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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392화 (392/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392화

우중충한 하늘은 당장에라도 비를 쏟아 내릴 것처럼 어두웠다.

유현은 주변을 살폈다. 메마른 바람이 모래 위를 내달리는 황량한 대지 위에 100여 명의 사람이 곧 있을 전투를 대비하며 서 있었다.

전쟁을 치르기에 100명의 숫자는 적지만, 이 자리에 모인 자들 대부분이 최소 초월자라는 걸 생각하면 절대로 꿀리지 않은 전력이 모인 셈이었다.

하지만, 그런 100명의 강자조차도 앞으로 있을 싸움에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쪽이 강한 만큼, 상대방의 전력은 그 이상이었으니까.

‘지아 씨는, 따로 자리를 떠났군.’

권지아는 오늘 있을 연합 내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살리오 제국이 외부에서 데리고 온 아스가르드 성령인 마그니를 막기 위해 그녀의 존재는 필수 불가결이었으니까.

아마 마그니도 일전에 승부를 내지 못한 것의 수모를 갚기 위해 권지아와의 싸움을 피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겨우 대성군 세력 하나를 떼어 놓은 정도인가.’

가장 큰 문제라고 한다면 또 하나의 대성군인 올림포스였다.

그들이 대체 누굴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전쟁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절대 어중간한 성령을 보낸 것은 아닐 터.

그래도 다들 1세대는 아니고, 2세대 정도로 보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지만. 2세대 성령의 강함도 사실 그렇게 낮은 건 아니다.

1세대에 비해서 살아온 세월과 지닌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부족할 뿐이지, 그들 또한 신화 속에서 ‘신’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존재들이다.

‘하나만 출몰해도 이쪽의 군주급이 최소 4명 이상은 붙어야 상대가 가능해. 그것도 전투에 상당히 능한 자들로만 추려서. 그렇게 되면 전력의 격차는 훨씬 더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이쪽의 가장 큰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최도윤이라도 있으면 몰랐지만, 최도윤은 얼마 전 유현과 싸운 것 때문에 다친 몸을 치료하는 중이라 싸움에 끼어들 수 없었다.

유현은 속으로 하나도 도움 안 되는 녀석이라고 툴툴거리면서도, 막상 중요한 순간이 오니 녀석의 도움이 궁한 자신의 처지가 어이가 없어서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온다.”

누군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모두가 정면의 황야 너머를 주시했지만, 적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거대한 기척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것은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느끼고 있는 바였다.

하늘.

모두의 고개가 위로 올라갔다.

검은 짐승들이 가로지르는 것 같은 먹구름이 갈라지더니 그 틈새를 비집고 빛이 쏟아져 내렸다.

처음에는 태양 빛인가 싶었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먹구름을 비집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는 거대한 비공정이었다.

‘크군.’

크기만 300m는 넘어 보이는 거대한 비공정은 살리오 제국의 마도공학의 힘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병기였다.

그런 비공정의 숫자만 거의 10여 척이 넘었다. 비공정의 갑판 위로 갑옷을 입은 살리오 제국의 병사들이 빽빽하게 들어 서 있었다.

보기만 해도 압도적인 위용에 연합의 군주 일부가 침을 삼켰다.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살리오 제국의 군단의 위용은 군주가 봐도 압박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쫄지 마.”

임건우가 한 발짝 걸어 나오며 전혀 주눅 들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보여 주기야. 저쪽의 전력이 전부 우리와 싸우려고 들지 않을걸? 저렇게 덩치만 큰 비공정, 사실상 ‘나 떨어뜨려 주시오’ 하고 광고하는 꼴이나 다름없잖냐. 그냥 우리에게 압박감을 주려고 보여 주는 일종의 쇼야.”

임건우의 말은 정답이었다. 지금 살리오 제국이 저 정도의 전력을 대놓고 보여 주면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싸우기도 전에 기세를 먹고 들어가겠다는 의도였다.

오히려 연합 측이 이 광경에 겁을 먹고 싸우지 않고 항복을 하면, 살리오 제국 측에서도 굳이 전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으니 밑져서 손해 볼 건 없었다.

어차피 저쪽에서도 싸우는 놈들은 정해져 있었다.

“주인공들이 드디어 나오는군.”

10여 척의 비공정에서 하나둘 그림자가 지상을 향해 뛰어내렸다.

그들은 수직으로 쭈욱 낙하를 하더니, 이윽고 등 뒤로 빛나는 날개를 활짝 펼치며 허공에서 천천히 부유했다.

마도공학으로 만들어진 기계 날개. 일전에 집행자 피렌과 싸우면서 본 적이 있기에 유현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살리오 제국 측의 군주들인가.’

허공에 빛나는 기계 날개를 펼치며 천천히 활강하는 군주들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천벌을 내리기 위해 내려오는 천사들의 모습과 흡사했다.

게다가 그들이 지닌 것은 단순히 기계 날개뿐만이 아니었다. 갑옷이라고 부르기엔 오히려 갑옷조차 명함을 내밀지 못할 두꺼운 외골격 슈트는 누가 봐도 군주를 위해 만든 살리오 제국 특제 슈트였다.

