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428화
추가로 모인 대성군의 전력은 거대한 올드 타운으로도 담아낼 수 없을 정도라, 집결 장소는 자연스럽게 올드 타운의 바깥 광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무서울 정도의 전력이야.”
평야 위를 가득 채운 연합군의 막사를 본 권지아가 그렇게 말했다.
유현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수긍했다.
막사의 크기도 종류도 제각각. 하나로 규격화되지 않은 다양성은 이곳에 얼마나 많은 세력이 섞여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 세상을 지우려는 로고스에 맞서기 위해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병력이 한데 모였다. 대성군뿐만 아니라 다른 성군들에서도 속속히 이쪽으로 합류하고 있었고, 군주 연합에 들어오지 않았던 군주들까지 하나둘 들어왔다.
지금도 연합군의 전력은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중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모인 적이 없는 최고의 전력. 전쟁이 시작된다면, 상대가 대성군이라 하더라도 단번에 찍어 누를 수 있을 정도. 그렇다고 해도 마냥 낙관적으로 볼 수만은 없겠죠.”
“그래. 로고스의 병력 또한 만만치 않을 테니까.”
로고스가 부리는 제네시스 재단은 끝이 없는 숫자의 엘로힘과 막대한 힘을 지닌 열두 집정관을 필두로 그야말로 성령의 출입조차 불허하는 철옹성을 자랑한다.
단지 그것뿐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긴장을 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적들의 전력 또한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가 그쪽에 붙었다고 했었죠.”
“그 둘 만이면 모를까, 리그베다와 아눈나키, 그리고 헤르모폴리스와 아베스타까지 붙었다.”
“총체적 난국이로군요.”
로마 신화의 원류 올림포스.
북유럽 신화의 원류 아스가르드.
인도 신화의 원류 리그베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원류 아눈나키.
이집트 신화의 원류 헤르모폴리스.
페르시아 신화의 원류 아베스타.
무려 6개나 되는 대성군이 로고스의 편에 붙었다.
그들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대성군을 이끄는 주신의 대부분이 찬탈자로 이루어졌기 때문이겠지.
저들이 무엇을 바라는 건지는 굳이 이유를 듣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이전 세계에서 찬탈자로서 권위를 누려 왔으니, 다음 세계에서도 똑같이 지내고 싶다는 욕망이다.
‘로고스가 그것을 가만히 놔뒀다는 것도 웃기는군.’
로고스와 대성군들. 그들의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오갔을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최악의 상황이겠지만, 그걸로 얻은 것도 분명히 잇다.
그리고 6개나 되는 대성군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라면, 로고스라 하더라도 막연히 절대자로서 멋대로 힘을 휘두를 수 없다는 걸 증명한 셈이다.
창조주이지만, 그렇다고 손가락 하나 튕기는 거로 우주를 재시작할 정도의 힘은 아니라는 건 연합군에게 있어서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이렇게까지 대항자들이 모인 적이 없었기 때문인가? 로고스도 급해져서 다음 찬탈자의 자리를 놓고 대성군들과 거래를 한 거로군.’
이쪽을 도와 연합군을 멸망시키면 다음 우주의 주역이 될 수 있게 해 준다는 조건. 확신을 해서는 안 되지만, 그럴 가능성이 너무 컸다.
로고스에게 붙은 대성군도, 굳이 로고스에게 맞서기보다는 지금의 자리를 지키는 걸 원했기에 상대적으로 만만한 연합군과 대적하는 것을 선택한 거고.
로고스의 입장에서도, 양측이 서로 싸우면서 살을 깎아 먹어 무너지면 좋을 일이다.
지금의 찬탈자들이, 다음 우주에서도 주역을 차지하면 로고스의 입장에서도 별로 달갑지 않을 테니까. 그 숫자라도 줄일 속셈이리라.
‘그 외에 문제라면…… 역시 나머지 이야기의 왕들인가.’
천체주식회사의 회장 롯피우트.
희극단패의 총대장 담천.
엑소도스의 교황 카타르시스.
로고스에 의해 탄생한 태초의 인조 생명체들.
그들은 곧 있을 수확의 시기를 생각해서 일부러 서재와 관련된 것을 모조리 닫고 혼성계의 시화를 끊었다.
일종의 정보 차단이었고, 이를 통해 수확의 과정을 더욱 원활하게 할 계획으로 실행된 일련의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유현이 유일하게 서재를 지닌 채 독립을 한 텔러였다는 것.
