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430화
별빛이 없이 오로지 달 하나만 휘영청 떠 있는 밤.
용병단의 막사로 향하던 유영민은 누군가 길목을 막아서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누구지? 나한테 볼일이라도 있나?’
용병들이 머무는 곳은 따로 구역이 정해져 있었다. 유영민이 가는 길목이 바로 그러했다.
이런 곳에 가만히 서 있는 것을 보면 상대에게 분명한 목적성이 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풍기는 기운만 보면 성령, 그것도 상당히 급이 높은 존재일 터.
‘용병일을 하면서 딱히 저 정도의 성령과 척을 지거나 안면을 튼 기억은 없는데.’
용병일이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이 지저분한 일 취급을 받는다.
혼성계에서는 일처리 방식부터 해서 용병이라 불리는 존재들은 전부 저급하고 제멋대로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실제로 이쪽 일에 종사하는 녀석들 중에서 그렇게 깔끔한 녀석들이 거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더 세련되고 멋진 일을 하려면 차라리 해결사를 해야 했고, 유영민의 취향과 성향도 해결사 쪽에 더 어울렸다. 그래도 그는 용병이 되는 길을 택했다.
파편을 회수하려면 가장 자유분방한 용병이 더 어울렸기 때문이다.
‘내가 용병왕이라 불리기는 하지만, 내게 관심을 갖는 건 군주 정도. 운 좋으면 일반 성군의 성령 정도는 관심을 주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 정도 존재가 그럴 것 같지는 않단 말이지.’
어쩌면 다른 사람을 기다리는 거고 우연히 타이밍이 겹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유영민은 상대방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지나가려 했다.
“잠시만 기다리겠습니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혹시나 싶었는데, 정말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거였다니.
유영민은 반신반의한 눈빛으로 눈앞의 상대를 살폈다.
‘복장 멋지네.’
검은색과 회색의 기조로 이루어진 귀족의 제복과 그 위에 덧대어진 검은 망토까지. 핏을 제대로 살려 주면서 곳곳에 매달린 장신구는 귀족으로서의 기품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그것을 소화하는 본인도 상당히 잘생긴 중년의 미남자였기에, 더욱 어울린 걸지도 모른다.
특히, 눈에 띄는 건 멋지게 기른 수염이었다.
‘나도 저렇게 기르고 싶었는데.’
지금은 유현을 만나기 위해 면도를 한 뒤라, 인중과 턱에 손을 가져다 대면 허전함만 맴돈다.
상대의 모습은 딱 자신이 나이를 먹으면 되고 싶은 이상적인 모습 그 자체였다.
‘그러고 보니…….’
상대에게 크게 관심이 없어서 그랬지, 자세히 살펴보니 어딘가 낯이 익었다.
누군가 했더니 지난날 회의실에 유현과 함께 들어왔던 성령 중 하나.
분명 이름이, 메피스토펠레스라고 했던가.
‘대성군 판데모니엄의 일곱 군주 중 하나.’
그것도 7대 죄악 중 하나의 축을 담당하는 존재다.
상대의 정체를 떠올리자 유영민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제게 무슨 볼일이라도?”
일단 저쪽에서 불렀으니 그렇게 물었지만, 속으로는 대체 왜 메피스토펠레스 정도나 되는 성령이 자신을 불러 세운 건지 그 이유를 필사적으로 찾았다.
메피스토는 그런 유영민의 속내가 짐작이 된다는 듯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마시길. 헤치거나 하지 않으니까요.”
“어, 음. 네.”
“자기소개를 하죠. 저는 대성군 판데모니엄의 일곱 군주 중 하나, 메피스토펠레스라고 합니다.”
“용병 유영민이라고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체계가 잡히지 않고 난잡하기로 유명한 용병계에서, 유일하게 왕의 칭호를 받으신 분이시죠? 직접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뇨, 그 정도까지는…….”
말은 겸손하게 했지만, 유영민은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대성군의 1세대 성령이 자신을 알아봐 준 것도 모자라서 저렇게 높게 평가를 해 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말한 대상이 누구인지를 감안하면 과분하기까지 한 칭찬에 오히려 불편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메피스토님께서는 제게 무슨 하고 싶은 말씀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네. 그러기 위해서 여기 길목에서 기다렸으니까요.”
