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 아는 주인공들 375화
강유현과 최도윤의 싸움은 그 여파만으로 주변 일대에 자연재해를 일으키기 충분했다.
둘을 중심으로 거대한 폭풍이 휘몰아치며 주변 일대를 엄청난 기세로 휘몰아쳤다.
검과 검이 충돌하며 눈부신 섬광과 함께 땅이 뒤집히고 하늘이 갈라졌다.
한 차례 검을 섞어 본 최도윤은 ‘흠’ 하고 혀를 차더니 몸을 뒤로 뺐다.
“도망치는 거냐?”
“거리를 벌리는 거지.”
유현은 그런 최도윤을 단번에 따라잡았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린델에서 멀리 떨어진 황야에 착지하며 재차 격돌했다.
유현이 백련을 찔러 넣었다. 최도윤은 피하거나 막으려고 들지 않았다. 공격에는 더 강한 공격으로. 그것이 그가 싸우는 방식이었다.
순식간에 최도윤의 검이 5개로 갈라지며 유현의 눈을 현혹시켰다. 분검? 아니. 환상 따위가 아니다. 지금 유현을 노리는 5자루의 검은 전부 다 진짜였다.
검의 가호.
지구로 돌아오기 전, 최도윤은 베니싱에 휘말려 머물게 된 세계에서 검신이라 불렸다. 그는 검에 대해서는 절대 다른 누군가와 겸상을 하지 않았다. 그의 주위를 떠도는 4자루의 검 또한 검의 극의에 달한 그가 얻은 가호였다.
최도윤이 직접 휘두르는 한 자루와 자유자재로 허공을 누비는 4자루의 검이 사방에서 현란하게 움직이며 유현의 목을 조였다. 공격을 하려던 유현은 곧바로 방어에 급급해졌다.
이건 위험하다.
유현은 얼굴에 아포리아의 가면을 썼다. 몸 주위로 검은 활자가 아지랑이처럼 일어났다. 가면에 새겨진 4개의 눈동자에 붉은 안광이 폭사하더니 이윽고 허공에 선을 그었다.
유현의 몸이 검은 그림자와 함께 사라졌다. 최도윤은 수호검으로 주위를 경계하며 눈동자를 굴렸다.
‘빠르군.’
저 가면에 무슨 힘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걸 착용한 순간 갑자기 움직임이 달라졌다.
순간이지만, 이쪽이 움직임을 놓쳤다. 그 흑뢰군주가 패배했다는 것도 과장된 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최도윤은 곧바로 기감을 확장했다. 그를 중심으로 주위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돔이 씌워졌다.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돔 안쪽에만 있다면 상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잡아낼 수 있었다.
카앙!
뒤에서 치고 들어오는 기습을 막아 낸 최도윤이 무표정한 얼굴로 되물었다.
“가면을 쓰고 빨라진 게 전부인가?”
“확인해 봐.”
유현이 팔뚝에 힘을 밀어 넣자 최도윤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비등하게 붙었던 힘의 균형이 완전하게 무너져 내렸다.
힘으로는 이제 상대하기 힘들겠군.
그렇다면 방식을 바꾸면 그만이다. 최도윤은 지체 없이 검을 옆으로 흘렸다.
패도적으로 휘두르던 그의 정직한 검의 궤도가 점점 유려하게 곡선을 그리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눈을 현혹시킬 정도로 현란해졌다. 어디 이것도 제대로 막을 수 있냐고 시험을 하려는 것처럼, 의념을 담은 칼날이 유현의 급소를 노렸다.
유현의 한쪽 눈이 빛났다.
미래를 보는 라플라스의 눈이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를 읽어 냈다. 그러나 완전하지 않다. 상대는 연합의 집행자. 급으로만 놓고 보면 어지간한 성령도 명함을 내밀지 못하는 강자다.
그 부족한 부분은 직감으로 때웠다.
슈슈슉.
순식간에 몸 여기저기에 잔상처가 났다. 제대로 된 방어와 회피는 하지 못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상처는 순식간에 재생됐으니까. 직격타는 전부 피했다.
최도윤은 유현의 움직임을 보며 감탄을 흘렸다.
“기괴한 힘을 얻었군.”
“널 쓰러뜨릴 힘이지.”
유현은 최도윤의 도발에 지지 않고 받아치며 백련을 작살의 형태로 바꿨다. 한계까지 당겨진 팔이 앞으로 뻗어져 나가며 작살을 투척했다. 곧바로 [리바이어던]이 펼쳐졌다.
순식간에 팽창한 기운이 거대한 바다뱀으로 바뀌며 최도윤을 향해 입을 벌렸다.
