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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408화 (408/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408화

원탁의 기사들과 유현 일행은 사건이 벌어진 장소에 도착했다.

가웨인의 말이 전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왕이 기거하던 방 내부는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 터졌고, 왕이 죽었을지도 모른다. 가웨인의 말은 진실이었다.

애당초 그의 성정을 생각하면 거짓말을 할 리가 없었지만, 이 자리의 모두가 차라리 그 말이 거짓이길 바랐었다.

“이건…… 심각하군.”

케이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손끝으로 지면에 새겨진 칼자국을 쓸었다.

왕의 안전을 위해 온갖 마법과 주술적인 처리가 된 방 안 쪽에 이런 흔적이 남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유현과 서수민 또한 혹시라도 무언가 단서가 있는지 내부를 돌아다니며 구석구석 살폈다.

‘꽤나 치열한 싸움이 있었군.’

방 내부에 새겨진 참격은 아서왕과 침입자의 싸움이 꽤 거칠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것만 보면 정말로 기습을 당해 아서왕이 당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상한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아서왕 정도나 되는 성령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이 성 정도는 쉽게 날려 버릴 수 있는 게 아니었나?’

아무리 카멜롯 성이 튼튼하게 지어졌다 하더라도 아서왕이라 불리는 성령의 힘을 감안하면 이 싸움의 여파는 작아도 너무 작았다.

어쩌면 성이 무너질 것을 걱정해서 일부러 힘을 빼고 싸웠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있었을까?

‘위험했다면 도움을 요청했을 수도 있어. 하지만 이걸 가웨인이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 누구도 몰랐다는 건 너무 이상해.’

퍼즐 조각이 너무 많이 빠져 있어서 추측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했다.

합리적으로 생각을 할수록 사건은 더욱 미궁으로 빠져드는 꼴.

유현은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벌어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케이 씨.”

“……아, 그래.”

유현이 부르자 케이 또한 무언가를 알아차렸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유현과 함께 나왔다. 서수민 또한 혼자 남아 있으면 어색한지라 유현과 함께 움직였다.

적당히 시선이 닿지 않는 곳까지 이동한 유현은 곧바로 케이에게 자신이 느낀 소감을 말했다.

“뭔가 이상합니다.”

“맞아. 나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어.”

케이도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또한 사건 현장을 확인하면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확인을 할수록 단서는커녕 오히려 머리만 더 복잡해진 상황이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유현도 케이도 동시에 최악의 가능성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내부에 또 다른 배신자가 있는 거 아닙니까?”

유현은 처음에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해도 되는가 걱정했지만, 상대가 케이니까 해도 괜찮다고 판단했다.

케이는 그 말에 안색을 살짝 굳혔지만, 화를 내거나 딱히 부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긴 하지. 물론, 함부로 그런 말을 하는 건 조심해. 나니까 그냥 넘어가는 거지, 다른 녀석이었으면 명예니 뭐니 하면서 바로 검을 뽑았을 거야.”

“그걸 아니까 케이 씨한테만 말하는 겁니다.”

“씁. 부정할 수가 없군. 아무튼 그쪽 말마따나…… 내부의 소행일 가능성이 매우 커졌어.”

“다른 기사들에게는 알리지 않을 겁니까?”

“저 중에서 누굴 믿고? 그리고 그런 말을 했다가는, 상황을 정리하기는커녕 더욱 악화일로로 치닫게 될 거야.”

원탁의 기사들은 전부 기사라는 직위에 자부심을 지니고 있기에 그 명예가 훼손되는 일에는 격한 반응을 보인다.

특히 배신이나 반역이라는 말에 가장 경기를 일으키는데, 이것은 과거 그들이 겪었던 이야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원탁의 기사라고 할 수 있는 13석 중 비어 있는 3개의 자리.

그 세 기사가 저질렀던 짓을 생각하면 당연히 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아닌 척하지만, 누구보다도 과거의 일에 마음을 두고 있는 녀석들이야. 그런데 왕이 또 배신을 당해서 죽었다고 한다면 그때는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될걸.”

“만약, 또 그때의 배신자들이 저지른 짓이라면?”