“저를 기다리셨다니…….”
“이걸 받으세요.”
“네?”
메피스토가 불쑥 손을 내밀자 유영민은 반사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손바닥 위에 느껴지는 작지만 차가운 감촉에 유영민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총알?”
메피스토펠레스가 자신에게 건네준 것은 자그마한 총알. 그것도 대구경이 아닌 소구경, 권총에 쓸 법한 것이었다.
“대체 이걸 왜 저한테…….”
“곧 있을 대전쟁에서 당신에게 꼭 필요할 테니까요.”
“저한테요?”
“아무튼, 저는 이걸 주려고 당신을 찾아온 거였습니다. 사용 방법이니 필요한 순간은, 전부 당신의 개인적인 판단에 맡기죠.”
“아! 저기 잠깐만요!”
망토를 펄럭이며 등을 돌리는 메피스토를 황급히 불러 세웠지만, 그의 몸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유영민은 멍하니 손에 쥐어진 총알을 바라봤다.
“갑자기 이런 거로 뭘 하라는 거야.”
* * *
“볼일은 다 본 건가?”
“흠.”
자리를 떠나 인적이 드문 곳에 도착한 메피스토를 반겨준 것은 퉁명스러운 미카엘의 목소리였다.
“전부 지켜보고 있었습니까?”
“딱히 숨길 생각도 없었으면서.”
“뭐,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을 했을 뿐이니까요.”
“아닌 척해도, 너 역시 미련이 남았던 거였군.”
“없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원래는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떠올라 버렸거든요. 그러는 당신은 괜찮습니까?”
메피스토는 밤이 깊어가는 와중에도 온갖 빛을 내뿜는 올드 타운을 가리켰다.
“저곳에 있는 그녀를 만나지 않아도.”
“……너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말은 그렇게 해도 대답에 걸리는 시간은 있었다. 평소에 알고 있던 미카엘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녀도 지금 많이 고뇌하고 망설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메피스토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굳이 그녀에게 대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뭐, 무슨 선택을 해도 그쪽의 자유니까요. 하지만 이것 하나는 알아 두세요. 적어도 남은 시간만큼은 후회할 선택은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지금 내게 충고를 하는 건가? 적대 진영이었던 네가?”
“한때는 동료였던 시절의 정이라고 생각하시죠.”
메피스토는 그 말만 남기고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혼자 남겨진 미카엘은 이제는 한 쌍밖에 남지 않은 날개를 손으로 가볍게 쓸며 중얼거렸다.
“나도 알아.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도, 그리고 남은 시간을 최대한 소중히 써야 한다는 것까지도.”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그녀를 찾아가 조언을 하지 못하는 것은 두려움과 겁이 나는 것도 있지만.
“그래도 그 아이라면, 분명 용기를 내서 움직일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런 믿음이 있기에, 직접 찾아가서 말을 하려고 하지 않은 것이다.
* * *
로고스에 대항하기 위한 연합군은 계속되는 합류로 인해 규모가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이미 전례가 없는 역대급 규모였지만, 그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서 매시간이 흐를 때마다 최고치를 연속으로 갱신했다.
하지만 마냥 긍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는 것이, 체계화된 하나의 세력이 아닌 다수의 세력이 한곳에 모인 것이다 보니 전쟁이 벌어져도 조직적인 대응을 할 수 있을 가능성이 현저히 낮았다.
그리고, 이쪽의 전력이 늘어난 만큼 로고스의 세력에 붙는 성군이나 군주들의 숫자도 적지 않았다.
‘보고에 의하면 하르마게돈의 형성이 거의 끝나간다고 했지.’
현재 재단을 중심으로 퍼지는 황량한 사막의 범위는 점차 넓어져서, 어느덧 연합이 있는 곳까지 다가오고 있다고 한다.
‘그것이 전부 완성이 되면 로고스는 재단을 기점으로 연합군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할 거야. 그러니 놈들보다 먼저 전력들을 전부 모으고, 혹시 모를 작전을 짜 둬야 해.’
유현이 서 있는 곳은 연합의 영토의 끝자락, 천계삼십육천의 경계와 맞닿은 역천의 폭포가 보이는 숲이었다.
그는 지금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혼자 찾아왔다.
