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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409화 (409/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409화

모르간의 말은 정확히 유현을 겨냥했다.

유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다른 사람들은 다 되고, 자기만 안 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상황을 중재하기 위해 멀린이 한 걸음 나서며 입을 열었다.

“모르간. 지금 장난칠 시간이 없네.”

[멀린. 내가 지금 장난치는 것처럼 보여?]

“그게 아니면, 조금 전에 한 말은 뭐지? 들여보내면 다 들여보내지 굳이 한 명만 따로 지목할 필요가 있었나?”

[나는 지금 매우 진지해. 이 아발론에 대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위험 분자를 들일 수는 없지.]

“위험 분자라니…….”

멀린은 말끝을 흐렸다. 모르간이 저렇게까지 말을 하면 어지간해서는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건 그녀와의 오랜 교제를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누가 뭐래도 이쪽은 방문자의 입장. 모르간이 한사코 유현의 출입을 반대하면 멀린도 어찌할 방도가 없다.

두고 가야만 하는가? 그냥 밖에서 기다려 달라고 해도 딱히 상관없을지도 모를 일.

그때 가만히 듣고만 있던 유현이 나섰다.

“나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군.”

[내가?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면서 나를 확실히 위험 분자로 취급하고 있잖아.”

모르간의 말에는 모순된 부분이 있었다.

유현에 대해서 모른다고 말을 하면서도 누구보다도 유현의 위험성을 자세히 알았다.

더 웃긴 것은 어디서 왔는지 모를 존재가 이 자리에 유현 말고도 하나가 더 있음에도 일부러 유현만 지목했다는 것.

서수민도 그것을 깨달았는지 팔짱을 끼며 노골적으로 불쾌하다는 감정을 드러냈다.

[……그게 뭐.]

“나를 그렇게까지 경계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그쪽은 다른 존재들이 모르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셈이겠지.”

멀린과 케이는 그게 무엇인지 모르지만, 유현은 모르간이 뭘 알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코덱스의 파편.

모르간은 유현이 지닌 파편의 힘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모르간 또한 파편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소리.

“뭐, 솔직히 합당한 이유를 댔다면 밖에서 여유롭게 기다려 줄 생각은 있었어. 그런데 그쪽이 이것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물러나. 경고는 이번뿐이야.]

“해 봐.”

말로 해서는 듣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는지 모르간은 곧바로 실력 행사에 들어갔다.

꾸드득. 검게 말라비틀어진 가시덩굴이 똬리를 풀며 움직였다. 날카로운 가시가 가득한 그것은 살아 있는 뱀처럼 유현을 향해 아가리를 들이밀며 파도처럼 다가왔다.

높이만 100m가 넘는 거대한 가시덩굴의 해일이 태산처럼 들이닥쳤다.

서수민은 그것을 보며 팔짱을 풀고 나서려 했지만, 유현은 그녀를 막아섰다.

“너…….”

“수민 씨는 가만히 있으셔도 됩니다. 이건 제가 처리해야 할 일이니까요.”

“……그러지.”

서수민은 한 발 물러났다. 유현은 자신을 향해 짓쳐 드는 가시덩굴의 파도를 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칠마흑천신공의 기술 중 하나만 써도 저런 것은 손쉽게 쓸어 버릴 수 있었지만, 유현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기왕 기회가 생긴 김에 연습을 해 보는 게 좋지 않겠어?’

유현은 아포리아의 가면을 쓰는 대신 곧바로 화안금정을 발동했다.

두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물들며 세상의 모든 것들을 활자로 보기 시작했다. 유현은 곧바로 오른손을 들어 올려 정면으로 향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고작 그런 행동으로…….]

모르간은 그런 유현을 보며 비웃었지만, 유현은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눈으로 글자를 보고, 그것을 이제 손으로 만져서 움직여야 하는 것은 보통의 집중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때의 감각을 떠올려.’

헤라클레스와 싸우던 그 날.

손오공에게 처음으로 화안금정을 받고, 급화의 단계를 깨우친 그 순간을.

유현은 펼쳤던 오른손을 까득 말아 쥐었다.

동시에.

[……뭣?!]

유현을 향해 다가오던 가시덩굴에 거대한 손자국이 남았다.

모르간은 그 광경에 자기도 모르게 당혹에 찬 소리를 내뱉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마법? 주술? 아니, 그런 건 아니다. 그거라면 멀린에 버금가는 마법사인 자신이 몰라볼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내공이나 혹은 그에 준하는 다른 무언가?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내공이나 오러를 다룬 흔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혼성계에서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능력이 아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신비보다 훨씬 더 어렵고 격이 높은, 그녀가 유현을 경계해서 출입을 불허한 근본적인 이유.