“그럴 리가. 그 셋은 카멜롯에 발을 들이지 않기로 다짐했어. 우리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 선택한 일이야. 그리고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감시가 붙어 있기도 하지. 모드레드만 마비노기온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 지내고 있어서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녀석이 마비노기온에 들어왔다면 우리가 모를 수가 없어.”

“그러면 혹시 따로 의심이 가는 자가 있습니까?”

유현의 질문에 케이는 대답을 망설였다. 누구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 것도 있지만, 믿고 있는 동료들을 정말 배신자라고 확정하는 것 자체가 꺼려졌기 때문이다.

케이는 자기 자신에게 의문이 들었다.

정말로 저들을 믿을 수 있는가?

모든 상황은 내부의 배신자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왕이 갑자기 사라진 것도, 누구도 모르게 내부에서 싸움이 벌어진 것도, 그것을 누구도 발견하기 전까진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는 것도.

“멀린이라면…….”

케이는 동료들을 믿고 싶었다. 그는 분명 원탁의 기사 중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냉철하며, 실리를 추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료 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성적이고 다른 녀석들이 절대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는 지금 누구보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그래서 멀린이라는 이름을 내뱉은 것은, 일종의 본능적인 부정이자 최후의 보루 같은 것이었다.

“멀린이라면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몰라.”

“대마법사 멀린…… 말이죠.”

마비노기온의 카멜롯. 그들이 최강이라 불리게 된 것은 단순히 원탁과 아서왕의 존재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마법사 멀린과 마녀 모르간 르 페이. 이 둘의 존재 또한 카멜롯의 전력에 큰 보탬이 됐다.

모르간은 모드레드의 어머니로서 배신 혐의가 걸려 있었기에 카멜롯의 내정에 간섭하지 못하고 자신의 골방에 틀어박혀 있었지만, 멀린은 달랐다.

그 남자라면 분명히 무언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아니, 어쩌면 벌써부터 무언가를 깨닫고 사건을 해결하는 데 착수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멀린은 어디에 있는 거죠?”

“평소에는 어디 있는지 나도 몰라. 워낙 신출귀몰한 할아범이니까 이상할 것도 없지. 왕의 부재 소식이 퍼져 나갔으니 그래도 멀린이라면 이곳으로 곧장 올 거야.”

적어도 그의 마법적인 소양을 이용한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면, 그들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을 새로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케이는 그렇게 믿었다.

유현은 케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망설이다 그러지 않기로 했다.

‘아직 확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다른 이들이 모두 제대로 된 단서를 찾지 못했을 때, 오직 유현만큼은 다른 것을 보았다.

손오공으로부터 받은 화안금정과 그것을 통해 터득한 급화의 기초 단계. 방안에 새겨진 흔적과 거기에 남아 있는 텍스트, 그 모든 것들은 방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희미한 단서를 제공했다.

‘분명, 안에서 싸움이 있던 것은 맞아.’

방안에 누군가 침입했고, 당연하게도 아서왕과 싸움을 벌였다.

침입자의 숫자는 총 3명이었다. 하지만 그 셋의 정체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파악하기 힘들었다.

뿌연 안개를 보는 것처럼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파편을 지닌 자들의 미래를 라플라스의 힘으로 넘보려던 때와 똑같아.’

과연, 이것이 우연일까?

무엇보다 자신이 카멜롯에 찾아온 바로 이 날, 아서왕이 사라지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 그럴 리가. 분명 여기에는 무언가 나와 관련이 있어. 정확히는 코덱스의 파편과 말이지.’

아서왕을 습격한 것은 파편을 지닌 자.

그것도 숫자는 셋. 셋이 전부 파편을 지녔는지, 혹은 셋 중 하나만 지녔는지는 모른다.

일단 상대가 코덱스의 파편을 지니고 있으니 누구도 모르게 싸움이 벌어진 것도 납득은 갔다.

파편의 힘으로 만들어진 데카르트의 악마는 환상과 현실의 세계를 오갈 수 있다.

그걸 감안하면 다른 파편도 데카르트와 유사한 힘을 낼 가능성이 컸다.

2세대 성령이 주둔하는 이 카멜롯 성 내부에서, 누구도 모르게 싸움이 벌어진 것을 숨기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닐 터.

‘파편을 지닌 자가 대체 왜 아서왕을 습격한 거지?’