멀리서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기척을 느낀 유현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허공에서 빛이 번쩍인다 싶더니 황금 마차 한 대가 날아와 유현의 지척에 멈춰 섰다.
“오셨군요.”
“오냐. 왔다.”
문을 열고 오엘로가 마차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뭐가 또 그렇게 기분이 나쁜 건지 오엘로는 눈살을 찌푸리며 씁 하고 혀를 찼다.
마차를 몰던 아가엘은 괜히 또 자기가 잘못한 게 있는 건지 어깨를 움츠리며 오엘로의 눈치를 살폈다.
“야. 넌 먼저 가라.”
“네, 네?”
“못 들었어? 먼저 가라고.”
“아, 네!”
아가엘은 화색이 되어 황금 마차를 몰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오엘로는 그런 아가엘을 보며 에잉 하고 혀를 찼다.
“저거 상사가 가라고 했다고 표정 밝아지는 거 봐라. 기억해 둬야겠다.”
“어차피 곧 다 끝장나게 생겼는데, 그런 거 신경 써서 뭐합니까.”
“그래서 다들 안 끝장나려고 모여 있는 거 아니겠냐.”
10대 초반 꼬마 아이의 모습을 한 오엘로였지만, 말투와 행동은 언제나 세상 다 산 아저씨마냥 거침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또 지독하게 어울려서 유현은 그의 말을 자연스럽게 받았다.
“그것도 맞는 말이죠.”
“그래서, 나를 이렇게 개인적으로 부른 이유가 뭐냐. 애초에 우리 오엘로 해결사도 이번 전쟁에서 연합군 편을 들기로 했는데 말이지.”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진짜 네이밍 센스 구리네요.”
“뭐 임마?”
오엘로의 말마따나, 용병들이나 해결사들도 곧 벌어질 대전쟁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아무리 눈치를 보며 이득이 되는 곳에 붙어먹는 하이에나라고 하지만, 세상이 끝장날지도 모르는 와중에도 이득 관계를 따지는 건 미친 짓이었다.
당연히 대부분 용병이나 해결사들은 연합군의 편에 붙었다. 오엘로가 그들의 대표자였다.
“이런 바쁜 상황에서 나를 따로 불렀다는 것은, 내가 일전에 말했던 일과 관련되어 있는 건가?”
“일단 그것에 대답하기 전 오엘로님께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뭔데.”
“왜 로고스에게 맞서려고 한 겁니까?”
오엘로는 그런 질문이 올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소리 내서 웃었다.
“하하하! 그게 어지간해도 궁금했나 보지? 뭐, 네 입장도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사실 나도 내 행동을 생각하면 종종 실소가 터져 나오고는 하거든.”
“대체 왜죠?”
“그러게. 왜일까. 누구보다 아버지를 대단한 존재라 생각하고, 그의 손에서 태어난 내가 그에 반하는 행동을 하다니. 내가 나이를 먹다 보니 머리가 이상해지기라도 한 걸까?”
“설마요.”
“알아. 농담이다. 그래. 내가 그냥 연합군의 편에 붙은 것은…… 그냥 이게 옳은 일이라서 그래.”
“로고스의 뜻은 옳지 않다는 겁니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도저히 옹호하고 넘길 짓이 아니거든. 우주를 멸망시키고 새롭게 시작한다고? 이게 처음도 아니고, 이미 몇 번인지도 모를 정도로? 이런 과정이 반복됐다는 것부터가 이상하다는 거야.”
그래서 아버지라는 존재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배신자라고 불렸던 프라이티온은 누구보다 먼저 이런 아버지의 목적을 깨닫고 그런 짓을 벌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너, 이렇게 날 부른 걸 보면 정말 프라이티온을 만난 거냐? 그 배신……자를?”
“그러니까 불렀죠.”
“네가 간땡이가 부어도 단단히 부었구나. 내가 녀석 만나면 바로 코인 사용하라고 너에게 주지 않았던?”
“위험할 때 쓰라고 준 거였잖습니까. 저도 처음에는 쓸까 했는데, 막상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눠 보니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안 썼죠.”
“……녀석에게 뭔가를 들었군. 말해 봐. 프라이티온이 너에게 뭐라고 말했지?”
“그건 두 분이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게 좋을 거 같군요.”
