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423화
끼이익.
오두막 안쪽에서 유현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던 진청운은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반쯤 숙였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방 안쪽의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는 강유현을 발견한 진청운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어때. 이야기는 많이 나눴어? 너도 이제 알 건 다 알았을 텐데, 소감은 어때?”
“…….”
유현은 답하지 않았다. 진청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이제 와서 친근하게 말을 걸어 봤자 의미도 없겠지. 자, 이제 나를 죽여. 어차피 더 이상 나한테는 미련도 없으니까.”
“미련이 없다고?”
다른 것은 상관없지만, 마지막 그 한마디가 거슬렸던 걸까.
유현은 피식 웃으며 오두막 바깥을 향해 시선을 날렸다. 진청운 또한 그런 유현을 따라 고개를 돌리고, 이내 눈을 크게 떴다.
오두막의 열린 입구에 한 여인이 서 있었다.
“셰나?”
셰나 린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아름다운 적발을 지닌 그녀가 진청운을 죽일 듯 쏘아보고 있었다.
“네가 여길 어떻게…….”
“죽을 생각이었어?”
“너…….”
셰나 린치의 눈동자에 담긴 감정은 분노와 배신감, 그리고 괴로움과 슬픔이었다.
“고작 이런 허름한 오두막에서 비참하게 살해당하려고 그 힘든 길을 걸어온 거야?”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대체, 왜!”
결국, 참지 못한 셰나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러가자 유현은 슬쩍 뒤로 물러났다. 자신이 이 오두막에 들어왔을 때부터, 멀리서 이쪽을 주시하는 시선은 느꼈다. 그 기척이 익숙했기에 가볍게 무시하려 했는데, 설마 본인이 직접 찾아올 줄이야.
‘반응을 보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보군.’
예전에 마주쳤을 때부터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것이었다. 셰나 린치와 진청운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것 정도는.
하지만, 그게 어디 둘 뿐만의 이야기일까. 진청운이 이끄는 언리쉬드의 간부급 인물들도 마찬가지이리라.
진청운은 셰나의 만류를 뿌리치며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며 유현에게 말했다.
“어차피 여기까지 와서 구질구질하게 살려 달라고 빌지 않아. 그러니 어서 죽여. 이 모든 악연에 종지부를 네 손으로 찍으라고.”
“진청운!”
셰나가 이름을 부르짖었지만, 진청운은 안색 하나 바뀌지 않았다.
어차피, 그는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제에 맞지 않는 파편의 힘까지 얻었고, 그것을 맹신해서 로고스에게 도전하려다 실패했다. 차라리 죽는다면 유현의 손에 끝맺는 것이 훨씬 더 지금까지의 행보에 어울리는 결말이었다.
결국 이 세상을 바꿀 자격 따윈, 자신에겐 없었던 것이다.
“너…….”
“그리고, 이걸 받아.”
진청운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파편을 꺼내 유현에게 건넸다.
단순히 자신이 지닌 파편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거짓된 예언자로서 회수했던 다른 파편들까지 모두 포함한 것이었다.
“지난 5년간. 계속 모으고 모은 거야. 물론, 나 혼자서 만들어 낸 결과물은 아니지.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 너희 쪽 사람한테도.”
“영민이…….”
“그래. 유영민. 내 목적과 이 세상의 진실 중 일부를 말해 주면서 협력을 요구했더니 의외로 흔쾌히 수락하더라고. 물론 그 아이는 너를 위해서 한 행동이겠지만, 덕분에 나머지 파편을 모으는 데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었어.”
무수한 파편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조각은 유현에게 천천히 날아왔다.
유현은 그것을 받아들면서 진청운을 보았다.
지금까지 파편의 빛이라는 베일에 가려진 그의 진짜 책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가. 이게 너였구나.”
유현은 진청운의 책을 펼치지 않아도 그 내용물을 읽을 수 있었다.
읽는 것조차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 훨씬 더 상위의 무언가, 단지 책을 보는 것만으로 안쪽에 적힌 내용을 느끼는 경지였다.
유현은 그의 책을 느끼는 순간, 진청운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단번에 인지했다.
‘억압과 차별을 받아 온, 세계의 피해자.’
진청운은 중국 소수 민족 출신이었다.
그는 태어났을 때부터 일족 전체가 하나 된 나라에 억압을 받으며 굴종을 요구받았다.
어린 진청운은 그런 현실 자체를 크게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것을 인지하려면 다른 비교 대상이 필요한데, 그런 것조차 허락받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 왔기 때문이다.
어린 진청운에겐 부모님이 없었다. 그가 태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노역살이를 하다 사고에 휘말려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다행이라고 한다면 진청운에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누나가 있었고, 그녀의 필사적인 노력 덕분에 밝은 아이로 컸다.
