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396화
“백서련…… 씨?”
유현은 떨리는 시선으로 지면에 쓰러진 백서련을 바라봤다.
뻥 뚫린 그녀의 복부에서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유현은 황급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백서련의 숨은 아직 붙어 있었다. 상처가 크지만 빠르게 치료하면 살릴 수 있다.
유현은 곧바로 자신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상처의 재생이 느리다. 상처에 새겨진 기운이 재생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걸 사용하면 그만이다.
유현은 티에라브라스 향유를 꺼냈다. 엘릭서에 버금가는 이거라면 백서련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
채앵!
유현이 향유를 꺼내는 순간 헤라클레스가 손을 뻗었다.
거대한 기운이 파도처럼 몰아치며 유현의 손에 쥐어진 향유병이 박살 냈다.
헤라클레스는 무료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한 짓 하지 마라. 그래 봤자 구차한 삶을 아주 조금 더 연명할 뿐이니까.”
“…….”
유현은 헤라클레스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공허한 시선이 박살이 난 향유병에 머물더니 이윽고 헤라클레스를 향했다.
“네가 그렇게 노려보면 뭘 어쩔…….”
0.00001초도 되지 않는 찰나의 시간, 유현은 악마가 되어 헤라클레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직후.
유현은 지면 깊숙한 곳에 틀어박혔다.
‘무……슨?’
조금 전 무슨 일이 있던 거지?
분명, 헤라클레스를 향해 달려들어 백련을 휘둘렀던 것까지 기억난다. 하지만 그 순간 복부에 거대한 충격이 내달리며 시야가 수십 번 뒤집혔고, 등 뒤로 거대한 충격이 내달렸다.
헤라클레스가 주먹을 뻗었고, 유현은 거기에 맞아 뒤로 튕겨 나갔다.
단순히 벽을 부수는 것에서 지나지 않고, 몸이 땅을 파고들어 안쪽까지 박힌 것이다.
‘보이지 않았어.’
방금 그건 대체 뭐였지? 이렇게 강하다고? 분명 자신의 공격 또한 빨랐다. 하지만 헤라클레스가 보여준 그 움직임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미래를 보는 눈조차도 그에게 어떠한 위험의 경고도 알려 주지 않았다. 헤라클레스의 주먹은 라플라스의 눈으로도 보고 피할 수 없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강함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 순간, 유현의 뇌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백서련의 모습이 떠올랐다.
“………!!!”
유현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바위 더미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날아왔을 때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헤라클레스를 향해 재차 달려들었다.
때마침 헤라클레스는 강혜림을 향해 마수를 뻗고 있었다.
“강한 여자로군. 너라면 나의 반려에 어울리겠어.”
“웃기지 마!”
유현이 바로 달려들며 헤라클레스의 머리를 발로 걷어찼다. 쿠웅! 거대한 충격파가 주위로 퍼져 나갔다. 헤라클레스는 한 손을 들어 올려 유현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 냈다.
유현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죽는다는 걸. 그리고 녀석을 빨리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백서련은 죽는다는 것까지.
그렇다면 남은 힘을 다해, 놈을 쓰러뜨린다.
화악! 유현의 주위로 칠마흑천신공의 내기가 퍼져 나갔다. 그것이 주먹의 형태로 변해 헤라클레스의 몸을 하늘로 쳐올렸다.
헤라클레스의 신형이 순식간에 뻥 뚫린 천장을 통해 하늘 높이 솟구쳤다. 유현은 등 뒤에 검은 날개를 달고 헤라클레스의 뒤를 쫓았다.
‘죽어!’
말을 꺼낼 시간조차 아깝다. 손에 쥔 백련이 번뜩이며 헤라클레스의 몸에 무수한 참격을 그었다. 헤라클레스는 공중에 떠오른 채 유현의 무자비한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 냈다.
1초에 수백 차례나 이어진 공격이 대체 얼마나 지속됐을까.
