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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413화 (413/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413화

카멜롯은 이미 혼란에 빠져 있었다. 아직 반파된 성을 수복하는 작업도 시작하지 못했는데, 그들의 꼭대기에 거대한 요새가 나타났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카멜롯의 시민들은 두려움에 떨며 어쩔 줄 몰라 했고, 기사들 또한 암담한 시선으로 요새를 올려다봤다.

원탁의 기사들과 상급 기사은 제단의 정체를 알기에 얼굴을 굳혔다.

“제네시스 제단의 요새가 대체 왜 카멜롯에…….”

“또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건가?”

모두가 그렇게 중얼거리던 찰나, 태양의 기사 가웨인은 아직 멀쩡한 카멜롯 성의 첨탑 꼭대기에 서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아서왕?”

가웨인의 혼잣말을 들은 기사들이 전부 그의 시선을 따라 첨탑 위에 서 있는 아서를 향했다.

“와, 왕이시다!”

“왕께서 돌아오셨어!”

“그런데, 대체 왜 검은 갑옷을 입고 계신 거지?”

아서가 멀쩡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은 카멜롯에 희망을 주었지만, 동시에 그가 입고 있는 검은 갑주를 알아본 기사들은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들은 지금 말만 하지 않았지 머릿속으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왕이, 나라를 버렸다는 것.

카멜롯을 지켜야 할 아서가 자신의 손으로 카멜롯을 무너뜨린다고 말이다.

아서 팬드래건은 그 시선이 담긴 불안감을 모르지 않았다. 모른 척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름 고대하던 무대였는데, 설마 벌써 놈들이 움직여서 선수를 쳤을 줄이야.”

제네시스 제단이 먼저 움직였다면,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멀린과 란슬롯, 케이와 가레스 또한 무거운 얼굴로 제단을 올려다봤다.

갑자기 제단이 이렇게 나타났다는 것은, 카멜롯에서 벌어진 이상 현상을 감지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제단은 혼성계를 크게 뒤흔들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그것에 개입할 명분으로 ‘천칭’을 기준으로 삼는다.

천칭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기울어진다면, 제단은 천칭이 기울었다 해서 직접 움직인다. 살리오 제국 건도 바로 이 천칭이 기울었기에 제단에서 직접 나섰다.

그리고 이번 카멜롯도 마찬가지였다.

아서의 시선이 카멜롯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그래도 초대했던 손님들은 거의 다 왔군.’

대성군 마비노기온 소속 성령들.

은 팔의 누아다 아르게틀람

포보르 혼혈인 오하드 브레스

지고한 빛 루 라바다

사안의 발로르.

그 외에 위대한 밀레시안들과 이스시의 요정, 오래된 숲의 드루이드들까지.

‘모르간.’

자신이 사랑하던 여인 모르간 르 페이 또한 먼 곳에서 카멜롯을 지켜보고 있었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초월적인 존재가 된 둘이기에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

아서는 모르간에게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모르간의 눈동자가 바르르 떨렸다.

아서는 곧바로 모르간에게서 시선을 떼어 일행들에게 말했다.

“그렇다 해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멈출 수 없겠지.”

오직 이 순간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제단은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며 진정한 반역의 이야기를 입에 담는 순간, 제단이 곧바로 움직일 거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제단은 지금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네가 뭘 하려는지 알고 있으니, 지금 여기서 멈추라고. 그러지 않으면 그때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거라고.

제단이 직접 나서서 살리오 제국을 지워 버린 것은 이미 혼성계에서도 파다하게 퍼졌다. 제단이 한번 움직이게 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지, 모든 대성군은 그것을 똑똑히 뇌리에 아로새겼다.

살리오 제국뿐만이 아니다. 카멜롯이라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분명 이것은 미친 짓이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제멋대로에 지나지 않은 한 존재의 발악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해야만 한다.

누군가는, 이 사실을 알려야만 했다.

“모두들 잘 들어라.”

그렇기에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아서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공표했다.

“시민들이여! 그리고 용감한 기사들이여! 나 아서 팬드래건은 모든 명예와 영광을 버리고 반역자로서 검을 들었다!”

“네? 그게 대체 무슨?”

“왕이시여! 그게 무슨 소립니까!”

왕이 자신들을 배신했다는 말에 카멜롯 시민들은 믿을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특히 왕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랐던 가웨인은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을 몸소 겪었다.

아서는 그들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일일이 납득을 시켜 주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쿠구구궁!

제단이 굉음을 내며 진동했다. 그것은 마치 제단 자체가 아서의 행태에 분노를 표출하는 것만 같았다.

“모두 내가 왜 이런 짓을 벌이는지 궁금해할 거다. 하지만 그걸 내 입으로 말해 줄 수는 없다. 대신 모두 두 눈을 뜨고 똑똑히 지켜봐라. 내가 최후에 반기를 든 것은, 단순히 우리 카멜롯을 향한 것만이 아니었음을.”

