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395화
‘이상할 정도로 일이 잘 풀리고 있어.’
백련은 온갖 자연재해가 벌어지는 현실과 자신의 기억이 조금씩 기억이 날 듯 말 듯한 혼잡스러운 상황에서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인 현실인지. 아니면, 깨어나려고 하는 기억의 표상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꿈과 현실은 동일했기에 더욱 백련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대체, 왜? 과거의 기억과 미래에 벌어질 일이 겹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녀가 미래의 일을 알고 있지 않은 이상.
하지만, 그녀는 이미 먼 과거에 멸망한 살리오 제국에서 만들어 낸 신화급 무구다. 거기에 내재된 인공지능이, 미래의 일을 읽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 기능이 있었다면 지금이 아닌 한참 전부터 작동해야 했다.
‘불안해. 이유는 모르지만, 자꾸 그런 느낌이 들어.’
백련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리며 현실과 과거를 구분하고자 했다.
그렇게 유현이 치열하게 싸우는 동안, 백련은 자신만의 싸움을 벌이며 거의 그 과정을 끝내게 됐다.
상황은, 좋게 흘러가고 있었다. 유현이 살리오 제국의 집행자 중 하나인 데올라카를 쓰러뜨렸고, 전황은 크게 뒤바뀌었다. 그래, 분명 객관적으로 봐도 이 상황은 연합에 있어서 호재였다.
‘하지만, 이상해. 너무 상황이 좋아. 내 기억 속에서도, 이와 비슷한 적이 있었던 것 같아.’
심연의 깊은 곳에서 수면 위로 천천히 올라오는 기억의 기포 속에서, 거대한 전쟁이 흐릿한 영사기 위에 비치는 것처럼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때도 그랬다. 분명 전황은 좋게 흘러가고 있었다. 다들 승리를 자축하는 분위기 속에서 적들이 물러났었다.
그리고.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지?’
그 이후의 기억이 마치 가위에 잘려 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뚝 끊겼다. 백련은 자신이 조금 전부터 품은 불안감의 근원이 이 부분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걸 알아야 한다. 이걸 깨달아야만 이 모든 사태의 진실을 깨우칠 수 있다.
그러는 사이에 전쟁의 판도는 서서히 뒤집히기 시작했다.
“데올라카님이 쓰러지다니, 이젠 끝이야.”
“책더미 군주가 아직도 건재하다니. 괴물인가?”
가장 먼저 전의를 상실한 것은 유현의 싸움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초월자들이었다. 그나마 살리오 제국의 군주들은 자신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애써 강한 척을 하고 있었지만, 초월자들은 달랐다.
애초에 유현과 데올라카의 싸움이 정정당당했냐면 또 그것도 아니었다. 데올라카는 유현을 쓰러뜨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했다. 온갖 마도구를 사용하고, 또 마도병단의 지원까지 받았다.
하지만, 싸움의 결과는 달랐다. 유현은 일신의 무력으로 그 모든 벽을 넘어서 데올라카를 쓰러뜨렸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약해진 틈을 노린 살리오 제국의 군주를 삽시간에 제압하고, 심지어 데올라카의 기술을 구사하는 모습까지 보여 줬다.
상대방의 기술을 빼앗은 건가? 그것이 가능한가? 그렇다면, 저 괴물은 싸우면 싸울수록 더욱 강해지는 놈이 아닌가.
“이, 이길 수 없어.”
“우리가, 져야 한다고?”
“다들 정신 차려라!”
아직 남아 있는 한 명의 집행자인 네마르타가 공력을 담아 소리쳤지만, 이미 전의를 상실한 자들의 절망을 일깨우진 못했다.
네마르타는 이를 악물었다. 그가 연합의 집행자 윌포드와 싸우는 동안 전황은 돌이킬 수 없는 사태까지 치닫고 말았다.
‘설마하니 데올라카가 졌을 줄이야.’
데올라카는 제국의 검이라 불리는 남자다. 네마르타는 제국의 창이라 불렸고, 데올라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자였다. 하지만 데올라카는 이제 이 자리에 없다.
그냥 진 것도 아니다.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고도 졌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는 녀석은 이 자리에 적어도 없으리라.
‘겨우 좀 괜찮아지나 싶었는데!’
윌포드는 노련했기에 승부를 제대로 낼 수 없었지만, 유현이 자연석 3개를 부수면서 일으킨 자연재해는 어느덧 효력을 상실해서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아직 전력의 숫자는 이쪽이 더 압도적이다. 그러니 상대방이 우위에 있는 이 날씨만 가라앉게 된다면 전열을 가다듬고 한꺼번에 쓸어 버릴 수 있을 터였는데.