진청운의 누나는 하나뿐인 동생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된 노동을 감행했다. 좁아터진 단칸방에서, 동생과 함께 지내며 열심히 돈을 벌었다. 아직 아는 것이 없던 어린 진청운은 누나에게 자주 넓은 곳에서 살고 싶다고 칭얼댔었다.
자신의 행동이, 누나에게 얼마나 큰 부담이 됐는지도 모른 채.
그러던 어느 날 진청운의 누나는 진청운에게 부잣집 남자와 결혼 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누나. 결혼해?’
‘응, 청운아. 우린 이제 굶지 않아도 돼. 누나가 우리 청운이가 원하는 맛있는 음식 가득 먹게 해 줄게. 그러니까 이제 괜찮아.’
진청운은 아직도 그때의 일을 잊지 못했다.
어두운 밤. 누나와 단둘이서 지내는 좁아터진 방에서 누나는 진청운을 껴안으며 등을 쓸어 주었다.
어린 시절의 그는 그때 누나가 울고 있다는 것조차 모른 채, 그저 누나가 좋은 곳에 시집을 간다고 좋아라 했었다. 자신도 이제 넓은 집에서 살 수 있다고, 이제 배를 곯을 필요도 없이 맛있는 음식을 왕창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금방 자신을 데리러 온다며 화려하게 치장을 한 누나가,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오는 데 채 3주도 걸리지 않았다.
‘네 누나는 맞아 죽었다.’
누나의 시신을 수습해 준 옆집 아저씨가 한 말이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최선인 양, 그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진청운은 포대기에 덮인 누나의 시체를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언뜻 드러난 그녀의 가녀린 팔과 다리에는 심한 멍이 가득했다.
나중에 알게 된 진실이었는데, 애초에 좋아서 한 결혼도 아니었다.
소수 민족 탄압을 위해 국가에서 억지로 맺은 계약 결혼에 가까웠고, 그마저도 돈을 준다고 했기에 진청운의 누나는 힘든 것을 참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불행이라고 한다면, 그녀의 남편이 될 사람은 원래부터 폭력적이고 패악질을 일삼은 전적이 가득한, 흔히들 하자가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이겠지.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었다.
왜? 누나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 죽어야만 했지? 왜 그 남자는 벌을 받지 않는 거야?
이렇게나 명확한 죽음에도 적합한 처벌은 없었다. 법도 정의도 나라도, 전부 그 남자의 편이었다.
소수 민족 출신의 집도 없는 고아에겐, 누구도 신경 써 주는 이 하나 없었다.
‘…….’
차갑게 식어 버린 누나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진청운은 처음으로 이 세상이 얼마나 끔찍한 곳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자신의 재능을 개화했다.
가족을 잃은 슬픔과 고통이, 세상을 향한 그의 안목을 억지로 넓혀 준 것이었다.
하나밖에 남지 않았던 마지막 혈육마저 잃은 어린 소년이 그 순간 느낀 감정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결국, 가난한 자치구에서 탄압받던 소수민족 출신이었던 한 아이는 세상을 뒤흔드는 테러리스트들의 수장이 되고 말았다.
그의 행동은 사상통합의 시대가 지나고, 중국이라는 나라가 수십 개로 갈라져도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그것이 언리쉬드.’
세간에 알려진 언리쉬드는 컬렉터 우월주의에 빠진 테러리스트들이었지만, 그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언리쉬드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초기 구성원들은 전부 억압받고 차별을 받으며 힘든 유년기를 보내 온 자들이었다.
사는 곳이 가난해서, 부정한 핏줄을 이어서, 거대한 권력에 마을이 날아가서.
괴로운 일을 겪어도 세상의 관심조차 받지 못해 역사의 저편으로 가루처럼 사라져야만 했던 인간들.
그러나 마지막의 마지막에 천운이 따라 컬렉터로 각성을 할 수 있었던, 선택을 받은 인간들.
그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언리쉬드였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자신을 이렇게 만들고, 또 자신과 같은 처지인 사람들을 계속 만들어 내는 세상을 향한 저항이었다.
정말,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다.
‘사연이 없는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만.’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저들이 겪었던 고통과 상실을 가만히 놔뒀어야 했을까.
세력을 키우기 위해 새로운 인재의 영입은 필수였고, 그렇게 온갖 인간들을 받아들이다 보니 언리쉬드라는 조직 자체의 전체적인 목적이 컬렉터 우월주의로 변질되었지만.
정작 그들의 리더인 진청운의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하나뿐이었다.
‘왜 일부러 과격한 녀석들을 버리는 패처럼 소모했는지 이제야 알겠어.’
진청운도 그들이 달갑지 않았기에, 적어도 그런 식으로라도 사용하려 했던 것이다.