호흡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유현이 본 것은 몸에 자잘한 생채기밖에 입지 않은 헤라클레스의 멀쩡한 모습이었다. 네메아의 사자 가죽이 없는 부분만 집중적으로 공격했음에도 그의 강철 같은.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단단한 육체는 어떠한 큰 상처도 없었다.
“이게 전부인가?”
“……!”
유현이 뭐라고 말하는 것보다도 먼저, 헤라클레스의 우악스러운 손길이 유현의 얼굴을 부여잡는 것이 빨랐다.
“그렇다면 실망이군.”
그리고, 유현의 몸이 지면의 아래로 처박혔다.
뿌연 먼지구름 속에서 유현이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3m에 가까운 헤라클레스의 거구가 그의 곁에 쿵 하고 떨어졌다.
자세를 채 잡기도 전에 헤라클레스가 유현을 향해 발을 들어 올리고.
직후 무수한 검이 헤라클레스를 파도처럼 휩쓸었다.
촤자자자작! 헤라클레스는 양팔을 교차하며 검들을 튕겨 냈지만, 그의 몸이 뒤로 살짝이나마 밀려나는 것은 막지 못했다.
처음으로 헤라클레스의 눈동자에 이채가 맴돌았다.
“너는……?”
헤라클레스가 최도윤을 보며 그렇게 물었지만 최도윤은 답하지 않았다. 그는 상대가 그 올림포스의 헤라클레스인 걸 깨닫고, 곧바로 모든 힘을 개방했다.
허공에 검들이 뭉치며 단 하나의 검이 완성됐다. 최도윤은 그것을 곧바로 헤라클레스의 미간에 가져다 꽂았다. 거검이 운석처럼 떨어졌다.
“흠. 이건 위험하군.”
헤라클레스는 여전히 당당한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오른손에서 한 자루의 무기를 꺼냈다.
투박하게 생겼지만, 가공할 만한 위험이 느껴지는 그것은 헤라클레스가 전승에서 자주 사용했다고 알려진 몽둥이였다.
몽둥이를 꺼낸 헤라클레스는 곧바로 단 하나의 검을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헤라클레스의 덩치가 3m는 되고 몽둥이도 그에 걸맞게 거대했지만, 단 하나의 검은 그 크기가 1km가 넘는 거검이다.
아무리 봐도 비교가 안 될 정도였지만, 놀랍게도 헤라클레스의 몽둥이는 단 하나의 검을 부숴 버렸다.
최도윤은 그 모습을 보며 검을 다시 움직였다. 박살이 난 단 하나의 검의 파편들이 무수한 검으로 바뀌며 헤라클레스의 주위를 상어 떼처럼 배회했다.
헤라클레스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오른발을 들어 올려 지면을 찍었다.
────!!!
거대한 충격파가 일대의 검을 모조리 날려 버렸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최도윤까지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헤라클레스가 최도윤에게 접근해 몽둥이를 휘두르려는 순간, 무수한 검은 실들이 날아와 헤라클레스의 몸을 묶었다.
유현이 펼친 흑사뢰가 헤라클레스의 몸을 점점 강하게 조였다. 헤라클레스는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크게 털었다. 투둑. 투둑. 다이아몬드도 두부처럼 잘라 내는 흑사뢰가 헤라클레스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힘없이 끊어졌다.
“그래. 네가 있었지.”
“나도 있다.”
헤라클레스의 말에 대답한 최도윤이 그의 명치에 검을 찔러 넣었다. 헤라클레스가 몽둥이를 들어 올려 최도윤의 검을 막는 순간, 몸을 추스른 집행자 윌포드가 헤라클레스의 뒤에서 검을 찍어 내렸다.
카앙!
“……무슨!”
전력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의념을 두른 강기가 사자 가죽에 튕겨 나갈 줄 몰랐는지 윌포드가 눈을 부릅떴다. 곧바로 힘으로 최도윤을 튕겨 낸 헤라클레스가 윌포드를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어딜!”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걸 지켜본 또 하나의 집행자 네마르타가 나섰다. 그가 내지른 창끝이 허공에 수백 개의 잔영을 그리며 헤라클레스의 몸을 집어삼켰다. 헤라클레스는 잔상조차 보이지 않는 손길로 창날을 모조리 쳐 냈다.
