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아는 주인공들-419화 (419/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419화

어두운 밤하늘 아래 붉게 타오르는 모닥불.

유영민은 적당한 자리에 앉아 자신의 무기를 느긋하게 손질했다.

그런 유영민의 주위로 용병단 부하들이 시끄럽게 떠들거나 각자 휴식을 취하며 여가를 보냈다.

휘익!

어느 순간 주위 모든 것이 고요하게 변하더니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유영민의 귀를 울렸다.

저격총을 닦던 유영민의 손길이 멈추고, 동시에 부하들의 웃음소리가 뚝 그쳤다.

삽시간에 싸늘해진 분위기 속에서, 부관의 역할을 자처하던 녀석이 다가오며 작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대장.”

“알아. 나도 들었어.”

부하들은 얼굴을 굳히며 각자 자신의 무기에 손을 가져갔다. 유영민 또한 곧바로 반격을 취할 수 있도록 저격총을 고쳐 쥐었다.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그들의 시선은 어두운 숲 너머를 향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안쪽에서 누군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용병들이 곧바로 공격을 취하려는 순간, 어둠 속에서 발끝부터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상대방을 알아본 유영민이 먼저 손을 들어 올려 그들을 제지했다.

“전원 동작 그만.”

“네?”

“내 지인이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팽팽했던 분위기가 탁 가라앉았다.

용병들은 곧바로 무기를 손에 놓고 조금 전처럼 자연스럽게 휴식에 들어갔다. 조금 전의 경계심은 없던 일인 것처럼.

오밤중에 찾아온 손님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유영민에게 다가와 모닥불을 마주 보듯 그의 앞에 앉았다.

“오랜만이다. 영민아.”

“예. 지아 누님도 잘 지내셨습니까.”

유영민의 가벼운 인사에 권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놀랐습니다. 이런 오밤중에 저를 갑자기 찾아오신 이유가 뭡니까.”

“유현 씨가 돌아왔다.”

“그건 들어서 알고 있어요.”

“그래. 이미 알고 있었겠지. 유현 씨가 싸울 때 너도 도움을 줬다지?”

“뭐,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런가.”

권지아는 곁눈질로 주변 용병들을 살폈다. 유영민은 혼성계에서 자신의 본래 이름보다 용병왕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했다. 자연스럽게 그런 유영민의 곁에는 그에 걸맞은 자들로 가득 찼다.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지만, 실력 하나만 놓고 보면 다들 초월자에 도달한 자들.

지금도 서로 웃고 떠들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권지아가 수상한 짓을 하면 순식간에 대응에 들어갈 정도로 날이 잘 서 있다.

“훌륭한 부하들을 뒀구나.”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되더라고요. 그보다 누님이 이렇게 몸소 나섰다는 것은…… 형이 저를 찾고 있다는 소리겠죠?”

“그래. 왜 그때 유현 씨를 만나지 않은 거냐.”

“왜 그랬을까요?”

유영민의 장난스러운 대꾸에 권지아는 차분히 답했다.

“파편을 모으고 있다고 들었다.”

“……눈치챘어요?”

“나도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으니까. 용병왕이 뭘 하면서 돌아다니는지 소문으로 익히 들었지. 그러다 보니 네가 흔히들 ‘사냥’하는 녀석들의 공통점이 눈에 띄더라고. 혼성계 내에서도 기이하다고 평가를 받는 녀석들 말이야.”

“씁.”

설마 이렇게 쉽게 들통났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유영민은 난색 함을 드러냈다.

“뭐, 알고 있으면 차라리 낫겠네요. 저는 지금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바로 형을 만나러 갈 수 없어요.”

“파편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 건가?”

“단순히 파편 때문만은 아니니까 그렇죠.”

유영민은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 이내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누님. 저 진청운과 만났어요. 그것도 모자라 녀석과 같이 일하고 있죠.”

“…….”

진청운이라는 이름이 나오기 무섭게 권지아의 이마에 주름이 팼다.

“화 안 내요?”

“대답의 여하에 따라서.”

유영민은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는 권지아가 이 이름을 듣는 순간 바로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진청운과 함께 일하는 이유는?”

“보다시피…… 파편을 모으기 위해서죠.”

“녀석이 파편을 모으려는 이유야 둘째치고, 굳이 녀석과 접촉하지 않아도 파편을 모을 수는 있었을 텐데?”

“뭐, 저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었죠.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파편을 모아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지만요. 형이 사라진 이후, 파편은 제 관심 바깥으로 밀려났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진청운이 유영민에게 접촉해 왔다.

그것도 누구도 대동하지 않은 채 혼자서.

