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379화
문과 경첩을 녹인 화염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뜨거운 불꽃의 열기가 유현과 강유라를 집어삼키기 전.
유현은 정면으로 나서며 곧바로 내공을 운용했다. 순식간에 주위에 검은 기운이 확 퍼지며 파도처럼 덮쳐 오는 화염을 좌우로 찢으며 흩어 냈다.
“둘 다 괜찮아?”
“응. 나는…… 아! 서련 언니!”
폭발의 충격이 가시가 강유라가 황급히 방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폭발의 근원지인 사무실 내부는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주위의 모든 것들이 검게 탄 수준을 넘어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녹아내려 있었다.
그 속에서 강유라는 백서련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강유라. 일단 진정해.”
“하, 하지만 언니가……!”
“서련 씨는 이곳에 없어. 봐봐. 그냥 사무실만 날아갔을 뿐이야. 애초에 들어가기 전부터 내부에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었어.”
“어, 어? 정말이네…….”
겨우 이성을 되찾은 강유라는 폭발이 일어난 내부에 그 누구의 시체도 없다는 걸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현은 겁에 질린 강혜림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를 건네며 턱을 쓰다듬었다.
“중요한 건 누가 이런 짓을 벌였냐는 건데…….”
유현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때마침 폭발음을 들은 중앙 행정부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대부분 갑주와 무기를 갖춘 전투 부대였는데, 그들은 처참하게 날아간 사무실에 들어오는 순간 유현을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
“테러리스트 녀석. 배짱 한번 두둑하구나. 이른 아침부터 감히 올드 타운 내부에서 테러를 일으키다니.”
“자, 잠깐! 이분은 범인이 아니야! 우리도 조금 전에 막 여기에 도착했을 뿐이야!”
강유라가 나서며 유현을 변호하려고 했지만, 저들은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야!”
그 순간 날 선 목소리가 복도 너머에서 들려왔다. 이윽고 인파를 헤치며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를 본 강유라가 구세주라도 나타난 것처럼 기뻐하며 이름을 불렀다.
“서련 언니!”
모습을 드러낸 백서련은 5년 전과 크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몰라볼 정도는 아니어도 그녀 또한 많이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는 그래도 어리바리한 사회 초년생의 느낌이 물씬 풍겼는데, 지금의 그녀는 냉철한 사회인의 면모가 물씬 풍겼다.
그 모습은 전생의 종말 때 보았던 것과 너무나도 비슷해서, 정말 백서련이 자신이 알던 그녀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유라? 그리고 그 옆에는…….”
유현을 본 백서련의 눈이 크게 떠졌다. 유현은 설마하니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재회를 하게 될 줄 몰랐기에,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백서련은 유현의 곁에 있는 강혜림까지 보더니 이윽고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강유라. 당장 이쪽으로 와.”
“언니?”
“어서, 명령이야.”
“대체, 왜…….”
유현도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걸 느꼈는지 강유라의 등을 가볍게 밀어 줬다.
“가. 어서.”
“오빠?”
“상황이 좋지 않아. 일단은 시키는 대로 해.”
강유라는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백서련에게 다가갔다. 백서련은 강유라를 뒤로 물린 뒤 팔짱을 끼며 유현을 노려봤다.
“변명의 여지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
“둘 다 데려가세요. 제가 직접 심문할 테니까.”
경비대가 나서며 유현을 포박했다. 누군가 강혜림에게 손을 대려고 하자 강혜림이 노골적으로 싫다는 표정을 지으며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유현이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백서련이 먼저 나섰다.
“그녀는 제가 데려갈 테니까, 나머지는 저 남자에게 집중하세요.”
“알겠습니다.”
유현은 그 말에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강혜림을 배려해 준 건가?
그걸 물어볼 틈도 없이 유현은 포박된 채 경비대에 붙잡혀 어디론가 끌려갔다.
* * *
“이건 부당한 일이야!”
