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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405화 (405/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405화

케이의 안내를 받으며 유현은 함께 숲길을 걸었다. 서수민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됐으니 유현으로서는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 설마하니 그쪽이 그 아가씨의 동료였을 줄이야. 역시 사람 일은 모르는 거구나.”

“수민 씨는 어쩌다가 마비노기온의 식객으로 머물게 된 겁니까?”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더라고.”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케이는 시종일관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래도 나쁜 일은 없었나 보군요.”

“아니? 그럴 리가. 그때 상황만 놓고 보면 엄청 심각했는데?”

“예? 아니, 그런데 왜 웃습니까.”

“아니, 그야 재미있으니까 웃었지.”

“심각했다면서요.”

“심각한데 재밌었어.”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유현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흘겨봐도 케이는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내가 뭐? 그냥 솔직한 감상을 말했을 뿐인데.”

“케이 경은…….”

“그냥 편하게 케이 씨라 불러.”

“……케이 씨는 원탁의 수호자가 아닙니까?”

“그렇지. 대성군 마비노기온 소속 성령이기도 하고.”

“……그런데, 자기 집 마당이 개판이 됐는데도 재밌다고 웃습니까?”

“보통은 그러지 않을 테지만, 나는 좀 다르거든. 그놈의 기사도니 뭐니, 그런 것들은 너무 다 고리타분하잖아? 난 그런 걸 좋아하지 않아.”

케이는 자신의 솔직함을 전혀 숨기려 들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가 자유분방하고 실리적이며, 재미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인물이었다. 명예보다 돈을, 영광보다 실리를, 기사도보다는 순수한 재미를 추구했다.

자신들의 영토에 도주하는 마라 파피야스가 넘어오고, 그 뒤를 쫓는 서수민이 따라와 난리를 칠 때도 그랬다.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재밌다고 생각했다. 바로 맞닿은 영역 너머의 마왕이 도망을 치고 있다. 그 뒤를 쫓는 것은 아름다운 백발의 여인이며, 평소에 근엄한 척하던 다른 기사들은 혼비백산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런 일을 살면서 과연 얼마나 볼 수 있을까?

유현에게 말만 하지 않았지, 사실 케이는 그때 정말 미친 듯이 웃었다.

그러다 적당히 하라며 자신의 의붓동생인 아서에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았지만, 그 재미있는 광경을 본 대가라 생각하면 아주 싸게 먹힌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치고는 경계를 서고 계시던데요.”

“업무니까. 그래도 주어진 일은 확실히 처리하자는 주의라서 안 할 수는 없잖아.”

“……그렇군요.”

유현은 대화를 나누면서 원탁의 기사 케이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대략적이나마 알 것 같았다.

‘기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실리적인 인물.’

기본적으로 기사들은 로망을 꿈꾸고 꽉 막힌 성격을 지니고 있다. 누구보다 그런 기사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겪어 봤고, 그의 의지를 계승했기에 유현은 기사가 어떤 자들인지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케이는 기사라고 부르기에는 기사에 대한 모독이나 다름없었다. 오히려 자유롭고, 털털한 용병에 가까우면 가까웠지.

외모는 그야말로 동화 속에 나오는 기사지만, 언행은 그 반대.

하지만, 어딘가 대하기 편한 느낌이라 유현은 굳이 지적하지 않고 넘어가기로 했다.

사실 자신도 기사의 이야기를 지녔지만, 기사라는 자각은 별로 없었으니까.

“뭐, 본인이 그렇다는데 외부인인 제가 딱히 뭐라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모든 기사가 다 그런 건 아니고 성격마다 다른 법이니까요.”

“오. 상당히 개방적인 생각을 가진 친구였군. 좋아. 아주 좋은 태도야. 요즘 세상이 너무 팍팍해서 문제라니까. 기사라는 족속들이 원래부터 꽉 막히고 재미가 없다는 건 알지만, 최근에 더 심해졌어.”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 문제랄 것은 아닌데. 그냥 평소에 즐길 거리가 사라져서 그랬을 뿐이지.”

