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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주인공들-385화 (385/456)

# 나만 아는 주인공들 385화

마그니는 천둥의 신 토르의 장남으로, 거인 야른삭사 사이에서 태어난 거인의 피가 섞인 혼혈신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감히 거인의 피를 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하지 못했다.

마그니는 과연 아스가르드 최강자인 토르의 힘을 이어받았다고 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강했으니까.

서열상 마그니는 2세대 성령에 속했지만, 그가 지니고 있는 힘을 생각하면 다른 1세대 성령에도 꿀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버지에게 건네받은 천둥의 망치 묠니르가 있으면 그는 무적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이게 진짜는 아니야.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거라고 하지만, 단지 묠니르의 이야기를 본떠서 만들어진 복제품에 지나지 않거든. 그래도 훌륭한 물건이지. 무려 올림포스의 대장장이 신이 만드는 데 도움을 준 물건이니까.”

마그니는 그 중요한 사실을 유현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자신이 쥐고 있는 이 묠니르가 비록 가짜라 하더라도 본연의 힘만으로 유현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지니고 있기에 나오는 행동이었다.

실제로 유현은 마그니가 묠니르에 대한 진실을 꺼냈음에도 안도하지 못했다.

조금 전 일격을 받으면서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저것이 아무리 가짜라 하더라도, 한없이 진짜에 가까운 가짜라는 걸.

방금 내려온 빛의 기둥은 단순한 빛이 아닌 한계까지 압축된 묠니르의 번개. 직접 맞닥뜨려 보니 정말 차원이 다른 위력이었다.

물론, 내심 감탄하고 있는 것은 마그니도 마찬가지였다. 나름 전력으로 휘두른 묠니르를, 그것도 기습적으로 날린 공격을 유현은 별 탈 없이 막아 냈으니까.

‘이 녀석. 인간이 맞기는 한 건가?’

책더미 군주라고 불리이게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가 싶었지만, 인간 사이에서도 이렇게까지 강한 녀석이 있다는 것은 마그니를 순수하게 감탄하게 만들었다.

싸워 보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망치를 휘두르며 피 튀기는 전투를 벌여 승리를 쟁취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그니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욕망을 억눌렀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될 일이지. 내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찾아왔는데.’

아스가르드에서 아인헤르야르만 보낸 것은 그저 빌미에 지나지 않았다. 피렌이 작전을 성공하고 실패 하고는 중요치 않았다. 어떤 결과를 맞이해도 그가 직접 나서서 위대한 전사들의 죽음의 책임을 물어 신벌을 내릴 생각이었으니까.

그나마 예상 밖이었다고 한다면, 그만한 전력을 끌고 간 피렌이 오히려 패배했다는 것.

그것도 단 한 명에게 말이다.

‘뭐, 어찌 됐든 좋아. 이 녀석을 죽이고, 연합 내의 분쟁을 부추기면 우리에게 좋게 돌아가는 일이니까.’

살리오 제국과는 일단 뜻이 일치하기 때문에 손을 잡았지만, 결국은 언젠가는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눠야 할 사이에 지나지 않았다.

비즈니스로 맺어진 관계에 우정이고 신뢰고 있을 리가 없었다. 당연히 앞일을 생각하면 살리오 제국의 전력을 미리 깎아 놓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피렌을 없애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정작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유현은 멀쩡하게 살아 있다.

마그니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유현은 강하다. 그것도 아주.

그가 지닌 전사의 피를 절로 끓게 만드는 인간이 아직 존재할 줄이야.

‘아쉬운 일이야.’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하는 심장의 고동보다도, 스스로가 소속된 집단의 이익을 우선해야 하는 이 처지가 지금처럼 불만스러울 줄이야.

뭐,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신들이 신이라 하더라도 뭐든지 손에 쥐고 주무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기왕 하는 일, 불평불만을 품으며 할 바에야 웃으면서 즐기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마그니는 그런 생각을 가지며 손에 쥔 묠니르를 들어 올렸다.

‘온다.’

유현은 마그니의 행동을 보는 순간, 곧바로 반응했다. 묠니르가 하늘을 향하자 눈 부신 빛이 번쩍이며 유현을 향해 해일처럼 밀려왔다.