전부 유현 하나 때문에 무산되고 말았다.
‘이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집행자의 숫자는 본래 이쪽이 둘, 저쪽이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그 반대가 됐다.
군주의 숫자와 초월자의 숫자는 아직은 이쪽이 더 많다. 그 치열한 싸움 속에서 서로 희생자가 생기기는 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유리한 것은 변하지 않는다.
문제라고 한다면 이런 모든 전황을 뒤엎을 정도로 압도적인 유현의 존재감.
일단, 그것을 어떻게든 억눌러야 했다.
“본대. 들리나?”
[네마르타님?]
“들리면 대답하게.”
[예, 예! 잘 들립니다.]
자연석으로 벌어진 폭풍이 가라앉고 먹구름도 점차 연해진 상황이라 하늘 높이 떠오른 비공정은 다시 고도를 낮추는 중이었다. 늦게 움직이던 비공정 세 척이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먹구름의 폭풍에 휘말렸지만, 아직 일곱 척이나 건재했다.
“가지고 있는 모든 화력을 쏟아부어서 적들을 섬멸해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전부 다!”
[네? 하지만…….]
“명령이다!”
저쪽에서 상황을 난전으로 끌고 나가고자 했다면, 이쪽도 똑같이 가 주면 그만이다.
초월자와 군주들로 안 된다면 비공정의 포격과 제국의 병사들, 그리고 아직도 건재한 마도골렘의 힘을 빌리면 그만이다.
그로 인해 발생할 피해는…… 분명히 막대하겠지. 왜 군주의 싸움에 그 아래 실력자들이 끼어들지 않는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 짓을 벌이면 피해가 너무 커지니까. 하지만 네마르타는 지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걸 알기에,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제국의 승리를 위해서.”
[……알겠습니다.]
무전이 끊어지는 것과 동시에 하늘이 떠 있는 비공정이 다시 강렬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것이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다는 신호이며 곧 지상에 무수한 폭격이 내려올 거라는 전조였다.
‘이젠 피해가 얼마나 크고 작고는 신경 쓰지 않는다. 패배할 바에는, 상처뿐인 승리라도 가지겠다!’
이윽고 비공정에서 막대한 폭격의 비를 쏟아 낼 준비가 끝나는 순간.
허공에 무수한 검들이 비처럼 쏟아지며 비공정을 꿰뚫었다.
콰과과광!
“뭣?!”
네마르타는 눈을 부릅떴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검에 꿰뚫린 비공정들이 허공에서 균형을 잃더니 이윽고 주황빛 불꽃과 함께 폭발했다.
네마르타는 조금 전 비공정을 꿰뚫은 검을 예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애초에 연합 내에서 저렇게 많은 검을 동시에 다루는 자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집행자 최도윤!”
네마르타가 증오를 담아 그 이름을 불렀다. 그의 시선은 저 멀리, 거대한 매를 타고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최도윤에게 꽂혔다.
다쳐서 회복에 전념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나? 아무리 치료가 빨리 끝났다 하더라도 이렇게 바로 올 수 있을 리가…….
“설마…… 속였던 거냐?”
크게 다쳤다는 것과 회복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까지.
그러지 않고서야 이 남자가 지금 이곳에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싸움에 있어서 적을 속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병법이지.”
매의 위에서 뛰어내려 지상에 착지한 최도윤은 무뚝뚝한 어조로 답했다.
“잊었나?”
“상황이, 이렇게 될 걸 미리 알고 있었다고? 그리고 이걸 전부 의도했다는 거냐?”
“어느 정도는.”
“너…….”
유현은 자신의 옆에 선 최도윤을 믿기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전생의 녀석은 작전이고 뭐고, 그냥 힘으로 다 찍어 눌렀다. 왜냐면 그래도 됐으니까. 정보를 조달하거나 상대방의 약점이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은 오직 유현의 역할이었다.
최도윤은 오직 싸움. 그것도 압도적인 피지컬로 전부 쓰러뜨렸을 뿐.
하지만, 이번 삶에서는 달랐다.
최도윤은 유현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뒤, 자신이 크게 다쳤다는 소문을 의도적으로 흘렸다. 실제로 다치기는 했지만, 소문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며칠 가볍게 요양한 것으로 충분히 회복한 뒤였다.
다만, 살리오 제국은 그걸 몰랐다. 최도윤이 소속된 연합 쪽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모두를 속이기 위해 같은 동료마저 속였다.
어떻게 보면 이런 일방적인 행동은 딱 최도윤다운 짓이었지만, 그가 이렇게 큰 그림을 그릴 거라고는 유현도 예상하지 못했다.