“뭐? 설마 녀석이 온 거냐? 대체 어디에?”
오엘로가 그렇게 묻기도 전이었다. 갑자기 주위에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의 사이에 어둡고 불길한 기운이 섞여 있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라면 반드시 느낄 수밖에 없는 선천적인 불쾌감.
유현은 그것을 강제로 억누르며 상대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어느덧 둘의 근처에 검고 탁한 기운이 모이더니 하나의 형체를 취했다.
펑퍼짐한 학사의를 입고, 얼굴에 안경을 쓴 부드러운 인상의 미남.
오엘로는 상대를 알아보고 눈을 크게 떴다.
“너……!”
“오랜만이지?”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마지막 이야기의 왕, 배신자 프라이티온.
그는 오엘로를 보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엘로 형님, 이라고 불러야 하나?”
“프라이티온 너 이 자식…….”
오엘로는 프라이티온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프라이티온은 그런 오엘로를 보며 자리에 가만히 섰다. 그의 어색한 미소 위로 식은땀이 한 줄기 흘렀다. 그만큼 오엘로의 기세가 흉포했다.
분노로 일렁이는 황금빛 기운 때문에 공간이 흔들릴 정도로.
“저, 오엘로? 그렇게 화난 건 아니지?”
“야.”
“응?”
“일단 이 악물어라.”
경고와 동시에 황금빛 철권이 프라이티온의 뺨을 후려쳤다.
* * *
“너무하네. 그래도 형제인데, 만나자마자 바로 주먹부터 나가다니. 게다가 난 안경까지 쓰고 있었다고.”
“내가 널 여기서 죽이지 않은 것만 해도 고맙게 여겨야 할 거다.”
말은 그렇게 해도 방금 주먹을 한 방 갈긴 이후로 오엘로는 프라이티온에게 일절 손대지 않았다. 그 이상 그를 손대면 자신의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죽여 버릴지도 몰랐기에, 오엘로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야 했다.
아무것도 몰랐을 때 만났다면 마주치는 순간 인사고 뭐고 짐승처럼 달려들어 찢어 죽일 생각이었지만, 로고스의 지난 행각에 대해서 알게 된 이후로 오엘로의 가치관은 조금이지만 달라졌다.
“그래서, 프라이티온. 나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고?”
“뭐, 오엘로 형님이 그나마 말이 통하니까.”
“형.”
“응?”
“그냥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 임마.”
그 오엘로치고는 너무나도 의외의 말이라 프라이티온은 벙찐 표정이 됐다. 그 바보 같은 낯짝을 본 오엘로가 눈에 쌍심지를 켰다.
“싫냐?”
“어, 어?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그냥…… 화를 풀어 준 게 신기해서.”
“화 아직 안 풀렸다. 이유가 있었다고는 해도, 너는 제멋대로 일을 저지르고 누구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쳤어. 내가 그런 널 찾겠다고 얼마나 오랫동안 개삽질을 했다고 생각하냐?”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리는지 오엘로는 주먹을 까득 말아 쥐었다.
“그건…… 미안하게 됐어.”
“왜, 나한테는 말하지 않은 거냐.”
“……다른 형제들은 전부 로고스의 뜻만 따르는 수족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누구도 믿을 수 없었어.”
“…….”
오엘로는 그 말에 어떠한 반박도 하지 못했다. 프라이티온의 말이 옳았다. 만약 오엘로 자신도 프라이티온의 입장이었다면 그와 같은 선택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짜증이 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프라이티온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오랜 세월 동안 쌓아 온 증오가 쉽사리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이때다 싶었는지 유현이 중재를 하듯 나섰다.
“형제 싸움을 하는 것은 굳이 말리지 않지만, 저희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은 알아 줬으면 좋겠네요.”
“이 자리를 만들어 준 네가 할 말이냐?”
“그래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데 풀 건 풀어야죠.”
게다가, 하고 유현이 말을 이었다.
“이쪽에서 이야기의 왕들이 모인 것처럼, 다른 곳에서는 그러지 말라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뼈가 있는 말에 오엘로와 프라이티온의 안색이 굳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야기의 왕은 총 다섯.
이곳에 모인 둘을 제외해도 아직 셋이나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셋이 로고스의 수족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