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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433화 (433/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433화

“저 영롱한 황금빛은…….”

“저게 바로 그 유명한 코덱스의 파편.”

“파편이 아닙니다. 하나로 완전히 합쳐진 페이지죠.”

시스템의 은폐도 없는 지금, 자리에 모인 모두가 코덱스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었다.

로고스가 이 우주를 끝내기 위한 결산.

에덴의 대천사 중 하나인 가브리엘이 나서며 물었다.

“그것을 없애면, 로고스도 목적을 상실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하면 분명 편하겠지만, 코덱스는 어떤 힘으로도 없앨 수 없습니다. 이 자그마한 페이지 자체가 지금 세계 그 자체니까요. 세계를 없애는 힘이 아니면 없앨 수도 없겠죠.”

기껏 해 봤자 찢는 것이 전부. 하지만 그 찢는다는 것도 코덱스의 소유주인 로고스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유현이 한 것은 그 찢어진 조각을 모으고 모아서 하나로 합친 것일 뿐.

“차라리 이걸 모으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도 드실 테지만 그것도 의미 없는 가정입니다. 이 우주는 몇 번이고 반복됐어요. 그럴 때마다 이 페이지는 이맘때쯤 완성이 됐죠.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만들어지게끔 이야기가 흘러가게 됐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걸로 뭘 할 생각이지?”

“이 페이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자격을 지닌 것과 같죠.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로고스의 거처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열쇠입니다. 저는 이걸로, 로고스를 찾아가 결판을 낼 겁니다.”

“혼자서?”

“여럿이서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혼자밖에 할 수 없습니다.”

유현도 이 페이지를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이 페이지 자체의 권한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로고스에게 대항할 방법도 생각을 해 봤지만.

원소유주가 로고스이기 때문일까, 유현은 코덱스의 페이지를 완전하게 장악할 수 없었다.

각인을 써도, 급화를 써 봐도, 그가 권능으로서 제대로 쓸 수 있는 것은 4개의 파편이 모여서 만들어진 아포리아의 악마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단 하나.

“사실 제게 허락된 것도 지금 이것을 소유하는 것과 그리고 이걸 들고 로고스에게 찾아가는 것뿐이죠.”

유현이 지니고 있는 코덱스는 로고스의 거처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 바깥에 가득 깔린 엘로힘과 집정관이 길을 열어 준다는 보장도 없었다.

로고스는 할 수 있으면 해 보라고 했다. 즉 로고스가 있는 곳까지 도달해야 하는 것도 유현의 힘으로 해야 할 일이었다.

“즉 이런 셈이군요. 우리가 재단으로 향할 수 있는 길을 최대한 열어 주고, 당신이 직접 로고스를 찾아가 담판을 짓는다.”

메피스토펠레스가 나서며 상황을 정리했다.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정말인가? 이 우주의 운명을, 고작 인간에게 맡겨야 한다고?”

“인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가 지닌 힘은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사탄이 죽기 전 자신의 힘을 모조리 넘겼으니.”

“차라리 그 힘을 다른 1세대 성령에게 넘겼으면 더 가능성이 컸을지도…….”

작전의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코덱스를 지닌 것이 인간이라니.

자신이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일부 성령들은 그것을 전혀 납득하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다고 확신을 품는 존재도 생길 정도.

“나는 그를 지지하지.”

그럴 때 나선 자가 있었으니 바로 비로자나불이었다.

극락정토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그가 유현을 지지하겠다고 대놓고 공표를 하니 일부 성령들이 눈을 크게 떴다.

비로자나불의 뒤를 이어 다른 극락정토의 성령들도 유현을 지지하겠다고 공표했다.

“끝없는 광명, 서방극락세계의 부처도 동의했다고?”

“알 속의 구원자, 미륵보살도 있어.”

“천수천안의 관세음보살까지…….”

“지장보살. 극락의 저승을 관할하는 업화의 구원자도 허락했다.”

대성군 극락정토의 전부가 유현의 편에 서겠다고 하니, 다른 성령들도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런, 선수를 빼앗겼군. 나도 지지하겠어. 내 형제들까지도.”

투전승불 손오공도 그렇게 말하며 나섰다.

극락정토의 절대자 비로자나불에 이어 마왕연합의 대표인 손오공의 참전.

그 외에 육대성까지 전부.

“우리 대성군 마비노기온 또한 지지하겠다.”

투아하 데 다난을 필두로 대성군 마비노기온의 성령들도 유현의 편에 서기로 했다.

“드래고니카도 마찬가지.”

샤루리엘과 갈리아츠가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유현을 인간이라고 좋게 보지 않았던 다른 성령의 마음도 서서히 한쪽으로 기울었다.

“우리 에덴동산도 동의한다.”