유현은 최도윤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고 입술을 몇 번이고 달싹이다,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올 거면 좀 더 빨리 오라고.”
“나도 바로 온 거다. 상처를 전부 회복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애매했어.”
“……변명하기는.”
유현은 말은 그렇게 해도, 최도윤이 다친 것에 자신이 가장 큰 지분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이상 그를 탓하지 못했다.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던 터라,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최도윤이 나타나 상황을 모조리 정리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 일이었으니까.
물론 입이 찢어져도 이 녀석에게는 고맙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아무튼 그랬다.
“자.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최도윤은 네마르타를 돌아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전쟁은, 이걸로 이제 끝이었다.
* * *
허억. 허억.
패트릭은 공포에 질린 채 숨을 헐떡이며 달렸다. 그는 지금 도망치고 있었다.
누구로부터? 그 정체불명의 가면을 쓴 흑의의 괴물들. 놈들이 움직이는 순간부터 패트릭은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가 아는 싸움이라는 것은, 자신의 힘과 이야기를 이용해 서로 치고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라플라스와 데카르트가 보여 준 싸움은 패트릭의 상식을 완전히 부정했다.
‘그건 대체 뭐였지?’
꿈과 현실이 왜곡되고, 자신이 믿던 세상이 물을 뿌린 수채화처럼 무너지는 순간을.
마도병단의 에이스들만 모아 놓은 알파팀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비명을 지르며 죽어 가는 그 광경을.
아버지에게 하사받은 최강의 마도구로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하는 이 무력감은.
‘이럴 수는 없어.’
자신은 살리오 제국의 유일한 적통이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국을 이끌 남자다.
제국이 지닌 힘이 얼마나 강한가. 그들은 연합을 지배하는 것을 넘어 혼성계 전역에 그 야망을 떨칠 수 있었다. 그래, 분명 그들이 혼성계의 최강의 조직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그러니 자신의 앞에 있어야 할 것은 그저 성공뿐인 탄탄대로여야만 했다.
그래야만 했는데.
“이럴 수는 없다고!”
그 발악 같은 외침에 대답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부 죽었다. 자신을 충성심으로 따라오던 병사 중 살아 있는 녀석은 없었다. 패트릭은 두려움에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그러나, 그는 지하 기지의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지하 기지의 생존자들이 있는 안쪽을 향해 움직였다.
이윽고 복도의 끝, 마지막 문을 연 패트릭은 안쪽에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그중에는 자신이 손을 뻗으려고 했다가 혼쭐이 난 강혜림도 있었고, 반드시 죽여야 하는 인물 중에서 1순위를 꼽는 백서련도 있었다.
‘감히 제국에 반기를 든 건방진 놈들!’
패트릭은 살리오 제국 장검을 뽑아 들었다. 아버지에게 하사받은, 제국이 만들어 낸 최고의 명검이 새하얀 도신을 드러냈다.
등급으로만 따진다면 신화 속의 신들이 사용하던 무구에 버금가는 최강의 무기였다.
형태를 자유자재로 변화시키거나 다른 무구의 이야기를 먹어치워 강해질 수 있으며, 그것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력까지.
이것만 있다면 자신은 무적이나 다름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패트릭 1황자? 여긴 어떻게…….”
바깥의 상황을 전해 듣지 못한 백서련이 패트릭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당황했다. 그런데 패트릭의 상태가 어딘가 이상했다. 분명 갖춘 복장만 보면 전쟁을 준비한 것 같은데, 하얗게 질린 안색이나 숨을 헐떡이는 모습은, 겁에 질린 패잔병의 꼴이 아닌가.
백서련은 패트릭을 경계하며 뒤로 물러났다.
“혜림 언니, 뒤로 물러나세요. 위험하니까.”
패트릭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그의 공허한 눈동자 안에 살기가 맴돌았다.
백서련은 고민했다. 이미 기지 내부의 사람들은 비밀 통로를 통해 탈출시킨 뒤였다. 자신이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지도자로서 책임감 때문이었다.
원래라면 강혜림도 내보내야 했지만, 강혜림은 스스로 백서련과 붙어 있길 원했기에 지금 남은 사람은 둘과 백효가 전부였다.
“패트릭 황자. 당신이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끝났어요. 이런 무모한 싸움은 그만두세요.”
“무모? 무모라고 했나? 감히! 나는 살리오 제국의 적통이다! 그리고 우리 제국은 절대로 패배하지 않는다! 제국에 반기를 든 주제에, 감히 무모를 언급해?! 나, 나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제국의 지배자가…… 세상을, 우리 손에…….”
‘말이 통하지 않아.’