‘하지만, 정말 예상하지 못했을까?’
담천과 카타르시스는 몰랐다 쳐도, 롯피우트가 과연 이것까지 생각을 못 했을까?
‘내가 죽었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서재를 회수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건지.’
하지만 이미 저질러진 일. 사탄에 의해 정보를 은폐하는 것마저 무산된 지금, 이야기의 왕들이 다시 움직이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담천과 카타르시스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유현은 오래전 롯피우트의 본체를 목도한 적이 있었다.
천체주식회사 자체가 그의 본체인 만큼, 그 거대함과 압도적인 이야기는 1세대 성령에 준했다.
‘여러모로 복잡한 기분이야.’
생각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특히 사탄이 죽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부 넘긴 탓에, 유현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데도 신경을 써야 했다.
사탄이 사용하던 기술, 그가 다루는 능력, 그리고 그가 오래전부터 쌓아 온 이야기들.
그사이에 섞인 그의 의지와 기억, 그리고 먼 과거에서부터 남아 있던 흐릿한 추억까지.
사탄이라는 거대한 이야기에 휩쓸려 강유현이라는 자아가 사라지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유현은 너무나도 멀쩡했다.
사탄이 지닌 이야기가 곧 그의 것이었기에. 서로 충돌하거나 잡아먹으려 하지 않고 공존하는 것이다.
“기묘한 기운을 지녔구나.”
그때 누군가가 유현과 권지아에게 다가왔다. 말을 걸기 전까지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에 놀라서일까. 권지아는 경계심을 일깨웠지만, 유현은 그러지 않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가?”
“지금은 일단 힘을 억누르고 계시지만, 극락정토에서 오신 분이 아닙니까?”
유현은 그를 보면서 눈으로 그의 이야기를 전부 읽고 있었다.
상대는 극락정토의 1세대 성령이며, 누구보다도 어둠을 멸하길 원하는 자였다.
성명, 두루 빛을 비추는 자.
다른 이름으로는 대일여래 비로자나불.
극락정토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그가 혼자서 유현을 찾아온 것이다.
“……나는 따로 확인할 것이 있으니, 이만 가 보마.”
권지아는 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깨닫고 눈치껏 자리에서 빠져 줬다. 권지아마저 사라지자 비로자나불은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려 들지 않았다.
“소식 들었는가?”
“무슨 소식을 말입니까.”
“마왕, 마라 파피야스가 재단의 편에 붙었다고 하더군.”
“……그랬군요.”
거짓말일 가능성은 극히 낮다.
녀석이 어디로 도망쳤나 했더니 재단의 편에 붙었을 줄이야. 그렇다는 것은 마라 파피야스 또한 찬탈자였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그보다 그걸 저에게 와서 알려 주시는 이유가 대체 뭡니까.”
“나는 자네를 별로 좋게 보지 않았네.”
“우연이군요. 저도 그랬었는데.”
너무나도 뜬금없는 비로자나불의 말이었지만, 유현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극락정토 대성군과의 첫 만남은, 유현에게 있어서 별로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그것은 비로자나불 또한 마찬가지였다.
비로자나불은 서수민을 훗날 마라의 충실한 수족이 될 수 있는 위험으로 보고 그녀를 제거하고자 했다. 그렇게 석가의 제자였던 출라판타카를 이용해 무리한 짓을 벌이기까지 했다.
출라판타카를 막은 것은 유현의 공이었다. 비로자나불의 입장에선 유현은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방해한 주역이었다.
“웃기는 일이지. 누구보다도 깨끗함을 추구하고 세상의 번뇌를 없애고자 한 우리가, 마왕 연합이니 판데모니엄이니 하는 녀석들과 손을 잡고 세상에 반기를 들다니.”
“……지금이라도 마음이 바뀌시면, 재단으로 넘어가는 것도 굳이 말리지는 않습니다.”
“비꼬는 건가. 아무리 나라도 염치는 있다네.”
비로자나불은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유현을 응시했다.
“선각자, 그 아이는 자네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려 가면서 희생했어.”
“그 책임을 물으실 생각이십니까?”