“즐길 거리요?”

“시화 서재가 다 문을 닫았잖아.”

“아.”

유현은 백룡왕 샤루리엘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천체주식회사, 희극단패, 엑소도스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고 했다.

당연히 그들을 통해 하계의 컬렉터들을 구경하던 성령들로서는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셈이다.

“나야 뭐 처음부터 그런 것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아서 별 상관없지만, 시화에 푹 빠져 있던 녀석들은 상당히 타격이 커 보이더라고. 즐길 거리가 사라지다 보니 성격도 뭔가 더 날카로워지고, 그 반발 심리 때문인지 더 꽉 막힌 성격이 되고 말았어.”

“……그렇습니까?”

“그래. 댁이 그 유명한 시화를 선보이던 전직 텔러였다며? 그런데 그걸 몰랐던 거야?”

“개인적인 사정으로 5년간 일을 쉬었거든요.”

“아. 그건 어쩔 수 없지. 아무튼…… 모든 플랫폼이 문을 닫아 버렸으니 뭐 별 게 있나. 다들 하루하루 지루하게 자기 영토에 틀어박혀서 지내고 있지. 다 시화 중독이라니까 하여튼.”

다만, 하고 케이가 말을 이었다.

“그것도 얼마 전까지지. 최근에는 여러모로 사건이 펑펑 터져서 다들 많이 바쁘게 지내고 있어.”

“제단이 움직였기 때문이군요.”

“맞아. 어디 제단뿐일까. 군주 연합의 소식도 들었어. 연합에서 내전이 벌어졌다며?”

이미 유현은 자신이 연합에서 이쪽으로 온 것을 밝힌 터라 고개를 끄덕였다.

“연합 내전이야 그렇다 쳐도, 무려 대성군 2개가 그 싸움에 개입했어.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지. 심지어 그 돌원숭이까지 나섰다는 소문은 벌써부터 파다해.”

소문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져 나갔다. 숨기려고 해도 그렇게 노골적으로 싸우면 모를 수가 없는 법이었다.

군주 연합의 내전은 다른 대성군에서도 유심히 지켜보던 사안이었다.

성령이 되지 못한 나약한 자들이 모여서 만들었다 해도, 연합은 무시당할 정도로 약한 집단이 아니었으니까.

그런 연합의 방향성을 판가름하는 내전의 추이는 혼성계에서도 나름 큰 이슈였다.

그리고, 실제로 벌어진 내전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더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명색에 대성군인데, 설마 그런 싸움에 끼어들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죠.”

“바로 그거지.”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가 몰래 개입을 한 것도 놀라운데, 그냥 일반적인 병사를 보낸 것도 아니라 무려 전력의 한 축을 담당하는 성령을 보냈다는 점.

그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역시 최종 병기라 할 수 있는 헤라클레스를 내보낸 올림포스의 행보였다.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아스가르드에서 마그니를 보낸 것도 눈이 부릅떠질 정도인데, 올림포스에서 보낸 상대는 그 헤라클레스였다고? 우리 마비노기온에서 그 괴물과 비빌 정도는, 쿠훌린 밖에 없는데 말이지. 그런데 그런 헤라클레스를 손오공이 나서서 막질 않나, 제단이 나서서 연합 내전의 한쪽 축을 담당했던 살리오 제국을 지워 버리질 않나.”

“그것 때문에 지금 이렇게 혼성계가 시끌벅적했던 거군요.”

유현은 왜 대성군 드래고니카가 연합 근방의 영토를 날아다니고 있던 것인지 이해했다.

샤루리엘은 책벌레의 토벌 건으로 근처를 지나가고 있다고 했지만, 그건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나야 갑자기 이런 사건이 터져서 흥미가 가기는 하지만, 사실 그렇게 좋은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혼성계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큰 변화 없이 지내 왔어. 변화가 없다는 것은 혼성계의 정체성이기도 하지. 그게 지금 흔들리고 있는 거야.”