네마르타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포로가 되어 이제 끝났다 싶더니, 이 괴물 같은 녀석이 갑자기 나타났다. 이 녀석이 연합을 박살 내 주면 오히려 고마운 건 네마르타였어야 했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이 괴물이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죽일 거라는 걸 직감했다.
‘대체, 어디서 이런 녀석이……!’
너무 상황이 다급해서 상대가 누구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본능에 따라 제대로 된 판단을 내렸다.
창대를 회전시키며 공격을 회수한 네마르타는 모든 힘을 창끝에 실었다. 동시에 살리오 제국의 전설급 마도구인 마창의 끝이 바르르 떨리며 강기가 더욱 압축되고 한 점에 실렸다.
조준. 그리고 격발.
당겨진 창대가 쏘아졌다. 허공에 가느다란 실선이 생기며 헤라클레스의 가슴 한복판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프군.”
하지만, 창은 헤라클레스의 몸을 꿰뚫지 못했다. 겨우 손가락 한 마디, 그 정도만 파고들었다.
네마르타의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헤라클레스는 아프다고 솔직한 감상을 말했지만, 그 여유로운 한 마디가 네마르타에게 끝없는 절망감을 심어 주었다.
그는 그제야 헤라클레스의 모습을, 아울러 그의 진짜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다, 당신은…….”
사자 가죽을 뒤집어쓴 거구의 남자를 과연 혼성계에서 몰라볼 사람이 있을까.
설사, 그게 성령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헤라클레스. 올림포스의 최종 병기라 할 수 있는 이 남자는 그런 존재였다.
모든 영웅 중 최강. 아니, 이제는 영웅을 넘어서 올림포스를 멸망시킬 뻔한 거신 대전(기간토마키아) 마저 승리로 이끌었다는 최강의 신.
지금의 헤라클레스는 그냥 위대한 영웅이 아니었다.
신들조차 두려워했다는 신화 대전의 주역이자, 책벌레 기간테스들의 머리를 몽둥이로 박살 내고 화살로 꿰뚫은…… 자타공인 올림포스의 최강자였던 것이다.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두 사람만큼은 헤라클레스를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절기를 펼쳤다.
검의 길, 무한검군(無限劍軍).
칠마흑천신공 오마 변초식, 흑월무궁진(黑月無窮進).
최도윤과 강유현의 합공이 헤라클레스를 양쪽에서 덮쳤다.
헤라클레스는 자리에 가만히 선 채로 자신의 격을 해방했다. 콰가각! 집행자. 아니, 그것을 초월한 두 존재가 내뿜는 절기가 헤라클레스가 방출한 힘에 밀리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군주들은 밀려오는 절망감을 숨기지 못했다.
헤라클레스라니. 그 올림포스의 괴물이 이곳까지 왔단 말인가.
단순히 소문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강한지 알았지만, 직접 보니 또 달랐다. 헤라클레스는 강해도 너무 강했다.
힘 그 자체를 뭉치고 뭉쳐서 만들어 낸 거대하고도 찬란한 별. 이 세상 자체가 그의 힘이 자아내는 인력에 이끌리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헤라클레스를 공격하면서 유현은 처음으로 벽이라는 걸 제대로 느꼈다.
이제는 옛일이 된 모비딕을 상대했을 때도, 서수민의 악몽에서 천마였던 그녀의 환상체를 마주쳤을 때도 이렇게까지 답답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뭐.’
그렇다고 멈출 수 없었다. 녀석을 죽이지 않으면, 백서련을 살릴 수 없었다.
아니, 이미 살릴 수 없는 건가? 그녀를 치료할 유일한 수단이 사라졌다. 그 정도의 상처를 가진 백서련이 얼마나 버틸 수 있지?
피를 흘리는 백서련의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유현은 마음속이 뜨겁게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또다.
또 힘이 없어서 지키지 못했다.
강혜림에 이어서 백서련까지.