세상이 증오스러운 것은 똑같지만, 그렇다고 저들처럼 추한 모습으로 무너지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렇다 해도 더 나빠지는 것을 막았을 뿐, 그의 행동 자체가 정당화되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그것은 진청운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는 바였다.
‘하지만, 결국 이번 시대 진청운의 선택은 바뀌고 말아.’
세상을 향해 분노어린 목소리를 토하려던 진청운은 파편을 얻는 것과 동시에 프라이티온과 접촉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더 큰 세상의 진실을 목도했다.
결국에 지구는 멸망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고, 진청운은 그것을 막기 위해 선택을 내려야만 했다.
심지어 그 선택을 내린다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아니었다.
세상을 바꿀 자격을 지닌 사람은 따로 있었으니까.
그의 역할은 그저 철저하게 주역을 보조하기 위한 들러리. 겨우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
분노해야 옳았다.
왜 자신에게 이런 진실을 알려 주냐며, 프라이티온에게 분노를 토하며 더욱 증오에 휩싸이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이 남자는 결국, 올바른 선택을 내렸다.
범세계적인 테러리스트들의 수장이자 사람을 죽이는 악당이라는 역할을 그대로 가져간 채로, 멸망이라는 예정 조화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
그 고단한 여정의 끝이 바로 지금이었다.
“어서 죽여.”
‘제발 죽여 줘.’
“네 손으로 모든 걸 끝내.”
‘이 고통스러운 삶을 어서 끝내 줘.’
진청운은 입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유현은 그가 마음속으로 외치는 다른 말을 들었다.
악당으로 살았고, 대의를 위해 살았다.
스스로가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사연을 팔며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역시 괴로운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진청운은 지쳤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불태우고 로고스에게 맞서려 했지만, 그가 있는 곳에 가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결국, 이 꼴이다.
결국, 이런 몰골로 근근이 살아가는 것이 그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너는…….”
진청운이 건넨 파편을 모두 받아들인 유현은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등을 돌렸다.
진청운의 기대에 찬 눈빛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날…… 죽이지 않는 거냐?”
“지금의 넌 그럴 가치도 없으니까. 정 그렇게 죽고 싶다면, 너 혼자 죽어.”
지금의 진청운은 그가 직접 손을 쓸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그가 바라는 죽음을 선사하는 것은 안식을 주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차라리 이런 추한 모습으로 살게 하는 것이 그에게 내리는 합당한 벌이었다.
“너는…… 마지막까지 잔인하구나.”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래. 그랬지……. 너도, 나도 피차 힘든 일을 겪었으니까.”
유현은 그 말을 일부러 무시하며 셰나와 진청운을 뒤로했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유현의 등 뒤로, 진청운의 마지막 한마디가 날아왔다.
“미안했어.”
“…….”
유현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고, 오두막을 떠났다.
* * *
프라이티온과 떠나기 전.
유현은 그에게 아직 남아 있는 서재가 있다고 전했다. 다른 것도 아닌, 그 서재는 유현이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유현의 서재는 여타 텔러들과 다르게 회사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롯피우트의 허락을 받아 정당하게 천체주식회사에서 퇴직했고, 프리랜서로 전향하며 서재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 서재는, 천체주식회사가 문을 닫은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런 상황을 노리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참 앞일이란 모른다 싶은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절묘한 상황이었다.
유현은 인적이 없는 곳까지 이동했다. 검은색과 흰색이 반반 섞인 흑백의 토지 위에서 유현은 서재를 점검했다.
‘서재의 기능 자체는 정상적으로 작동해. 하지만 시화를 열려면 필연적으로 제네시스 네트워크에 접속을 할 수밖에 없어.’
이런 상황 자체는 예상하지 못한 것인지 제네시스 네트워크 자체는 아직 멀쩡히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유현이 서재를 개방하고 시화를 시작하면, 제단에서도 행동에 들어갈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 제네시스 네트워크로 인해 시스템의 페널티를 받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래도 해야지.’
프라이티온은 조금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시간이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유현이 가장 잘 알았다.
유현의 눈앞의 허공이 갈라지더니, 이윽고 책들이 가득 찬 새하얀 공간이 나타났다.
그가 텔러로 활동하면서 온갖 추억과 이야기가 담겨 있는 그만의 개인 서재.
복잡한 시선으로 서재 안쪽을 보고 있으려니 어디선가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사이 바람이 멈췄다.
유현은 바람이 불어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입니다.”
검은 연미복에 얼굴도 어둠으로 가득한 존재를 보며, 유현은 구태여 놀라지 않고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이렇게 만나게 될 거라고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그가 지금 서 있는 이 경계선이 누구의 영토와 맞닿아 있는지 생각하면 당연했다.
“사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