‘파편!’

설마, 저게 저 녀석이 지닌 파편의 힘인 건가?

급화에 대해서 아직 모르는 모르간은 유현이 파편의 힘을 사용한다고 생각했다.

모르간은 이를 악물며 가시덩굴을 움직이려 했지만, 덩굴은 이미 그녀의 통제를 벗어났다.

꽈득! 꽈드드득!

유현이 손을 한번 말아 쥐었을 뿐인데, 가시덩굴의 파도는 물에 젖은 모래성처럼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모르간이 애를 써도 가시덩굴은 재생하지도, 그렇다고 뒤로 물러나지도 않았다.

가시덩굴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텍스트가 유현의 손짓에 완전히 뭉개졌기 때문이다.

사물의 근원에 막대한 타격을 입었기에 어지간한 수단으로는 절대로 복구가 불가능했다. 모르간은 이를 악물며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더 이상 힘 빼는 짓은 그만하지?”

유현은 그렇게 말하며 급화의 힘을 주위로 뿌리며 공간을 장악했다. 모르간이 재차 공격을 위해 모으던 마력이 물에 녹아내리는 소금처럼 허공에 흩어졌다.

온갖 마법과 사술을 준비하던 모르간은 자신의 마력이 순식간에 와해되는 것을 보고, 경악과 동시에 소름을 느꼈다.

자신의 모든 공격이 이해할 수 없는 힘에 의해서 파훼 됐다. 어지간해서는 간섭조차 받기 힘든 그녀의 마력이 기본 구조부터 무너진 것이다.

그녀는 마녀다운 냉철한 이성으로 상황을 판단했다. 이대로 싸우면 이길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유현의 꼴을 보건대, 조금 전에 사용한 기술을 무리 없이 더 펼쳐낼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후우. 어쩔 수 없네. 항복하겠어.]

모르간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유현이 경계해야 마땅할 위험한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자신보다 강한 그를 억지로 배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유현은 자신보다 강하다. 그러니 약자인 자신은 무슨 짓을 해도 유현을 막을 수 없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순순히 따르는 것이 옳았다. 힘의 논리란 이렇게나 단순하고 명확했다.

[……정말 얌전히 있겠다고 약속해 줄 수 있어?]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애초에 내가 여기에 깽판 치러 온 것도 아니니까.”

그런 모르간의 걱정을 꿰뚫어 본 유현은 화안금정을 해제하며 말했다.

모르간 또한 부디 그러길 바란다면서 그들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 아니, 더 이상 길을 열어 줄 필요는 없었다. 유현에 의해서 가시덩굴이 전부 다 사라졌으니까.

“오.”

흉악한 가시덩굴이 사라지자 아발론의 감춰진 모습이 제대로 드러났다.

아발론은 정말 이상향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푸른 초목의 위로 깨끗한 물이 흘렀고, 그 주위로는 야생동물들이 가득했다.

나무들의 사이에 보이는 것은 자연의 존재라 할 수 있는 정령들. 혼성계에서도 정령은 정말 깨끗한 곳이 아니면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걸 감안하면 이곳은 그야말로 천혜의 공간인 셈이었다.

아발론에 들어온 네 사람을 맞이해 준 것은 노출도가 큰 드레스를 입은 잿빛머리의 여인이었다.

그녀가 조금 전 입구에서 유현의 출입을 막으려던 여인, 모르간 르 페이였다.

멀린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모르간.”

“……아서를 찾고 있다고 했지?”

모르간은 힐끔힐끔 유현을 경계 어린 시선으로 곁눈질하며 멀린에게 그렇게 물었다. 멀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서는 이곳으로 찾아왔겠지?”

“묻는 말에 대답하자면, 맞아. 아서는 이곳에 찾아왔었어. 별로 오래전의 일도 아니지.”

“아서는 지금 어디에 있지? 안쪽에서 치료에 전념 중인가?”

“치료?”

치료라는 말에 모르간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의아해하다가 이내 스스로 납득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아. 너희는 지금, 그이가 다쳤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모르간의 말에 걸리는 것이 있는지 케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우리가 다쳤다고 생각하고 있다니. 아서는 실제로 다치지 않았다는 거야?”

“그야 그렇지. 애초에 그 남자는 카멜롯 최강인걸. 대체 누가 그런 남자에게 상처를 입혔겠어?”

“내부에 배신자가 있으니 충분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다수가 기습을 가했다면, 아무리 아서라 하더라도 크게 다쳤을지도 모를 일이지.”