“변화를 싫어하시는 건가요?”

“딱히. 오히려 변화 자체는 나쁘지 않아. 우리 성령이라는 족속들은 별의 자리에 올라가며 자신이 지닌 이야기의 종착지에 서 버렸고,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됐으니까.”

“다만, 실제로 변화가 오는 것과는 별개라는 거로군요.”

“맞아. 웃기는 이야기지. 변화를 거부해야 하는 이게 뭐가 위대한 성령이야. 하계의 존재들은 성령들을 우러러보며 그들을 부러워하지만, 성령이 된 내 입장에서는 전혀 다르거든. 성령이란 결국 멈춰 버린 존재들이야. 이야기가 고정되어 새로운 것을 얻을 방법도 없고, 그렇다고 마땅히 변할 방법도 없지. 그들이 살아가는 이 혼성계는 결국 정체된 세계라는 소리야.”

성령들이 어째서 하계의 인간들에게 그렇게 관심을 갖고 시화를 즐기는가.

그들은 인간들에게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바라는가.

거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가장 명확한 이유라면 바로 변화하지 못한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함이었다.

“하계의 존재들은 발전의 방향이 무궁무진해. 그들은 자신이 어떤 선택을 내리냐에 따라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수도 있지. 이미 결승점에 도달한 우리로서는 절대로 따라 할 수도 없는, 자신만의 길을 걷는 거야. 성령들에게 그게 얼마나 재미있어 보이겠어?”

“은근히 잘 아시는군요.”

“그런 녀석들을 질리도록 많이 봤거든. 나는 시화에 애써 관심을 갖지 않으려고 했지만, 다른 녀석들은 다르잖아? 맨날 시화에만 빠져 지내던 녀석도 있지. 서로 질리도록 마주하다 보면 모르는 것도 자연스레 알게 돼. 특히 나한테는 말 많은 녀석이 자주 달라붙어서 말이야.”

“가레스 말입니까?”

“오. 잘 알고 있네. 하긴 직접 만났으니 녀석이 얼마나 호기심이 강하고, 말이 많은 녀석인지 알고 있겠구나. 댁도 녀석의 수다를 들어주느라 고생 꽤 했겠어.”

“네, 뭐. 그래도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길 안내도 받았고.”

“그렇다면 다행이고.”

어느덧 숲이 뚝 끊기고 호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은 잔잔한 호수는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깨끗했다.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볕과 푸른 들판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거의 다 왔어. 조금만 더 가면 카멜롯이야.”

“그보다 수민 씨는 지금 손님으로 지내면서 뭘 하고 있습니까?”

“나야 며칠 전부터 계속 경계 근무를 서고 있으니 이후 사정은 모르지만, 듣기로는 그냥 얌전히 있다고 하더라고.”

“마라 파피야스는 더 이상 추격하지 않는답니까?”

“마왕이 흔적도 없이 도망쳤거든. 뭐 그걸 감안해도 그 아가씨는 쫓으려고 했지만, 우리 마비노기온도 그렇다고 침입자를 가만히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서수민은 손님으로서 지내고 있다고 했지만, 사실은 구금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라 파피야스를 쫓는다는 명목으로 움직였지만, 그녀가 마비노기온의 영토에 무단으로 침입하고 내부에서 깽판을 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니까.

그래도 마비노기온도 나름 말이 통하는 상황이라 무턱대고 서수민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자유롭게 풀어 주지도 않았다.

일단 서수민은 무단으로 대성군의 영토에 들어온 침입자였으니, 대성군의 명분을 위해서 그녀를 잠시 붙잡아 두기로 한 것이다.

“엄청나게 난동 부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쪽도 순순히 따라 줘서 다행이었지.”

“그건 서로 간에 천만다행인 일이네요.”

“원래는 엄청나게 분위기가 흉흉했어. 우리는 우리대로 체면을 세워야 했고, 그쪽 아가씨는 당장 자신이 쫓던 마왕을 잡아 족치지 않으면 성이 풀리지 않아 보였으니까. 이쪽이랑 거의 충돌 직전까지 갔었지.”