엄청난 고열을 머금은 라이트닝 웨이브. 그것은 아주 예전에 출라판타카가 선보였던 게송의 4번째 구절과 닮은 부분이 있었다.

같은 2세대 성령인 것도 비슷했지만, 유일한 차이점이라 한다면 마그니가 선보이는 지금의 일격이 출라판타카의 그것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

출라판타카는 불완전한 현신을 했기 때문에 전력을 내지 못하지만, 혼성계인 이곳에서 마그니는 자신의 힘에 제한을 받지 않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였다.

1세대에 준하는 2세대 성령의 전력이 담긴 일격.

그것을 마주한 유현은 여유를 부릴 틈도 없이 바로 움직여야 했다.

칠마흑천신공 변초식 화점천.

아홉 갈래의 소용돌이가 하나로 합쳐지며 그대로 해일처럼 밀려오는 번개의 중심을 꿰뚫었다.

완전히 상쇄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니 그대로 중심을 뚫고 나갈 생각이었다.

마그니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좋구만!”

묠니르가 재차 하늘을 향했다. 다만 조금 전과 다르게 묠니르는 번개를 내뿜지 않았고 오히려 아래를 향해 휘둘러졌다.

쿠웅!

마그니가 내리찍은 지면에 거대한 충격파가 부채꼴로 퍼져 나갔다. 주위에 지진이 일어나며 지각이 변동됐다. 순식간에 마그니의 정면에 거대한 바위벽이 생성되며 유현의 시야와 길을 막았다.

‘저게 단순히 한 손으로 망치를 내리친 위력이라고?’

3살 때부터 토르의 숙적이었던 거인 흐룽그니르를 번쩍 들어 올렸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듯 마그니는 근력 자체만으로 거의 자연재해를 일으켰다.

유현은 멈추지 않고, 오히려 달리는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저 거대한 암석의 벽 따위, 군주급 강자의 앞에서는 모래성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대로 벽에 거대한 구멍이 뻥 뚫리며 마그니를 향하는 거대한 길이 생겼다.

유현은 검은 그림자처럼 움직이며 마그니의 지척까지 당도했다.

“좋군.”

마그니는 유현의 그런 과감한 행동이 마음에 든다는 듯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묠니르를 들어 올렸다.

콰앙!

백련과 묠니르가 충돌하자 충격파가 터지며 주변 일대를 휩쓸었다. 먼지구름이 뿌옇게 치솟아 오르며 우뚝 선 지층들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졌다.

콰득!

유현의 발목이 지면을 파고 들어간 반면 마그니는 멀쩡했다.

‘힘에서 밀린다.’

아포리아의 가면을 쓴 지금 자신은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엄청난 힘을 다룰 수 있었다. 당장 궁극의 생명력이라 할 수 있는 다윈의 육체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상대가 누구라 하더라도 힘에서 밀릴 일은 없다고 생각했거늘.

마그니의 근력은 그런 다윈의 육신조차 순수하게 밀릴 정도로 강력했다.

믿기지 않는 힘. 유현은 정면 대결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고 싸움의 노선을 바꾸기로 했다.

유현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마그니의 눈동자가 유현을 빠르게 쫓았다.

“속도로 승부를 보겠다?”

힘이 안 되면 민첩함으로 돌아가는 건 당연한 선택이다. 하지만 유현은 지금 한 가지 크게 착각하고 있다. 마그니가 단순히 힘만 세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그니는 이빨을 드러내듯 웃으며 곧바로 자리에서 사라졌다. 직후 그가 내디디고 서 있던 지면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쩍쩍 갈라졌다.

마그니는 초월적인 근력에 버금가는 엄청난 스피드를 선보였다. 그리고 말도 안 되게도, 아포리아의 가면을 쓴 유현의 움직임을 따라잡았다.

‘이걸 따라잡는다고?’

“어딜 가려고!”

광활한 평야 위를 두 개의 그림자가 빠르게 누볐다. 두 그림자가 엄청난 속도로 충돌할 때마다 주변 일대의 땅이 갈라지며 주위가 초토화됐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이 자식 봐라?’