유현은 집행자 피렌이 싸우던 방식을 떠올렸다. 그녀는 개인의 무를 극한으로 추구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사용할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싸웠다.

그렇다는 것은 아마 저들도 비슷하다는 뜻이겠지.

“휘유. 아무리 봐도 장비 차이가 너무 심한걸?”

군주 정도 되는 자라면 굳이 싸움에 장비에 구애를 받지 않지만, 상대가 저렇게 노골적으로 차려입고 나오면 기가 죽기 마련이다.

“이봐. 우리는 뭐 보여 줄 거 없나? 드워프 오더 메이드 특수 제작 갑옷 같은 거 말이야. 오리하르콘이나 미스릴 섞은 거.”

“헛소리 말고 눈앞에 적에게나 집중하세요.”

결국, 임건우에게 철퇴를 먹인 것은 그의 부관을 자처하는 최예리의 차가운 목소리였다.

임건우도 나름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한 말이었지만, 크게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걸 깨닫고 순순히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마도병기를 덕지덕지 두른 군주들이 지상에 하나둘 착지했다.

허공에 떠 있는 비공정은 곧 있을 싸움의 후폭풍을 대비하기 위함인지 고도를 올리며 거리를 벌렸다.

‘숫자가 32명 정도인가.’

그중에서 2명은 특히 강한 기운이 풍겼다. 아마 제국에 소속되어 있다는 집행자가 저 두 사람이리라.

원래는 3명이었지만, 피렌이 죽음으로서 둘로 좁혀진 것이다.

‘그렇다 해도 피렌보다 훨씬 더 강해 보이는군.’

지나치게 마도구에 의존한 피렌과 다르게, 이번에 나타난 집행자는 다른 군주들에 비해서 상당히 단출한 차림새였다.

보기만 해도 숨이 텁텁 막히는 외골격 슈트를 입지도 않았으며, 갑옷도 아닌 움직이기 편한 제복만 갖췄다.

자만심이 아닌, 정말로 마도구의 지원 따윈 없어도 충분히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한 사람은 내가 맡겠소.”

그렇게 말하며 유현의 곁에 선 것은 갑옷을 차려입은 노년의 검사였다.

지금 모인 병력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이 남자는, 최도윤을 제외하고 현재 연합에 존재하는 유일한 집행자였다.

판타지 세계, 미들랜드 출신의 그랜드 소드마스터 윌포드.

한평생 검에 모든 것을 바쳐 온 이 남자의 눈은 곧 있을 거대한 싸움 앞에서도 전혀 기세가 누그러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는 제가 맡도록 하죠.”

싸우기 전부터 이미 약속을 해 놓은 상태다.

지금 연합 내에서 집행자를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은 유현과 권지아, 그리고 같은 집행자인 윌포드였다.

권지아는 아스가르드를 막기 위해 따로 빠져 있으니 자연스럽게 살리오 제국의 나머지 집행자를 상대해야 하는 것은 유현의 역할이었다.

상대도 유현과 싸울 생각이 만반인지, 집행자 중에서 강건한 체격을 지닌 50대 중반의 남자가 유현을 강하게 노려봤다.

‘저렇게 노골적으로 나를 노려보는 걸 보면, 아무래도 피렌과 무슨 관계가 있나 보군.’

집행자 피렌의 스승, 혹은 그의 친인척으로 추정됐다.

유현을 노려보는 집행자의 이름은 황제의 오른팔이라 일컫는 제국의 검 데올라카.

그리고, 추측대로 데올라카는 집행자 피렌을 직접 가르쳤던 검의 스승이기도 했다.

제자의 죽음에 잔뜩 분개해 있는 그는 당장이라도 유현을 씹어 먹을 기세였다. 실제로 피렌을 죽인 것은 유현이 아닌 마그니였지만, 어차피 그에게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으리라.

마그니가 죽이지 않았어도 피렌은 자신의 손에 죽었을 테니까.

[유현아.]

‘괜찮아.’

유현은 백련이 왜 자신을 불렀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

‘기지에 남겨진 사람들은 안전할 거야.’

혹시라도 군주들끼리 싸울 때 비공정의 인원이 몰래 지하 기지에 숨어들 것을 대비해서 안쪽에는 충분한 방비가 갖춰진 상태였다.

백서련은 현재 강혜림과 백효, 이 둘과 함께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기면 곧바로 백효를 데리고 탈출하라고 주의를 주기도 했다.

게다가 라플라스와 데카르트를 따로 소환해서 백서련과 강혜림을 지키라고 지시를 내렸으니 상대가 초월자라 하더라도 백서련은 안전할 것이다.

‘유일하게 걸리는 부분이라면 올림포스 녀석들이 아직 자신의 전력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건데.’

그들도 살리오 제국과 나름의 계약을 맺은 이상, 이 싸움에 반드시 모습을 드러내야 했다. 그러지 않고 구경만 한다면 대성군의 체면이 서질 않을 테니까.

‘끝까지 나오지 않는 건가?’

