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382화
패트릭을 비롯한 살리오 제국의 병사들이 물러난 이후에도 백서련의 표정은 펴질 줄 몰랐다.
그녀는 조금 전부터 계속 불안감이 엄습해서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살리오 측에서 이렇게 쉽게 물러날 리가 없다는 것은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도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순순히 물러난다는 것은 이다음에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것이 확실한 상황.
“유라. 너는 이만 집으로 돌아가.”
“뭐? 나만 가라고? 오빠는?”
“유현 씨는 일단 나와 함께 움직일 거야. 혜림 언니도 마찬가지고. 이제 괜찮으니까 어서 가.”
“왜, 왜 자꾸 나를 이렇게 보내려고 하는 건데? 언니, 솔직하게 말해 봐. 무슨 일 있는 거 맞지?”
“……그런 거 아니야.”
“거짓말하지 마. 아까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었어. 오빠를 노골적으로 범인으로 몰고 가려고 하질 않나, 갑자기 살리오 제국의 병사들이 오질 않나. 언니. 나도 바보 아니야. 이렇게 보여도 경비대장이라고. 연합 내에서 흘러가는 상황 정도는 알아.”
“……위험하니까 물러나라고 한 거야.”
“대체, 뭐가 위험한데? 그러면 언니는? 오히려 전투가 벌어지면 위험한 건 언니 아니야?”
강유라의 지적에 백서련은 입술을 오물거리기만 할 뿐, 이렇다 할 대꾸를 하지 못했다.
결국, 보다 못한 유현이 나섰다.
“다 네가 걱정돼서 하는 말이니까 너무 그렇게 받아들이지 마. 서련 씨 말도 틀린 건 없으니까.”
“하지만, 오빠……!”
“곧 큰 싸움이 벌어질 거야. 어쩌면 많은 사람이 휘말릴지도 모르지. 서련 씨는 내가 지킬 테니까, 너는 부모님을 지켜 줘.”
“그래도 내가 돕는 편이 더 좋은데…….”
“괜찮으니까.”
유현은 피식 웃으면서 유라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예전에는 딱 머리 헝클어 주기 좋은 위치에 있었는데, 지난 5년 사이 그녀도 어느덧 훌륭하게 성장한 덕분에 이제 그마저도 불가능하게 됐다.
그래도 유현의 시선에 강유라는 아직도 애였다.
자신의 눈에는 여동생처럼 비치는 그녀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또 하나의 가능성을 지닌 자신이었다.
강유라는 아직 이런 곳에서 멈추면 안 됐다. 그녀는 더 나아가야 했다. 그녀의 가능성은 고작 이런 곳에서 머물러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나머진 나한테 맡겨.”
“오빠는…… 또 그런 힘든 싸움을…….”
“이게 원래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었어.”
회귀를 하고 과거로 돌아온 순간부터, 유현은 막연히 느끼고 있었다.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며, 다른 주인공을 돋보이기 위한 조연의 역할을 벗어던지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가 걸어온 길은 결국 다른 누군가를 위한 헌신으로 빗어진 것이었다.
스스로가 자신의 이야기의 끝을 보고자 했지만, 과연 그것이 정녕 자신의 것만 보려고 했던 거였을까.
단지 자각하지 못했을 뿐, 어쩌면 처음부터 자신의 이 모든 삶은 이것을 위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알았어.”
강유라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못했다.
이쪽을 향해 웃으면서 말하는 유현의 모습이, 마치 자신의 부모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거 같아서……그녀는 슬픔을 억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꼭, 다시 집에 들러야 해?”
“그래. 물론이지.”
강유라는 꼭 약속 지키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남은 것은 백효와 강혜림, 그리고 유현과 백서련뿐.
“유현 씨. 저희도 어서 움직여요.”
“살리오 제국 녀석들이 바로 움직일까요?”
“글쎄요. 일단 제 생각으로는 그래도 며칠은 더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집행자까지 보낸 것은 의외이긴 하지만…… 그래도 저들이 저렇게까지 움직일 정도는…….”