“책임? 천만에. 모든 선택은 결국 선각자의 자의에 의한 것. 그것을 두고 내가 뭐라고 명령을 내릴 수도 없지. 오히려, 선각자가 목숨을 버려 가면서까지 보고자 했던 자네의 미래에 대해서, 나 또한 관심을 가지게 됐네. 그리고 그 예상은 현실이 됐지. 이 세상이 몇 번이고 반복됐고, 나 말고 여타 성령 중에 찬탈자까지 끼어 있었다니. 그리고 깨닫게 됐어. 어쩌면 자네야말로, 이 반복되는 세상의 모든 것을 끝맺을 진정한 구원자가 아닌가 하고.”
“……구원자라뇨. 저에겐 부담스러운 칭호입니다.”
“그렇게 느끼는 것도 별수 없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자들이 많은 것도 어쩔 수 없지. 성령도 아닌 인간, 그것도 이전까지는 텔러였던 자네가 어느덧 이 모든 사태의 중심에 서게 됐으니까.”
그것은 유현도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대성군들이 연합에 붙어서 로고스에게 대항하려는 이유에 유현의 존재가 컸다.
“모든 별이, 자네를 지켜보고 있는 거야.”
모든 성령의 관심.
전생에서는 그 누구도 거들떠도보지 않았던, 한낱 무대 위의 엑스트라에 지나지 않았던 그가.
어느덧 이 세상의 중심에 우뚝 선 주인공이 된 것이었다.
“관심……입니까.”
그냥 빈말로 하는 칭찬도 아니고, 무려 극락정토의 1세대 성령이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그것에 담긴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유현도 모르지 않았다.
‘그렇구나.’
계속 달리고 달리던 나는, 어느덧 여기까지 오고 말았구나.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은, 폐허 속에서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던 과거의 자신.
한때 이런 자리에 서고 싶다고 염원하던 시절이 있었다. 죽고 나서 텔러로 막 태어났을 때, 그는 삶의 목표를 그러한 것으로 잡기도 했다.
다만, 그 이후에 벌어진 온갖 사건들과 만나온 무수한 사람들.
그들과 맺어 온 인연과 함께 어우러지며 만든 이야기들까지.
많은 일을 겪다 보니 어느덧 여기까지 오게 됐다.
순전히 자신이 잘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기까지 오기에 정말 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었다.
과거는 현재의 성공을 위한 발판 따위가 아니었다.
모든 순간이.
매 장면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소중했기에.
오히려 자신이 운이 좋아서, 얼떨결에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아직도 자네를 완전히 믿지는 않네. 하지만…… 선각자 그 아이는 자네를 믿었지. 그러니 나는 선각자가 믿는 자네를 믿어 볼 생각이네.”
비로자나불은 그렇게 말하며 유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걸 받게.”
“……이건?”
“내가 지닌 이야기일세.”
청정법신(淸靜法身) 지권인(智拳印).
불계와 중생계는 하나이며, 모든 중생은 곧 부처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지녔음을 알리는 이야기.
“1세대 성령이니 부처이니. 사실은 다 의미가 없었어. 본디 중생과 부처는 결국 다 똑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았던 거야. 나는 그걸 자네를 보고 깨달았네.”
“그래서 이 엄청난 이야기를 제게 주시는 겁니까?”
“그런 자네니까.”
이걸 주는 거라고.
유현은 말없이 비로자나불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가 건네주는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비로자나불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오히려 제가 고맙죠.”
“이로써 조금 마음이 놓이는군. 다른 녀석들에게 자랑할 거리가 하나는 생겼어.”
비로나자불의 얼굴은 모든 괴로움을 벗어던진 사람의 것마냥 후련해 보였다.
“감사히 쓰겠습니다.”
“그래. 크게 도움이 될 거 같지는 않지만, 단지 그뿐이라도 좋으니 세계를…… 부탁하네.”
부탁이라. 마치 자신은 어디론가 떠날 것처럼 말하다니. 결국 비로자나불 또한 곧 일어날 전쟁에서 자신의 생존을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이리라.
비로자나불은 그 말을 남기고 빛과 함께 사라졌다. 자신과 함께 온 극락정토의 다른 성령들이 있는 곳으로 간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그럴 생각입니다.”
유현은 사라진 그의 뒤에다 대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왕 받은 거, 바로 사용하는 게 좋겠지.
[지권인] 이야기를 곧바로 흡수한 유현은 고개를 돌려 아무도 없는 방향을 응시했다.
“이제 숨어 있지 말고 나오는 게 어때? 손님은 다 떠났으니까.”
“하하. 들켰나요.”