궁금증을 해결하기에 아쉽게도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이미 살리오 제국의 군주들은 준비를 전부 마치고,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군주들과 더불어 온갖 마도구의 지원을 받은 초월자들까지.

적들의 전력은 군주만 이쪽의 1.5배이고, 초월자들의 숫자는 2배 이상이었다.

정면에서 부딪치면 절대 이길 수 없는 상황. 그걸 알면서도 정면에서 대결하려고 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걸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말이지.”

유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머니에서 3개의 물건을 꺼냈다.

눈부시게 빛나는 새하얀 돌과 녹색의 돌, 그리고 다른 두 개의 돌에 비해서 조금은 빛이 바랜 푸른 돌.

아주 오래전, 사상세계에서 챙겨 놓은 삼색 자연석이었다.

놔두다가 나중에 비싼 포인트에 따로 팔아넘기려고 했지만, 그럴 상황이 오지 않아서 계속 지니고 있던 것이었는데.

이제 포인트에 대한 욕심도 없어진 터라 유현은 지금 이 자리에서 전부 사용하기로 했다.

“그건…….”

“고등급의 자연석? 세상에 혼성계에 아직 그 정도의 물건이 남아 있다니…….”

다른 군주들도 유현이 꺼낸 것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자연석은 정령이 돌아다니고, 생명력으로 가득 찬 미들랜드의 엘프 숲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물건이었다.

괜히 대성군 에덴에서 생명의 열매와 지혜의 열매를 키울 때 자연석을 사용하는 것이 아닐 정도로 자연석에 대한 가치는 높았다.

그것도 유현이 꺼낸 것은 그중에서도 당연히 최상급이라 할 수 있는 물건.

유현은 이 싸움에서 이 자연석을 전부 사용할 생각이었다.

물과 대지, 그리고 식물의 힘.

하늘에는 수분을 가득 머금은 먹구름이 가득하고, 대지에는 메마른 모래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으니. 적어도 3개 중에서 2개는 사용하기에 매우 적합한 환경이 아닌가.

“갑시다.”

신호와 동시에 유현은 손에 쥔 자연석을 그대로 까득 말아 쥐며 가루처럼 으깼다.

자연석에 내포된 거대한 기운이 바깥으로 퍼져나갔다. 동시에 유현의 의지를 이행하기라도 하듯 순식간에 대자연에 녹아들었다.

휘이이이잉!

허공에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거대한 먹구름이 마치 소용돌이를 그리듯 몰아치며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아직 고도를 채 높이지 못한 비공정이 구름에 휩쓸렸다.

비공정의 병사들은 패닉에 빠졌다.

“무슨 일이냐!”

“구름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어서 벗어나!”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추, 충돌합니다!”

비공정들이 서로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균형을 잡지 못하고 구름의 흐름에 힘없이 딸려 나갔다. 허공에서 비공정과 비공정이 충돌하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검은 먹구름의 사이로 붉은 불꽃이 연달아 터졌다.

변화는 하늘에만 일어나지 않았다.

대지의 자연석의 힘이 깃든 땅이 갑자기 울긋불긋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흔들렸다. 동시에 땅이 이상하게 치솟고, 기울거나 뒤집히는 등. 온갖 기이한 사태가 연달아 벌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살리오 제국의 군주들과 초월자들을 집어삼켰다.

“함정이다!”

“모두 피해!”

일부 초월자들은 가까스로 균형을 잡으며 살아 움직이는 지층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감히.”

살리오 제국의 집행자 데올라카는 이를 으득 갈며 검을 정면으로 내질렀다.

막 그를 덮치려면 높이 30m의 토사류의 파도가 반으로 쩌억 갈라졌다. 애초에 집행자나 군주들을 상대로 이런 공격은 먹히지 않는다.

그들은 개개인이 자연재해를 일으킬 수 있었으니까.

“이따위 장난질을……. 이걸로 우릴 어떻게 할 수는 없을 터.”

“하지만, 일방적으로 치우친 균형은 무너뜨릴 수 있지.”

데올라카의 초인적인 청력은 멀리 떨어진 유현의 목소리를 잡아냈다.

“그리고, 아직 하나 더 남았어.”

동시에 지면을 뚫고 거대한 식물의 뿌리가 자라났다. 두께만 30m가 넘는 거대한 식물의 뿌리는 끝부분이 쩌억 갈라지더니 마치 짐승의 입이라도 되는 것처럼 살리오 제국의 병력을 향해 들이닥쳤다.

순식간에 진형이 무너지고 혼란이 치달았다.

이것이 바로 대자연의 기운을 받은 자연석의 힘.

성령들조차 가지지 못해서 탐을 내는 물건이 혼성계에 와서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금이다! 녀석들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전부 쓸어 버려라!”

이때를 기다렸던 연합 측은 잔뜩 기세가 올라 무기를 빼 들고 제국의 병단을 향해 돌격했다.

지진과 하늘에서 쏟아지는 폭우, 거기에 땅속에서 자라나는 거대한 식인 식물의 공세를 가까스로 피한 제국의 군주들과 초월자들도 이를 악물고 반격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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