유치장에 구금된 유현의 앞에서 강유라가 분통을 터뜨렸다.
“오빠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잖아! 하필 그 운 나쁘게 나쁜 타이밍에 걸렸을 뿐인데! 게다가 이쪽은 하마터면 폭발에 휩쓸려 다칠 뻔했다고! 언니한테 제대로 따져야겠어!”
“난 괜찮아.”
“오빠는 화도 안 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5년 만에 보는 사람한테 그렇게 매정하게 대할 수 있어?!”
“서련 씨도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
“난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겠어.”
강유라가 그렇게 얼마나 씩씩댔을까. 복도 너머 철문이 열리더니 백서련이 부하를 대동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다들 나가 있으세요. 저 혼자서 확인할 게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대동한 부하들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밖으로 물러났다. 백서련은 이윽고 강유라를 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유라 너도, 잠시 나가 있어.”
“언니! 무슨 일인지 설명이라도 해 줘! 대체 왜 유현 오빠를 가둔 건데!”
“너한테 할 말은 없어. 나는 유현 씨와 둘이서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당장 자리 비워.”
“……!”
강유라는 입술을 깨물더니 백서련을 노려보며 밖으로 나갔다.
두꺼운 철문이 다시 닫히고, 유치장 내부가 빛을 받지 못해 어두워졌다. 백서련은 겨우 단둘만 남게 되자 유치장 너머의 유현을 마주 보며 미리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오랜만이에요.”
“예. 오랜만입니다. 서련 씨. 이런 만남은 바라지 않았지만요. 그래서 원하는 바는 이루셨습니까?”
“……반응을 보시니 어느 정도 눈치는 채셨나 보네요.”
유현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단둘만 남은 상황을 일부러 만들려고 하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혜림 씨는 어떻게 됐습니까?”
“일단 백효와 함께 놔뒀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언니는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게 해 놨으니까.”
“그러면 다행이고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백서련은 다짜고짜 변해 버린 강혜림의 모습에 적응하지 못했는지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뭐가 말입니까?”
“언니는, 그러니까…… 흑뢰군주라고 불렸잖아요. 유현 씨가 사라지고 나서 사람 자체가 완전히 변해 버렸는데, 지금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 같다고요?”
백서련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깥에서 흑뢰군주라고 들었던 강혜림이 못 보던 사이에 아이처럼 변해 버렸으니 보통 이상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이상으로 유현이 지난 5년 사이에 어디에서 뭘 했는지, 그리고 어쩌다가 책더미 군주라고 불리게 됐는지도.
그녀에게는 궁금한 것 투성이었다.
“연합의 정보로 다 알고 있는 거 아니었습니까? 지부장이라 불리시는 거 같던데.”
“저라고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혜림 언니가 저렇게 된 건, 분명 유현 씨가 손을 썼기 때문이겠죠?”
“맞습니다.”
“대답해 주세요. 언니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안 그래도 서련 씨를 만나면 다 말해 주려고 했습니다.”
유현은 강혜림과 자신의 사이에 있던 일을 설명해 줬다.
그밖에도 자신이 어쩌다 5년 동안 행방불명 됐는지에 대한 전후 사정까지 전부다.
이야기를 전부 다 들은 백서련의 표정이 처음으로 슬픔으로 일그러졌다.
“……미안해요. 제가, 제가 언니를 잘 돌봤어야 하는데.”
“서련 씨의 잘못이 아닙니다. 제 잘못이 크죠. 제가 그때 사라지지만 않았어도 혜림 씨가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테니까.”
“전부 마라 파피야스의 짓이잖아요. 유현 씨는, 오히려 혜림 언니가 더 망가지기 전에 그녀를 구원한 거예요.”
“구원……입니까.”
어쩌면 다른 사람의 시선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과연 강혜림에게 이것이 전부 구원일까?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손에 죽고, 다시 그 사람의 손에 부활하게 된 이 삶이 과연 정말 그녀가 바라던 것일까?