그야말로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진청운은 유영민이 자신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유현이 사라진 원인이 자신이라는 걸 유영민을 포함한 백화 매니지먼트 사람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대놓고 유영민에게 다가온 것이다.

“……진청운 녀석은 어디 있지?”

싸늘하게 날이 서 있는 권지아의 목소리에 유영민은 쓰게 웃었다.

“누님. 일단 진정하세요. 누님이 녀석을 가장 싫어하는 것은 저도 잘 아니까요.”

“……그래. 미안하다.”

“누님이 녀석을 증오하는 것도 이해해요.”

5년 전 그날. 악몽의 세계와 함께 유현이 사라졌을 때, 그런 권지아의 악몽 세계를 만들어 낸 것이 진청운이었다.

봉인된 기억이 깨어나며 자신이 겪어 온 모든 경험이 세상을 좀먹는 악몽이 됐을 때.

그것을 지켜보던 권지아의 기분이 과연 어땠을까.

그리고 자신을 구해 주면서 끝끝내 사라져 버린 그 남자를 보게 된 그때의 상실감과 분노는 또 얼마나 컸을까.

전부 녀석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저도 녀석을 보는 순간 바로 죽여 버리고 싶었는데, 누님이야 오죽했을까요.”

“왜 녀석을 살려 뒀지?”

“마주친 순간 때리기는 했어요. 한 방 세게 먹였죠.”

“잘했다. 그런데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

“음. 마음 같아서는 죽도록 패고 싶었는데, 그렇게까지 할 상태가 아니었더라고요. 그 녀석,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오늘내일할 정도로 상태가 나빴어요. 그래서 딱 한 대밖에 못 때렸어요. 그것만으로도 진청운은 진짜 죽을 뻔했죠. 더 때렸으면 정말로 죽었을걸요. 녀석은 그걸 알면서도 저를 찾아왔죠. 아니, 저니까 찾아온 거려나.”

“뭐?”

“녀석은 제게 거래를 하자고 했어요. 제가 개수작 부리지 말라고, 무슨 거래냐고 따지니까 멋대로 뭐라 떠들더라고요.”

“녀석이 뭐라고 했지?”

“자기가 한 짓은 세상을 위한 것이었다. 유현은 언젠가 돌아온다.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났을 때 죗값은 전부 치르겠다.”

“고리타분한 말이로군. 들을 가치도 없어.”

“맞아요. 저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죠. 녀석이 이후 그를 소개시켜 주기 전까지는.”

그를 소개시켜 줬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권지아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또 누가 이어서 찾아왔나?”

“찾아왔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다고 해야 하나, 제가 만나러 가게 된 거라고 해야 하나. 그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복잡하지만…… 일단 만났어요. 진청운의 뒤에서 모든 것을 지시한 존재.”

“그게 누구지?”

“프라이티온.”

화륵.

두 사람의 사이에 타오르는 모닥불의 불길이 순간 더 거세졌다.

“그 존재는 자신을 이야기의 왕 프라이티온이라고 소개했어요.”

* * *

하압! 합!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허허벌판의 중심.

강유라는 누군가의 지도를 받으며 열심히 창을 내지르거나 휘둘렀다.

그런 강유라의 곁에서 그녀의 수련을 지도해 주는 것은 최도윤이었다.

땀을 흘려 가면서 열심히 단련하는 강유라를 본 최도윤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이군.”

“네, 네?”

“잘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 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이 어쩌다 이렇게 함께한 지는 별로 오래되지 않았다.

유현이 연합을 떠나는 날. 강유라는 연합 내전에 참여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강해질 길을 모색했다.

어린 나이에 초월자의 수준에 도달한 그녀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수준이었지만, 정작 강유라는 지금 자신의 수준이 눈에 차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의 짐이 되지 않고 더 강해질 수 있을까.

그렇게 고민하던 그녀는 자신보다 더 강한 사람을 찾아 도움을 구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역시나 최도윤이었다. 유현은 녀석에게 절대로 접근하지 말라고 했고 본인도 그러겠다고 했지만, 강유라는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그에게 부탁을 했었다.

‘처음에는 안 될 줄 알았는데.’

최도윤은 뭐라고 해야 할까, 분명 면식이 있기도 하고 나쁘지 않은데 묘하게 그의 눈빛을 마주하면 주눅이 들게 된다.

이성은 아무렇지 않다고 여기는데, 본능이 그를 경계한다. 마치 인간 상성이 맞지 않기라도 하듯이.

전생에서 이어져 온 악연. 그것은 강유라가 강유현과 전혀 별개의 존재가 되었어도, 잔영처럼 그녀에게 영향을 끼쳤다.

