한 목소리와 동시에.
파멸의 빛이 떨어지는 곳의 허공에 검은 점이 생겼다.
그것은 마치 소형 블랙홀과 같았다. 파멸의 빛은 공간 자체가 휘어지는 것에는 어쩔 수 없는지, 방향이 틀어져 유현이 아닌 다른 곳의 땅을 긁고 지나갔다.
거대한 불기둥이 수백 미터 높이까지 치솟아 올랐지만.
유현과 오엘로, 프라이티온은 그런 것에 신경 쓸 처지가 아니었다.
“뭐야. 공간 왜곡? 대체 누가…….”
뒤틀린 공간에 휩쓸린 엘로힘의 조각난 시체가 비처럼 쏟아졌다.
그 틈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판데모니엄의 일곱 군주.
메피스토펠레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