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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393화 (393/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393화

“저쪽도 싸움을 시작했나보군.”

마그니는 멀리서 폭풍의 눈처럼 휘몰아치는 먹구름을 보며 묠니르를 고쳐 쥐었다.

“그러니 우리들도 슬슬 시작해야 하지 않겠나?”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

권지아는 마그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답했다.

조금 전부터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백은 절대 그녀에게 긴장을 풀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눈을 돌리는 순간, 저 묠니르는 그녀의 머리를 날려 버릴 것이다.

“안 그래도 기대했다. 이제는 사라졌다고 생각한 펜릴의 힘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그 계보를 이었다면 나를 충분히 즐겁게 만들어 주겠지?”

“그때 충분히 느끼고 도망친 것 아니었나?”

“이봐. 오해를 정정할 생각도 안 드는 말이군. 그때 싸움에 먼저 끼어든 건 그쪽이었어. 난 선약이 있었다고.”

그것만 아니었으면 자신이 도망칠 일도 없다며 마그니는 불쾌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먼저 유현의 싸움에 끼어든 건 그쪽이 아니던가?”

“그 녀석이 한 걸 싸움이라고 할 수 있으면 그렇겠지.”

“그런가? 그런 것치고는 상당히 많은 부하를 끌고 왔는데?”

권지아는 마그니의 뒤, 멀리 떨어진 곳에 도열해 있는 아스가르드의 병사들을 보며 비웃음을 날렸다.

마그니는 그 말에 ‘허’ 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묠니르를 들지 않은 왼손으로 머리를 거칠게 긁었다.

“저 녀석들은 싸움에 끼어들지 않을 거다. 애초에 이건 나 혼자만으로 충분하니까.”

“자만심이 차고 넘치는군.”

“어차피 네 수준을 생각하면 우리 아스가르드의 전사들이 몇이 몰려와도 피해만 커질 뿐이지. 뒤에 있는 녀석들은 혹시 모를 일에 대한 보험이야.”

“혹시 모를 일? 마치, 이 뒤에 무슨 일이 더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는군.”

“그야 그럴 수밖에 없겠지.”

마그니는 피식 웃으며 전쟁과 벌어진 곳과는 동떨어진 방향으로 시선을 던졌다.

“너희들은 아직 모르고 있겠지만, 나는 느낄 수 있다. 올림포스 녀석들, 아무래도 이번에 기회를 단단히 잡을 생각인 것 같군. 하필 불러도 녀석을…….”

“뭐?”

“됐다. 이건 이쪽의 혼잣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마그니는 묠니르를 고쳐 쥐고 호탕하게 웃었다.

“어디 한번 시원하게 싸워 보자고!”

꽈르르릉!

마그니의 주위로 눈 부신 번개가 묠니르를 타고 그의 몸을 맴돌았다.

권지아 또한 자신이 지닌 모든 힘을 개방했다. 그녀의 등 뒤로 보랏빛 아우라가 일렁이더니 거대한 늑대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권지아가 머리에 뒤집어쓴 후드가 뒤로 확 젖혀지며 그녀의 늑대 귀가 드러났다.

“머리통을 부숴 주마.”

“목을 물어뜯어 주지.”

* * *

“싸움이 시작됐다.”

먹구름 위쪽까지 물러난 고공의 비공정에서 패트릭 1황자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뒤를 돌아봤다.

그의 등 뒤로 마갑을 차려입은 마도병단 알파팀이 오와 열을 맞춰서 대열해 있었다.

패트릭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특히 안전을 중요시했기에 머리를 제외한 나머지가 전부 마도구로 떡칠이 돼 있었다.

“우리의 임무가 무엇인지 알고 있겠지?”

대원들은 대답이 없었지만, 그들의 침묵에서 패트릭은 확신을 얻었다.

그들의 임무는 전쟁이 벌어진 틈을 타, 살리오 제국에 반항하려는 연합의 중추를 제거하는 것.

군주부터 초월자까지, 싸움에 필요한 대부분 전력이 전쟁으로 빠져 있는 지금 놈들의 본거지에는 싸울 줄도 모르는 놈들만 남아 있었다.

연합의 중추라 할 수 있는 자들을 제거하기만 해도 놈들은 이 전쟁을 이어 갈 큰 원동력을 잃을 터.

어떻게 보면 그들이 얼마나 신속하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전쟁의 판도가 결정된다.

패트릭은 허공에 홀로그램 지도를 펼쳤다.

“지형은 이미 전부 파악했다. 다들 최적의 루트를 숙지하도록.”

“황자님. 안쪽에 있는 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걸 굳이 대답해 줘야 아나? 우리 살리오 제국에 반기를 든 자들이다. 전부 죽여. 하나도 남김없이.”