마비노기온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어서 서수민을 내보내자고 한다는 쪽과 그래도 침입자인데 자존심이 있지 이대로 그냥 보내냐는 쪽.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나는지 케이는 혀를 찼다.

“쯧. 그 자존심 챙긴다고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지금 우리 영토 내부에서 폭탄이 터지게 생겼는데, 자존심이 대수야?”

“그래도 용케 잘 됐나 보군요.”

“의견은 서로 맞물리지 못하고, 그쪽 아가씨도 분노가 끝까지 치달아 거의 폭발 직전까지 갔어. 그때 파견 나갔던 가레스가 돌아왔지.”

그리고 가레스가 손님을 만나 보고 싶다고 한 이후, 귀신같이 서수민의 불만이 사라졌다고 한다.

유현은 가레스가 무슨 말을 전해 줬는지 대략적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이 돌아왔다는 것과 흑뢰군주였던 강혜림이 어떻게 됐는지 전부 설명해 줬겠지.

가레스 덕분에 서수민은 화를 누그러뜨리고 마비노기온 영토 내부에서 잠시 동안 머물기로 했다. 말은 구금이지 사실상 귀빈 대접을 받았으며, 가레스의 공을 높이 사 그녀는 카멜롯의 성에서 지내고 있다고.

“다 왔다. 여기가 카멜롯이야.”

호수를 지나 언덕을 넘자 그 너머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성채 도시였다.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치솟은 첨탑들은 올드 타운에도 꿀리지 않는 규모를 자랑했다.

성채 자체가 거대한 도시를 겸하고 있는 이곳이야말로 원탁의 기사들이 기거하는 곳이자 대성군 마비노기온의 한 축을 담당하는 대도시 카멜롯이었다.

유현과 케이는 잘 포장된 도로에 당도했다.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는데, 그들은 케이를 알아보더니 곧바로 길을 비켜 줬다.

“자. 가자.”

카멜롯으로 향하는 길은 총 4개로, 동서남북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도개교였다.

도개교 폭이 100m가 넘을 정도로 넓었고, 그 위를 수많은 마차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유현은 슬쩍 도개교의 난간 아래를 내려다봤다.

‘엄청나게 높군.’

도개교 아래는 까마득한 벼랑이 펼쳐져 있었다. 석조로만 이루어진 다리를 이렇게나 크게 지을 수 있다는 부분에서 혼성계의 건축 기술의 놀라움이 전해졌다.

도개교를 완전히 건너서 본격적인 성문을 넘어서자 카멜롯의 내부를 더 세세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덧 카멜롯의 본성에 당도했다.

그것을 증명하듯 본성의 입구를 지키는 기사의 수준도 도개교 입구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케이 경?”

“손님 모셔 왔다. 문 열어.”

“아, 알겠습니다.”

케이를 알아본 기사들은 곧바로 문을 열었다. 본성 안쪽에서 기사들이 땀을 흘리며 단련을 하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들은 케이와 함께 따라 들어오는 유현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개중에는 의심 어린 시선을 보내오는 기사도 더러 있었다.

“다들 엄청 신경 쓰고 있지?”

“네, 뭐.”

“어쩔 수 없어. 요즘 정세가 정세다 보니 이런 부분에 민감할 수밖에 없거든. 자, 여기야.”

케이는 그렇게 말하며 객실의 문을 열었다.

이곳이 어디인지, 그리고 이 안쪽에서 누가 기다리고 있는지는 말해 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유현은 문을 열기 전부터, 문 틈새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발견했으니까.

그것은 과거에 보았을 때보다도 훨씬 더 찬란하게 변한 무지갯빛 책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 푹신한 소파에 낮잠 자는 고양이처럼 나른하게 누워 있는 한 여인이 보였다.

“음?”

유현이 그녀를 발견한 것과 동시에 그녀 또한 유현을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몸이 자리에서 튕겨 올라 지면에 우뚝 선다.

유현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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