콰직! 리바이어던이 최도윤의 몸을 집어삼켰다. 직후 리바이어던의 전신에 무수한 칼날이 돋아나며 산산이 찢겨 나갔다.
검의 무덤.
무수한 검으로 적을 찢어발기는 그 스킬은 전생에서도 자주 보던 광경이었다. 시련이라는 이름으로 내려온 무수한 절망이 저 검의 무덤 아래에 얼마나 처참하게 쓸려 나갔던가.
공격도 방어도 원하는 대로 마음껏 이룰 수 있는 사기적인 스킬.
유현은 혀를 차며 노틸러스를 소환했다. 허공에 떠오르는 거대한 잠수함으로부터 무수한 미사일이 쏘아졌다. 미사일은 허공에 꼬리를 그리며 최도윤을 노렸다. 최도윤은 곧바로 지면에 검을 꽂았다. 검의 무덤이 재차 펼쳐졌다.
촤자자자작!
크고 작은 무수한 검날이 땅을 뚫고 튀어나와 최도윤의 몸을 보호하듯 둘러쌌다. 노틸러스의 미사일은 검을 뚫지 못했다.
“유린해라.”
최도윤의 명령이 떨어지자 칼날이 하늘로 솟구쳤다. 무수한 검이 노틸러스 잠수함을 꿰뚫고 베어 내며 고철 더미로 바꿔 버렸다.
폭발의 매연에 휩싸인 노틸러스가 활자로 변해 사라졌다.
노틸러스를 꿰뚫은 수백 수천의 검들이 허공에 커튼처럼 도열하며 유현을 노려봤다.
[유현아. 쟤 엄청 강해!]
흑뢰군주였던 강혜림과 싸울 때도 별말을 않던 백련이 처음으로 상대방의 무위에 경탄했다.
신화급 무구에 부서지지 않는다는 특성까지 달고 있어서 망정이지, 백련은 최도윤의 검격을 몇 번이나 받아 내면서 자신이 이대로면 부러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연합의 집행자는 연합에 소속된 군주 중에서 가장 강한 상위의 존재에게만 주어지는 명예로운 칭호.
최도윤은 집행자라 불리기 이전에 모두의 입에 군주로서 이름이 오르내렸다.
검의 군주.
모든 검으로부터 사랑받고 칭송받는 유일한 존재.
그것은 집행자가 되어서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그의 본질적인 면모였다.
“그게 전부냐?”
아름답게 도열한 검의 군중에 둘러싸인 최도윤이 무심한 눈빛으로 유현을 내려다봤다.
“그렇다면 실망이 크군.”
화륵!
아포리아의 가면의 안광이 더욱 강하게 타올랐다.
“그럴 리가.”
동시에 검은 먹물을 풀어헤치듯 유현 주위의 세계가 검게 물들었다.
최도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호오. 처음으로 그의 입가에 호기심 어린 미소가 맺혔다.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그야말로 칠흑과도 같은 기운이 바깥으로 흘러넘쳐서 저렇게 된 것이다.
유현은 최도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칠마흑천신공의 첫 번째 마, 재화가 펼쳐졌다.
세상을 뒤덮은 강기가 검은 꽃으로 변해 화사하게 피었다. 무수한 꽃잎은 하나하나가 의념과 살기가 담긴 필살의 일격이었다.
‘저건 좀 위험하겠군.’
최도윤의 등 뒤로 나열한 검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검과 꽃잎이 허공에서 충돌하며 폭발했다.
콰과과과광.
밝은 대낮에 그보다 훨씬 더 눈부신 섬광이 연달아 터졌다.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윈다린은 오한과 동시에 식은땀을 흘려야만 했다.
‘저런 괴물들이 나랑 같은 군주라고?’
같은 군주라 불리지만 수준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힘과 힘이 충돌하면서 만들어 내는 거대한 파장을 피부로만 느끼고 있음에도 뼈저리게 실감하고 만다.
저들은 자신과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쿠과과광!
폭발이 폭발과 겹치고 더욱 크기를 불려 나갔다. 순식간에 거대한 폭발 하나가 터지며 주변 일대를 열과 에너지로 휩쓸었다. 땅이 갈라지다 못해 융해되었고, 주변 일대의 공기가 순간 빨려 들어오며 거대한 버섯구름을 만들었다.
폭발의 매연 속에서 최도윤은 유현의 위치를 탐색했다.
‘어디지? 어디냐.’
연막 속에 몸을 숨긴 유현을 찾는 것은 썩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수한 잔해가 아직도 주위에 뒤섞여 있어서 기감으로 확인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 순간 저 아래에서 붉은 안광이 얼핏 스쳐 지나가듯 보였다.