지금은 그녀의 이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을 뿐이지, 만약 이야기를 모아서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을 때…… 그녀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래. 중요한 건 그게 아니겠죠. 그래서 서련 씨,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테러가 있었어요.”
“그건 봐서 압니다. 전부터 있던 일입니까?”
“사소하게는 있었죠. 이렇게 노골적으로 중앙 행정부를 노린 적은 없었지만요.”
올드 타운, 그것을 넘어선 연합 내에서 테러라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유현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적어도 연합은 그가 생각하기에 혼성계 내에서 약자들이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곳이었으니까.
설마, 연합을 전복시키려는 세력이 있다는 말인가.
“대체 누구입니까?”
“어렴풋이 밝혀진 바로는 외부 세력의 힘을 빌린 내부인의 소행이라는 거죠.”
“내부인의 소행이요?”
“유현 씨는 연합을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죠?”
“저라고 연합의 모든 것을 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혼성계 내에서 성령이 아닌 자들이 살기에는 나쁘지 않은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종족들이 서로 어우러져 지내고 있으니까요.”
“그렇죠. 하지만 유현 씨도 아시죠? 인간만 있던 지구에서도 분쟁과 차별은 존재했다는 걸. 그렇다면 종족이 완전히 다른 자들이 모이면 어떻게 될까요?”
“……표면상으로 드러나지 않은 여러 문제가 산재해 있겠죠. 아니, 그것도 아니려나. 여러모로 충돌이 끊이지 않겠네요.”
“바로 그거에요. 당연히 이런 부분에 불만을 품은 자들이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있죠.”
“그런 세력 중 일부가 외부 세력을 이용해서 테러를 벌였다 이건가요? 외부 세력이라면 대체 어디죠?”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요.”
“…….”
너무 예상 밖의 이름들이 나와서 유현은 살짝 당황스러웠다.
외부 세력이라 해도 그냥 적당한 다른 군주 쪽이나 일반 성군일 줄 알았는데, 대성군의 이름이 두 개나 나오는 것은 의외였다.
“엄청 의외로군요.”
“올림포스는 원래부터 야심이 가득한 곳이었죠.”
“아스가르드는요?”
“그쪽도 만만치 않죠. 유현 씨도 북유럽 전승에 대해서 아시잖아요. 다가올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 발키리들을 이용해, 전사들인 아인헤르야르를 양성하고 키우는 게 그쪽인데.”
“……그렇게 보면 올림포스도 비슷하군요.”
두 대성군 다 다가올 대전쟁을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가장 활발한 곳이었다.
과연. 연합에 외부의 지원을 해 준 뒤, 사태가 정리되면 자신들이 삼킬 생각이었던 것인가.
이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사건이 커지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연합의 상황도 그렇게 깨끗하지는 않아요. 유현 씨는 연합이 만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적어도 지구가 편입되기 전에도 있었겠죠.”
“맞아요. 그러다 보니 저희가 연합에 소속되기 전부터도 연합은 존재했죠. 지구 세력이 나름 연합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됐지만, 문제는 이전부터 존재해 온 다른 세력이에요.”
백서련은 연합은 크게 5개의 세력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그중 하나는 최근에 가장 빠르게 주가를 올리는 지구의 세력이었다. 지구인 중에서 초월자급 강자들이 상당히 많았으며, 집행자 중 1명도 지구 출신의 최도윤이었으니까.
게다가 서수민은 또 어떤가. 일반적인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연합의 상층부에서는 그녀의 강함을 아주 잘 인지하고 있다.
“그보다 5개나 되는 세력이 있다니. 나머지 4개는 어떻기에 그러죠?”
“넷 중 셋은 나쁘지 않아요. 한쪽은 엘프, 드워프, 수인들이 유지하는 세력인 미들랜드 출신이에요. 그쪽은 기본적으로 조화를 추구하는 곳이죠.”