“배신자? 대체 안쪽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거야?”

“너는 듣지 못했던 건가?”

모르간은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카멜롯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라. 애초에 내가 쫓겨난 곳에 무슨 아쉬움이 남아 있겠어. 다만 아서가 갑자기 나를 찾아왔기에 그를 맞이해 줬을 뿐. 솔직히 놀랄 일이었지. 이미 완전히 갈라섰다고 생각했던 그 남자가, 그 어떤 호위도 대동하지 않은 채 홀로 나를 찾아왔으니까.”

‘흠.’

유현은 턱에 손을 괬다.

케이와 모르간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어딘가 맞물리지 않은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아서에 관한 것이었다.

케이와 멀린은 아서가 배신자에 의해 기습을 당해 크게 다쳤고, 아직 배신자의 존재를 전부 색출하지 못한 상황이라 모두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아발론으로 도망쳐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르간의 말은 그들과 달랐다. 아서는 상처를 입지 않았고, 반응을 보면 평범하게 대화를 나눈 것 같았다.

‘애초에 다쳤다는 것은 이쪽의 추측에 지나지 않았지. 모르간의 말이 오히려 진실에 가까울 터. 그렇다면 아서는 다치지 않았는데, 왜 아발론으로 온 거지?’

기습을 당해도 멀쩡했다면 오히려 도움을 구해도 되는 게 아니었던 건가? 배신자의 존재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하더라도 몸이 멀쩡했다면 굳이 그걸 걱정할 필요는 없었을 터.

‘그렇다는 건, 아서왕에게도 무언가 생각이 있다는 뜻.’

잠자코 있던 멀린이 물었다.

“그래서 지금 아서는 어디에 있지? 드루이드들이 거주하는 오두막에서 쉬고 있나?”

“아니. 아서는 여기에 없어.”

“뭐? 방금 아서가 찾아왔다고 하지 않았는가.”

“아서가 찾아온 건 맞아. 하지만 곧바로 떠났어. 그러니까 없다는 거야. 와서 대화 몇 번 주고받은 뒤에 훌쩍 떠나 버렸으니까. 매정한 남자지.”

“둘이서 무슨 대화를 나눴지?”

“……그냥. 별거 아니었어. 오랜만이다, 잘 지내냐, 나중에도 자주 만나자. 예전의 해묵은 감정을 뿌리치고 그냥 잘 지내자는 그런 말들이었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뜬금없기는 했네.”

“그 외에 더 특별한 것은? 혹은 이후에 어디를 가겠다든지 그런 건 없었나?”

“으음…… 모르겠는데. 딱히 그런 건 말 하지 않았거든.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었어.”

“그게 뭐지?”

모르간은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듯하다가 대답했다.

“그의 언행에서 과거의 과오를 바로잡으려는 게 느껴졌어.”

“과오를 바로잡는다? 아서가?”

“아마 그렇다고 생각해. 왜냐면 우리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을 겪었잖아.”

어딘가 허무함이 깃든 모르간의 목소리에 케이와 멀린은 입을 다물었다. 아주 약간이지만, 분위기가 미묘하게 가라앉았다.

아서왕의 이야기는 결국 카멜롯의 멸망으로 끝나게 된다.

지금의 그들은 혼성계에 이주하게 되어 새로운 신 카멜롯을 세우고 그곳에서 지내고 있지만, 그들이 과거에 겪었던 흔적은 그들의 이야기로 남아 지워지지 않은 오명이 되었다.

란슬롯의 배신, 모드레드의 반란, 아그라베인의 밀고, 아서의 죽음까지.

위대한 원탁과 카멜롯은 결국 내분으로 무너졌다.

“애써 아닌 척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과거에 주박 되어 있지.”

“그것이 이번에 벌어진 일과 관련이 있다는 건가?”

“아마도? 이건 단순히 내 감이야. 아서의 어딘가 미묘한 태도에서 이런 답을 유추했을 뿐이지. 자세한 것은 아서 본인을 직접 만나면 되지 않을까?”

“일단, 아서가 살아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는 말이군.”

그리고, 아서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까지도.

그렇다면 의문이 든다.

아서왕은 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고, 무슨 일을 꾸미려는 건가?

왜 자신이 멀쩡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앞에서 드러내지 않은 건가?

‘들키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건가?’

그런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결국 아발론에 아서는 없으며 이곳에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어진 셈이니까.

“어쩔 수 없군. 우리는 이만 가 보겠네.”

“……그래. 원하는 걸 찾지 못해서 아쉽겠네.”