망설이거나 거절의 답은 없었다.

패트릭은 역시 마도병단의 알파팀이라고 생각하며 출격 준비를 마쳤다.

패트릭과 마도병단은 거대한 드랍 포드 하나당 4명씩 탑승했다. 곧이어 포드가 사일로를 타고 움직였다.

비공정의 거대한 포신이 지상을 향해 겨누어지는 것과 동시에.

퉁! 퉁! 퉁!

드랍 포드가 내장된 포신이 불을 뿜으며 지상을 향한 공수 부대의 낙하가 시작됐다.

지상을 향해 수직으로 떨어진 드랍 포드는 그대로 땅을 꿰뚫고, 지하 아래로 파고들었다.

“지상에서는 그야말로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군.”

유현이 사용한 3개의 자연석이 불러온 거대한 자연재해를, 반투명한 막 너머로 순간이나마 지켜본 패트릭은 오한에 몸을 떨었다.

저것이 군주라 불리는 자들의 싸움. 자신은 감히 끼어들 생각도, 지켜볼 엄두도 나지 않는 신화에 버금가는 전쟁.

‘그래.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지하로 파고들던 포드는 이윽고 목적지에 도달했다.

잘 훈련받은 마도병사들은 일사불란하게 포드에서 내리며 주위를 살폈다.

그들의 호위를 받으며 패트릭이 명령을 내렸다.

“전부 죽여.”

* * *

유현은 데올라카와 충돌했다.

지층이 뒤집히고 거대한 식물이 자라나며, 하늘의 먹구름에서 끝없이 비를 쏟아내는 세기말의 풍경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데올라카의 손이 흐릿하게 변했다. 유현은 즉시 고개를 뒤로 젖혔다. 거대한 참격이 그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며 등 뒤의 풍경을 비스듬하게 베었다.

데올라카의 공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의 의념이 세계에 공명하며 주위에 무수한 검격을 뿌렸다.

유현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칠마흑천신공을 두른 유현 또한 의념을 일으키며 데올라카의 참격을 쳐 내거나 막아 내며 중간중간 반격을 넣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유현은 데카르트의 권능까지 사용했다. 주위로 무수한 환영이 생기며 데올라카의 눈을 현혹했다.

“헛수작을.”

“그건 해 봐야 알지.”

둘의 몸이 코앞에서 부딪쳤다. 데올라카의 검과 유현이 쥔 백련이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데올라카는 백련을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어디서 난 거지?”

“알아서 뭐 하게?”

“황실에서 훔친 건가?”

“피렌과 똑같은 말을 하는군.”

피렌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데올라카의 눈썹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감히 그 이름을 입에 담지 마라!”

“나름 애지중지하며 키운 제자였나 봐?”

유현이 정곡을 파고들었다. 데올라카는 이를 악물며 유현을 힘으로 밀어내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점점 자신의 몸이 뒤로 밀려나는 걸 깨달았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힘이……!’

오랫동안 검을 잡아 오고 그것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자신보다 훨씬 더 어린 유현에게 힘으로 밀린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데올라카는 잠시 분노를 삭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놈은 자신이 키운 제자를 죽인 원수지만, 단순히 감정만 앞서기엔 유현의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

피렌은 살리오 제국에 소속된 집행자 중에서 가장 약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집행자는 집행자다. 유현은 그런 피렌을 쓰러뜨린 강자. 그리고 검의 군주인 최도윤마저 이겼다는 소문이 돌지 않던가.

‘천마가 사라지고, 검의 군주까지 부상을 입은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승리할 기회라고 생각했거늘, 대체 어디서 이런 자가 나타난 거지?’

그는 아직도 유현의 정체를 몰랐다. 모를 수밖에 없고 알 생각도 없었다.

데올라카는 의념을 끌어올렸다. 그의 주위로 무수한 병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오직 의념의 단계를 일깨운 자들만이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병사들을 부리는 건가?”

“나와 함께 해 온 전우들이다.”

“거기에 너도 곧 추가되겠군.”

데올라카는 유현의 도발에 말려들지 않았다. 의념으로 이루어진 병단이 사방에서 유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물리 법칙에 속해 있지 않았다. 땅을 뚫고 튀어나오는 놈도 있었고, 정수리 위에서 수직으로 뚝 떨어지는 놈들도 있었다.

아포리아의 가면을 쓴 유현의 눈이 미래를 읽었다.

머리가 살짝 지끈거리며 아파 왔지만, 그는 자신이 회피할 수 있는 최적의 루트를 발견했다.

흑뢰군주였던 강혜림이 펼친 나선흑검을 뚫고 나갈 때보다는 훨씬 더 양호했다. 단순히 그것만으로 데올라카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너는 약해.”