아서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휘황찬란한 금빛 광채가 검을 휘감으며 카멜롯에 드리운 그림자를 씻어 냈다.

“기억해라! 우리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저것이야말로, 진정 우리가 가장 경계하고 타도해야 할 적임을! 우리를 우롱하고 내려다보며, 언제나 같은 운명을 반복하게 만드는 저 치들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쓰러뜨려야 할 진정한 숙적이다!”

그의 목소리는 만물을 타고 퍼져 나갔다. 카멜롯 전체를 넘어, 그 바깥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관객들에게마저도.

“아서, 너 설마……!”

모르간은 그제야 아서가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 건지 깨달았다.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카멜롯을 향하려는 순간, 아발론에서 함께 나온 아홉 드루이드들이 그녀를 만류했다.

“모르간님! 가시면 안 됩니다!”

“저곳은 위험해요! 제단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요! 카멜롯은, 살리오 제국과 같은 꼴을 겪게 될 거라고요!”

“그런 곳이라면 아무리 모르간님이라도…….”

“이것 놔!”

모르간이 드루이드들과 실랑이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아서의 연설은 멈추지 않았다.

그럴수록 제단의 진동은 더욱 거세게 변하며 숫제 세상을 뒤흔드는 수준까지 도달하고 말았다.

아서는 그런 제단을 향해 엑스칼리버를 겨누었다.

“카멜롯이여! 마비노기온이여! 그리고 하늘의 별들이여! 오늘 우리는, 새로운 기회에 직면하게 될 거다! 그대들은 선택을 내려야 한다! 굴복할 것인가! 맞서 싸울 것인가!”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로 제단을 노려본다.

“이것 하나만큼은 기억하거라! 로고스! 그자가 이 모든 일의 근원이다!!!”

우뚝.

제단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숫제 지진이라도 일어나던 것처럼 흔들리던 조금 전이 거짓말이기라도 한 것처럼.

짙고 어두운 침묵이 카멜롯 전체에 깔렸다.

그 광경에 카멜롯의 시민들은 안도감보다도 두려움을 느꼈다.

이제 곧 거대한 무언가가 내려올 거라는 불안감은, 이윽고 현실이 됐다.

덜컹.

제네시스 요새의 하면부가 굉음과 함께 좌우로 쩌억 열렸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제단 내부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을 등지며 검은 그림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에, 엘로힘! 엘로힘이다!”

“파괴의 사도들이 나타났어!”

검은 그림자를 만드는 새하얀 존재.

그 모순적인 자들은 파괴와 절망을 뿌리는 사도이며, 이 모든 사태를 일으킨 주범의 충직한 종이었다.

“아서! 시민들이 당황해한다!”

“엘로힘과 싸울 겁니까?”

케이와 가레스가 그리 물었지만, 아서는 답하지 않았다.

“아서!”

“케이. 그리고 가레스. 그 외에 모두들.”

아서는 천천히 이쪽을 향해 내려오는 엘로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저들과 싸우는 건가?”

“아니. 싸움은 필요 없어. 그건 내가 해야 할 일이야.”

“……그렇다면?”

“진실을 알려. 혼성계 전체에 이 이야기를 뿌리는 거야. 진실을,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그리고 가능성을.”

기쁨과 슬픔이 혼동된 복잡한 감정이 아서의 얼굴 위로 드러났다.

그러나, 마지막에 아서는 입을 말아 올리며 씨익 웃었다.

“그게 왕으로서 내리는 마지막 명령이다.”

“뭐? 너, 지금 무슨…….”

“자. 수다는 이제 끝이야. 엘로힘이 나타났으니 이제 곧 놈들의 처벌이 우리 카멜롯의 위로 떨어지겠지. 세계의 진실을 알리려는 나를 벌하기 위해, 제단은 카멜롯을 지우려고 할 거야.”

“그렇기에 더더욱 맞서 싸워야지!”

“케이. 네 마음은 모르는 건 아니지만, 지금 우리 카멜롯의 수준으로는 제단에 맞설 수 없어. 마비노기온 전체라도 마찬가지야.”

제단은 강하다. 괜히 대성군들이 제단을 상대로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다.

대성군은 혼성계 내에서도 정말로 강력한 조직이지만, 제단은 그런 대성군보다 훨씬 더 강하다.

그런 제단과 맞서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선을 긋고 경계를 나누는 다른 대성군끼리의 협력이 필수였다.

“어차피 여기서 싸우는 건 나 하나로 족해.”

“웃기지 마! 내가 널 두고 떠날 거 같아?”

“멀린.”

아서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자, 시종일관 침통한 표정을 짓던 멀린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동시에 멀린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거대한 마력이 다시 일행들을 휘감았다. 특히 발버둥 치려는 케이에게 마력이 집중됐다.

“멀린 경! 이게 무슨 짓입니까! 주군을, 왕을 버리고 도망치겠다는 겁니까?! 그러고도 당신이……!”