강유라는 최도윤에게 최대한 조심스럽게 강해질 방법을 알려 달라고 조언을 구했고, 최도윤은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듣기만 할 뿐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강유라는 결국 안 될 거라 생각하고 다음 목표를 누구로 삼을지 물색하려던 순간, 최도윤의 입이 열렸다.

‘좋다.’

그리고 강유라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최도윤의 손에 이끌려 그의 앞에서 창술을 펼치게 됐다.

강유라는 문득 유현이 최도윤과 가까이 지내지 말라는 경고를 떠올렸지만, 그것을 머릿속에서 말끔히 지웠다.

연합에서 가장 강한 남자가 자신을 가르쳐 준다는데,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그렇게 최도윤이 직접 그녀의 실력을 봐주며 여러 가지로 지도를 해 줬고, 강유라는 자신의 실력이 확 오르는 것을 실시간으로 체험했다.

‘와, 역시 대단해. 역시 집행자 정도 되면 가르치는 것도 되게 잘하는구나.’

강유라는 최도윤이 잘 가르친 덕분에 실력이 일취월장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녀를 지켜보는 최도윤의 생각은 달랐다.

‘재능이 대단하군. 몇 가지 조언을 해준 것밖에 없는데도 가르침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어.’

사실, 강유라와 최도윤이 사용하는 무기는 차이가 있기에 조언을 하고 가르친다 해도 나름의 한계는 명확했다. 강유라는 창을, 최도윤은 검을 사용했다.

최도윤 정도 되면 검뿐만이 아니라 온갖 병장기를 능숙하게 다루지만, 그보다 창을 훨씬 더 잘 다루는 자를 찾으려면 분명 있었다. 차라리 그녀에게 창에 대한 조언이 필요했다면 다른 존재를 소개시켜 줬을 것이다.

지금 그가 가르치는 것도 창술이 아닌 실전에 가까운 전투 능력이나 위급한 상황의 대처 방안, 그리고 의념을 다루는 방법뿐이었다.

단지, 그녀의 부탁을 받아들인 것은 유현의 영향이 컸다.

최도윤은 막연하게 지금 강유라가 또 다른 유현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만큼 최도윤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막상 강유라를 가르치니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났다.

‘이렇게 비교하는 것도 웃기지만, 구서윤이나 자밀라보다 훨씬 더 낫군.’

그 둘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강유라가 그만큼 대단한 거지.

가르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빠르니, 자연스럽게 최도윤도 조금은 가르치는 데 의욕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혹독히, 조금은 더 모질게 가르쳤다. 강유라는 군말 없이 그를 따랐다.

“됐다. 거기까지.”

최도윤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강유라의 창이 우뚝 멈췄다. 최도윤은 곧바로 아공간에서 마른 수건과 생수 통 하나를 그녀에게 던져 줬다.

“아. 고마워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수분을 보충하는 강유라를 보며 최도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너에게 창을 가르쳐 준 사람이 누구지?”

“네?”

“그 창술, 아무리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데.”

초월자 정도 되는 강유라가 사용하는 창술은 비범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도윤은 그 이상으로 그녀가 익힌 창술이, 초월자를 능가하는 다른 무언가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아, 이거요? 이거 수민이가 가르쳐 준 건데.”

“수민? 천마 서수민?”

“네!”

“그런가. 그녀가 가르쳐 준 건가.”

“아뇨. 그 뭐냐, 가르쳐 준 건 맞는데…… 약간 제가 고안한 것에서 수민이가 보강을 했다는 것이 맞으려나?”

“뭐?”

그건 너무 의외여서 최도윤은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되묻고 말았다. 강유라는 별거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결국 저 기묘한 창술의 뼈대를 고안한 것은 결국 자신이 했다는 게 아닌가.

가르치는 것을 물을 흡수하는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것도 범상치 않았는데, 설마 저 창술마저도 스스로가 고안한 것이라면.

강유라가 지닌 재능이라는 것은 어쩌면…….

“흠.”

생각은 거기서 끊겼다.

최도윤은 이윽고 고개를 들어 올려 먼 하늘을 바라봤다.

강유라는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최도윤은 대답하지 않고 눈을 더 가늘게 떴다.

무언가 온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하늘에서 새하얀 그림자가 뚝 떨어졌다.

“오. 낯익은 얼굴이 있다 했더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어? 수민아!”

“유라야. 오랜만!”

천마 서수민.

올드 타운으로 복귀하려던 그녀는 도시 밖에서 훈련을 하는 강유라와 최도윤을 발견했기에 중간에 들렸다.