“애초에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릴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네. 아서가 사라졌다는 부분에서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으니까.”

“그런가.”

“혹시, 아서가 다음에 어디로 가겠다고 귀띔이라도 해 주지 않던가?”

“아니. 별말 없이 갑자기 사라졌어. 그냥, 앞으로 더 잘해 보자는 말만 남겼을 뿐.”

“앞으로 더 잘해 보자……는 건가.”

멀린은 그 말을 곱씹듯 중얼거리고는 모르간에게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모두가 떠나가려고 하는 그때 모르간이 유현을 불러 세웠다.

“잠깐. 거기 인간.”

“뭐지?”

“잠시 따로 이야기 좀 하지.”

유현은 일행들에게 허가를 구하고, 모르간과 함께 호수 근처로 이동했다.

“……아까 전에는 미안했어.”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 모르간은 대뜸 사과를 입에 담았다.

아까 전이라면 입구에서 막아 세운 일을 말하는 건가. 유현은 모르간의 뜬금없는 사과에 오히려 경계심만 늘었다.

“갑자기 왜 사과를 하는 거지?”

“그야 그쪽이 위험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내 멋대로 지레짐작하고 말았어.”

“파편을 지니고 있어서?”

“……!”

정곡이었나 보다. 모르간은 유현을 제외한 나머지 일행의 눈치를 살피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도…… 파편을 지닌 자가 맞지?”

“그러니까 그쪽이 나를 경계했던 것 아닌가?”

“파편을 지닌 너라면 내가 말하는 것을 알아듣겠네.”

“뭐?”

“다른 녀석들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파편을 지니지 않아서 알아듣지 못하지만, 너는 파편과 관련되어 있으니 가능하겠지. 잘 들어. 아서는 자신에게 무언가 목적이 있다고 했어.”

멀린과 케이에게는 하지 않은 또 하나의 진실.

유현은 모르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목적이라고?”

“그게 뭔지는 자세히 몰라. 아서도 나에게 세세히 설명해 주지 않았으니까. 다만…… 과거를 바로잡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고만 했어.”

“미래로…….”

“녀석이 대체 뭘 하려는 건지는 모르지만, 분명 평범한 일이 아니겠지. 단순히 아서 개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야. 카멜롯, 그것을 넘어서 마비노기온 전체가 격동에 휩싸일 수도 있어.”

“내게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너밖에 들을 사람이 없으니까.”

파편에 관한 이야기는 파편을 지니거나 혹은 파편과 관련되어 있지 않은 자는 알아들을 수 없다. 모르간은 파편을 지니지 않았지만, 파편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기에 그와 관련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멀린과 케이는 그러지 못했기에 모르간은 그들에게 설명조차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포기하던 차였다.

“내게 뭘 바라지?”

“없어. 애초에 내가 뭘 부탁해도 들어줄 것 같지도 않고.”

“잘 아는군.”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이 사실을 전할 게 너밖에 없으니까 하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무언가는 바뀌겠지.”

마녀 모르간 르 페이.

마법을 사용하고, 사법을 부리며 때로는 미래마저 예언한다는 대마녀.

그녀는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유현을 응시했다.

“내 눈에 너의 미래는 보이지 않지만, 그렇기에 너에게 걸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애초에 기대하지 마라.”

“알아.”

둘의 대화는 딱 거기까지였다.

자신을 기다리는 일행과 합류한 유현은 모르간의 말을 곱씹었다.

자신에겐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라…… 그건 당연한 일이다. 그는 파편을 지녔고 라플라스의 힘을 사용하니, 예언이니 예지니 하는 것은 유현을 절대 읽어 낼 수 없다. 그 어떤 예지도 라플라스의 악마보다 더 잘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모르간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안도를 느낀 것 같았다.

마치 정해지지 않은, 그것이 설사 최악의 길이 될지라도 변한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뒀다는 것처럼.

‘알기 어려워.’

아서왕은 그렇다면 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걸까. 그리고 파편을 지닌 다른 습격자들은 또 무엇인가.

그렇게 다시 일행과 합류한 유현이 아발론의 출구로 나왔을 때.

낯익은 얼굴이 그들을 반겼다.

“여, 여러분! 큰일입니다!”

“가레스? 여긴 대체 어떻게 온 거지?”

“이봐 예쁜 손. 또 뭔데 그러지?”

가레스가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는지는 둘째치고서,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떨 이유가 없기에 케이가 퉁명스레 물었다.

그런 가레스의 입에서 충격적인 말이 흘러나왔다.

“정체불명의 적들이 카멜롯을 침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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