“왕의 명령이다. 그리고…… 나라고 마음이 편한 줄 아는가?”

“…….”

케이는 거의 울 것 같은 멀린의 얼굴을 보는 순간 입을 다물고 말았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서는 결단을 내렸고, 그런 그의 최후는 이제 누구도 막을 수 없게 됐다.

케이는 이를 으득 갈며 아서를 노려봤다.

“이 제멋대로인 동생 녀석이.”

“사고뭉치인 형이 할 말은 아니지?”

아서는 피식 웃으며 케이의 폭언을 그렇게 받아쳤다.

비록 이복형제라 하지만, 그들의 이별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곧바로 멀린의 마력이 팽창하듯 폭발하며 거대한 마법진을 그렸다. 마법진은 곧바로 카멜롯을 뒤덮으며 벗어나지 못한 시민들과 기사들을 카멜롯 바깥으로 전이시키기 시작했다.

카멜롯의 곳곳에 눈 부신 빛의 기둥들이 솟아오르며 시민들이 하나둘 바깥으로 이동했다.

동시에 엘로힘이 곧바로 움직였다.

“놈들이 온다!”

“아직 전이가 끝나지 않았네!”

멀린이 다급하게 외쳤다. 카멜롯에 남아 있는 시민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짧은 시간 내에 전부 바깥으로 보내는 것은 그로서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엘로힘은 손에 쥔 창을 들어 올리며 지상을 향해 겨누었다.

아직 전이하지 못한 시민들과 기사들의 안색에 하얗게 물들었다.

그때 황금빛 파도가 엘로힘을 휩쓸었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시민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에, 엑스칼리버야!”

“왕께서 우릴 도우신다!”

엑스칼리버에 휩쓸린 엘로힘은 그대로 빛의 입자가 되어 사라졌다.

정작 검을 휘두른 아서의 표정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멀쩡한 엘로힘이 훨씬 더 많았으며, 제단에서는 실시간으로 엘로힘을 계속 쏟아내고 있었다.

‘거의 최대 출력의 엑스칼리버를 휘둘렀는데도 고작 이 정도인가.’

엘로힘의 시선이 이윽고 아서를 향했다.

놈들도 아서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카멜롯을 제거하는 데 방해를 받는다는 것을 인지했다. 곧바로 공격 목표가 바뀌었다.

유현이 아서의 곁에 다가가며 경고했다.

“아서왕. 나름 관심을 끄는 것은 좋지만, 그래도 시간을 끌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만.”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서는 그렇게 말하며 먼 곳에서 이쪽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기척을 감지했다.

“혹시 몰라서, 미리 해결사를 불렀으니까.”

“해결사요?”

유현은 해결사라는 이름을 혼성계에서 처음 들었다.

“그런 자들이 있어. 혼성계에서 의뢰를 받고 그것을 해결해 주는 자들이. 흔히들 용병이라 일컫지만, 용병들은 위계 질서가 안 잡히고 일 처리가 너저분한 반면에 해결사들은 언제나 모든 것을 깔끔하게 처리하지.”

아서가 말하는 그 해결사가 지금 막 현장에 도착했다.

멀리서 번쩍이던 노란빛 섬광은 아서의 지척까지 도달하더니 우뚝 멈췄다.

‘마차?’

그것은 황금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마차였다.

이윽고 마차의 문이 열리며 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의뢰주 아서 팬드래건. 맞나?”

“네. 제가 맞습니다.”

마차에서 내린 것은 금발의 꼬마아이였다. 하지만 그는 자연스럽게 아서를 하대했고, 아서는 그에게 정중하게 답했다.

유현은 마차에서 내린 존재를 알아보고 눈을 크게 떴다.

“오엘로님?”

“어?”

황금 마차에서 내린 존재는 세상에 다섯밖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의 왕 오엘로였다.

유현은 설마 여기서 오엘로와 마주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고, 오엘로 또한 여기서 유현을 보게 될 줄 몰랐는지 상당히 놀란 기색이었다.

오엘로의 뒤, 마차의 안쪽에서 낯익은 존재 몇 명이 얼굴을 바깥으로 내밀었다.

유현은 그들도 곧바로 알아봤다.

“셀린? 아리샤? 그리고 셀레스티나 부장님까지?”

이제는 문을 닫아 버린 천체주식회사의 전 동료들.

그들 또한 유현을 알아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해후.

그러나, 서로 이 오랜만의 만남에 반가워하기에는 지금 상황이 썩 좋지 않았다.

“다들 정신 차려. 우리가 뭘 위해 여기로 온 건지 잊지 않았지?”

오엘로가 눈살을 찌푸리며 일갈하자 해결사들의 얼굴에 곧바로 진지함이 깃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무를 재차 각인했다.

오엘로는 하늘에 떠 있는 엘로힘을 노려보며 자신이 찾아온 목적을 밝혔다.

“해결사 오엘로. 지금 여기서 카멜롯 시민들의 피난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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