백서련의 말은 제대로 끝맺어지지 못했다.
콰아앙──!!!
중앙 행정부의 1층부터 들려오는 거대한 폭발음에 백서련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전혀 상정하지 않았던 최악의 상황이 지금 벌어지고 만 것이다.
“설마……!”
“아무래도 놈들은 저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미친놈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대낮부터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백서련은 당황했지만, 유현은 어렴풋이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직감하고 있었다.
패트릭을 데리고 나가던 피렌의 표정은, 이미 이런 상황을 각오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러웠으니까.
유현을 영입하는 데 실패한 것치고는 저들은 너무나도 손쉽게 물러났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놈들은 이번 일이 실패하는 것까지 미리 상정해 두고, 다음 작전까지 짜 둔 것이다.
‘그렇다 해도 곧바로 실행에 옮길 줄이야.’
이렇게 노골적으로 일을 벌일 정도라면, 충분히 뒷감당할 자신이 있다는 소린데.
“서련 씨. 보통 이런 대도시에서 테러가 벌어지면 나서는 병사 중 가장 강한 사람은 어느 정도입니까?”
“네? 보통 경비대장급인데, 초월자 하급에서 중급 사이 정도에요.”
“그 이상의 전력은 없습니까? 대도시면 당연히 이곳을 지키는 군주가 있을 텐데요.”
“총경비대장이 있긴 해요. 군주 하급에 머무는 자리죠. 그 외에 도시의 원래 군주는 이런 대도시의 경우에는 집행자가 맡아요. 그리고 올드 타운의 집행자는 원래……”
백서련은 대답을 망설였다. 유현은 그녀가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았다.
“최도윤.”
“……네. 맞아요.”
올드 타운의 군주는 검의 군주 최도윤이다.
그 최도윤이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느냐고 물어볼 수가 없었다.
하필,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다니. 최도윤은 자신의 부상이 회복되는 것과 동시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겠지만, 과연 그러려면 며칠이나 되는 시간이 더 필요할까?
결국, 당장에 움직일 수 있는 전력이라고 해 봤자 경비대원과 총경비대장이 전부.
그 외에는…….
“나, 인가.”
백서련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신을 보자, 유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미 대낮부터 대놓고 정문으로 들어온 놈들입니다. 아마 조금 전부터 대기시켜 놓은 녀석들이겠죠. 이렇게까지 일을 벌였는데, 이제 와서 좋게 말로 해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유현 씨가 이렇게 있는데 대놓고…….”
“자신이 없으면 이런 짓을 벌이지도 않았겠죠. 확실히 가능하다고 생각을 해서 행동하는 겁니다. 아마 목적은, 자신들을 귀찮게 만든 서련 씨의 암살이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유현이라는 벽을 돌파해야 한다.
하지만, 집행자급의 전력을 지닌 유현을 상대로 적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어중간한 전력을 불러 모았을 리가 없다.
최소 동등한 집행자급이 아니면 이 작전은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하고 만다.
그렇다는 것은.
‘피렌.’
살리오 제국 출신의 집행자인 그 여자가, 이번에 끼어들었다는 소리다.
* * *
중앙 행정부의 입구는 거대한 폭연으로 뒤덮여 있었다.
소란을 들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도망갔다. 그 틈새를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내달렸다.
그들의 움직임은 신속하고 매우 은밀했다.
게다가 로브에는 무언가 마법적인 처리를 한 것인지 대낮인데도 그들의 모습을 완벽하게 가려 주고 있었다.
“서둘러서 움직여라. 목표를 빠르게 제거하고 떠나야 한다.”
그중 로브를 뒤집어쓴 피렌이 선두에 서서 테러리스트들을 지휘했다. 사실 말이 테러리스트들이지 이들은 모두 대성군에서 지원을 받은 고르고 고른 전력들이다.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도 이렇게까지 일을 벌이면 확실하게 끝맺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올림포스의 용기병들과 아스가르드의 아인헤르야르. 이 정도라면 아무리 올드 타운의 경비대가 몰려와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어.’