‘저 녀석 때문에!!!’
헤라클레스를 향한 살기가 골수까지 차올랐다. 유현의 손이 어지럽게 허공을 누볐다.
서수민에게 배운 온갖 절기가, 그리고 거기에 자신이 변초를 가한 모든 기술이 헤라클레스를 향해 쏟아졌다.
칠마흑천신공(七魔黑天神功)
재화(災花), 낙화진(落花陳), 단산참(斷散斬), 난분분(亂紛紛), 화점천(花點穿).
몸에 힘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지만, 그걸 의지로 불태우며 더욱 억지로 쏟아 냈다.
실핏줄이 터지며 눈가를 타고 피가 흘러내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마룡회천(魔龍回天), 천압묵파(天壓墨波), 취악굉뢰(聚惡轟雷), 흑진왕(黑震王), 문산멸뢰(紊散滅雷), 팔척연옥광(八尺煉玉光).
전부, 가진 전부를 토해 내서 놈을 죽인다. 백서련을 죽이려고 한 녀석을 죽인다.
녀석의 존재를 하나도 남김없이 이 세상에서 지워서 소멸시킨다.
유하멸겁(幽霞滅劫), 혈광난천(血光亂天), 혈익왕(血翼王), 혈계군림(血界君臨).
칠마흑천신공의 일마부터 육마까지 모든 것이 펼쳐졌다.
공간마저 뒤트는 거대한 힘이 헤라클레스를 집어삼키며 그의 몸을 무차별로 난도질했다.
“죽어어어어!!!”
증오에 가득 담긴 유현의 외침을 들은 걸까.
안쪽에서 헤라클레스가 뭐라고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직후, 거대한 섬광 하나가 유현을 향해 대포처럼 쏘아졌다.
그가 펼친 모든 절기를 뚫고 날아온 것은 거대한 화살이었다. 그것이 유현의 왼팔을 날리며 하늘 높이 솟구쳤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
활시위를 당긴 헤라클레스의 모습이 유현의 눈동자에 담겼다.
많은 사람이 헤라클레스 하면 몽둥이로 괴물들을 때려잡는 걸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의 가장 큰 무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활.
거신 대전, 기간토마키아를 끝낸 것도 바로 이 활이었다.
“아.”
유현의 몸이 힘없이 지면으로 추락했다.
헤라클레스가 다시 움직이려 하자 최도윤과 윌포드, 네마르타가 헤라클레스에게 동시에 달려들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가 활을 꺼낸 순간부터 그들의 패배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원거리 무기인 활을 들었음에도 헤라클레스는 믿기지 않는 속도로 시위를 매기며 활을 쏘았다.
총 3발. 그것이 허공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임을 바꾸며 세 명의 집행자의 목숨을 노렸다.
각자 화살을 막기 위해 방어에 들어갔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세 사람의 몸이 튕겨 나가며 지평선 너머까지 까마득한 점으로 변하며 사라졌다.
헤라클레스는 누구도 죽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래도 꼴에 집행자라 불리는 자들이라 이건가.
귀찮게 됐지만, 화살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헤라클레스가 재차 활시위를 매겨 집행자들을 끝장을 내려는 순간 군주들이 나섰다.
“녀석을 막아! 집행자님들을 지켜!”
거대한 도끼를 든 드워프 전사, 정령 마법을 부리는 엘프, 세상을 불길로 뒤덮는 마법사, 가진 절기를 쏟아 내는 무인까지.
헤라클레스는 그들을 보며 날파리를 쫓아내듯 활을 치우고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가 몽둥이를 한번 휘두를 때마다, 군주들의 목숨이 하나씩 사라졌다. 아무리 강대한 내공을 지닌 무인이라도, 튼튼한 갑옷을 입은 기사라도 너나 할 것 없이 공평하게 쓰러졌다.
하나의 도시를 지배하는 군주가 단 일격에 죽어 나간다.
그나마 헤라클레스의 일격을 버틴 것은 위무혁뿐이었다. 하지만 위무혁의 대태도는 산산조각이 났고, 위무혁 본인 또한 피를 한 사발이나 토하며 멀리 튕겨 날아갔다.