그것까진 알 방법이 없었다.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지, 혹은 다른 의도가 있는지는 나중에 밝혀질 일이었으니까.

일단, 멀린이 도착하면 그때 가서 따로 이야기를 나눠 볼 필요가 있었다.

“일단 돌아가자.”

“그러죠.”

서수민과 함께 다시 현장으로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못 보던 얼굴이 하나 더 추가되어 있었다.

그는 딱 봐도 나 대마법사요 하는 복장을 갖춘 초로의 노인이었다.

새하얀 수염과 백발. 머리에 쓴 챙이 넓은 고깔모자와 몸에 두른 로브, 그리고 한쪽 손에 쥐고 있는 커다란 나무 지팡이까지.

‘저자가 멀린?’

뭔가 기대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정확히 실제 모습이 기대감에 전혀 못 미쳤다는 소리였다.

외모는 딱 생각하던 대로였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지니고 있는 격이었다.

멀린이라고 한다면 대마법사이니 항거할 수 없는 무언가가 느껴질 거라 생각한 것과 다르게 그가 지니고 있는 책은 다른 기사에 비하면 그렇게 눈부시지 못했다.

가웨인이나 케이, 베디비어의 책이 대단한 것도 있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어딘가 부족했다.

‘흠. 저게 정말 그 유명한 대마법사라고?’

유현의 눈동자에 의심이라는 감정이 담기려는 순간, 멀린을 발견한 케이가 그에게 다가갔다.

“멀린. 왔군요. 상황은…….”

“이미 전해 들었네. 아서가 사라졌다는 게 사실인가?”

“네. 다만, 사라졌는지 아닌지는……. 최악의 경우에는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아서는 내가 고른 왕이었어. 그런 그가 고작 침입자에게 못 이겨 죽었을 리가 없어. 어쩌면 부상을 입고,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겼을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왜 그랬죠? 근처에 외치기만 해도 도와줄 수 있는 자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겠지.”

멀린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대답을 회피했지만, 유현과 케이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곧바로 알아차렸다.

배신자의 존재. 멀린 또한 그 부분을 염려하고 있던 것이다.

아서왕은 기습을 당해서 부상을 입었지만, 다른 배신자의 존재를 의식해서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채 혼자 움직인 것이다.

그렇다면 혼자 움직이는 아서왕이 향하는 곳은 대체 어디일까.

“짐작 가는 곳이라도 있습니까?”

“많아서 문제야.”

유현의 물음에 케이는 골치가 아픈지 눈살을 찌푸렸다.

아서가 혼자서 움직일 만한 곳은 당장에 꼽아도 다섯 군데가 넘었다. 그곳을 하나씩 다 뒤져 볼 수도 없지 않은가.

유현은 슬쩍 다른 기사들을 곁눈질하다가 케이에게만 들리게끔 작게 속삭였다.

“가장 아닌 곳은 어딥니까?”

“뭐?”

“모두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곳으로 갔을 리가 없습니다. 배신자가 있고 혼자서 움직였다면, 오히려 역발상으로 다른 이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자신만 알고 있는 곳으로 향했겠죠.”

“……!”

케이는 눈을 크게 뜨더니 그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부에 배신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모두가 어디로 갔는지 쉽게 예측한 곳으로 피신했을 리가 없다.

오히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아서 왕이라면 절대로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는 곳을 확인하는 것이 타당했다.

“그렇게 하면 걸리는 것이 하나 있으시겠군요.”

“……그래. 한 군데 있어.”

“어딥니까?”

“마녀 모르간이 거주하는 곳.”

케이는 그 이름을 꺼낸다는 것 자체가 꺼리는지 조금 뜸을 들였다.

“아발론.”

“아발론이라면…… 이상향 아닙니까?”

아발론은 아서왕 전설에서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부활을 위해 옮겨졌다는 이상향이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아발론은 이상향이 아닌, 카멜롯의 시민들과 기사들이 꺼리는 곳으로 유명해졌다.

바로 모드레드의 어머니, 마녀 모르간 르 페이가 기거하는 곳이기도 했으니까.

케이는 아서가 그곳으로 향했다고 확신했다.

* * *

케이와 유현, 서수민은 곧바로 카멜롯 성에서 나와 아발론으로 향했다.