“판데모니엄. 동의하지.”

“천계삼십육천.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

어느덧 자리에 모인 모든 성령이 유현을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저 분위기에 휩쓸려서, 다른 성령들의 눈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성령도 있겠지만…… 여기까지 와서 불평을 내뱉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무엇보다 저렇게까지 저 인간을 밀어 주고 지지하는 것을 보면, 자신들이 모르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그렇게 생각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다들 감사합니다.”

그 중심에 선 유현은 자신을 믿어 주는 성령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전날 비로자나불의 말마따나, 대부분 성령이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 말은 빈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 해도 말로만 그러기에는 조금 그러니까. 자, 이걸 받아.”

이때다 싶어서 손오공이 유현에게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내밀었다.

주위의 성령들은 물론이거니와 유현 또한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여의금고봉.”

손오공이 유현에게 건넨 것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이자 주력 무기라고 할 수 있는 여의봉이었다.

“네가 지니고 있는 그 칼, 다른 무기의 이야기를 흡수해서 더욱 강해지는 무구지? 예전부터 봐서 알 고 있어.”

“그건, 그렇지만…….”

“그 어떤 신의 무구조차 도달할 수 없는 무궁한 가능성을 지닌 무기. 그것을 인간들이 만들었다는 것이 영 자존심 상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것보다 더 좋은 무기는 없겠지. 그러니까 이걸 받아라. 내 여의봉을 네 무기에 보태.”

주변 성령들은 설마 그렇게까지 해 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지 믿기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손오공을 바라봤다.

손오공이라는 인물이 누구인가. 천계의 악동이며 석가모니를 겨우 불러와서 그의 행패를 저지했을 정도로 유명한 인사다.

지금이야 삼장을 만난 이후로 투전승불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간혹 예전 성격이 나와서 어지간한 성령들은 대부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혼성계의 강자 중 하나였다.

그런 손오공이 자신의 애병인 여의봉을 흔쾌히 건넸다는 것은, 그만큼 놀라우면서도.

손오공이 유현을 이만큼 믿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도 주지.”

이에 질세라 대성군 마비노기온의 주신 투아하 데 다난이 유현에게 4개의 무구를 건넸다.

“받게. 우리 마비노기온을 대표하는 4대 비보네.”

투아하 데 다난의 4대 비보.

운명석 리아 팔.

빛으로 이루어진 루의 창.

태양을 머금은 누아다의 검.

무한의 솥 다아다의 가마솥.

“이렇게 귀한 것을…….”

“일전 카멜롯의 사건을 통해 우리 또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거든.”

은팔의 누아다는 사양하지 말고 받으라며 유현에게 비보를 모두 건넸다.

유현은 그의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백련의 능력을 발동했다.

[이야기 흡수]

가지고 있는 성령들의 보구들이 활자로 분해되어 백련으로 흡수됐다.

“우리도…….”

“우리 것도 받아라.”

다른 성령들도 유현에게 하나둘, 신화 속 무구들을 건네주었다.

이번 싸움이 마지막인 것을 알기에, 그들도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유현에게 투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나둘씩.

백련에 흡수되는 무구들이 늘어났고, 그럴수록 백련에서 흘러나오는 새하얀 빛은 더욱 강해졌다.

어느덧 찬란한 빛을 내뿜는 빛의 검을 쥔 유현은, 말없이 그것을 내려다봤다.

‘백련.’

그때 너는, 만족하면서 떠났을까?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한 나는, 너에게 그저 도움을 받기만 했는데.

유현의 시선이 이윽고 회의장의 구석에 있는 백서련에게 향했다. 연합의 대표라는 입장으로 참여했지만, 다른 성령들이나 책벌레들에 밀려 거리를 둔 그녀는 지금 홀린 듯한 시선으로 백련을 바라봤다.

“아.”

이윽고 유현의 시선을 느낀 그녀는 유현을 보더니, 조금 수줍은 얼굴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현 또한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거로 그녀의 행동에 답했다.

그래. 이걸로 된 거다.

“다들 감사합니다.”

“무얼.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을 뿐이야.”

손오공은 굳이 부끄럽게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며 손을 저었다.

모두가 유현을 믿었기에 이런 선택을 내렸을 뿐, 그 당연한 것에 일일이 감사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정 고맙다면, 모두에게 이어받은 그 힘으로 이 싸움을 끝내 달라고.

유일한 바람이라면 오직 그것뿐.

* * *

회의가 끝나고 모두가 각자의 병영으로 돌아갈 때, 유현을 부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강유현.”

“뭐야, 최도윤이냐.”

회의 내내 시종일관 침묵을 유지하던 녀석은 이전부터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지 사람들이 다 빠졌을 때 그를 찾아왔다.