오히려 싸움다운 싸움을 하지 못하는 헤라클레스의 목소리에 노기가 담겼다.
“고작 이따위 전력을 가지고, 우리 대성군 올림포스에 맞서려고 한 것이냐?”
그렇다면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닌가.
뭐가 군주고 뭐가 집행자인가. 그렇게 강하다고 남들이 추켜세워 줘도 결국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가.
헤라클레스의 시선이 자리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유현을 향했다.
책더미 군주. 올림포스에 소속된 주신 중 몇몇은 저 남자를 꽤나 좋게 보는 것 같지만,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헤라클레스로서는 기가 찰 따름이었다.
“그나마 네놈이 이 자리에서 가장 나은 모습을 보여 준 것 같다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헤라클레스는 왼팔을 잃은 채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은 유현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연합은 이제 멸망한다. 자신이 나선 순간 그것은 예정조화의 일이었다.
그들이 지배하는 모든 것들은 올림포스의 아래에 들어가게 되리라.
헤라클레스의 그림자가 유현에게 드리워졌다.
‘끝, 이라고?’
유현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헤라클레스는 강해도 너무 강했다. 갑자기 그가 나타난 것부터 해서, 군주들을 죽이고 집행자들마저 일거에 제압한 그의 무위는 가히 올림포스의 최강다웠다.
왜 1세대 성령이 자식을 낳지 못하게 제네시스 시스템에 엄중히 금지를 내렸는가.
1, 2세대 성령이 의도적으로 3세대 성령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바로 눈앞의 헤라클레스. 이 남자의 존재가, 제단마저도 경계심을 품게 만들었다는 거다.
“고통 없이 보내 주마.”
웃기지 마.
유현은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왼쪽 팔이 날아갔지만, 그건 다시 치료하면 그만이다.
“나는.”
“…….”
“나는 고작 이런 곳에서 주저앉기 위해 여기까지 달려온 게 아니야.”
흔들림이 없는 시선으로 헤라클레스를 노려보자 헤라클레스 또한 흥미롭다는 듯 유현을 살폈다.
그가 지금까지 쓰러뜨렸던 대부분 ‘사냥감’들은 언제나 죽음을 앞두고 마음이 꺾이거나 무너졌거늘.
이 남자는 다르다. 녀석은 사냥감이 아니다. 위대한 전사, 혹은 다른 무언가.
그래. 그렇게 나와 줘야지.
“그런 처참한 몰골로 내게 맞서겠다는 그 기개만큼은 인정해 주마.”
하지만, 힘의 격차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헤라클레스는 그대로 몽둥이를 들어 올리고 유현의 머리에 내리치려는 순간.
[후. 너는 어째 이런 녀석들이랑 자주 엮이는 것 같다?]
번쩍!
먼 지평선 너머, 하늘에서 한 줄기 황금빛이 번뜩였다.
무언가가 헤라클레스를 향해 섬광처럼 날아왔다.
“……!”
시종일관 오만함을 유지하던 헤라클레스의 안색이 돌변했다. 그는 휘두르기 직전의 몽둥이를 가슴으로 끌고 와 방어 자세를 취했다.
직후 황금빛 봉이 그의 몽둥이 위에 꽂혔다.
────!!!
헤라클레스의 몸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저 뒤로 날아갔다. 돌출된 지층을 부수고, 지면에 거대한 고랑을 그리면서도 쭈욱, 그렇게 계속 밀려났다.
무수한 군주의 협공에도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던 헤라클레스가 단 일격에 속절없이 튕겨 나간 것이다.
‘방금 그 황금빛 봉은…….’
유현의 품 안에 있던 금색 털 한 가닥이 바람을 타고 허공에 떠올랐다.
이윽고 금빛 털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고, 그 빈자리를 한 존재가 대신했다.
[내가 머리털 하나 빌려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런 녀석과 싸워?]
황금쇄자갑을 입은 투전승불 손오공.
그가 유현을 돌아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