마그니는 싸움이 쉽게 나지 않자 감탄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쪽도 나름 힘을 주면서 싸우고 있는데 유현은 지지 않고 맞받아치는 중이었다. 더욱이 웃긴 것은 유현은 아직 전력을 내지 않았다는 점.

나름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싸움이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정말 진지하게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미쳤다.

‘내가? 고작 인간 따위에게?’

마그니는 그 사실이 너무 웃겼다. 자신이 누구인가. 위대한 천둥의 신 토르의 자식이자 아스가르드에서 손꼽히는 위대한 전사이며 신이다. 누구도 그의 앞에서 힘을 자랑하지 못했으며, 비록 2세대 성령에 속해 있었지,만 순수한 무력만큼은 1세대에 버금가지 않았던가.

그런 자신이 눈앞의 인간 하나를 제대로 찍어 누르지 못하고 있다.

강하다는 것은 알지만, 유현도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걸 아니 자존심이 퍽이나 상하는 일이다. 마그니는 자연스럽게 공격에 분노라는 감정을 담기 시작했다.

마그니의 기세가 돌변했다. 그것을 느낀 유현은 마그니가 본격적으로 싸움에 임하려는 걸 깨달았다.

위험하다. 자신도 최선을 다해 싸우지 않으면 패배하는 것은 이쪽이 될 것이다.

‘내가 죽으면 서련 씨도, 혜림 씨도 위험해져.’

그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했다.

유현은 전신에 칠마흑천신공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평소 칠마흑천신공의 내공은 새까만 어둠을 담은 것과 같은 검은색이었지만, 이번에는 그 색깔이 달랐다.

붉다. 마치 피를 흘리는 것 같은 그 광경에 마그니는 호기심보다도 소름을 느꼈다.

“드디어 제대로 해 보자는 거구나!”

유현도 드디어 본심을 다하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았기에 마그니는 묠니르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묠니르가 다시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유현의 주위를 잠식한 붉은 기운은 꿈틀거리는 생명처럼 주위에 일렁이기 시작했다. 주변 공간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뒤틀렸다.

그것은 너무나도 거대한 힘을 최대한 억누르듯 한 장소에 붙잡고 있기에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칠마흑천신공 육마(六魔).

혈광난천(血光亂天).

억눌렀던 붉은 기운이 사방을 향해 가시처럼 뻗어져 나가며 세계를 득달같이 물어뜯었다.

동시에 묠니르에 최대한 힘을 모아 놓은 마그니 또한 자신의 기운을 전력으로 해방했다. 마그니를 중심으로 순식간에 거대한 번개 폭풍이 몰아치며 혈광난천과 충돌했다.

그 충격이 얼마나 거대했는지 유랑세계 내부에 있던 백서련도 싸움의 여파를 여실히 느꼈을 정도다.

“괜찮아요. 혜림 언니.”

유랑세계 안쪽에서 백서련은 두려움에 떠는 강혜림을 껴안고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유현 씨는 분명 이길 테니까요.”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해도 그녀의 시선은 불안함에 떨리고 있었다.

마그니와 힘겨루기에 들어간 유현은 이를 악물었다.

‘강하다.’

유현은 일전 최도윤과 싸우면서 느낀 강함을 또 한 번 여실히 느끼는 중이었다.

마그니라면 신화에서도 명망 높은 성령이다. 그런 성령이 전력을 개방하며 자신과 싸우고 있으니 힘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이런 마그니와 비슷한 존재감을 지닌 최도윤 녀석의 재수 없는 면상이 먼저 떠올랐다. 아마 최도윤이 전력을 다했다면 딱 이런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조금씩이지만, 이쪽이 밀리고 있어.’

마그니는 순수한 무력을 자랑하는 성령이다. 그런 마그니가 비록 가짜라 하더라도 묠니르를 전력으로 해방해서 싸움에 임한 것이다.

이렇게 정면에서 부딪치는 것으로 승리를 따내기에는, 아직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다.

그렇다면 방식을 바꾼다.

‘하나로 부족하면 둘을.’

둘로 부족하면 셋을.

유현은 등 뒤에 펼친 이카로스의 날개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새까만 날개가 혈광난천의 영향을 받아 붉게 물들었다.