“그래서 이번엔 또 무슨 볼일이냐.”

“너에게…….”

최도윤은 차마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지 말을 망설였다. 그 행동에 오히려 유현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궁금해졌을 정도였다.

최도윤은 어지간한 말이나 행동도 눈치 보지 않고 즉각 즉각 하는 편이다. 그런 그가 망설임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유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대체, 뭐 얼마나 대단한 말을 하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는가.

유현이 차분히 기다려 주자 최도윤은 그 사이에 마음을 다잡았는지 가까스로 입을 움직였다.

“미안했다.”

“……뭐?”

“비록 너에게 그런 짓을 한 것은 전생, 아니…… 전 우주의 내가 한 짓이었겠지만……. 그 또한 나라는 것은 변함이 없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때의 내가 한 짓을 너에게 사과하고 싶다.”

“…….”

믿기지 않는 현실에 눈을 크게 뜨고 숨을 들이쉰다.

그러다 이내, 유현은 다른 무언가에 생각이 미쳤는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할 필요 없다. 지금의 너는, 그때의 너와 다르니까.”

전생의 최도윤은 다른 차원에서 구르고 구르다 겨우 지구로 돌아왔지만, 그를 반겨 준 것은 유일한 혈육의 죽음과…… 변해 버린 세계였다.

하지만, 지금의 최도윤은 그러지 않았다. 그에겐 아직 가족이 있었고, 지구에 찾아왔어야 할 종말 또한 비켜 나갔다.

시작은 같았지만, 환경이 바뀌면서 도달하는 장소도 달라졌다.

그것을 과연 같은 사람으로 볼 수 있을까.

“오히려…… 내가 너에게 화풀이를 한 셈이지.”

“…….”

“다만, 그걸 알면서도 널 보면…… 그때의 일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냥, 그냥 반사적인 거야. 너나 나나, 서로 성격이 친하게 지내기엔 턱없을 정도로 맞지 않은 것도 있고.”

“그건 나도 부정할 수 없겠군.”

“그래도.”

“음?”

“이다음부터 만난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적대하지는 않겠다고, 약속하지.”

그 말에 최도윤은 피식 웃었다.

“세계가 망할지도 모르는 전쟁을 코앞에 두고 다음을 기약하는 건가.”

“그렇게라도 해야 하니까.”

“그런가. 그렇다면 나도 그때를 기대하지.”

두 사람은 곧바로 인사조차 나누지 않고 등을 돌리며 헤어졌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최도윤은 자신을 기다리는 부관들이 있는 곳으로.

유현은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왔어?”

“기다리느라 지쳤다.”

“형. 왔군요.”

권지아와 서수민, 그리고 유영민이 유현을 반겨 줬다.

다 같이 모여 있는 그 광경에서 유현은 세월의 흐름을 느꼈다.

다들 5년 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권지아는 밝아졌고, 서수민은 성장했으며, 유영민은 더 차분해졌다.

꿈에 그리던 광경이지만, 분명 갖춰지지 않은 퍼즐은 있었다.

“…….”

유현의 시선이 올드 타운으로 향했다.

이 자리에 없는 한 사람.

백화 매니지먼트에 가장 먼저 들어오고, 그와 가장 먼저 컬렉터로서 계약을 맺었던 그녀가.

“여러분. 저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누구도 유현이 갑자기 사라지려는 것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말을 하지 않았으면 서운했을 거라는 듯, 웃으면서 그의 등을 밀어 줬다.

곧바로 데카르트의 힘을 발동한 유현은 강혜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공간을 뛰어넘어 그녀가 거주하는 방문 앞에 선 유현은 막상 문을 두드리길 망설였다.

여기서 그녀를 찾아가는 것 자체가, 그녀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이 문을 두드릴지 말지 얼마나 망설였을까.

달칵.

안쪽에서 그런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문이 저절로 열렸다.

“…….”

아니. 저절로 열린 것이 아니다.

안쪽에서, 방의 주인이 직접 문을 열고 나온 것이다.

그것도 아주 예전, 그녀에게 처음 장만해 주었던 청백색의 무복을 입은 채.

한 손에는 검을 쥐고서.

“……혜림 씨.”

모두가 달라진 모습 사이에서 유일하게 그가 기억하던 처음 그녀의 모습.

흐릿하고 아련했던 그 추억 속의 모습이, 선명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유현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당신의 선택이었군요.”

“네.”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것은 청아한 목소리.

검을 쥐었을 때, 그리고 검후라고 불렸을 때. 모두의 선망을 받으며 사람들에게 영웅이라 불리던 그때의 기백이 피부를 찌르르 울린다.

지금 이 자리에 다시 그때의 검후가 돌아온 것이다.

“저도, 싸우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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