공간이 뒤틀린다 싶더니 몰래 숨어서 상황을 기다리던 유영민이 모습을 드러냈다.
회의장 내에서도 유영민은 있었지만, 그때는 분위기가 분위기다 보니 이렇게 터놓고 둘이서 만날 기회가 없었다.
“오랜만이다. 영민아.”
“네. 정말 오랜만이에요, 형.”
“못 보던 사이에 많이 변했네?”
지금이야 면도를 했지만, 수염을 기른 흔적이 남아 있는 유영민의 모습을 보면 이 녀석 또한 5년의 세월을 보냈다는 것이 실감됐다.
“지난번에 도와줬을 때, 고마웠다.”
“아뇨. 별거 아니었는걸요. ……오히려 더 도와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진청운 때문이었지? 정확히는 파편 때문이었고.”
“……네.”
유영민은 혹시나 자신이 진청운과 함께 파편 회수를 한 것에 유현이 배신감을 느낀 게 아닐까 걱정했다.
싫어도 세상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 일이었다 해도, 개인적인 감정은 절대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잘했다.”
“……네?”
“잘했다고. 나 없이도 열심히 했구나.”
“형.”
유영민은 유현이 자신을 혼내기는커녕 오히려 이해해 주기까지 하니 말문이 턱 막혔다.
이런 상황에서 눈물까지 흘리는 것은 꼴불견이기에, 유영민은 가슴에서 울컥 넘어오는 감동을 억눌렀다.
그 또한 여러 일을 겪다 보니, 근본적인 성격은 그대로여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재회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도, 지금 중요한 것이 더 있지 않은가.
“여기, 받아요.”
유영민은 자신이 모아 온 파편들을 유현에게 내밀었다.
그가 유현을 찾아온 것도 파편을 건네기 위해서였고, 자신과 함께해 온 최고의 파트너인 맥스웰을 돌려주기 위해서였다.
먼저 온 손님이 있어서 잠시 모습을 감췄지만, 이젠 그럴 필요도 없으니까.
“제겐 필요 없는 거예요. 오히려 형한테 가장 절실히 필요한 물건이죠. 세상을 위해서.”
“……그래. 고생했다.”
유현은 유영민과 악수를 하며 그에게서 나머지 파편을 모두 돌려받았다.
유현의 몸 위로 검은 활자가 일어나며 이윽고 맥스웰의 악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입니다, 주인님.]
“그래, 맥스웰. 너도 오랜만이구나.”
[지난번 뵐 수 있었는데, 찾아가지 못했던 저의 불충을 용서해 주시길.]
“용서고 자시고, 화나지도 않았어. 잘 왔다.”
[넓은 아량으로 넘어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맥스웰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다시 유현의 몸으로 흡수됐다.
동시에 유현의 몸속에 존재하던 아포리아의 악마가 완전한 형태로 각성했다.
지금까지 아포리아의 악마는 유현이 파편의 힘을 그저 겉핥기식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한 불완전한 것에 가까웠지만, 급화를 터득하고 파편을 완전히 이해한 지금은 달랐다.
그리고 진청운과 유영민이 모아온 모든 파편이 합쳐지며, 이윽고 파편은 조각을 넘어 하나의 형태로 바뀌었다.
그것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한 장의 종이.
태초의 서, 코덱스를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페이지였다.
“이게…… 코덱스.”
그냥 코덱스가 아닌, 지금 우주의 코덱스였다.
이런 페이지가 반복되는 우주마다 몇 번이고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진 책이 진짜 코덱스.
동시에 유현의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몸이 아닌 의식이 어디론가 강하게 빨려 들어가듯 이동했다.
하얗던 시야에 불순물이 섞이지 않을 정도로 눈부시게 물들었을 때, 도달했다.
“여기는.”
지난번 꿈속에서 보았던 새하얀 공간이었다.
유현은 곧바로 자신의 눈앞에 양팔을 벌린 채 십자가처럼 펼쳐진 거대한 흰 존재와 맞닥뜨렸다.
[누군가 했더니, 지난번 이곳까지 몰래 들어왔던 쥐새끼였군.]
그가 유현을 곧바로 알아보듯, 유현 또한 그를 곧바로 알아봤다.
“로고스.”
태초의 서, 코덱스의 주인.
이 세상을 몇 번이고 지우고 다시 시작하게 만든 장본인이자, 지금 사태의 근원.
유현은 드디어 그와 제대로 마주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