“흔히들 판타지 세계라 부르는 쪽이로군요.”
“네. 다른 한쪽은 무림이라 부르는 곳의 중천맹(中天盟)이라는 곳이에요. 이쪽도 의와 협을 중시하는 쪽이라서 기본적으로 다른 곳과 잘 지내는 편이죠. 다만 싸움에 있어서는 상당히 호전적이기도 해서 자잘한 사고는 이쪽에서 자주 나죠.”
“그렇군요.”
“다른 하나는 포리너라고, 외형이 조금 많이 독특한 종족들이 모인 곳이에요. 소수 민족의 모임이라고 한다면 이해하기 편할 거예요.”
지구, 미들랜드, 중천맹, 포리너.
이렇게 5개의 세력 중 4개가 서로 나름 잘 지내는 편이라고 한다.
“마지막 하나가 문제로군요.”
“……맞아요. 살리오 제국이라는 곳이죠.”
“살리오 제국?”
유현은 슬쩍 백련을 곁눈질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백련도 반응했다.
[어? 내가 만들어진 곳이잖아?]
‘멸망한 거 아니었나?’
[멸망했지. 아마 지금 저렇게 부르는 건…… 그 이름을 유지하는 새로운 세력이 아닐까?]
확실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백서련의 설명을 더 들을 필요가 있었다.
“살리오 제국은 어떤 곳입니까?”
“마법과 과학을 전부 사용하며 거기에 뛰어난 무인까지 기르는, 말 그대로 정복과 싸움에 열을 올리는 곳이에요. 그리고 5개의 세력 중에서 가장 큰 무력을 지닌 곳이기도 하죠. 유전자 우월주의를 내세워서, 우수한 자들이 열등한 자들을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곳이에요.”
“그 사상만 들어도 그쪽에 큰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겠군요.”
“최근 살리오의 동세가 심상치 않아요. 그들은 이전부터 연합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통치하려고 했었죠. 최근엔 저희 지구 출신 때문에 견제를 자주 받아서 움직임에 제약을 받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에요. 이전부터 물밑에서 공작을 벌이던 것이 점점 노골적으로 접어들고 있죠.”
피와 전쟁을 중시하는 살리오는 다른 모든 세력을 집어삼키며 자신들이 연합의 머리로 우뚝 서겠다는 포부를 지녔다.
그리고, 그런 자들이 지배하게 되는 연합의 꼴이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겠지.
“이번 테러에 가담한 자들은 살리오 세력이 주도한 외부인의 짓일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까. 저는 운 없이 걸려든 거고요?”
“일단은 당장의 불만을 가라앉히기 위해 유현 씨를 구금했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곧 무죄로 풀려나실 테니까.”
“그건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네요.”
“하지만 유현 씨가 도시에 들어온 타이밍에 벌어진 테러라는 건, 아무리 봐도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하자가 있어요.”
“누군가 저를 일부러 이 사태에 엮기 위해서 그런 짓을 벌였다는 겁니까?”
“그렇겠죠. 테러 세력은 유현 씨와 자신들을 일부러 엮게끔 보이게 만든 거죠. 그렇게 유현 씨가 범죄자로 낙인이 찍히고 구금되어 있다면, 그때 자신들이 나서서 도움의 손길을 뻗으며 유현 씨를 데려오려는 거고요.”
“뻔하지만, 효과적인 수법이군요.”
“네. 그리고 유현 씨에게 그렇게 손을 내미는 사람은, 아마 내부에서도 상당히 중진을 맡은 사람이겠죠. 가령, 중앙 행정부의 지부장 같은…….”
“…….”
유현은 백서련의 말에 무언가 이질감을 읽어 냈다.
그녀가 하는 말은 마치 이럴 거라고 확신을 가진 것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그래.
마치, 자신이 이럴 거라고 예고를 하는 것처럼.
“……서련 씨 설마.”
백서련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은 대신 유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유현 씨. 저희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