다른 기사들에게는 말하지 않고 따로 움직였다.

혹시 모를 배신자의 귀에 소식이 들어갈 염려가 있었거니와, 움직이려면 일단 소수로 움직이는 것이 더 빠르고 편했으니까.

다만 셋이서만 움직이는 건 아니었고, 일행이 하나 더 추가됐다.

카멜롯이 자랑하는 대마법사 멀린. 그가 이쪽에 합류했다.

“그러고 보니 자기소개가 늦었군. 나는 멀린이라고 한다네.”

“강유현입니다.”

“서수민이다.”

유현과 서수민은 멀린과 가벼운 인사를 나눴다.

멀린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허허로이 웃었다.

“소문의 책더미 군주와 그 마왕의 영역을 난장판으로 만든 여인이군. 두 사람이 어쩌다 이렇게 같이 움직이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미안하군그래. 우리 카멜롯 내부에서 처리해야 할 일인데, 외부인의 도움을 받게 됐으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시길. 보수는 확실히 받을 예정이니까요.”

보수라는 말에 멀린이 그게 정말이냐는 시선으로 케이를 돌아봤다.

케이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기로 약속을 했으니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적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유현과 서수민 정도의 전력이 함께한다면 반드시 도움이 될 테고.

“그렇군. 뭐, 도와준다면야 보수는 확실히 해야겠지. 그보다 난감하군. 일단 추측이지만, 아서가 아발론으로 향했을 줄이야.”

“아발론이 딱히 문제가 될 게 있습니까?”

“예전에는 아니지만, 지금은 그곳에 거주하는 자가 문제거든.”

모르간에 대한 이야기는 유현도 들어서 알고 있다.

아서왕의 아내였고 모드레드의 어머니였지만, 결국에는 모드레드가 반역을 일으켰기 때문에 덩달아 반역자의 낙인이 찍힌 마녀.

지금에 와서는 스스로 아발론에 틀어박혀 얌전히 지낸다고 하는데, 설마 아서왕이 거기로 향했을 줄이야.

‘모르간은 배신자가 아니라는 걸 확신한 건가?’

아서가 아발론으로 향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유현은 내심 아발론의 어딘가에 이번 사건과 밀접하게 연관된 무언가가 있음을 느꼈다.

“둘 사이가 원래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오랫동안 제대로 만나지 못했으니 좋아졌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어쩌면 모르간이 상처 입은 아서를 쫓아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네.”

“그러지 않기를 빌어야죠.”

어느덧 넷은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들의 앞길을 거대한 가시넝쿨이 가로막고 있었다.

“여기가 아발론입니까?”

흉악하게 말라비틀어진 검은 가시넝쿨은 그 자체만으로 끔찍한 요새였다.

이상향이라 불리는 아발론과 매우 동떨어진 광경에 서수민도 어이없어할 때 멀린 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렇다네. 여기가 아발론의 입구지.”

“전혀 소문의 이상향 같지는 않군요.”

“겉만 보면 그렇다네.”

멀린은 그렇게 답하며 가시넝쿨의 앞에 섰다.

“모르간. 나 멀린일세. 문 좀 열어 주겠는가?”

그 순간,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머, 멀린. 이게 얼마 만이지? 정말 오랜만이야.]

“그래. 아주 오랜만이지.”

[그보다 여기에는 어쩐 일이야? 그것도 못 보던 손님까지 데리고 말이야.]

고혹적이고 퇴폐적인 여인의 목소리에 멀린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발론 안쪽에서 무언가 찾을 것이 있거든.”

[흐응? 무언가 찾고 있다니. 그게 뭔지 내가 궁금해지는걸? 딱히 여기에 뭐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뭐, 이제 와서 가타부타 돌려 말하지 않겠네. 모르간. 아서가 여기에 왔지?”

[…….]

멀린의 직설적인 물음에 모르간은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들어와.]

이윽고 그녀의 허락과 함께 가시넝쿨의 좌우로 물러나며 길이 열렸다.

케이와 멀린, 서수민이 넝쿨 사이를 지나가려는 그때 모르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유현을 향했다.

[그런데, 거기 있는 그 남자는…… 아무래도 안 될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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