최도윤의 검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푹푹푹!
살점을 꿰뚫는 소리가 정확하게 났다. 제대로 타격을 입혔다. 하지만 최도윤은 그 점에 오히려 의구심이 들었다.
피하거나 막을 거라고 생각해서 견제용으로 날렸는데, 이렇게 쉽게 당한다고?
‘아니. 가짜다.’
이성과 본능이 동시에 해답을 도출했다.
동시에 그의 몸이 회전하며 검을 휘둘러, 뒤에서 날아온 기습적인 검을 방어했다.
“이게 진짜로군.”
“전부 다 진짜야.”
아래에 깔린 먼지구름이 갈라지며 10여 명이 넘는 유현이 최도윤에게 달려들었다. 환영? 아니, 전부 현실이다.
최도윤은 주위 검을 회수하며 자신의 몸에 갑옷처럼 둘렀다. 환상을 현실로 만드는 힘이라니. 그것에 놀랄 틈도 없이 유현의 공세가 거칠게 변했다.
두 번째 마, 흑사뢰.
최도윤을 향해 실처럼 압축된 강기 다발이 쏘아졌다. 최도윤은 신전 기둥보다 두꺼운 거검을 소환하여 방패로 사용했다. 흑사뢰는 거검을 뚫지 못하고 바깥으로 퍼지듯 튕겨 나갔다. 유현은 그 순간 뻗었던 손으로 주먹을 으스러져라 말아 쥐었다.
촤라라락!
흩어졌던 흑사뢰가 거검을 서로 엮으며 실타래처럼 엉켰다. 이대로 흑사뢰를 이용해 감옥을 만들려는 걸 눈치챈 최도윤의 신형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가까스로 흑사뢰의 포박의 틈새로 빠져나온 최도윤을 기다리는 건 하늘 높은 곳에서 검은 용을 부른 유현이었다.
세 번째 마, 마룡회천.
폭풍을 형상화한 용이 최도윤을 향해 입을 벌렸다. 상대가 누구라 하더라도 잘게 갈아 버리는 무시무시한 일격이다. 하지만 유현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더 강하게.’
쿠르르릉!
유현의 주위로 전류가 방전하며 검은 번개가 형성됐다.
네 번째 마, 취악굉뢰가 펼쳐졌다.
최도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의 주위로 무수한 검들이 한데 섞이더니 거대한 검으로 합쳐졌다.
그가 지닌 기술 중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강력한 기술, 단 하나의 검이었다.
그것이 마룡회천을 꿰뚫으며 유현을 향했다.
뒤이어 떨어진 번개가 검을 가로막듯 부딪쳤다.
콰가가가각!
단 하나의 검이 취악굉뢰를 찢어발기며 천천히 나아갔다.
‘밀린다. 이걸로는 부족해.’
유현은 더 강한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다섯 번째 마를 펼쳐야 하는가?
아니. 유하멸겁은 광역으로 사용하는 기술이라 한 점에 힘이 집중되는 단 하나의 검을 막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유현은 다른 기술을 펼치기로 했다.
‘혜림 씨의 책의 이야기, 거기에서 비롯된 내가 새로 터득한 기술을.’
스스스스. 일부 취악굉뢰가 그의 주위로 회수되더니 검은 검의 형태로 바뀌었다. 삽시간에 유현의 주위로 무수한 번개검이 생성됐다.
단 하나의 검 너머에서 그 광경을 보던 최도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저 기술은 분명 그의 기억 속에 있던 것이었다.
“그건…… 흑뢰군주의……?”
나선흑검(螺旋黑劍).
유현이 만들어 낸 강기의 검이 나선의 형태로 회전하며 최도윤의 검과 충돌했다.
눈부신 섬광과 함께 재차 폭발이 일어났다. 둘의 기운이 서로 상쇄되듯 소멸하며 주위로 온갖 충격파를 흩뿌렸다.
유현은 이를 악물고, 그 폭발의 중심에 몸을 던졌다.
‘더 빠르게.’
유현을 본 최도윤이 눈을 부릅떴다.
설마, 이 폭발을 맨몸으로 뚫고 올 줄은 몰랐는지 최도윤의 반응이 늦어졌다.
유현의 어깨가 최도윤의 몸을 들이받았다. 둘의 몸이 한데 뒤엉키며 지면으로 떨어졌다.
쿠웅! 뿌연 먼지구름이 일어나며 크레이터가 생겼다. 그 중심에서 유현은 한 손 팔꿈치로 최도윤의 목을 밀어내며 그를 노려봤다.
“어디 더 지껄여 봐. 이래도 부족한지!”