패트릭은 거의 패닉에 빠져 있어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패트릭이 이윽고 건전지가 다 된 장난감처럼 입을 꾹 다물더니, 검을 쥔 손에 힘을 가했다.
“전부, 죽여. 죽여야 해. 그래야만…….”
죽여야 한다면 이곳에 있는 백서련이라도.
패트릭이 그렇게 마음을 먹는 순간, 그의 복부를 타고 뜨거운 통증이 내달렸다.
“어?”
[저런. 그러시면 안 되죠.]
등 뒤에서 들려오는 그 악몽 같은 목소리에, 패트릭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데카르트와 함께 알파팀을 모조리 정리한 라플라스가 결국에 이곳까지 패트릭을 쫓아온 것이다.
검이 뽑혀 나가자 패트릭은 울컥 피를 토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의 손에 쥐어진 살리오 제국의 장검이 바닥을 뒹굴었다.
“나는…… 장차, 황제가 될 몸…….”
그것이 그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아가씨들. 괜찮으십니까?]
“……네. 지켜 주셔서 감사해요.”
[저희는 그저 주군의 명령을 따랐을 뿐.]
백서련은 복잡해진 시선으로 패트릭의 시체를 내려다봤다. 이윽고 그녀의 시선이 패트릭이 놓친 검에 갔을 때, 싸움을 끝낸 유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랑세계를 통해 누구보다도 빠르게 지하에 들어온 유현은 안쪽의 상황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현 씨.”
“서련 씨. 괜찮습니까?”
“저는 괜찮아요. 그보다 유현 씨가 오셨다는 것은 바깥의 상황은…….”
“네. 저희가 이겼습니다.”
유현의 말에 백서련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맺혔다. 지금까지 시종일관 무거운 표정을 짓던 것과는 전혀 다른, 굳이 말하면 5년 전 지구가 혼성계에 들어서기 전에 자주 보았던 그녀의 모습이었다.
물론, 싸움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제국의 본진인 엘더 센트롤은 아직 건재하고, 이 모든 일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제국의 황제 또한 아직 남아 있으니까.
하지만 셋이나 있는 집행자 중 둘이나 죽고, 군주들과 초월자들이 패배해서 항복까지 한 상황에서 과연 살리오 제국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결국, 이번 싸움이 모든 것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전투였고. 연합은 거기서 승리한 것이다.
당장 축배를 들어도 시기상조라고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백서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현은 문득 패트릭의 시체 옆에 떨어져 있는 살리오 제국의 장검을 발견하고 의문을 품었다.
‘저건…… 백련과 똑같이 생긴 거잖아?’
설마, 놈들은 과거의 물건을 복제해서 다시 만들어 내는 수준까지 도달했던 걸까?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세부적인 디자인까지 전부 백련과 흡사하다.
마치, 저 장검이 백련 그 자체이기라도 한 것처럼…….
[유현아!]
상념을 찢어발기는 백련의 비명과도 같은 고함이 뇌리를 울렸다.
‘백련?’
[위험해! 당장, 당장 여기서 도망쳐!]
‘뭐?’
백련의 난데없는 경고에 유현이 당황하기도 전이었다.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그것은 승리에 도취한 연합의 군주들도, 패배해서 포로가 된 살리오 제국의 군주들도, 그리고 아직 살아남은 집행자도 눈치채지 못한 일이었다.
──────!!!
천지를 아우르는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그리고 빛이 가라앉았을 때, 유현이 본 것은 뻥 뚫린 하늘이었다.
‘하늘?’
이곳은 지하 1km 아래에 묻혀 있는 거대한 지하 기지가 아니던가? 그런데 대체 왜 하늘이?
‘아니야. 이건…….’
유현은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조금 전 폭발로 인해 반경 500m 가까이 되는 주변의 지층이 거대한 삽으로 퍼내기라도 한 것마냥 깔끔하게 날아가 있다는 걸.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무언가’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는 것을.
유현과 백서련, 강혜림이 있는 이 지하 기지의 가장 깊은 곳의 중심에서.
하늘에서 떨어진 그 무언가가 몸을 일으켰다.
숙이고 있을 때도 거대하다고 느꼈지만, 몸을 완전히 일으키니 신장이 3m는 돼 보였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대단한 것은 마치 태산. 아니, 그보다 훨씬 더 거대한…… 까마득한 우주를 내다보는 것 같은 거대한 존재감이었다.
3m나 되는 거구의 남자. 머리 위에 사자 가죽을 뒤집어쓰고 울긋불긋한 근육이 드러나는 복장을 한 남자의 싸늘한 시선이 주위를 가볍게 훑었다.
그리고.
퍼억!
“어?”
백서련의 복부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