피렌 자신은 유현만 적당히 붙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니, 기회가 된다면 책더미 군주도 확실히 죽이는 것이 좋을 터.
그 남자는 어차피 살리오 제국에 등을 돌렸다. 게다가 사전에 입수한 정보로는, 결국 책더미 군주 또한 지구 출신이라고 한다. 원래는 텔러였다는데,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결국, 그 남자가 적이라는 사실 하나만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으면 그만이다.
“적이다! 어서 막아!”
“대낮부터 중앙 행정부를 습격하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복도 곳곳에서 경비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중천맹의 무인들도 있었고, 미들랜드 출신의 병사들도 있었으며 포리너의 전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촤아악!
크아아악! 아악!
수준으로만 따지면 고작 중급에서 상급 컬렉터의 사이.
이미 초월자의 문을 두드리는 위대한 전사들의 앞에서는 단 일격도 제대로 버틸 수 없다.
순식간에 복도를 피와 비명이 물들인다. 용기병과 아인헤르야르는 거침이 없었고, 그 선두를 이끄는 것은 집행자인 피렌 본인이다.
‘놈들은 아직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을 터. 벗어나기 전에 빠르게 친다.’
어느덧 목표로 했던 장소까지 도착한 피렌은 문을 거칠게 걷어차며 안으로 돌입했다.
“왔나?”
그리고, 그런 피렌을 반겨 준 것은 유현 혼자뿐이었다.
“……다른 녀석들은? 아니, 그보다 도망치지 않았다고?”
분명 있어야 할 강혜림과 백서련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거대한 백색 부엉이도 신기루처럼 사라져 있었다.
설마, 그 짧은 사이에 그들을 빼낸 건가? 하지만 누군가 도망친 기척은 느끼지 못했는데.
“뭘 머리 굴리고 있지?”
방의 중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유현은 피렌과 그 뒤의 테러리스트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차피 다 죽이려고 온 거잖아.”
“……지부장을 내보낸 건 아닌 거 같고, 모종의 방법을 이용해서 숨기고 있군.”
정답.
유현은 숨길 생각도 없이 그 말이 맞다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지니고 있는 데카르트의 힘은 그걸 가능하게 했다. 현재 강혜림과 백서련, 백효는 그가 만들어 낸 유랑세계에 가 있는 상황이다.
유현이 꺼내지 않는 이상, 피렌 측에서 백서련을 찾을 방법은 없었다.
“찾고 싶으면 날 죽여야 할 거야.”
“어차피 그럴 생각이었는데, 정신이 나가도 단단히 나갔군. 적에게 그 사실을 전부 알려 주다니. 뭐, 상관없어.”
안 그래도 싸워 보고 싶었다. 방금은 1황자 때문에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지만, 지금은 다르니까.
단지 구색 갖추기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일단 정체는 숨겼다. 단순한 로브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살리오 제국의 마도 공학으로 만들어진 특수 로브라 어지간하면 정체가 들통날 일도 없었다.
“남들의 입에 군주라 불리더니 자만심에 스스로 명을 재촉하는구나.”
피렌은 유현의 만용에 비웃음을 보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원래부터 자신이 일대일로 상대를 할 생각이었지만, 방금 그 행동으로 인해 유현은 30이 넘는 대성군의 정예 병사들까지 함께 상대하게 될 처지에 처했다.
이게 자살 행위가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인가.
“차라리 도망을 쳤어야지. 이런 곳에서 시간을 끌거나 뭘 하면 어떻게 될 줄 알았나?”
유현은 피렌을 보며 씨익 웃었다.
피렌은 순간이지만, 유현의 주위에 어둠이 내려앉았다는 착각을 느꼈다.
‘표정이, 보이지 않아?’
아니. 그게 아니다. 그의 얼굴에 순식간에 정체 모를 가면이 씌워졌을 뿐이었다.