“가서 하려던 일은 잘 해결한 거야?”

“응,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오빠는? 오빠는 만났어?”

“응.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나 먼저 돌아오는 길이야. 유현 씨는 나중에 오겠데.”

“그래?”

“그보다 유라 너…….”

서수민은 방금 전가지 강유라가 창을 내지르고 있던 방향을 곁눈질하며 말했다.

“실력이 많이 늘었네?”

“헤헤.”

강유라는 별거 아닌 것을 칭찬받은 것이 쑥스러운지 부끄럽게 웃었지만, 서수민은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한 소리였다.

그녀의 시선에 닿는 것은 땅에 새겨진 거대한 창의 흔적. 지면에 참격이라도 새겨진 것처럼 땅이 예리한 단면으로 갈라져 있었는데, 그 깊이를 감히 짐작하기 힘들었다.

전부 강유라의 창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그것도 전부 찌르기로.

‘창술의 찌르기로 이 정도의 흔적을 만들 수 있는가? 내가 창술을 보강해 주기는 했다지만, 이런 결과물까지 예상한 건 아니었는데. 설마, 이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다니. 이거 완전 그 남자와…….’

자신의 성명절기인 칠마흑천신공을 완벽하게 터득하던 유현과 강유라의 모습이 일순 겹쳐졌다.

유현의 과거를 본 입장에서, 강유라가 또 다른 유현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 해도 이 재능은 무엇이란 말인가.

유현이 유별난 거라고 생각했지만, 강유라가 보여 준 이 가능성을 보면 이건 원래부터 이런 걸 타고났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음?”

서수민은 강유라에게서 시선을 떼, 이윽고 이쪽을 응시하는 최도윤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이런 외진 곳에 단둘이 있던 것이 퍽이나 수상하던 참이었다.

설마, 둘이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니겠지? 설마.

서수민과 최도윤은 그렇게 한동안 눈 씨름을 했다.

나름 안면이 있는 사이기는 하지만, 그렇다 할 대화를 나눈 적이 없는 둘이었다.

사이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그저 상대방이 충분한 강자라는 것만 이해한 채 자연스럽게 넘기는 정도.

하지만, 지금 분위기는 뭐랄까.

“흠.”

“으음.”

둘의 시선이 더욱 날카로워지며 허공에서 격하게 충돌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최도윤이었다.

“미안하지만, 내가 가르치는 수련을 방해하지 말아 주겠나?”

그 말에 서수민이 발끈하며 답했다.

“왜 네가 가르치는 거지? 이 창술을 유라에게 알려 준 건 나였는데?”

“창술의 기존 뼈대는 강유라의 것이지, 살만 붙여 준 거로 네 거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공동명의 몰라? 공동명의.”

“천마라는 자가 무공에 저작권을 들이밀 생각인가?”

“그러는 댁은 무슨 자격으로 우리 유라한테 창술을 가르치는 거지?”

“흥. 우리 유라? 웃기는 말이군. 무엇보다 먼저 내게 가르침을 구한 것은 강유라였다.”

“유라야. 그 말 진짜야?”

“어, 어? 그, 그런데……. 그보다 두 사람 갑자기 무섭게 왜 그래…….”

강유라는 왜 갑자기 두 사람이 신경전을 벌이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자신 때문이라는 것까지도.

* * *

“여긴가?”

유현은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보고 자리에 멈춰 섰다.

기묘한 세계였다. 그의 오른쪽으로는 검고 우울하고 차갑게 얼어붙은 땅이 펼쳐져 있었고, 반대로 그의 왼쪽은 따스하고 풍족하며 새하얀 빛으로 이루어진 하늘이 펼쳐져 있었으니까.

유현이 서 있는 곳은 그런 흑과 백의 땅이 서로 섞이지 못한 채 명백한 경계를 이룬 경계선.

그리고, 그런 유현의 앞에 차원 사이에 숨겨져 있는 자그마한 오두막이 보였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화안금정과 라플라스의 눈, 그리고 급화까지 터득한 유현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유현은 바로 오두막 안쪽으로 들어갔다.

앞마당을 지나는 순간 차원막을 통과하며 묘한 감촉을 느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끼이익.

오랫동안 손질하지 않은 건지 문의 경첩이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어서 와.”

그리고, 안쪽에 있는 사람이 유현을 반겨 줬다.

마치, 유현이 지금 올 줄 알기라도 했다는 듯.

“오랜만이군. 거짓된 예언자. 아니, 진청운이라고 해야 하나?”

진청운.

그 남자가 의자에 혼자 앉아서 유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