강혜림보다도, 최도윤보다도 더.

군주를 뛰어넘은 집행자라고 하지만, 결국 그것은 연합의 영토 내에서 저들끼리 붙인 칭호에 지나지 않았다.

진정한 강자는, 결국 이런 칭호에 얽매이지 않는다.

“나선흑검.”

강혜림의 책을 만지면서 얻게 된 그의 능력.

유현은 곧바로 손을 활짝 펼치며 뇌전의 검을 만들어 냈다. 무수한 검들이 이중나선의 형태로 소용돌이치며 데올라카를 향했다.

데올라카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입술을 깨물며 무언가를 발동했다.

쿵쿵! 허공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방패 2개가 유현의 나선흑검을 막았다. 방패는 1초 이상 버티지 못했다. 하지만 데올라카에게는 그 정도 시간은 몸을 빼기엔 충분했다.

나선흑검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보며 유현은 가면 속에서 눈을 가늘게 떴다.

“맨몸으로 싸울 것처럼 굴더니, 온갖 아이템 지원을 다 받는 건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았으니까.”

“과연. 제자가 뭘 보고 배웠는지 아주 잘 알겠어.”

빠득! 피렌을 들먹이는 유현의 도발에 데올라카의 이마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어느덧 데올라카의 주위로 온갖 기계 덩이들이 떠다니기 시작했다. 비공정에서 공급을 받은 자율 전투 마도구를 보며 유현은 백련을 고쳐 쥐었다.

단순한 마도구라고 우습게 보기에는 저들이 사용하는 것은 하나같이 다 위험한 부류의 것들이었다.

유현은 문득 손에 쥔 백련을 내려다봤다.

정말로 저들이 백련을 만든 살리오 제국 본인이 맞다면, 그들은 아주 극소수라 하더라도 신화급 무구를 만들 수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유현은 피식 웃었다. 뭘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건가. 눈앞의 적이 강하고말고, 그가 사용하는 마도구가 위험하고 말고는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을.

“어디, 준비물은 이제 다 갖췄나?”

“뭐?”

“기다리다 지치겠어. 꺼낼 수 있는 건 다 꺼내 보라고.”

“미쳤군. 지금 적에게 기회를 주겠다 이건가? 당장 숨도 쉬지 못하게 몰아쳐도 모자랄 판에?”

“그렇다면?”

“……날 우습게 본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해 주마. 나중에 후회하지나 마라.”

반쯤 기계와 섞은 것 같은 검들이 데올라카의 주위를 회전했다. 조금 전 유현의 나선흑검을 잠시나마 막아 냈던 방패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수한 기계 장치의 가호 속에서 데올라카는 손에 쥔 검을 들어 올려 유현을 향해 겨누었다.

하늘 위에서 그를 지원하러 내려온 마도병단이 공중에 뜬 채 유현을 내려다봤다.

결국, 일대일 싸움이란 없었다. 애초에 전쟁에서 정정당당한 싸움이 벌어질 거라고 바라지도 않았다.

‘그나마 다른 쪽은 나름 잘 싸우는 것 같으니 다행인가.’

살리오 제국의 마지막 집행자와 겨루고 있는 윌포드를 비롯해서, 자연석으로 일으킨 재해 속에서 연합의 군주들은 밀리지 않고 잘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의 문제다. 살리오 제국 측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기본적인 무구의 격차도 컸기에 당장은 어떻게든 허를 찔렀지만, 곧바로 형세가 뒤집히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러니 그사이에 이쪽에서 먼저 적장의 목을 칠 필요가 있었다.

‘흐름을 이쪽에서 주도한다.’

단순히 쓰러뜨리는 거로 끝나서는 안 된다.

상대방에게 힘의 격차를 제대로 보여 주면서 쓰러뜨려야만 상대방의 사기를 저하시킬 수 있다. 유현이 데올라카가 모든 준비를 갖추는 것을 기다리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곧이어 데올라카가 움직였다. 동시에 그의 주위를 떠다니던 검과 방패도 반응했다.

시작인가.

데올라카의 주위에 떠다니던 검이 유현을 향해 겨눠지더니, 이윽고 검신이 좌우로 쩍 갈라지며 레이저를 쏘았다.

설마하니 검 자체가 이런 레이저를 난사할 줄이야. 유현은 이미 라플라스의 눈으로 그런 미래를 읽었지만, 실제로 보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빔을 현란하게 회피하면서 유현은 데올라카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막아라!”

“녀석을 죽여!”

동시에 살리오 제국의 마도병단이 유현을 향해 창을 겨누고 달려들었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무수한 폭격과 적들의 공세 사이로, 유현은 오로지 맨몸으로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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