‘4개의 눈이 달린 악마 형태의 가면. 정보대로군. 저걸 착용하면 전투력이 급증한다고 했었지.’
확실히 가면 자체가 뿜어내는 귀기도 만만치 않았다. 모른 채 마주쳤다면 피부에 닭살이 돋았을 정도이니 오합지졸들을 이끌고 왔다면 필시 일대에 소란이 벌어졌으리라.
하지만, 이 상황 또한 예상하고 있던 것이기에 피렌은 거리낄 것이 없었다.
“방금 그 말.”
아포리아의 가면을 쓴 유현은 피렌을 향해 눈을 빛냈다.
가면 위로 4개의 안광이 떠오르며 주위로 거대한 압박감을 뿜어냈다.
“이쪽에서 돌려주지.”
유현은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검은 가면에 순백의 검이라니. 피렌은 그 모습을 보면서도 어지간히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세만큼은 전부 진짜다.
“모두 쳐라!”
피렌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로브를 뒤집어쓴 대성군의 정예 병사들이 유현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대단한 도시로군.”
올드 타운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구름의 위에서 한 존재가 도시의 모습에 감탄사를 흘렸다.
하등 한 자들이 모여서 만든 군주 연합이라는 이름을 듣고 얼마나 기가 찼던가.
하지만 저런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 줄 아는 녀석들이라면, 그 자체만으로 나름의 쓸모는 있다는 소리였다.
“이걸 우리 쪽에서 지배하게 된다면, 적어도 훌륭한 성채를 짓는 인부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턱수염이 가득한 남자는 자신의 발언이 참 마음에 들었는지 호탕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웃고 있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는 시종일관 올드 타운의 중심에 우뚝 선 거대한 건축물, 중앙 행정부에 고정되어 있었다.
정확히 그 중심의 내부에 휘몰아치는 힘의 충돌을 유심히 지켜보는 중이었다.
‘이런. 아무래도 우리 쪽 위대한 전사들이 힘을 제대로 못 쓰는 것 같군.’
그래도 나름 뛰어난 녀석들로 추려서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저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걸까.
그 올림포스에서도 용기병이라는 이름을 받은 병사들을 보낸 거로 아는데, 안쪽에 있는 녀석이 얼마나 강하면 이 정예병들이 쪽도 못 쓴단 말인가.
“하등 한 녀석들이라 하더라도 역시 그중에서는 강한 놈은 존재한다 이건가.”
그에게 있어서 인간이니 뭐니, 하계에 거주하던 놈들은 전부 벌레나 다름없었다.
밟으면 찍소리도 하지 못한 채 우르르 죽어 나가는 그런 벌레들. 물론 그중에서는 나름 강한 독침이나 이빨을 지닌 놈들도 있어서 쏘이면 따갑거나 아프지만, 단지 그뿐이다.
결국 위대한 신의 자리에 서 있는 그들에겐, 하계의 존재들은 지배하고 억압할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저런 놈들의 가능성을 크게 쳐주면서 지원을 해 줘야 한다고 지껄이는 놈들은 대체 얼마나 머릿속에 꽃밭이 가득한 건지 모르겠단 말이지.”
남자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팔을 돌리며 어깨의 근육을 풀어 주었다.
굳이 이런 행동을 취할 필요는 없지만, 전투에 들어가기 전 그가 자주 보여 주는 일종의 버릇 같은 것이었다.
일단은 지켜볼 생각이지만, 상황이 만약 좋지 않게 흘러간다면.
“그때는 내가 나서야지.”
살리오 제국에게는 아인헤르야르만 지원해 준다고 했지만, 고작 그딴 하등 한 녀석들과의 조약을 지킬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이렇게까지 지원을 해 줘도 성공하지 못하면 그건 놈들의 잘못이지, 조약을 깨고 나서는 이쪽의 잘못이 아니다.
남자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허리춤에 매달린 망치 하나를 오른손에 쥐었다.
부디, 자신이 이것을 휘두를 순간이 오기를 기대하며.
파지직.
망치에는 미약하지만, 전류가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