날개의 형상이 기이하기 뒤틀리더니 이윽고 악마의 날개처럼 바뀌었다.

칠마흑천신공 육마 변초식.

혈익왕(血翼王).

거대한 날개가 활짝 펼쳐지며 묠니르의 번개 폭풍을 양쪽에서 껴안듯이 둘러쌌다. 이 상태로 유현은 3번째 공격을 위해 백련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창의 형태로 변한 백련이 바르르 떨리더니 붉게 물들었다.

이것을 이대로 저 충돌점 너머 마그니에게 투척하려는 순간.

충돌하는 두 개의 힘을 뚫고 마그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갑작스러운 마그니의 돌발 행동에 사고가 얼어붙는다. 마그니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것이 아주 약간 늦어지고 말았다.

‘설마, 그 상황에서 공격을 뚫고 들어왔다고?’

아무리 성령이라 하더라도 과감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도 유현이 사용한 혈광난천과 자신이 쏘아 낸 묠니르의 번개의 힘을 몸으로 받아 낸 것이다.

실제로 모습을 드러낸 마그니는 몸 곳곳에 신혈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상처를 입은 대가로 이 싸움에서 이기는 거라면 마그니는 몇 번이고 이런 상처를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멧돼지 같은 저돌적인 돌진이 만들어 낸 일종의 도박수. 그것이 상식을 초월하는 사태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마그니는 씨익 웃으며 유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굳이 지척까지 접근할 필요는 없다. 이 정도 거리라 하더라도, 묠니르를 휘두르기만 하면 충분히 죽일 수 있으니까.

‘내가 이겼다.’

마그니는 유현이 강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은 채 힘겨루기에 들어갔다면, 오히려 패배하는 것은 자신이 됐을 것이다.

유현이 저 폭발 너머에서 삼중으로 공격을 가하려는 것을, 이 폭발의 중심을 뚫고 나오면서 겨우 눈치챘으니까.

아주 순간이 만들어 낸 사소한 차이. 그것이 바로 지금 싸움의 승패를 가로지르는 경계선이 됐다.

‘여전히 네놈이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은 알겠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마그니는 곧바로 유현의 머리를 향해 묠니르를 휘둘렀다.

“……!”

하지만 그 순간, 곧바로 위기감을 느끼고 몸을 뒤로 뺐다.

절호의 기회를 왜 갑자기 날려 버린 거지?

유현이 그 모습에 위화감을 느낄 틈도 없이, 하늘에서 보랏빛 짐승이 뚝 떨어져 내렸다.

“너는……!”

뒤로 물러난 마그니는 보랏빛 짐승을 보더니 눈을 부릅뜨며 이를 악물었다.

본능에 따른 후퇴였지만, 갑자기 난입한 불청객을 보니 마그니는 자신이 물러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만약, 유현을 죽이기 위해 끝까지 묠니르를 휘두르려 했다면.

오히려 죽는 것은 자신이 됐을 테니까.

“젠장. 하필 이런 상황에 방해가…….”

마그니는 이를 악물었다. 이 갑자기 난입한 저 녀석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녀석이 다루는 힘만큼은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알고 있는 바였다.

이대로 싸우면 자신은 반드시 죽는다. 눈앞의 저것은 그걸 실현시킬 수 있는 그런 부류의 힘이었다.

위대한 전사에게 후퇴란 죽는 것보다도 싫은 치욕이지만, 마그니는 필사적으로 분노를 삼키며 뒤로 물러났다.

“다음에는, 반드시 죽인다.”

핏발이 선 눈으로 그렇게 경고를 날린 마그니는 이윽고 번개에 휩싸여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겨우 살아남은 유현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보랏빛 짐승을 보았다.

분명, 처음 보는 것인데도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났다.

촤르륵.

이윽고 짐승의 형상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더니 대신 한 여인이 나타났다.

이쪽을 향해 등을 돌리고 있는 그 뒷모습을 본 유현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권, 지아 씨?”

“그래.”

유현의 말에 답하듯 권지아가 등을 돌리며 유현과 눈을 마주했다.

그 흔들림 없는 눈동자도, 당당한 말투도.

예전 그대로였다.

권지아가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랜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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