분노에 찬 고함과 함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으득! 최도윤은 고통에 눈살을 찌푸리며 주위에 몇 자루 남아 있는 검을 회수했다.
“데카르트.”
[네. 주군.]
유현이 명령을 내리자 데카르트가 나타나며 검을 허공에 묶었다. 이로써 최도윤의 마지막 수단도 전부 다 봉쇄됐다.
“왜. 네가 지금까지 무시했던 녀석에게 지니까 말문이 막혀?”
“너…….”
살기와 분노로 점철된 시선에 최도윤은 뭐라 말을 하려다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것이 유현의 화를 더욱 부추겼다.
“대답해 봐. 지금 기분이 어떤지.”
유현이 지금까지 억눌러 왔던 감정이 무너지듯 폭발했다.
내가 뭘 위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어떤 각오를 지니고 여기까지 왔는데.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는데.
“어? 대답해 보라고!”
그런데 네가, 감히 내게 가치와 자격 따위를 논해?
너는 몰라. 아무것도 모른다고. 내가 여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 내가 뭘 희생했는지.
“대답해!!!”
유현이 소리를 지르며 역수로 쥔 백련을 치켜들었다. 최도윤은 그 모습을 보며 눈을 감았다.
콰득!
하지만, 기다리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최도윤은 감았던 눈을 떴다.
미간을 찌를 거라고 생각했던 백련은 그의 머리 바로 옆, 지면에 꽂혀 있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유현은 검의 방향을 틀어 그를 죽이지 않은 것이다.
의외라는 최도윤의 시선을 받으며 유현은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최도윤은 유현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왜 날 죽이지 않았지?”
“난 네가 아니니까.”
많은 것이 함축된 그 한마디에 최도윤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가.”
뭐라고 따질 말이 나오지도 않을 정도로 이쪽의 완벽한 패배였다.
서로가 영혼을 쥐어짜 낸 모든 기술을 다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진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직 보여 주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만약에 양쪽 다 진심을 다해 싸웠다고 해도 결과는 똑같았을 거라고, 그런 확신이 들었다.
그 순간, 멀리서 이쪽을 향해 기척 몇 개가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도윤님!”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누군가 매를 타고 날아왔다.
그녀는 곧바로 최도윤의 옆에 착지하더니 그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동시에 함께 매를 타고 온 갈색 피부 여인이 최도윤의 몸 상태를 보더니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유현을 노려봤다.
“감히……!”
“멈춰! 자밀라!”
자밀라를 말린 것은 구서윤이었다. 그녀는 어딘가 착잡한 시선으로 유현을 바라봤다.
“강유현 텔러님, 맞죠?”
“그래.”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포리아의 가면을 해제했다.
그를 알아본 자밀라가 눈을 크게 떴다. 5년 전 행방불명됐다는 유현이 눈앞에 버젓이 살아 돌아온 것이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책더미 군주가, 당신……?”
“서로 아는 사이였나?”
구서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난 최도윤이 물었다.
구서윤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간략하게 예전에 안면을 튼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5년 전에 아카데미 생도였던 그녀는 온데간데없이, 지금의 구서윤은 유현의 전생에서 보던 모습과 똑같았다.
유현은 자밀라와 구서윤이 다시 최도윤과 함께 움직이는 것을 보고 조금이지만 놀랐다. 그나마 흑철기사인 황세은은 저 멤버에 빠졌지만, 저게 바로 운명이라는 걸까.
“살아 계셨어요? 아니, 지금까지 대체 어디에 가셨던 거예요?”
“어쩌다 보니.”
그 이상은 묻지 말라는 무언의 행동에 구서윤은 화제를 바꿨다.
“그…… 강혜림 컬렉터님의 일은…….”
구서윤은 무언가 말을 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유현이 책더미 군주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가 이곳에 오기 전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 눈치챈 것이다.
“……유라와 수민이가 애타게 기다렸어요. 그 외에 백화 매니지먼트 사람들까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나?”
“연합의 대도시 중 하나인 올드 타운에 있어요.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는 그곳에 가면 소식을 접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가. 알려 줘서 고맙다.”
“저는…….”
유현은 구서윤의 뒷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자밀라가 그런 유현을 불러 세우려고 했지만, 최도윤이 말렸다.
“됐다. 보내 줘.”
“하지만…….”
“그냥, 보내 줘라.”
그 목소리에서 무언가 느낀 것일까, 구서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답했다.
유현은 곧바로 먼 곳까지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에 이미 대피를 완료한 강혜림이 유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강혜림 혼자는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보다 한참 작은 어린아이를 껴안은 채 뺨을 비비고 있었다. 린델의 군주인 윈다린이었다.